1933년 9월 6일, 한림이 석방되던 날이다. 한림을 만난 김교신은 감옥에서 나온 한림의 태도가 너무나 당당하고 희망에 부풀어 있음을 보고 감탄한다. 김교신의 눈에는 ‘ML 당 사건의 거두인 유물론자 한림의 당당한 모습’과 ‘한국 기독교인들의 왜소한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으로 비쳤다. 1933년 9월 초순 〈일기〉에 김교신은 이렇게 썼다.
〈일기〉 9월 초순에는 6, 7년 만에 출옥하는 H군을 옥문에 맞다. 소위 ML 당 사건의 거두(巨頭)라 하는 이다. 그 희망이 양양한 것과 그 태도의 천진한 모양이 자연히 나에게 루터 부인의 일화를 연상케 한다. H군을 백두산기슭에 성장한 거목(巨木)에 비한다면, 오늘 기독교 신자의 대부분은 고층 건물의 옥상 분재(盆栽)에 방불한 것을 부인하기 어려웠다. 만일 루터 부인이 오늘 조선 기독교의 가련한 자태를 보았다면 또 한 번 상복을 입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별세한 모양이니까.
한림을 ‘백두산기슭에 성장한 거목’이라고 했다.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불린다. 공산주의자 한림을 민족의 상징인 백두산 자락에 자라난 굵고 큰 나무에 비유했다. 반면 조선의 기독교회는 ‘고층 건물의 옥상 분재’라고 했다. 산 위에서 자란 나무가 아니다. 콘크리트로 지은 고층 건물의 옥상에서 자랐다. 그나마 야생성을 간직하고 자연스럽게 자란 나무도 아니고 ‘분재’다.
분재란 ‘나무를 화분에 심어 난쟁이로 자라게 만든 결과물’이다. 외부에서 물을 공급하지 않으면 시들어 죽는다. 외국 선교사에 의존하는 조선 교회와 닮았다. 교권주의자들이 신자들을 인위적으로 교회 안에 가두어 기른 결과 그들의 영혼은 난쟁이처럼 쪼그라들었다. 김교신이 조선 기독교를 얼마나 한심하게 보았는지 알 수 있다. 김교신에게 조선 교회는 허우대만 멀쩡한 바보 동생 같은 존재였다. 위풍당당한 한림과 비교하면 할수록 더욱 초라해지는 겁쟁이였다.
마르틴 루터의 아내인 카타리나의 ‘상복(喪服) 이야기’는 종교개혁사에서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다. 수많은 적에 둘러싸여 사상 논쟁을 펼치고 늘 암살 위협에 시달렸던 루터는 아내에게 수시로 영적인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한번은 루터가 좌절하는 기색을 보이자 카타리나가 상복을 입고 나타났다. “누가 죽었냐?”는 루터의 물음에 그녀는 “하나님이 돌아가셨다”라고 답했다. “무슨 쓸데없는 소리”라며 화를 내는 루터에게 카타리나는 정색하고 “하나님이 죽지 않고 살아계신다면 당신이 이렇게 좌절하고 낙심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이에 루터는 다시 용기를 얻어 일하기 시작했다는 것.
신념에 목숨을 건 사회주의자 한림의 당당한 기개와 딴판으로, 일제의 서슬에 위축돼 벌벌 떨던 1930년대 한국기독교의 초라한 모습을 비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