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 2026.04.07.(화)
햇살 통통 튀는 맑은 아침, 대학 동기 모임 날이다. 아니, 벌써! 돌아보니 올해가 졸업 50주년이 아닌가? 가슴이 설렌다. 1976년 2월에 졸업했으니 지난 세월이 꿈결 같다. 어저께 날씨를 검색하니 유성의 기온이 2~13도로 나온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랄까? 쌀쌀한 날씨라 얇은 옷은 바람직하지 않다. 11시 10분까지 대전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주일 전에 예매한 ‘9:53분-10:34분. ktx 020. 1호 11D’에 앉았다. 40분이 잠깐 순간이동 한 듯 지나갔다. 먼저 도착한 친구의 반가운 얼굴에 웃음꽃이 환하다. 점심은 유성온천역 부근 NC백화점 10층 ‘애슐리 퀸즈’에 12시 예약이다. 대전역에서 지하철로 24분 거리, 12정거장 지난다. 그리운 동기 12명이 고풍스러운 도자기가 전시된 벽 쪽의 예약된 자리에 나란히 자리 잡았다. 점심 식대는 19,900원. 음식 맛과 종류는 그런대로 가성비가 괜찮다. 평일 낮이라 크게 붐비지 않고, 너무 썰렁하지도 않아 맛난 음식을 앞에 두고 정담에 취할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동학사’가 종점인 107번 버스를 탔다. 개개인이 바코드 찍고 타기가 번거럽다고 창원의 Y 교장이 카드로 12명을 한꺼번에 결재했다. 고맙다. 35분 남짓 걸리는 길이다. 대구는 어제 비와 우박이 내려 꽃이 많이 졌건만, 여기는 한창 절정의 순간이다. 길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입구 가까이 가니 ‘동학사 벚꽃 축제 중’이라 진입로 양쪽이 시끌벅적하다. 차창으로 스쳐본 품바 공연장이 3곳이나 된다. 전국 곳곳에서 원정 온 모양이다. 축제로 버스가 좀 밀리기는 했지만, 장사꾼이 더 많고 관광객은 드문드문 보인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현실을 반영한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계룡산 ‘동학사(東鶴寺)’. 이 절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비구니 전통 강원을 운영한다. 공주 ‘마곡사’의 말사로 신라 성덕왕 때 ‘회의 화상’이 건립했는데 당시에는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라고 했다. 오래된 절집이라 조금 다른 자료도 있다. 고려 태조 때 도선 국사가 중창하며 고려왕조의 국운을 기원하고 사찰이 커지면서 동학사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절집 올라가는 길 계곡물 소리가 유난히 맑고 청아하다. 어제 비가 온 탓일까? 수량이 제법 많다. 하얗게 부서지며 반짝이는 비늘을 드러낸 물살이 바위와 숨바꼭질하듯 감칠맛 나게 흐른다. 툭툭 갈라진 너럭바위 위를 찰랑거리며 흐르는 물결, 부서지는 물거품은 뽀얀 소금을 뿌린 듯이 톡톡 튀며 봄날을 노래한다. 그들도 길가의 벚꽃에 취해 즐겁게 흐르는 것이리라. 짙푸른 하늘 알싸한 바람, 산책에는 최상의 날씨이다. 도란도란 기념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올라 대웅전 앞에 섰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문밖에서 눈을 감고 합장해 가볍게 참배했다. 은선폭포까지 가려고 같이 출발했으나, 조금 올라가다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도중에 돌아섰다.
동학사! 여러 번 왔고 추억이 많이 깃든 절이다. 1980년 초, 같은 서실에 다니던 S와 답사한 기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녀와는 다른 곳에 여행도 많이 다녔고 좋아했지만, 인연의 끈은 이어지지 않았다. 30대 풋풋한 시절 ‘보이스카우트’ 지도교사를 맡을 때이다. 여름방학 때는 동해안을 3박4일로 야영 다녔고, 겨울에는 계룡산과 속리산을 2박3일로 돌아다녔다. 첫날은 동학사 근처 민박집에서 자고, 다음날은 ‘동학사-남매탑-금잔디고개-갑사-속리산’으로 연결된 여정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속리산에서 민박 후, 다음날 ‘법주사-세심정-문장대-법주사’를 거쳐 저녁 버스로 귀가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많이 누렸다. 내 기억으로는 계룡산 코스는 4번쯤 다녀왔기에 지금도 그 길이 눈에 선하다. 늘 눈이 많이 와서 넘어지고 미끄러지며 산행하던 그 시절이 아련하지만 또렷하다. 그때 그들도 지금은 지천명의 중반을 넘는 나이가 아닌가? 민박집에서 석유 버너를 피워 밥을 해 먹던 추억, 밤마실 나와 산책하며 군밤을 사 먹었던 기억, 조금 사서 맛만 보았는데 서로 맛있다고 K군이 “선생님 더 사 주세요.”라는 말에 못 들은 척 사 주지 못했던 일이 후회되고 아쉽다. 지금 다시 만나면 듬뿍 사 줄 수 있는데……. 동글동글한 얼굴에 유난히 쾌활하던 K의 모습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만 든다. 오늘은 어느 하늘 아래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저녁은 숙소 부근의 ‘띠울石갈비집’에서 돼지갈비로 만찬을 누렸다. 대형 음식점이라 손님도 많다. 근데 개인적으로는 크게 추천하고 싶지 않은 집이다. 재료 탓일까? 고기가 좀 타기도 했다. 나오면서 보니 주방 옆에 참숯불도 있건만, 우리가 먹은 것은 비싸지 않은 돼지고기라 참숯불에 굽지 않고 다른 연료로 굽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참숯불은 소갈비를 주문하면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상상하니 씁쓸하다. 숙소인 ‘베가시티 레지던스 호텔’ 402호와 404호에 짐을 풀었다. 유성온천역에서 5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27평형 아파트 구조로 된 깔끔한 무인 호텔이다. 일찍 예약했기에 숙박비도 합쳐서 336,000원으로 저렴하다. 친구들이 준비한 과일과 음료를 거실 탁자에 놓고 정담에 빠진다. 내가 늘 준비하던 하모니카를 가져가지 않았기에 친구들이 조금 섭섭한 모양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울까? 예전에 심취한 판소리 한 자락을 선보였다. ‘심청가’에서 ‘심봉사 눈 뜨는 장면’ 창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404호 여자 친구 방 화장실 문이 안에서 잠겨 걱정한 C에게 같이 가서 문을 열어 주고, 비상시 밖에서 문 여는 방법을 전수했다. 그 사건 때문에 코이카 일원으로 외국 거주 중이던 K의 일화가 또 나왔다. 태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밤중 잠시 베란다에 나갔다가 안에서 문이 잠겼다. 속옷 차림으로 밤새 모기에 헌혈하며 베란다에서 고생했던 이야기는 웃으며 들었지만,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내일 일정 때문에 부산의 L, 서울의 S와 나는, 저녁 8시 40분에 호텔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까지 함께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시간 여유를 두고 나왔다. 시간이 촉박했다. 다음에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움직여야겠다. ‘21:49분-22:31분. Ktx 산천 221. 7호 8D.’ 동대구역을 향해 열차는 어둠을 뚫고 천천히 대전역을 출발했다. 멋진 곳에서 정든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내 삶을 풍성하게 해 준다. 잘 보낸 하루가 멋지고 고맙다.
22. 2026.04.13.(화)
며칠 전 모란이 살짝 눈을 뜬 사진이 카톡에 떴다. C 님이 올렸다. “벌써 모란이 피었네요.” “올해 처음 핀 모란입니다.” 주고받은 덕담 뒤에 초대장이 날아왔다. “네, 혹시 4월 13일 점심 식사 같이하실래요? J 님과 함께 정원에서 삼겹살 파티 합시다.” 보름 전이다. C 님의 정원에 동백나무를 심은 소식이 전해왔다. 꽃을 좋아하는 그녀의 마당 모서리에 오빠들과 함께 16년생 홑 동백을 이식하고 있었다. 잠시 대화 끝에 “모란이 필 때 한번 놀러 오세요.” “예. 기억해 놓을게요. 집에 모란이 피면 카톡에 올리세요.” “그때 현충로역으로 달려갈게요.” 그날의 약속이 오늘 이루어졌다.
매호동에서 그녀의 집까지 도착시간을 계산하니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반월당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 현충로역에 내렸다. 약도를 보고 내비에 검색하니 골목이지만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국적인 예쁜 철 대문, 우측 빨간 우체통 위에 ‘봉보나나’라는 문패가 싱그럽고 정감이 간다. 자기 이름이 아니다. 무슨 의미일까? 궁금해하는 내게 엄마와 본인 그리고 두 딸의 이름 중간자를 빼내 지었다고 설명한다. 우와! 글쟁이답게 참신하고 멋있는 문패가 아닌가? 평소에 효심이 지극한 그녀의 생활을 많이 알고 있었다. 갑자기 달성군 하빈면의 ‘육신사’ 옆 ‘삼가헌’ 방문한 기억이 난다. ‘삼가헌’은 박팽년의 11대손이 지은 집이다. 그 집 대문 문패가 ‘도덕과 평화’라 되어있었다. 무슨 뜻이지? 한참 궁금했었다. 살고 있는 부부의 이름이라는 말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느낌과 비슷하다.
그녀와 글쓰기 인연으로 맺은 세월이 15년이 훌쩍 넘었다. 예천 시골 출신으로 참신하고 맛깔스러운 그녀의 글처럼 정원도 주인을 닮아 아담한 꽃나무가 줄을 잇는다. 며칠 사이에 활짝 펴 흐드러진 붉은 모란이 먼저 눈에 안긴다. 깔끔한 성격으로 마당에 잔디는 심지 않고 예쁜 벽돌로 아기자기하게 단장하였다. 남쪽 담을 따라 모란, 치자나무, 사철나무, 붉고 흰 영산홍 두 그루, 산초나무, 제피나무, 그리고 보름 전에 이식한 동백이 듬직한 주인처럼 자리 잡았다. 마당 한쪽에 차려진 긴 식탁, 간이 의자들, 예닐곱 명이 모여서 파티할 수 있는 넉넉한 자리다. 식탁 위에는 무공해 나물로 요리한 몇 가지 반찬과 삼겹살과 목살이 손님을 기다리며 차려 있었다. 오늘의 백미는 좋은 분들이 왔을 때만 준비한다는 완두콩이 올려진 노란 치자밥과 사골탕이다. 정성스러운 주인장의 마음을 읽는 듯 눈이 부시다. 내가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해서 이런 대접을 받을까? 이런 정성스러운 접대 받을 자격이 있을까? 가슴 깊은 곳에서 뭔지 모를 울컥한 것이 올라온다. 앞으로 더 열심히 세상을 탐구하고 겸손하게 살라는 신호라고 생각하자. 하여튼 고맙다. 예전에 함께 강의하던 문우인 P 님도 보고 싶어 연락했지만, 치과에 진료하러 가기에 참석이 어렵다는 답이 왔다.
맛깔난 식사 후, 내가 준비해 간 하모니카 연주 시간이다. 크게 잘 불지는 못해도 10여 년 공부하고 좋아했기에 모임이 있을 때는 지인과 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오늘같이 정원에서 멋진 음식을 먹고 은은한 커피 향을 음미하면서 펼친 연주는, 부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서로 힐링이 되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나는 보통 트레몰로 하모니카 6개를 준비한다. C, Am, G, A, F#m, G# 이다. 곡에 따라 음정의 높낮이가 달라 분위기에 맞게 연주하려면 각각 다른 것이 필요하다. 제일 좋아하는 ‘바람’이라는 곡으로 문을 연다. 이 곡은 2002년쯤 방영된 ‘외출’이라는 SBS 아침드라마의 OST로 즐겨 연주되는 곡이다. 색소폰이나 첼로 등으로도 많이 연주되지만, 하모니카는 주로 다이아토닉으로 연주한다. 나는 다이아토닉 하모니카는 배우지 못했기에 트레몰로로 연주한다. 전문가들의 눈에는 미흡하지만, 좋은 분들과 더불어 즐기는 시간은 꿈결 같다. 이 또한 소소한 행복이 아닌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숨어우는 바람소리’ ‘비 내리는 고모령’ 등등. 그리고 김인배 님의 곡, 트럼펫 연주로 많이 하는 ‘석양’도 좋다. ‘석양’은 인생 노년의 잔잔하고 은은한 분위기가 숨어있는 연주곡이다. 잃고 지내던 순수한 소년의 감성이 살아나는 아름다운 곡이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인연이란 무엇인가 곰곰 생각했다. ‘생산적 인연’이 있는가 하면 ‘파국적 인연’도 있다. 세상 모든 일에 ‘일체유심조’를 생각한다. 남은 삶에는 언제나 멋지고 즐거운 생산적 인연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 글을 쓰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남이 듣고 싶은 이야기의 조화가 중요하다. 호불호가 많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전자에 더 큰 비중을 주고 싶다. 자기만의 글이 좋다. 뻔한 이야기보다 다른 삶의 엿보기가 감동은 적더라고 재미는 있지 않을까? 한번 맺은 고운 인연을 나는 잘 이어간다. 모란이 피었다고 초대해 준 C 님께 고마움을 전한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낮에 바빠 못 간 ‘청춘탁구클럽’은 저녁에 갔다. 파트너가 없어, 양손을 쓰는 관장님의 왼손으로 두 경기를 했다. 두 게임 다 졌지만, 대등한 경기를 해서 즐거웠다. 오늘도 멋진 기적의 삶에 고마움을 보낸다.
23. 2026.04.17.(금)
갈등 없는 삶이 있을까? 어저께부터 ‘청춘탁구클럽’에서 소모임 문제로 말이 많다. 마음 맞는 몇몇 또래 회원들이 모임을 만들었다. 토요일 오후에 경기 공지가 떴다. 주로 오전반 고수들이 주축으로 조직되었다. 끼리끼리 즐겁게 경기하면서 실력 향상도 하고, 주말에는 시내 리그전에 참석하자는 취지다. 문제는 오후반 회원 몇몇이 동참하는 데서 일어났다. 소외된 다른 회원들이 섭섭한 모양이다. 구장의 궂은일을 자기 일처럼 봉사한 묵은 회원은 마음이 크게 상한 듯하다. Y 님이 관장님과 마주 앉았다. 한쪽의 감정이 격해지니 큰 소리가 나온다.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가 없다. 옆에서 중재하려고 해도 힘이 든다. 내 생각으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데, 쉽게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 것 같다. 관점과 해석의 차이가 아닐까? 팩트는 명확하다.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 해결의 답이다. 갈등(葛藤)이란 한자어를 살펴본다. 칡을 의미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말하는 등(藤)으로 되어있다. 각각 강한 줄기를 가지고 있어, 서로 얽히고 엉켜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해결하는 법은 서로의 뜻을 잘 알고 중재자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상호 양보를 끌어내 수용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것이다.
아침부터 봄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구장 갈등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이런 날은 어디로 갈까? 미술관 산책이 좋다. 간송미술관을 검색했다. 며칠 전부터 <추사의 그림 수업>이란 주제로 ‘대구간송미술관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한참 뒤 미술관 주차장에 얌전히 주차했다. 평일 오전 이른 시간이라 조용하다. 젊은 연인끼리, 친구끼리, 가족과 함께 온 열댓 명의 관람객만 보인다. <추사의 그림 수업>이란 주제가, 대표작인 세한도 그림을 배경으로 반긴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너무 많은 것을 보려고 하면, 좋지 않다. 여러 번 자주 와야 한다. 특별기획전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최소한 예닐곱 번은 와야 하지 싶다. 오늘은 추사 글씨 몇 점과 매화를 주제로 한 작품만 감상하기로 했다. 4전시실 입구의 첫 작품이 <계산무진>(溪山無盡 -계산은 끝이 없구나.-)이란 서예이다. 이 작품은 추사체의 완성을 보여주는 글씨로 알려진다.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의 점획을 독창적으로 변형하고 재결합하였다. 물이 흐르는 골짜기와 우뚝 솟은 산의 형상을 반영해 회화미도 살리고, 의미와 형태에 맞춰 글자를 배치해 균형미를 극대화한 글씨로 설명한다. 다음 서예 작품도 멋지고 재미있다. <삼십만매수하실>(三十萬梅樹下室 –삼십만 그루 매화나무 아래 집.-)이란 작품이다. 추사 예서의 꽃으로 19C 매화서옥도 제작의 유행을 예고하는 작품으로 알려진다. 수직과 수평의 안정적 구도 안에 획의 굵기와 삐침 등의 변화를 주어 유려한 미감을 더했다. 처음 제목을 한글로 읽었을 때, 작품을 ‘삼십만 원에 살 것인가?’ 라는 바보 같은 엉뚱한 생각도 한 작품이다.
다른 작품은 다음에 와서 감상하기로 하고 매화 작품 방으로 들어갔다. 먼저 이한철의 <매화서옥도> 병풍을 만난다. 송나라 시인 임포의 고사를 바탕으로 그렸다. 간결하고 단아한 필치로 우봉 조희룡의 거침없는 매화와는 맛이 다르다. 화사한 채색의 가옥과 선비의 모습이 묵법 위주의 배경과 대비를 이룬다. 당시 중인 계층의 심미적 취향이 반영된 작품으로 소개된다. 임포는 중국 서호의 고산에 20여 년 은거한 시인이고 서예가이다. 이곳에서 결혼하지 않고, 시를 짓고 매화와 학을 기르고 살았기에 ‘매처학자(梅妻鶴子)’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녀로 여기며 산 시인-으로 알려진다. 조희룡의 깔끔한 한 쌍의 백매도 아름답다. 추사의 가르침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중년 이후의 작품으로 느낌이 산뜻하다. 드디어 우봉 조희룡의 <매화서옥도>를 만난다. 기량이 절정에 이른 50대 후반의 역작이다. 화면 가득 채운 거칠고 호방한 바위산 아래의 서재에 앉아 있는 선비를 그렸다. 흰 호분으로 눈송이처럼 피워 흩날리는 매화는 화면 가득 살아 움직이는 함박눈이다. 생동감이 넘치고 눈이 황홀하다. 우봉의 작품 중 최고로 꼽히는 명작이다. 그는 “만 그루의 매화가 빽빽하게 얽히고 비치어, 향기로운 눈의 바다에 들어간 듯하다.”라고 얘기했다. 또 다른 매화 작품이 걸음을 잡는다. 고람 전기의 <매화서옥>이다. 추사의 문하로 20대 중반의 나이에 최고의 경지에 이른 천재 화가이다. 19C 중반에 제작된 설산에 만개한 백매가 어우러진 대작이다. 하늘을 어둡게 하여 흰 꽃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고, 짧고 강한 필치로 매화의 생태를 살린 작품이다. 고람 전기의 최고 작품인 <매화초옥도>와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살짝 다르다. 두 작품 모두 매화가 눈처럼 펄펄 내리는 날 친구를 찾아가는 장면을 순간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매화초옥도>는 지난번 전시에서 감상했다.
오후에 손자 돌보는 날이다. 15:50분. ‘하늘 유치원’에서 둘째 손자 **를, 16:00 시에 ‘꿈나라 태권도장’에서 첫째 손자 **를 데리고 나온다. 16:30분. 도착한 집에서 전쟁이 시작된다. 바둑 알까기 게임 10분, 포켓몬 카드놀이 10분, 실내 야구 10분, 숫자 바르게 쓰기 10분을 마치고 자유시간을 즐기고 나면 저녁 식사 시간이다. 유치원에서도, 학교에서도 점심은 잘 먹지 않는 느낌이다. 살짝 물어보니 매워서 안 먹었다고 한다. 아이고, 요놈들! 비슷한 친구도 많다고 한다. 점심을 굶었으면 저녁이라도 쉽게 먹으면 좋으련만, 요놈들의 입이 짧은 탓인지 어렵다. 밥 먹이기가 매일 전쟁이다. 그때마다 집사람은 내 탓을 한다. 내가 어릴 때 그렇게 밥을 먹지 않았다고 어머님께 들었기 때문이다. 긴 시간 따라다니면서 억지로 조금씩 먹였다고 한다. 좋은 버릇은 닮지 않고 나쁜 점만 잘 닮는가? 19:00 시. 겨우 저녁을 다 먹이고 한숨 돌린다. 이제 좋아하는 TV 만화영화 ‘카봇’을 세 편 보여준다. 제일 얌전하고 조용한 시간이다. 집사람과 나는 파김치가 되어 한숨 돌린다. 19:50분. 퇴근한 아들 내외에게 인수인계한다. 문 앞에서 작별 인사를 받고 들어와 눕는다.
이렇게 좌충우돌하며 사는 게 바람직 한 일일까? “이게 아닌데?”를 곱씹어보지만, 다음 날도 되풀이될 것이다. 정답이 없는 삶이다. 어렵다. 욕심이 발목을 잡고 놓지 않기 때문이다. 시시콜콜한 소시민 일상의 복기 과정이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자랑스럽다. 잡문이지만 나의 생생한 삶의 기록이 아닌가? 도덕으로 포장한 글이 아니라 맨얼굴 생생한 일상의 순간이니까 개인적으론 더 좋다. 탈 없이 보낸 하루에 감사한다. 행복하다. 고맙게 내일을 살아가자. 내가 즐겁고 멋진 하루라 생각하면 이 또한 기적의 삶이 아닐까?
24. 2026.04.25.(토)
‘수필문예대’ 문학기행 날이다. 엊저녁부터 살짝 설렘으로 잠을 뒤척였다. 웬일일까? 모든 것이 시큰둥해진 시절이건만, 아직 이런 감정이 살아있다니……. 움츠렸던 마음의 물결이 잔잔히 출렁인다. 얼마 전 순천, 벌교 지방의 ‘대구문인협회’ 문학기행에서도 느끼지 못한 묘한 기분이다. 기다림과 호기심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통영 문학기행이 얼마 만인가? 20여 년 전 ‘수문대’ 입문하던 가을에도 통영 문학기행을 왔기에 더 감회가 새롭다. 내일 통영 날씨를 검색하니 8도~22도이다. 무슨 옷을 입으면 좋을까? 아침저녁은 쌀쌀하고 낮에는 덥다. 상의는 화사한 원색 파란 패딩으로 골랐다. 옷이 밝으면 마음도 맑고 쾌활해진다. 무엇보다 기념사진이 상큼해 아름답게 삶을 인도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린아이가 된다는 옛 어른이 말이 가슴에 닿는다. 유치한 것과는 다르다. 원숙해지고 수양이 된다는 말은 내게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사고의 깊이가 깊어지고 판단에 신중함이 들기도 하지만, 이젠 비운 마음에 단순하고 경쾌하게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통영!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이란 관청의 이름에서 두 글자를 따온 도시이다. 한때 충무공의 도시로 충무로 불렸으나 지금은 다시 통영시로 이름을 찾았다. 세 시간 남짓 고속도로를 달리니 길가에는 벌써 이팝나무꽃이 지천이다. 휴게소에서 직전 학장인 S 님의 설명은 세월의 흐름이 신비롭다. 예전에는 이팝나무꽃 축제를 오월에 했으나 이젠 날짜가 훨씬 앞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요즘은 벚꽃도 일찍 피고, 지고 나면 다른 꽃들이 순서 없이 펑펑 터진다. 지구온난화 부작용인지 지구의 몸살인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은 변한다”라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박경리기념관’ 앞에 얌전히 주차한다. 건너편 푸른 바다가 수줍은 듯 신록 사이로 손바닥만큼 보여준다. 아담한 2층 양옥으로 된 기념관이다. ‘박경리문학관’은 원주에 크게 지어져 있다. 통영은 박경리 선생이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고 근처에 묘소도 있다. 몇 번 왔기에 대충 돌아보았다. 정원의 작은 연못엔 어린 금붕어 몇 마리, 옆의 아담한 동상이 편안하다. 동상 아래 기반석에 새겨진 마지막 책 이름이 우리 옷깃을 여미게 한다. 유고 시집 제목인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글귀가 의미 있고 묵직하다. 정원의 벤치에 앉았다. 멀리 푸름의 풍경 사이로 펼쳐진 바다가 환하다. 눈 머무는 곳마다 벅찬 그리움이고 아득한 아름다움이다. 예쁜 오석에 세로로 새겨진 <삶>이란 시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본다. “ -전략- 애닯게 우는 새야, 한가롭게 우는 뻐꾸기, 모두 한목숨인 것을, 미친 듯 꿀 찾는 벌아, 간지럽다는 고들빼기꽃, 모두 한목숨인 것을, 달 지고 해 뜨고, 비 오고 바람 불고, 우리 모두 함께 사는 곳, 허허롭지만 따뜻하구나, 슬픔도 기쁨도, 왜 이리 찬란한가?” 슬픔도 기쁨도 찬란하다고 노래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흐느끼는 처절함이 역설적이고 치열하지 않았을까?
‘전혁림미술관’은 꽃 잔치 중이다. 불두화가 한창이고 담을 끼고 오르는 담쟁이, 목향장미 넝쿨이 봄을 감싸고 웃는다. 붉은 장미와 흐느끼는 작약까지 신록의 계절이 오월이 아니라, 사월로 당겨진 느낌이다. “그는 색으로 쓰는 문장의 화가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색으로 먼저 태어난다. 강렬한 색채는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감정 그 자체다. 우리는 눈으로 글을 읽고, 마음으로 색을 해석한다.”라고 해석한 작가이다. 흰 벽에 예쁜 타일로 모자이크한 아담한 건물이 귀엽다. 인형의 집처럼 앙증맞고 사랑스럽다. 코발트 색으로 된 계단을 올라 미술관에 들어선다. 흑백 모자이크로 된 바닥을 밟으며 작품을 감상한다. 미술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에 남들 따라 그냥 작품 앞에 잠깐 보고 스쳐 지나간다. 소품들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큰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벽을 가로로 세운 작품과, 세로로 세운 작품이 경이롭다. 옆 동에 있는 책방도 멋지다. ‘통영을 만나는 가장 멋진 방법’으로 소개되는 책들이 전시되고 판매도 한다. 아담한 옆방에는 ‘책 읽는 부엌’이란 제목으로 책이 전시되어 있다. 책방 밖 벽에 통영이 낳은 시인 김춘수 시인의 캐리커처가 그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직전 회장 K님과 흡사하다. 아니, 똑 닮았다. 멋지고 재미있다.
‘이순신공원’ 전망대에 올랐다. 탁 트인 통영 앞바다가 한눈에 안긴다. 짙푸른 하늘과 비췻빛 바다의 조화는 물감을 엎은 듯 환상적이다. 잠시지만 원 없이 바다 바라기로 할 수 있어 좋다. 녹음과 어우러진 바다는 무엇인가 말하는 듯하다. 임진왜란 때도 이런 풍경이었을까? 멀리 충무공이 왜적과 싸우던 전장이 눈앞에 펼친다. 전투 장면이 드라마처럼 되살아난다. 북을 둥둥 울리며 쉰 목소리로 지휘하는 환상이 겹친다.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했던 충무공의 마음을 우린 얼마나 알고 있을까? 겉 맛만 본 난중일기에도 그의 절절한 심정이 드러난다. 욕심만 가득한 지금 위정자들이 그분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본받으면 좋을 텐데……. K 님과 긴 데크 길를 따라 바닷가로 내려갔다. 바다에 왔으면 물에 손이라도 담그고 가야 하지 않나. 아이들 몇이 물수제비를 뜨고 있었다. 번번이 실패다. 좋은 기회인데 나도 동참해야지. 납작한 돌은 없고 뭉툭한 돌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어 번 시도했으나 허탕이다. 세 번째 드디어 퐁, 퐁, 퐁, 경쾌한 소리를 내며 세 번 튕겼다.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다. 좋은 날을 축복하는지 햇무리가 진다. 둥글게 반짝이는 햇무리를 이순신 동상 배경으로 촬영하니 멋진 기념사진이 된다.
‘청마문학관’에 들어섰다. 여러 번 와본 곳이라 익숙하다. 교과서에 실린 <깃발>과 <행복>이라는 시가 많이 애송되는 시인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중략-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라는 문장은 얼마나 많이 회자했던가? 문학관 탐방을 끝내고 잔디밭에 앉아 삼행시 시상과 행운상 추첨이 있었다. 언제나 맛깔나게 진행하시는 Y 선생님의 입담이 부럽고 재미있다. 86세의 나이도 잊은 멋진 화가로 언제나 젊은이처럼 사시기에 본받고 싶은 분이다. 삼행시 백일장은 15년 만에 처음 참가했다. 당시에는 강의를 맡았기에 제외되었다. 오늘은 평회원으로 상금에 눈이 멀어 참가했다. 이 욕심을 언제 버릴 수 있을까? 마음과 몸이 일치되지 않는 현실이 부끄럽다. 활은 시위를 떠났고, 과녁 점수만 살피는 시간이다. *상! 녹슬지 않은 감성은 확인했으나, 사회자로부터 주의를 들었다. 시인이 참여하는 것은 반칙이란다. 이게 삼행시 마지막 참석이라 생각하자.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앙시장을 찾았다. 시끌벅적한 길에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이 시간은 관광객들이 넘쳐 포항 죽도시장이나 대구 서문시장보다 더 붐빈다. 짧은 거리에 걸음 옮기기가 어려워도 싫지는 않다. 시장 구경은 언제나 재미있다. 삶이 살아 통통 튀는 곳이다. J 님과 동피랑 언덕으로 올라갔다. 중턱 쉼터에 고양이 한 마리가 세상모르게 널브러져 자고 있다. 그도 관광객 물결에 지쳐 쉬고 있을까? 바닷바람을 솔솔 맞으며 오늘을 복기해 본다. 맑고 화창한 봄날,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문우들과 꿈과 예술의 도시 통영에서의 소풍이 아니던가?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고맙다. 그렇게 그렇게 내 생의 봄날은 간다.
25. 2026.04.29.(수)
봄 날씨가 춤을 춘다. 어제까지 따뜻하더니 오늘은 쌀쌀하다. 하빈 큰집 강의 날이다. 달성군은 시골이라 공기가 더 맑고 차다. 11시에 강의를 마치고 종합민원실에서 잠시 휴식 중 갑자기 ‘육신사’에 가고 싶었다. 하빈에서 강의하면서 매년 봄, 가을, 두 번쯤 방문한다. 11시 20분쯤 교도소 앞 정류소에서 육신사행 버스가 있다는 것도 검색했다. 버스를 타면 10분 거리로 가깝다. 11시 30분. 육신사 종점에 도착했다. 다음 문양 행 출발 버스 시각은 13시 5분이다.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유가 있다. ‘육신사’와 ‘삼가헌’ 탐방 시간으로 충분하다.
‘육신사’! 세조 때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가 목숨을 바친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사육신 중 한 명인 박팽년의 손자 박비가 이곳 묘골에 터를 잡고 살았다. 어느 날 박팽년의 현손이 제삿날 꿈에 사육신이 사당 문밖에 서성이는 것을 보고, 나머지 다섯 분의 제사도 함께 지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묘골마을은 순천 박씨 집성촌으로 마을 입구부터 고풍스러운 한옥이 줄지어 있다. 멋진 솟을대문을 지닌 고가는 지금도 후손이 살고 있는 집이 많다. 몇몇 집 대문은 활짝 열려 있어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다. 기와를 이고 있는 흙돌담 길을 걸으면 옻골마을이나 남평문씨세거지 담길도 떠오른다. 담 아래 미소짓는 낮 달맞이꽃도 반갑고 붉은 꽃잎이 바닥에 흐드러진 작약도 황홀하다. 형형색색 봄꽃이 정원마다 눈부시다.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경건해진다. 평일이라 방문객은 아무도 없다. 집주인도 보이지 않아 고요의 숲에 들어온 듯 적막한 느낌도 든다. 몇 번 와본 곳이기에 천천히 걸음과 눈을 옮긴다. 길 양쪽의 한옥을 둘러보며 100여m 걸어가면 붉은색 기둥과 대문으로 우뚝 선 ‘육신사’ 정문이 나온다.
계단을 올라가면 붉은 홍살문을 지나 오른쪽 언덕에 보물로 지정된 ‘태고정’을 만난다.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성종 때 건립한 정자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아담한 규모로 조선 전기의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태고정(太古亭)’과 ‘일시루(一是樓)’라는 해서로 된 현판이 아름답다. 예스러운 품격이 물씬 풍긴다. 대청 입구에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눈에 거슬린다. 대청 앞에 서서 앞을 내려다보았다. 묵은 골기와를 인 한옥들과 멀리 녹음의 산과 하늘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시에는 건물이 이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너무 없고 조용하니 좋은 점도 있지만, 속인의 답사 재미는 적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함의 조화가 좋다. 세월의 무상함이랄까 허허한 마음만 든다. 홀로 사색하고 걸으면 좋다고들 하지만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색은 아무나 할까? 보통 사람에게는 정신적 사치가 아닐까?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숭절당’과 ‘도곡재’ 주위를 그냥 그냥 돌아보았다. 올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단종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이기에 주말에는 이곳도 좀 붐비지 않을까 생각된다.
‘삼가헌(三可軒)’을 찾아갔다. 주차장에서 차도로 걸어가면 2km 거리지만, 논 옆으로 난 산길로 넘어가면 600m 거리이다. 몇 해 전 ‘대구문인협회’ 행사 때 걸어간 기억이 있기에 추억을 더듬어 산길로 갔다. 짧은 거리지만, 아무도 없는 컴컴한 산길 중턱에는 계곡물이 콸콸 흐르고 오르막 산길은 예전보다 잘 다듬어졌기에 쉽게 넘어갔다. ‘삼가헌’은 박팽년의 11대손인 박광석이 건립한 주택이다. 작년에 왔을 때는 대문이 잠겨 들어가지 못했다. 다행 오늘은 문이 활짝 열려 있다. 근데 ‘개조심’이란 팻말에 살짝 겁이 난다. 대문 왼쪽 기둥에 양 손바닥만 한 검은 쇠판으로 된 문패가 인상적이다. ‘도덕과 평화’이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예전 ‘대구문인협회’ 행사 때 주인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세상에나! 지금 살고 있는 부부의 이름이란다. 그때 느낀 산뜻하고 신선한 충격이 지금도 전해와 미소를 짓고 살며시 걸음을 옮긴다. 갑자기 개가 요란스럽게 짖는다. 깜짝 놀라 주춤했지만, 다행 목줄로 매여 있어 “안녕” 눈인사하고 지나쳤다. 나그네만 보면 본능적으로 짖는 모양이다. 대청 아래 섬돌에 주인의 흰 고무신이 얌전히 놓여있다. 방해하지 않으려고 마당에서 슬쩍 돌아보고 ‘삼가헌’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당인 ‘하엽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자 앞에 ‘파란 연잎이 떠 있는 연못’이란 뜻의 ‘하엽정(荷葉亭)’. 샛문 사이로 보이는 배롱나무와 연못이 환상적이다. 지금은 연꽃도 배롱나무꽃도 피지 않아 적적하지만, 오히려 화려하지 않아서 더 몽환적이다. 절정에 이른 수국이 푸른 녹음과 어울려 정자를 감싸고 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연못에는 수련과 형형색색의 낙엽이 세월을 지키고 있는 듯하다. 적막과 아득함만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정자 툇마루에 앉았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연못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냥 좋다. 사색도 필요 없고 멍때리듯 있어도 신선이 부럽지 않을 듯 멋진 곳이다. 연못 위에 길게 걸쳐놓은 통나무 위에 올라갔다. 멀리 보이는 정자와 나무, 물, 하늘이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 속의 그림이 된다. 여기서는 아무도 없으니 더 운치가 있고 더불어 자연의 일부가 된다.
문양 행 버스 출발시간까지 30분 여유가 있다. 육신사 입구의 한옥 감성 카페 ‘묘운’(竗雲)에 들어갔다. 박팽년 선생의 22세 손 박상혁 씨가 운영하는 곳으로 시간의 오묘함과 공간의 절묘함을 살린 곳이다. 긴 돌담과 풀밭 정원이 고궁 같은 카페이다. 명경지담(明鏡之潭)이란 아담한 연못에는 20여 마리의 붉고 노란 잉어가 세월을 즐긴다. 겉모습만 한옥 구조를 따른 것이 아니라 전통을 보존하며 현대식 가치를 추구하는 곳으로 지었다고 한다. 통유리창과 감각적인 조명이 멋진 갤러리에 온 느낌이다. 가구와 소품은 전통공예 작품으로 전시 중이란다. 오늘 비로소 관광객 10여명을 만났다. ‘육신사’와 ‘삼가헌’에서는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홀로 다녔는데? 좀 아이러니하다. 카페라테 한잔을 앞에 놓고 지친 마음을 내려놓았다. 하트가 그려진 라테아트를 보며 홀짝홀짝 커피 향을 음미한다. 느림과 여유가 공존하는 곳이다. 카페라테와 함께 받은 종이를 읽어본다.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 -고요히 앉은 이곳, 차는 반은 줄어도 향은 처음과 같네- 라는 황정견의 『산곡문집』에 있는 글귀이다. 비록 전통차가 아니라도 차향의 품격을 높인다. 친구와 연인들로 보이는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13시 5분. 문양 행 버스에 홀로 앉아 출발했다. 14시 50분 매호동 도착. 몸과 마음이 나른하다. 계획하지 않은 멋진 시간이 잘 흘러갔다. 고마움의 정신이 흐릿해지는 나를 일깨우는 좋은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