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강력한 군국주의 국가였다는 건 다 아는 것이고 이들은 자신들의 힘과 조직 그리고 이들이 실시하는 군사적 행동을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1921년(대정 10년)에도 군사적인 연습을 행하고 알리는데 대본영을 시작으로 육군은 참모총장 그리고 서군 사령관 그리고 동군사령관등이 중심으로 육군특별대연습을 실시하기 위해 통감부가 설치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우편엽서도 발행이 된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이해 못할 부분도 있는데 자신들의 군사적 준비 태세와 실력을 국내 뿐 아니라 주변의 국가에게 알리려는 목적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다분하다.
엽서의 사진을 보면 우리에게도 낮설지 않은 얼굴의 일본의 덴노가 보이고 모두 군예복을 입고 있는데 후지산을 배경으로 왼쪽에 있는 것이 1921년 일본의 최고 통치자로 히로히토의 아버지인 요시히토이다.
그리고 오른쪽이 뒤에 권력을 이어받은 히로이토이며 젊을 때는 모르겠는데 나이가 들어 아버지를 많이 닮아간다.
그리고 가운데는 대본영 사진이 있고 간판도 보인다.
같은날 발행된 것으로 보이는 아래 엽서엔 육군특별대연습을 추진하는 지휘부의 장군들 사진과 통감부가 나온다.
여기에 눈여겨 볼 점은 당시 서군 사령관이 '이본궁 전하'라는 명칭의 군인으로 다른 이들은 성씨가 나오지만 이 사람은 일본 황족으로 성씨 표기가 없다.
이 사람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이 은의 장인으로 '이방자 여사의 아버지'이며 당시 군에서 지휘권을 행사하고 육군특별대연습을 시행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손들도 일본군의 장군과 장교가 되었고 이들에 대한 예우를 표면적으로 해왔던 일본은 실제 정책을 폈을 때 우리국민들에게 교육이나 정치적 기회에서 많은 차별을 했고 실권을 주지 않았다.
특별한 능력과 일본에 충성심을 자랑하던 이들중에 소수는 만주나 일본의 사관학교를 거쳐 장교가 되고 대우를 받지만 그러한 시절은 별로 길지 않았고 한번 잡았던 기회와 권력을 내놓기에는 너무 젊었고 해방이 되자 적이 었던 미군들에게 잘보이고 대한민국이 다시 세워지자 새롭게 돌변하여 애국자임을 자처하고 이들은 승승장구한다.
군국주의 일본의 모습은 과거에 대단했고 그 모습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일본은 다시 과거의 잘못보다는 피해자가 되었다는 인식과 함께 자신이 보호해준 반도인들의 불만을 이상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에 같이 호응하는 사람들이 우리주변에도 많음은 서글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