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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에서 3년째 거행하고 있는 도시농업박람회의 구경을 하였습니다. 매년 참가 단체도 많아지고 관람객도 많아져서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어른들에겐 옛 추억을 만날 수 있는 곳, 아이들에게는 교육의 장을 넓힐 수 있는 곳이고, 또 참가 단체로서는 농산물을 홍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공동의 이해가 맞아떨어져서이겠지요. 참 특이한 것은 나무에 소를 매어 놓은 것입니다. 옛날에는 온 동네에서 소가 큰 대접을 받고 있었고 길 한복판에는 소똥이 발에 밟힐 지경이었는데, 도시에서 이렇게 소를 구경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특이하게 느껴졌습니다. 소 하면 생각나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뿔이겠지요. 고사 지낼 때 쓰는 돼지 머리는 웃는 상이면 몇 만 원은 더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소도 뿔이 양쪽이 대칭을 이루며 안쪽으로 모양이 좋게 구부러져 있으면 가격을 더 받았다고 합니다. 급기야 소값을 더 받으려고 소 뿔을 교정하려다 소가 죽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일도 발생했지요. 그것이 교각살우(矯角殺牛)인데 어떤 일의 결과를 좋게하려다 오히려 그르친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아마 위 사진 정도 되면 소값을 좋게 받았을 것 같습니다. 이 소를 나타내는 우(牛)자는 바로 소의 정면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소의 정면 전체를 다 표현한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소의 머리만 표현한 것이지요. 소의 머리만 남으면 위의 모양이 되겠지요. 이 소의 머리를 로고로 삼아 한때 프로 스포츠계를 휘어잡던 농구팀이 있었죠? 바로 시카고 불스입니다. 시카고 불스의 이 로고는 아마 한자 「소 우(牛)」자를 보고 착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편 소의 두개골을 멋지게 그려서 유명해진 화가도 있습니다. 끝이 좋지는 않았지만 사진가인 남편 스티글리츠에게만 누드 모델을 서 주고 자신은 화가로 유명했던 조지아 오키프입니다. 소의 두개골 앞에서 찍은 사진도 있고, 또 꽃을 과도하게 확대해서 그려 당대에는 외설스럽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지금은 엄연히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여류화가로 인 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키프는 소의 두개골만 그린 것이 아니고 사슴이나 양 등의 사막에 버려진 여러가지 동물의 두개골도 많이 그렸습니다. 소 우(牛)자를 소개하기 위한 도론이 좀 길어졌네요. 다음은 소 우자의 시대별 모습입니다. 「소 우」(牛)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소의 머리 모양은 갑골문에서 가장 잘 표현을 하였는데 위쪽으로 휜 획이 뿔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세로의 긴 획은 소의 머리에서 주둥이쪽 방향의 모습입니다. 거기에 딸린 대칭형 사선은 눈의 모양입니다. 이 모양이 소전으로 오면서부터 평형하게 바뀌었습니다.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소는 큰 재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릴 때는 소가 부의 척도이기도 했습니다. 잔치를 할 때면 "소 몇 마리를 잡았다"느니, 자식들 대학 보내느라 "소를 몇 마리 팔았다"느니 하는 소리가 일상적으로 들릴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만큼 대량의 시스템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여유만 있으면 소를 사서 길렀습니다. 지금 말로는 방목이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소를 친다고 했죠. 시조에도 "소 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라는 구절이 있잖아요. 그리고 소뿐만 아니라 동물들은 모두다 친다고 하였습니다. 가축을 치는 것이지요. 위의 그림은 목동이 회초리를 들고 소를 부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소를 부리리면 소를 통제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회초리인 것이죠. 소 옆에서 소를 부리는 회초리를 들고 있는 글자가 바로 「칠 목(牧)」자입니다. 칠 목자는 아래와 같이 변했습니다. 「칠 목」(牧)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한편 돼지나 양은 소에 비하자면 덩치가 작아 웬만한 잔치에서는 한 마리만 잡으면 다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소는 정말로 큰 연회가 아니면 한 마리를 잡았다 하면 다 먹을 수가 없습니다. 옛날 국가적 행사에서도 소-돼지-양을 한꺼번에 희생제물로 올리는 것을 태뢰(太牢)라고 하였고 반면 소뢰(小牢)라 하여 한 마리를 생략하는 의식이 있었는데, 당연히 소를 뺐겠죠? 그래서 소는 잡으면 반으로 갈라서 보관을 했습니다. 그 글자가 「반 반(半)」자입니다. 「반 반」(半)자의 금문-금문대전-소전 소의 정면을 절반으로 가른 글자가 「반 반」(半)자라니 조금 끔찍한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소를 잡으면 고기가 생기는 이득 외에 해부학적으로도 많은 관찰을 할 수가 있습니다. 즉 소의 해체(解體)를 통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소를 잡는다는 뜻에서 나온 글자가 「풀 해」(解)자입니다. 여기서 푼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해체, 분해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소를 분해하면 우리는 소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됩니다. 「풀 해」(解)자가 속속들이 깊이 안다는 뜻의 이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된 이유입니다. 「풀 해」(解)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지금은 소우 자가 오른쪽 밑으로 밀려나고 그 위의 글자는 칼 도(刀)자로 바뀌었지만 원래는 손을 나타내는 글자였습니다. 위 갑골문에 두 손으로 소의 머리에서 뿔을 잡아당겨 해체하는 모습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뿔이 달린 동물 중에서 소를 제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물이 무엇일까요? 제각기 다른 동물들이 떠오를테지만 저는 단연 양입니다. 양이 멋지게 생겼네요. 머리의 뿔이 돋보이는 모습을 한 산양을 한번 살펴볼까요? 《시이튼 동물기》에 나오는 산양왕 크레이그가 아마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소와 양은 둘 다 뿔이 있는 동물입니다만 차이점은 뿔의 모양입니다. 뿔이 안쪽으로 휘면 소이고 바깥쪽으로 휘면 양입니다. 양의 두개골만 정면에서 보면 위와 같은 모습입니다. 양은 옛날부터 희생제물로 많이 쓰여서인지 기물로 남아 있는 모습도 많습니다. 위의 유적은 상나라 때의 청동기인데 사방에 양의 머리 모습이 달려 있습니다. 「양 양(羊)」자도 소 우자와 마찬가지로 양의 머리만 정면에서 보고 그린 것입니다. 다음은 「양 양(羊)」자가 시대적 변화한 모습입니다. 「양 양」(羊)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위 글자를 보면 「양 양」(羊)자에 들어가는 석 삼(三)자의 제일 위의 획은 실은 바깥쪽으로 휜 뿔의 모양이 바뀌어서 그렇게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금문까지도 바깥쪽으로 뻗었다가 아래로 꺾인 모습이 관찰되는데 소전에서는 획이 분리되면서 수평으로 바뀐 것이죠. 그리고 또 뿔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굉장히 순한 동물도 있습니다. 바로 사슴입니다.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어릴 때는 사슴 하면 맨처음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아기사슴 "밤비"가 아닐까 합니다. 월트 디즈니의 애니매이션 주인공인데 현대에 문화 콘텐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일깨워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위의 사진은 마치 아름다운 꽃사슴 밤비 일가가 한데 모인 것 같습니다. 순해 보이는 눈망울에 가는 다리... 그러나 뭔가 어색합니다. 바로 뿔이 없는 것이죠? 사슴 하면 뿔입니다. 이 뿔 때문에 많은 사슴이 죽어나가죠. 동양에서는 그래도 녹용(鹿茸)이라고 하는 뿔만 잘라서 약재로 쓰고 다시 풀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서양에서는 머리만 박제하여 거실을 장식하기 위해서 많이 썼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거의가 아니라 100% 목숨을 잃게 마련이죠. 너무 잘 생겨도 골치가 아플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은 사슴을 나타낸 한자입니다. 「사슴 록」(鹿)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갑골문을 보면 정말 멋있습니다. 위쪽으로 쭉쭉 뻗은 나무가지 같은 멋진 뿔과 커다란 눈망울, 그리고 아담한 몸체에 작은 다리까지... 이런 경우에 바로 문자를 예술적 경지까지 끌어올렸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금문에서는 많이 간략화되었지만 금문대전에서부터는 다시 갑골문의 주요 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외모를 가져서일까요? 록(鹿)자는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한자에 등장을 합니다. 이 글자가 바로 「고울 려」(麗)자입니다. 한번 보실까요? 「고울 려」(麗)자의 금문-금문대전-소전 사실상 「사슴 록」(鹿)자와 다를 바 없는 「고울 려」(麗)자는 아름다운 뿔이 「한 쌍」이라는 것을 강조한 글자입니다. 이렇게 한 쌍을 강조하다 보니 짝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에도 「고울 려」(麗)자가 들어갑니다. 바로 「짝 려」(儷)자입니다. 문장을 두 구절씩 자수(字數)를 맞추어가며 문법도 같이 적용하는 문장을 변려문(騈儷文)이라고 하는데, 바로 두 마리 말이 나란히 달리듯 짝을 맞춘 문장이라는 뜻입니다. 중국 남북조시대에 크게 유행을 했지요. 뿔이라는 특징 하나로 만들어진 한자들이 참 많네요. 이외에 기린(전설상의) 같은 일각수를 나타낸 치(廌: 해태) 등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의 동물이므로 여기서는 더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