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죽비
:죽이는 것을 솎아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야산은 추운 지역이라서 해인사에는 대나무가 귀한 편이다. 그럼에도 경학원(도서관) 뒤편 언덕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대나무가 자생해 왔다. 자연스럽게 뒷담구질을 하면서 수행 공간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또 서너 해 전에 대중 울력으로 멀리서 오죽鳥竹까지 옮겨다 앞뜰에 심은 것이 이제는 제법 무성하리만치 자라서 이래저래 강원 궁현당 채는 죽림원이 되어간다.
대나무는 예로부터 수행자와 인연이 많았나 보다. 거슬러 올라가면 멀리 부처님 당시까지 이르게 된다. 불교교단의 최초 가람의 이름이 바로 죽림정사竹林精舍인 까닭이다.
이 정사는 카란타(迦蘭院)거사 소유의 동산에 빔비사라왕이 집을 지어 부처님께 바친 것이라고 전해진다. 가까운 곳에는 연못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 연못은 정사의 터를 기증한 거사의 이름을 따서 카란타 연못이라고 불렀다. 죽림정사는 이 이름으로 추측해 보건대 대나무가 가득한 동산에 지어진 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지금도 그 절터에는 대나무가 남아 있다고 하니, 부처님 제자들은 처음부터 대나무 그늘 아래에서 수행을 한 셈이다. 부처님도 이 곳 정사와 연못 근처에서 자주 가르침을 설하였다.
대나무는 수행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뿐만 아니라 수행자의 눈을 열어 주기도 한다. 당나라의 향엄 지한智閑선사는 대나무 덕분에 깨달음을 얻은 경우이다. 선가에서는 이를 향엄격죽대오香嚴擊竹大惜로 향엄스님이 대나무를 쳐서 크게 깨닫는다‘ 라는 이름으로 정형화해 놓았다.
스님은 키가 일곱 척이나 되는 기골이 장대한 대장부였다. 경전에도 해박하였으며 달변이었다. 하지만 본분의 도리를 묻는 스승의 질문에는 한마디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 날로 분발하는 마음을 일으켜 공부의 길을 떠난다. 도중에 대나무가 무성한 터를 만난다. 그곳은 고인들이 일찍이 거쳐 간 공부터이기도 했다. 걸멍을 풀고 자리를 잡고서 열심히 정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마당의 잡초를 베다가 낫 끝에 째진 기왓조각이 걸렸다. 손으로 주워서 멀리 내던졌다. 그런데 그것이 그만 대나무에 부딪쳐서 큰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듣고 깨치게 되었다. 이 인연으로 대나무는 장군죽비가 되어 오늘도 수행자의 등짝을 사정없이 내리치면서 ‘탁탁탁’ 소리를 낸다.
대나무도 대나무이지만 죽순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적지 않는 구경거리이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비 온 뒤의 죽순은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이다. 그것도 한두 뿌리가 아니라 여기 저기에서 야단이다. 부지런한 놈은 이미 어른 키만큼이나 자라 있다. 잎과 가지가 나오는 것도 특이하다. 자랄 만큼 모두자란 상태에서 껍질이 벌어져 나가면서 가지가 나오고 잎이 열린다. 큰 줄기를 미리 세워 놓고 나머지를 만들어 가는 것이 경전의 전체 요지를 파악하고 난 뒤 부분 부분을 살펴 들어가는 교학자의 자세를 닮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주변을 무시하고 아무 데나 불쑥불쑥 나오는 통에 대접을 못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경학원에서 학사대로 가는 쪽 문과 맞닿은 한칸 짜리 방은 장경각과 대웅전 그리고 궁현당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인 까닭에 도량을 살피고 보호하는 소임자들이 거처한다. 이 앞에 자라나는 죽순은 시야를 가리는 탓에 가지가 나오기도 전에 뿌리 흔적만 남긴 채 베어져 나가곤 한다. 뭐든지 제자리에 그것도 꼭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대나무가 너무 빽빽하게 밀집한 곳은 솎아 주어야 한다. 별 할 일이 없는 한 한가한 오후, 간벌이나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톱을 찾았다. 사이사이에 없어도 좋을 몇 줄기를 잘라낼 속셈이었다. 시드는 잎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자라고 있는 새순과의 조화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세 그루 째 잘라내는 순간이었다. 새끼 손가락쪽이 따끔하더니 이내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조금 남은 껍질이 질겨서 떨어지지 않아 손으로 당기는 순간 베인 것이다. 아마 이 때 바탕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물론 한 소식했을 것이다. 하자만 나는 기껏 생각나는 것이라곤 ꡐ죽이는 것을 솎아 주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순간에 돌아온 과보ꡑ 가 아닌가하는 생각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지혈을 하면서 어떤 명분으로든 살생을 함부로 할 일이 아님도 알았다. 하편 일을 중도에 그만 둘 수도 없는지라 무리를 해서 꼭 잘라야 할 몇 그루만 정리하고 서둘러 마쳤다. 덕분에 손가락에는 며칠 동안 약을 발라야 했다.
가까이에 대나무들이 있어 몇 발자국만 나가도 볼 수 있지만 바로 눈앞에 죽림정사의 분위기를 만들어 보겠다고 내 방 뒷문 바로 앞에다 대나무를 옮겨심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해였다. 먼저 있던 진달래 등을 다른 곳으로 옮겨 빈터를 만들었다. 텃밭으로 가서 수레를 이용하여 흙을 실어 나르고 낙엽 퇴비를 섞어 땅의 기운을 돋우었다.
대나무는 성질이 생긴 것처럼 꼬장꼬장하여 다른 곳에 옮겨 심으면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하여, 예로부터 ‘ 대나무가 취한 날(竹醒日) 에만 옮겨야 한다고 전해온다. 구체적으로 음력 5월 3일과 8월 8일이다. 이를 무시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지난해에 이미 한번 옮겨 심었다가 결국 죽어버린 경험이 나를 압박해왔다. 대나무는 늦봄이나 초가을에 옮겨야 한다는 의미인 듯싶어 비슷하게 날짜를 맞추었다. 얼마 전 비가 그친 날 구덩이를 크게 파고 대나무가 좋아한다는 소금을 잔뜩 뿌리고는 조심조심 몇 그루를 삽으로 파서 옮겨 심었다.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흙도 구석구석 잘 채웠다.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지지대를 세워 붙들어 매었다. 미리 잎을 따주고 마음속으로 축원도 하였다. 옮기고 난 뒤에 다행히 비가 잦아 제대로 뿌리를 내리는지 안스럽지 않게 그냥 보아줄 만하다. 덕분에 손품, 눈품이 적게 난다.
송나라 때 선승인 야보 도천스님도 죽림정사와 분위기가 비슷한 곳에서 정진을 한 모양이다. 대나무도 있고 연못도 가까웠나 보다. 누군가가 금강경의 한 구절인 ‘나라는 생각도 없고 남이라는 생각도 없으며 중생이라는 생각도 없고 깨달았다는 생각도 없다(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물어왔다. 이에 대하여 게송으로 답하였다.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가 일지 않고(竹影掃階塵不動)
달빛이 못바닥까지 비추지만 주변에는 흔적이 없구나(月穿澤底水無擁)
아마 대나무로 둘러싸인 토굴 앞에 조그마한 연못이 있는데서 살았으리라.
오늘도 방문 앞 대나무를 바라보면서 부처님이 머물던 죽림정사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