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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마당 스크랩 고대소설 <배비장전(裵裨將傳)>
세이레 추천 0 조회 151 07.06.29 12: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배비장전(裵裨將傳)>

【해설】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대소설. 1권 1책. 국문구활자본. 판소리로 불리어진 <배비장타령(裵裨將打令)>이 소설화된 작품이다. 판소리 열두마당에 속하지만, 고종 때 신재효(申在孝)가 판소리 사설을 여섯 마당으로 정착시킬 때 빠진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배비장타령>은 판소리로서의 생명을 잃어 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런데 신재효가 창작한 것으로 보이는 <오섬가(烏蟾歌)>에 <배비장전>의 한 부분인 애랑과 정비장의 이별 장면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또 배비장이 애랑에게 조롱당하는 사실이 서술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 시기까지 <배비장타령>은 부분적으로 불리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1938년에 <배비장전>은 판소리가 창극으로 공연되었으며, 최근에는 재창조되기도 하였다.


  판소리 열두 마당 중 <배비장타령>을 한글소설로 개작한, 조선시대 말기의 작자를 알 수 없는 작품으로서, 당시의 지배층인 양반들의 위선을 폭로함으로써 서민들의 양반에 대한 보복심리와 풍자, 야유가 가득하다. 골개문학(滑稽文學).

  전편에 넘쳐흐르는 풍자와 야유가 절로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골계문학(滑稽文學)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원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 실려 있는 <발치설화(拔齒說話)>와 <동야휘집(東野彙集)>의 <미궤설화(米櫃說話)>가 <배비장전> 줄거리를 구성하는 근간이 된 것으로 생각된다. 설화에서 판소리 작품으로, 다시 그로부터 소설로 발전한 과정을 살펴보는 데 좋은 본보기가 되는 풍자소설의 백미편이다.

  이 소설은 서민들의 양반에 대한 보복을 그리고, 양반들의 위선을 풍자와 야유로 꼬집은 작품이다.

【개관】

▶연대 : 조선 후기.

▶작자 : 미상

▶형식 : 고대소설(배비장 타령이 소설화된 작품), 골계소설(滑稽小說)

▶성격 : 해학적, 풍자적

▶관련 설화 : 발치설화, 미궤설화

▶주제 : 양반의 위선을 폭로하고, 조롱하며 풍자.

【계층간의 갈등 대립】

  애랑은 이 작품의 중심 인물이며 애랑에게 당하는 정 비장은 양반 계급을 나타내며, 특히  애랑이 방자와 함께 배 비장의 위선을 폭로하는 후반부가 이 작품의 중심 사건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 정 비장이나 배 비장은 중인 계층이지만 제주도의 통치자로 들어온 사람들로  유교적 윤리로 무장된 지배층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고, 이에 반하여 애랑과 방자는 피지배 계급인 제주도 토착민을 대표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피지배 계층인 토착민과 지배 계층인 외래인과의 갈등에 근거하여, 피지배 계층이 관료 사회의 착취상을 폭로 고발하고, 위선에 찬 지배층의 행태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고 하겠으며, 이 작품을 이조 후기의 작품으로 본다면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애랑과 정 비장의 역할】

  이 작품의 중심 인물인 애랑은 일패에 속하는 기생으로 양반과 작별하는 자리에서 애랑이 온갖 교태로 정비장의 재물을 탈취하는데 이것은 확대시켜 본다면 탐관오리의 재물을 되찾는다는 의미를 상징하며 기생에게 재물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그 당시 관리들이 부정 비리를 통해 많은 재물을 착취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폭로하고 있다는 의미도 지닌다.

  또 당시 기생 신분이지만 작품의 중심에 서있는 기생은 여성의 권익 쟁취는 아닐지라도 여권 내지는 여성들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는 측면에서 여성들의 생각이 발전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으며, 애랑을 통해 정비장의 이별 장면이 희화화되면서 양반으로 대표되는 남성의 위선 의식을 폭로하는 계기를 만들고, 또한 배비장으로 대표되는 지배계층의 이중성과 위선과 허위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고 있으며, 양반 계급을 웃음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는 측면은 서민들의 지배적 정서의 발로가 아닌가 생각된다.

【애랑과 방자의 역할】

  애랑과 방자는 이 작품에서 보조적 인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중요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시종일관 사건의 중심에 애랑과 방자가 서 있으며, 방자는 배 비장의 위선을 폭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 작품의 해학성을 풍부하게 해 주는 역할을 담당할 뿐 아니라,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다.

  배 비장을 약점과 위선을 적극적으로 폭로하는 점에서 봉산 탈춤의 '말뚝이'와 비슷하며, 애랑 역시 방자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녀는 신분이 천한 기생이지만 지혜가 남다르고 미모가 뛰어나, 정 비장으로 하여금 이를 빼게 해서 발치설화를 연상하게 하고 다시 배 비장을 유혹해서 배비장의 위선을 폭로하고 망신을 당하게 하는 인물이다. 배 비장을 훼절 망신시킬 것을 종용한 목사나, 애랑의 교태에 놀아나 정 비장, 그리고 훼절 망신의 대상을 선택된 배 비장, 이들은 애랑의 눈으로 보면 모두 권력을 가진 호색가에 불과할 것이지만, 배비장의 훼절 망신을 종용한 목사의 역할은 당대의 계급 세력 중 특이한 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배비장전과 기생 문화】

  <배비장전>은 작자와 제작 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풍자소설이다. 이 이야기는 영조와 정조 시대에 걸쳐 이미 판소리로 발표된 일이 있다. 옛날에는 기생을 해어화(解語花)라 했다. 규방 규수들이 꼭꼭 닫혀진 대문 속에서 바느질을 하는 동안 기생이라는 특정 계층의 여자들은 남자들의 술자리에서 술시중을 들어 한량들이 일컬어 '말하는 꽃이다' 해서 해어화라는 이름을 얻었다. 기생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나 고대부족사회의 무녀가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겠나 하는 추측이 일반적이다. 즉 제사와 정치가 하나였던 사회에서의 사제였던 무녀가 왕권과 신권이 분리되고 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지방세력가와 결합해 근대의 기생 비슷한 역할을 했을 거라는 얘기다.

  조선 중기 이후 기생문화는 독특하다. 우선 유교문화와 더불어 사대부들의 문학 예술이 기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황진이, 이매창 같은 명인들이 문명을 날렸다. 한편 말기에 오면서 기생들은 일패(一牌), 이패, 삼패 등 셋으로 구분되는데, 일패는 전통 무가의 보존, 전승자로 뛰어난 예술 감각을 지닌 기생들이다. 일패는 대부분 관기로 그들 내부에서는 규율도 엄했고, 자부심도 굉장했다. 이패는 밀매음(密賣淫), 삼패는 공창(公娼)의 기능을 했다. 일제시대 진주 기생 산홍은 "기생 줄 돈이 있으면 나라를 위해 피흘리는 젊은이에게 주라"고 하릴없는 한량들을 꾸짖었다고 한다.

  <배비장전>은 일패기생 애랑이 양반을 갖고 노는 이야기로 애교 있고, 의기 있고, 재주 뛰어나고, 미모도 있는 애랑이와 애랑의 꾀에 빠진 배비장에 대한 풍자가 주된 이야기로 전개된다.

【줄거리】

  『신임 제주목사를 따라 제주도에 간 배비장이 외도를 않겠다고 아내에게 한 악속을 지킨다. 그러나 한번 유혹하여 보라는 목사의 명을 받은 기생 애랑(愛娘)에게 빠져 깊은 사랑을 하게 된다.

  어느 날 밤 둘이 함께 있는데, 애랑의 남편으로 변장한 관청 하인이 돌아온다. 이때 미리부터 꾸민 각본대로 애랑은 배비장을 알몸으로 궤짝 속에 숨게 하였다. 남편은 이 궤짝이 집안에 있어서 되는 일이 없으니, 바다에 버려야겠다고 떠들면서 이를 목사가 있는 관청 앞마당에 갖다 놓고 이리저리 흔들며, 파도소리와 뱃노래로 속인다.

  한참을 그러다가 어느 사공이 구해준다면서 바닷물이라 매우 짤 테니, 눈을 꼭 감고 나오라고 하자 알몸으로 관청 마당을 기다가 댓돌에 부딪쳐 웃음거리가 되었다.』


  『제주 기생 애랑은 여러 모로 빼어난데, 배비장은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김경(金卿)을 따라온 평범한 인물이다. 이러한 설정은 배비장에 대한 애랑의 우위(優位)를 예견하게 한다.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김경 일행이 풍랑을 만나 고생을 겪은 뒤에 제주도에 도착한다.

  이어 애랑과 정비장의 이별장면이 벌어진다. 이 장면은 그 자체가 희극적이지만, 동시에 애랑과 배비장 사이에 벌어질 사건을 준비하는 구실도 하고 있다. 정비장이 애랑에게 창고에 넣어둔 자신의 짐을 모두 내어주고 이별하려 할 때, 애랑은 정비장의 몸에 지닌 것을 남김없이 얻어내고는 끝내 그의 이빨까지 빼게 만들었다.

  서울을 떠날 때 어머니와 부인 앞에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떠났던 배비장은 이 장면을 보고 정비장을 비웃다가 애랑을 두고 방자와 내기를 걸게 되었다. 기생과 술자리를 멀리하면서 홀로 깨끗한 체하는 배비장을 유혹하기 위해서 방자와 애랑은 계교를 꾸몄다.

  이러한 계획은 목사가 지시한 일이었다. 목사는 계교의 실행을 돕기 위하여 야외에서 봄놀이판을 벌였다. 목사 일행을 따라나와 따로 자리잡은 배비장을 유혹하려고 애랑은 수풀 속 시냇가에서 온갖 교태를 부리며 노닐었다.

  이에 크게 마음이 움직인 배비장은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뒤처졌다. 배비장은 방자를 사이에 넣어 애랑이 차려주는 음식상을 받아 먹고서, 애랑을 잊지 못하여 마음의 병이 들게 되었다. 배비장은 방자를 매수하여 애랑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만날 기약을 얻어냈다. 배비장은 방자가 지정하는 개가죽옷을 입고 애랑의 집을 찾아갔다.

  배비장은 애랑의 집 담 구멍을 간신히 통과하여 애랑을 만나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방자가 애랑의 남편 행세를 하며 들이닥치자, 황급해진 배비장은 자루 속에 들어갔다. 방자가 술을 사러 간다고 틈을 내준 사이에 배비장은 피나무궤에 들어가서 몸을 숨겼다. 방자는 배비장이 숨어 들어가 있는 피나무궤를 불을 질러 버리겠다고 위협을 하다가, 다시 톱으로 켜는 흉내를 하면서 궤 속에 든 배비장의 혼을 뽑아버렸다.

  배비장이 든 피나무궤는 목사와 육방(六房)의 아전들 및 군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헌 ( 東軒 )으로 운반되었다. 바다 위에 던져진 줄 안 배비장이 궤 속에서 도움을 청하자, 뱃사공으로 가장한 사령들이 궤문을 열어주었다. 배비장은 알몸으로 허우적거리며 동헌 대청에 머리를 부딪쳐 온갖 망신을 다 당하였다.』

【감상】

  인쇄된 <배비장전>의 자료로는 중요한 이본(異本)의 차이를 보이는 두 종류가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1916년부터 발간되었던 것으로 알려진 구활자본이고, 또 하나는 필사본을 대본으로 한 1950년에 나온 주석본이다. 앞의 자료에서는 배비장이 애랑과 방자의 계교에 빠져 온갖 곤욕을 치른 뒤에 정의현감(旌義縣監)이라는 관직에 오르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뒤의 자료에서는 배비장이 애랑과 방자의 계교에 빠져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알몸으로 궤 속에서 나오는 장면으로 끝나고 있다.

  <배비장전>의 소재가 되었을 것으로 지적된 근원설화(根源說話)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랑하는 기생을 이별할 때 이빨을 뽑아 주었던 소년의 이야기인 발치설화(拔齒說話)이다. 다른 하나는 기생을 멀리하였다가 오히려 어린 기생의 계교에 빠져 알몸으로 뒤주에 갇힌 채 여러 사람 앞에 망신을 당하는 경차관(敬差官)의 이야기인 미궤설화(米櫃說話)가 지적되어 왔다.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 실려 있는 발치설화는 애랑과 정비장의 이야기에 수용되었다. 한편, 이원명(李源命)의 <동야휘집(東野彙輯)>에 실려 있는 미궤설화는 애랑과 배비장의 이야기에 수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실제 있었던 일이 어떻게 설화로 바뀌어지는가 하는 관점에서 <배비장전>의 바탕이 된 미궤설화의 근원이 더욱 자세히 밝혀지기도 하였다. 김안로(金安老)의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에 수록된 ‘모안렴위기광욕(某按廉爲妓狂辱)’, <실사총담(實事叢譚)>에 실린 ‘풍류진중일어사’風流陣中一御史)‘라는 이야기 등이 미궤설화의 근원이 되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관인사회(官人社會)에 처음 참여하는 사람이 겪어야 되는 입사식(入社式)인 신참례(新參禮)도 소재로 수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의 형성시기는 정확하게 알기 어려우나, 유진한(柳振漢)이 남긴 만화본(晩華本) <춘향가>에 <배비장타령>의 존재를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 영조 때까지는 판소리 한 마당으로 성립되었던 <배비장타령>이 판소리로서의 생명을 잃고 그 사설만 기록되면서 소설화된 것이 <배비장전>으로 남아 전해졌을 것이다.

  1950년도 출간본은 희극적 파탄이 최고조에 도달한 이 부분에서 끝났다. 구활자본에서는 이와 같은 망신을 당한 배비장은 목사를 하직하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하여 배를 기다리다가, 애랑이 해남(海南)에 간다고 소문 내면서 준비해 놓은 배에 숨어 들어갔다가 다시 애랑을 만나고, 뒤에 정의현감으로 임명되어 애랑과 함께 부임해서 그 고을을 잘 다스리고 행복을 누렸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작품은 판소리 사설이 기록화되면서 소설화된 것이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판소리 사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작품의 문체는 판소리 사설의 문체적 특징을 수용하고 있다.

  판소리로 불리어진 다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삽입가요(揷入歌謠)도 발견된다. 그런데 1950년도 출간본은 판소리 사설에 더욱 가까운 면을 지니고, 구활자본은 소설로 바뀌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방자는 배비장의 약점과 위선을 폭로하고 파괴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그런 면에서 가면극에 등장하는 말뚝이와 상통한다. <춘향전>에 나타나는 방자보다도 더 날카로운 풍자의 기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배비장전>의 방자는 판소리 사설이나 판소리계 소설에서 작가의 목소리를 개입시키는 장치로 형상화되는 인물유형의 하나로 주목될 수 있다.

  이 작품은 위선적인 인물 또는 위선적인 지배층에 대한 풍자를 그 주제로 하는 작품으로 이해된다. <배비장전>은 관인사회의 비리(非理)와 야합상(野合相)을 소재로 하여 관인사회 일반을 풍자한다. 그러기에 날카로운 웃음의 긴장상태가 계속되는 작품이라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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