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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예루살렘 회복 (1-8절)
7장이 금식에 대한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이라면, 8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으로 상징되는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참된 믿음으로 가질 때 주어질 은총과 축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본문의 말씀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인 동시에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온전히 회복될 예루살렘(이스라엘)의 모습이기도 한데,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서 모든 믿음의 사건이 시작되고 완성되는 장소로 지목되고 있는 예루살렘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루살렘
성경에서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이 엘람 동맹군을 물리치고 돌아올 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을 영접한 사건 때입니다(창 14:18). 여기서 말하는 살렘이 바로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이후로 아브라함은 성전산으로 알려진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서 독자 이삭을 바치는 시험을 통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고(창 22:14), 가나안 정복 당시에는 여부스 족속이 살던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했지만(수 15:63), 훗날(B.C. 1,000년경) 다윗이 이곳을 점령하고 ‘다윗 성’이라 명한 후 이곳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았습니다(삼하 5:7). 다윗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언약궤를 이곳으로 옮기고, 이후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모리아 산상에(창 22:2) 성전을 건축함으로 예루살렘이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정치적, 신앙적 중심지가 된 것입니다. 솔로몬의 사후에는 이스라엘 왕국이 남북으로 분리되었지만, 예루살렘은 여전히 남유다의 수도로서 명맥을 유지해왔는데, B.C. 586년 바벨론에 의해 성전이 무너지고,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짐으로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포로생활 70년 뒤에는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바벨론 땅에 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재건함으로(느 12:13-43), 예루살렘이 재건되었는데, 이렇게 재건된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공생애를 마치신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거절한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고”(눅 19:44) 무너지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A.D. 70년 로마에 의해 다시 한번 파괴됨으로 1900년 가량 황폐하게 되었다가,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이 고토로 돌아가 나라를 재건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포함으로 재건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마치시고, 복음전파의 역사가 처음 시작되었던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 비로소 온전한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인데, 장차 교회의 휴거사건이 일어나고 7년 대환난이 시작되면 이 환난의 끝에 예수님이 재림하시어 바로 이 예루살렘을 천년왕국의 수도로 삼으실 것입니다. 천년왕국의 끝에는 무저갱에서 풀려나온 용이 열국을 미혹하여 예루살렘 성을 둘러싸고 치려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유황 못에 던져질 것이라 하십니다(계 20:7-10). 이후로는 지금의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펼쳐지게 될 것인데, 이렇듯 새하늘과 새땅이 펼쳐지면 하늘에 있던 새예루살렘성이 내려와 궁극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이 될 것이라 하십니다(계 21:1,2). 성도들이 가게 될 최종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새 예루살렘이라고 일컬을만큼 예루살렘이 성경에 안에서 중요하고도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제는 예루살렘 회복에 관한 본문의 말씀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2. 1, 2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하십니다.
a. 2절에서 시온은 예루살렘을 일컫는 또 다른 명칭인데, 하나님이 시온을 위하여 질투한다 하십니다. 여기서 ‘질투하다(jealous)’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카나’인데, ‘시샘하다’, ‘투기하다’라는 뜻과 ‘노를 격발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이스라엘을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 ‘시샘하고’, ‘투기하셨다’는 겁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낫는데도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는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에 ‘시샘하고, 투기하는 것’입니다.
b. ‘카나’는 또 ‘노를 격발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예루살렘(이스라엘)을 교훈하시기 위해 바벨론과 같은 나라들을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셨는데, 징계의 도구로 세운 이 나라들이 예루살렘이 멸망하도록 쳤기 때문에 하나님이 “크게 분노하여” 이 나라들을 멸망시킨 것이고, 적그리스도도 같은 이유로 멸망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든,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들이든,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3. 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하십니다.
a. 하나님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실 때 예루살렘의 회복이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 하십니다. 에스겔 10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과 예루살렘에서 떠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겔 10:18), 이렇듯 떠나가신 하나님이 다시금 시온으로 돌아와 예루살렘에 머무실 것이라 하십니다. 이 예언은 2,000년 전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으로 성취될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이방인이 중심이 된 교회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장차 교회가 휴거의 사건으로 떠나가고 7년 대환난이 시작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족적으로 회개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게 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재림하시어 예루살렘 시온산에 머무심으로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하신 본문의 예언이 성취되게 될 것입니다.
b. “여호와가 돌아올 때 예루살렘이 진리의 성읍이 될 것이고, 여호와의 산(시온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이 이스라엘의 수도를 일컫는 명칭이라면, 여호와의 산, 시온 산은 장차 성전이 세워질 신앙의 중심지를 의미합니다. “여호와가 돌아올 때” 즉, 왕과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예루살렘이 진리로(말씀으로) 만방을 다스리는 천년왕국의 수도요 동시에 시온산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는 신앙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4. 4, 5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가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 많으므로 각기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하십니다.
성경에서는 노인들이 장수하고 어린아이들이 태어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징표(출 20:12; 신 7:13; 시 128:3-6)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예루살렘이 바로 그런 축복이 주어지는 땅이 될 것이라 하십니다.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함과 동시에 출산율이 전 세계에서 꼴찌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대로 가면 이 땅에 노인들만 남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 세대들이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데,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결혼을 해서 분가를 하려 해도 집값이 너무 비싸고, 자식을 낳아 기르려고 해도 교육비가 엄청날 뿐 아니라, 악하고 음란한 세상 문화에 물든 자녀들이 언제든지 사고를 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에 결혼과 자녀 양육을 포기하는 겁니다. 여하튼 결혼을 하고, 많은 자녀를 낳아도 염려 없이 기를 수 있는 나라가 복된 나라라는 겁니다.
5. 6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십니다.
6절 말씀에서 “남은 백성(the remnant of this people)”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는데 6절뿐 아니라 11절과 12절에도 “남은 백성”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여기서 “남은 백성”은 “그 날”로 표현되는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으로 살아남은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스가랴 13장 8절에서는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을 것”이라 하셨고, 요한계시록 12장에서는 붉은 용의 핍박을 피해 남은 자들을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신 도피처로 인도하여 1260일 동안 양육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계 12:6). 이렇게 7년 대환난과 핍박을 피하여 남은 자들이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천년왕국의 기간 동안 제사장 나라로서 세상을 통치하는 기이한(marvellous)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6. 7, 8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하십니다.
동방과 서방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돌아옴으로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인데, 이 말씀은 1차적으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과 성벽을 재건함으로 이스라엘이 재건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지만, 궁극적으론 6절에서 “그날”로 묘사되는 마지막 때에 A. D. 70년 로마에 의해 나라를 잃고 열방 가운데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재건하게 될 것을 예언한 말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귀환 운동을 ‘알리야’라고 하는데, 히브리어 ‘알리야’는 본래 ‘올라가다("ascent" or "going up")’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예루살렘은 지형적인 의미에서나 신앙적인 의미에서나 ‘올라가야(알리야) 할’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알리야는 19세기 후반에 들어 유대인들 사이에서 시온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시작되었는데, 그 결과 1882년에는 유럽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를 하였고, 이렇게 이주한 유대인들과 2차 대전 직후 대규모로 이주한 유대인들이 함께 1948년 5월 14일에 독립을 선언하고 나라를 재건한 것입니다. 이후로 전 세계에 흩어졌던 1400만 명 가량의 유대인들 가운데 현재 600 만명 가량이 이스라엘로 돌아와 살고 있는데, 미국에는 이 숫자와 비슷한 580만 명가량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아직 ‘알리야’하지 않고 있는 절반 이상의 유대인들은 7년 대환난 기간 중에 모두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와 민족적으로 회개한 뒤에 떠나간 교회를 대신해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다가, 그중에 살아남은 3분의 1이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천년왕국을 통치하는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가 되면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7,8)하신 본문의 예언이 문자적으로, 역사적으로 성취되게 될 것입니다.
II. 성전재건을 통한 회복(9-13)
1. 9-12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 때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그 날 전에는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였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이 대적을 인하여 출입에 평안치 못하였었나니 이는 내가 뭇 사람으로 서로 치게 하였음이어니와,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전일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곧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하십니다.
9절부터 12절의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전재건의 사명을 맡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고,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 세워질 성전(제 4 성전)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이 완성될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a. 먼저 9절에서는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때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하십니다. 바벨론 포로생활 70년 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재건을 시작했지만 대적들의 방해로 기초공사를 마친 뒤 16년 동안이나 성전재건이 중단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보내 성전재건을 다시 시작할 것을 독려하셨는데, 이런 선지자들의 말을 들을 때 너희가 “손을 견고히 하여”, 다시 말해 “기운을 내서 담대하게” 성전재건에 나서라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재건의 사명을 외면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학개, 스가랴 선지자를 보내 성전재건을 독려한 것처럼, 하나님은 때때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을 깨닫지 못할 때, 하나님의 종들을 보내 해야 할 일을 알려주실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마 3:2)라고 외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을 알려준 것처럼, 주의 재림이 가까운 지금도 하나님이 주의 종들을 통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주의 종들을 통해 주시는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자가 이 땅에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천국으로 옮겨지는(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b. 성전재건을 독려하는 9절에 이어지는 10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은 성전을 재건할 때 주어질 구체적인 축복들에 관한 말씀들인데, 요약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신 28장) 성전을 재건하면 너희가 수고한 것에 대한 공정한 삯(댓가)을 얻게 될 것이고(10상), 대적들을 물리쳐주실 것이고(10하), 풍족하고 평안한 추수를 거두어 누리게 될 것(12)이라 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하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더해주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겁니다.
c. 예루살렘 회복이라는 큰 주제 속에서 주신 본문의 말씀은 성전재건이 예루살렘 회복의 핵심이 될 것임을 보여주는 말씀이기도 한데,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약 2:26) 성전이 없는 예루살렘은 온전한 하나님의 도성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전이 세워져야 하나님이 그곳으로 임재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고 축복하실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에스겔 10장 18절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할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에스겔의 마지막 구절인 48장 35절에는 “여호와 삼마(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라고 해서 하나님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이곳을 통치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중간인 40장부터 43장까지가 성전재건에 관한 말씀인데, 하나님이 머무실 성전이 재건되어야 떠나갔던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올 수 있는 것이고(겔 40:4,5),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와야 예루살렘이 비로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여호와 삼마”의 성읍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1948년 5월 14일 고토로 돌아와 나라를 재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려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인 것입니다. 하지만 장차 이스라엘이 세울 제 3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가 아니라,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 적그리스도가 그곳에 자신의 우상을 세움으로 “멸망의 가증한 것”(마 24:15)이 세워지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어 적그리스도 우상으로 인해 더렵혀진 이 성전을 허무시고 새로운 성전을 지으실 것인데, 그 성전이 바로 에스겔 40장에 등장하는 에스겔 성전, 다시 말해 천년왕국의 성전인 것입니다. 성전과 궁전의 역할을 같이하게 될 이 천년왕국의 성전에서 왕인 동시에 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세상을 통치하심으로 예루살렘이 ‘여호와 삼마(하나님이 거기 계시다)’의 성읍이 된다는 겁니다.
2. 13절,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 가운데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하십니다.
a. 13절은 성전재건을 마친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이 경험하게 될 축복에 관한 말씀인데, “ - 너희가 이방 가운데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하십니다. 여기서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라(ye shall be a blessing)”하신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주셨던 약속,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하신 약속을 회복시켜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을 약속받았지만, (신명기 28장의 말씀처럼) 저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삶을 살 때, 이방 가운데 흩어져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되는 삶을 살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하나님이 “이방 가운데서 저주가 되었던” 저들을 구원하여 “이방 가운데서 축복이 되게 할 것”이라 하신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모습이 23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하십니다. 여하튼 이스라엘이 “이방 가운데서 축복이 되게 할 것”이라 하신 이 약속은 “야곱의 환난의 때”(렘 30:7)인 7년 대환난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족적으로 회개하여 구원을 받고,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함으로 성취되게 될 것입니다.
b. 이스라엘의 회복을 설명하면서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라고 이중적으로 언급한 것은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이 얻게 될 회복의 은혜가 남 유다 백성들뿐 아니라, 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미치게 될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에스겔 37장은 19절에서는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취하여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하십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남 유다에 속한 유다와 베냐민 지파뿐 아니라, 북이스라엘에 속한 10개의 지파들이 하나로 합쳐져서 이스라엘 12지파로 이루어진 온전한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의 인 맞은 자 144,000명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7장에 유다지파뿐 아니라 12지파의 이름이 모두 등장하는 것이고,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보여주는 새 예루살렘 성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적힌 12개의 진주문이 등장하는 것입니다(계 21:21).
B.C. 721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한 뒤, 이곳에 있던 이스라엘의 10 지파가 모두 사라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대하 15장 9절에 보면 유다의 아사왕 때 북이스라엘 10 지파 가운데 믿음을 지키기 위해 성전이 있는 남유다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았다 했고, 또 역대하 30장 11절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통치하던 당시 앗수르에 의해 멸망받은 북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남유다로 피난을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다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열왕기하 18장 11절에는 앗수르에 의해 멸망 받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할라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로 옮겨져 이곳에서 살아갔다 했습니다. 이방 땅이지만 이곳에서 신앙적, 혈연적 순수성을 지켜내며 살아간 것입니다. 여하튼 이렇게 이방 땅에 흩어져 살며 저주받은 민족처럼 살아가던 유다족속과 이스라엘 족속이 마지막 때가 되면 고토로 돌아와 12지파로서 하나가 되어 축복받는 민족이 될 것이라는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해 이어지는 말씀들은 다음 주에 계속해서 살펴봅니다.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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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하루도 삶이 잔잔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은 쉽게 성내지 않고 쉽게 흥분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고요했으면 좋겠고,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표 내지 않고 혼자 간직하다 이내 평온해지는
그러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고 좋은 일 많은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