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투표보조 편의 미제공 차별구제청구소송’ 1심 승소
재판부,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받을 수 있도록 편의 제공” 주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 등 2개 단체는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정당한 편의 미제공 차별구제청구소송 판결선고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에이블뉴스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공직선거에서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라고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하며 4년 만에 잃어버렸던 권리를 되찾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9민사부는 10일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정당한 편의 미제공 차별구제청구소송’에 대해 선거 또는 국민투표에서 발달장애인들에게 발달장애인의 가족 또는 그들이 지명하는 2명에 의해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라고 판결했다.
또한 관련 매뉴얼에서 투표 보조를 허용하는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 기표를 할 수 없는 선거인에 발달장애인으로 인해 투표 보조가 필요한 선거인도 포함한다는 내용을 포함할 것을 주문했다.
판결 직후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잃어버렸던 권리를 되찾게 돼 감격스럽다”, “너무 행복하다”면서 행복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고, 소송을 함께했던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와 한국피플퍼스트 등 장애인단체와 소송대리인들 또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장추련에 따르면 지난 2020년 4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보조 지원을 거부당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발달장애인 12명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7조의 참정권에서의 차별금지를 이유로 진정서를 제출한 바 있다.
진정에 참여한 발달장애인들은 앞선 선거에서 투표보조를 받으며 어려움 없이 투표를 할 수 있었지만, 해당 선거에서 발달장애인들은 투표보조를 받을 수 없다고 거부당하면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투표를 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발달장애인은 투표보조는 2018년까지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2020년 공직선거법상 시각 및 신체장애로 인해 기표행위가 어려울 때만 투표보조 동반을 허용하고 있다며 관련 지침을 삭제해 버려 신체·시각장애를 동반한 중복발달장애인이 아닌 경우 투표보조를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개최된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정당한 편의 미제공 차별구제청구소송 판결선고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활동가들. ©에이블뉴스
이 진정에 대해 2021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복지법’의 규정을 근거로 ‘장애인이 선거권 행사에 불편함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는 권고를 내렸으나 선관위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결정에도 불구하고 관련 내용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이에 장애인 당사자와 관련 단체들은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가 100일 남은 상황에서 선관위의 자발적인 개선의지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법원에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에 대한 긴급구제를 요청하는 임시조치를 신청했고, 조정절차를 통해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음을 확인하고 선거 이후 관련 내용에 대하여 성실하게 개선 협의하기로 함으로써 임시조치에 대한 강제조정이 성립됐다.
하지만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투표소에서 발달장애인은 투표보조를 받을 수 없었고, 2023년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투표보조를 받지 못한 발달장애인들은 투표보조를 제공하지 않는 국가를 상대로 장애인의 참정권을 찾기 위한 소송을 시작했다.
국가는 발달장애인들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향후 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하는 선거와 국민투표에서 발달장애인에게 가족 또는 지명하는 2인의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고, 투표보조원이 원고들을 위한 적절한 조력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응대 매뉴얼 및 사전 교육을 제공하라는 내용이다.
이후 6번의 법정에서의 변론이 있었고 정신의학과 전문의와 특수교육학 박사 등 관련 전문가들이 발달장애인에게 투표보조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증언도 진행됐다.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개최된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정당한 편의 미제공 차별구제청구소송 판결선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사단법인 두루 한상원 변호사. ©에이블뉴스
사단법인 두루 한상원 변호사는 “오늘 1심 재판부의 판결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적극적 조치를 내린 것이고 사실상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인용한 것”이라며, “재판부는 매뉴얼에 발달장애로 인한 분들도 포함된다는 부분을 명시하기만 하면 기존에 투표 구조가 이루어졌던 사례가 있기 때문에 차별 구제로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곧 서울시 교육감 보궐선거 등 전국에서 재보궐 선거가 진행된다. 피고 대한민국은 사법부의 엄중한 심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더 이상 자의적인 법 해석을 근거로 발달장애인의 투표 보조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판결 주문에 따라 즉각 발달장애인 투표 보조를 허용하고 매뉴얼 개정 등 필요한 정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나아가 선거일마다 더 이상 불필요한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직선거법 개정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해 공정한 판결을 내려주신 재판부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개최된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정당한 편의 미제공 차별구제청구소송 판결선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상임대표. ©에이블뉴스
광진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신유다 활동가는 “투표보조를 거부당한지 4년이 지났다. 이번 판결로 발달장애인들이 잃어버렸던 권리를 되찾아 너무 기쁘다. 발달장애인도 유권자로 인정받았다”고 전했다.
이어 “당장 재보권 선거에서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재판부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었듯 선관위도 우리 목소리를 들어달라. 우리의 권리가 무시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관심 부탁드린다”고 피력했다.
장추련 박김영희 상임대표는 “오늘 소송에서 승소해 기뻤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를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왔던 선관위와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법정에까지 확인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또 오늘은 우리가 이겼다지만 중앙선관위에서 이 선고에 대해 항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지치지 않고 투쟁하고 우리의 권리를 찾아나가겠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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