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한글은 세종 혼자서 만든 것일까?
과연 한글은 세종 혼자서 만든 것일까?
솔바람
2020.04.16 18:07:48
조회 4166 추천 62 댓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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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문자 한글. 우린 한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현재 대부분의 책이나 교과서엔 한글의 창제는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공동으로 만든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이 상식은 정확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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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 당시의 기록으로는 그런 증거가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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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제했다고 하는 사실을 잘 모르는 시절에 그런 설이 나와서 모든 사람한테 마치 사실인 것처럼 유포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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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에 전혀 그런 말이 없습니다.
아주 잘못된 사실을 온 백성이 알고 있는데 세종이 무덤 속에서 통탄하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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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짜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훈민정음의 서문입니다.
내 이랄 위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여ㅤㄷㅡㄼ짜랄 맹가노니...
즉 내가 스물여덟 글자를 새로 만드나니...
라고 적고 있는데 그동안은 별 생각 없이 지나쳐온 이 문구는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만들지 않았다면 이것은 세종 혼자 만들었다는 뜻으로 기록한 셈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한글을 만든 것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상반된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한글 창제 과정에 얽힌 의문점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한글이 창제된 직후 신하들이 아주 강력한 반대 상소를 올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반대 상소를 올린 것은 누구였을까요?
반대상소를 올린 것은 바로 집현전의 학자들이었습니다.
세종과 더불어 한글을 만들었다는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창제 이후 한글을 비난하는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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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443년 세종 25년의 일입니다.
실록엔 이것에 대해 매우 간략한 기록만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훈민정음의 창제는 당시 큰 파문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관료들이 집단으로 상소를 올려 한글 창제를 반대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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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 부제학이었던 최만리를 대표로 신석조 김문 정찬선 등 모두 일곱 명의 학자들이 반대 상소를 올린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집현전 소속으로 집현전 내에서도 높은 지위에 있던 원로 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상소를 올린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이들은 상소를 통해 한글 창제가 세종의 독단적 행동이었던 것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지고 있단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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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리도 아마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있단 걸 그때 와서 알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 전에는 그런 기록들이 없고, 적어도 집현전의 대제학은 하나의 명예직이자 겸직이지만 부제학은 실무 담당 책임자입니다.
그분의 상소가 그때야 올라온 것을 보면 미리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전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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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의 최고 책임자였던 최만리가 한글 창제를 몰랐다면 창제 과정에 집현전 학자들이 참여했다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한글 창제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학자는 정인지 최항 신숙주 성삼문 등 모두 일곱 사람입니다.
반대 상소를 낸 학자들이 원로라면 이들은 대부분 젊은 나이로 소장학자에 속합니다.
집현전 칠 학사라고도 불리는 이들의 이름은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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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록인 성연의 용재총화를 보면 세종이 신숙주 성삼문에게 명해 언문을 지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집현전 칠학사 중에서도 한글 창제와 관련해 가장 주목을 받는 학자는 신숙주입니다.
세종의 총애를 받았을 뿐 아니라 한글 관련 사업에 가장 많이 동원된 사람이 바로 신숙주였기 때문입니다.
신숙주는 외국어에도 능통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중국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사실도 그가 한글 창제에 참여했을 거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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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의 문집인 보한제집에는 그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신숙주가 직접 쓴 글을 비롯해 당대 학자들이 기록한 그의 일대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한글 스물여덟 글자를 만든 것은 세종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신숙주가 한 일은 세종의 명을 받아 한글 서적을 편찬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신숙주가 요동에 다녀왔다는 기록입니다.
당시 요동에 귀향와 있던 중국의 언어학자 황찬을 만나기 위해 성삼문과 함께 요동을 방문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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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석 교수 (충북대 국문학과)
신숙주가 황찬을 만난 것은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질문한 것은 한글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질문한 것이 아닌 한자음을 바로 잡기 위한 것... 한자음에 관한 질문을 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한자음에 관한 이론이었던 성운학에 대해 물은 것이지 우리 한글을 만드는데 직접적인 조언을 듣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실록을 보면 연도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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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신숙주가 황찬을 만나기 위해 요동으로 간 것은 언제일까요?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보기로 합니다.
검색결과 신숙주가 최초로 요동에 간 것은 1447년 1월. 한글이 반포된 지 1년 2개월 후의 일이었습니다.
이기문 명예교수 (서울대 국문학과)
실질적인 일은 신숙주나 성삼문이 했다고 하는데 성삼문은 집현전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고 신숙주는 세종 25년 말에 훈민정음이 창제가 공표됐는데 23년 집현전 학사가 되고나서는 일본에 가 있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한글 창제에 집현전 학자들이 참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원로 학자들은 한글 창제 자체를 반대했고 젊은 학자들도 한글 서적을 만드는데 참여했다는 사실만을 밝혀냈던 것입니다.
결국 세종 25년에 만들어진 한글 스물여덟 자는 그들의 공로라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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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스물여덟 글자가 만들어진 것은 세종 25년이고 이 훈민정음 책이 만들어진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인 세종 28년의 일입니다.
만약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 책을 만드는 데에만 동원됐다면 세종 25년에 만들어졌다는 한글 스물여덟 글자는 세종 혼자서 만들었다는 얘기가 되는데 과연 그것은 가능한 것이었을까요?
세종은 조선 왕조 오백 년 뿐 아니라 우리 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문화적 군주였습니다.
농업, 천문, 의학 등을 장려해 측우기, 해시계, 물시계 등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 냈고 각 학문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린 전문 서적들을 수백 권 씩 만들어 낸 것도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역사에서 그가 재위했던 삼십이 년간보다 과학기술이나 문화가 발달했던 시기는 없었다고까지 평가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세종이라는 임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과를 보인 이 문헌들을 살펴보면 그 일을 맡았던 실무자의 이름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독 한글만은 세종이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