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부련(徐浮蓮) 시평(詩評) ♣
- [계간 화백문학 2010, 가을호] -
(詩-1)* 땅콩껍질 속의 戀歌 *
(詩-2)* 오늘은 *
(詩-3)* 나이테 *
(詩-4)* 걸인(乞人) *
(詩-5)* 마지막 戀書 *
(詩-6)* 이정표 없는 꿈길에서는 *
(詩-7)* 그대 가슴에 *
(詩-8)* 메트릭스의 우발적 변종으로서의 인간 *
(詩-9)* 여의도 횟집 *
(詩-10)* 해돋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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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1)* 땅콩껍질 속의 戀歌 *
아십니까? 그대, 마주보는 이여
비롯된 그날부터, 우리는 둘이랍니다,
잘록한 허리로 나누인
이브 자리
아담 자리,
그대 숨소리에 지고 새는
지척에 있어도
손끝 하나 잡을 수 없는 우리는
플라토닉 러브입니까
피를 말리는 형벌입니까,
껍질이 깨지는 아픔 뒤에
그대와 나
위선의 속껍질까지 홀랑 벗고
으깨어져도 한 몸이 되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그대와 나, 마주보며
손끝 하나 어쩌지 못하는 지금보다
으깨어지더라도, 한 몸이 되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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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2)* 오늘은 *
(For the birthday of Better-half )
꽃내음 흐드러진 오늘은
삼신 할매가 지푸라기 한 옹큼을 추리고 추려서
내 짚신 한 짝을 옹골지게 삼은 날
슬렁슬렁 지난 세월
헤아려 보면 꽃신 같은 나날들
내 곁에 와서 미투리 되었구려,
오늘도, 나는
명주실보다 질긴 운명의 실을 잣는
당신의 물레에서
한 타래 실 끝을 꿰고 앉아
소박한 꿈을 엮는 질박한 선머슴,
앞뜨락 가득히 낙엽이 지는 날
당신 손 끝 양념 내음새에 묻어오는
간이 소반 놓고 마주 앉던 그날의 기억이.... ,
당신은 오늘도 행주치마폭 너른 자락에
한 시름 다독여서 말없이 재워두고
석류 속 같은 가슴을 여미곤
가난도 곱게 접어 시렁 위에 치워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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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3)* 나이테 *
아무도 오지 않는 산기슭에
나, 이렇게 그루터기로 남아
나이테를 드러내고 있음은
그대를 기다리다 지처 버린
체념의 묵시록 한 페이지를
펼쳐 보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대가 뿌린 씨앗에
떡잎이 날 때의 기억은
숨결이 닿는 연초록 잎사귀마다
그대는 나의 햇볕이었고
비구름 바람까지도 나의 행복이었습니다,
이제금, 이렇게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그루터기에 남겨진 나이테의 흔적은
비바람에 시달린 육신을 가늠고
포근한 햇볕을 기꺼워하던
나의 몹쓸 버릇으로 하여
그 숱한 인고의 나날을 아로새긴
야속한 투정도 아닙니다,
나, 이제
그대 보금자리에 섣가레 되고 창틀이 되어
틈새바람에 문풍지로 울어도
그대, 저어할 새라
아무도 오지 않는 산기슭에 그루터기 되어
뭇 사람의 엉덩받이로 남아 있음은
한 줄 한 줄 새겨도 모나지 않는
둥근 나이테로
오마지 않는 그대 발길에
이정표가 되기 위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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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4)* 걸인(乞人) *
나는 걸인입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걸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영롱하던 내 눈빛은
맥이 풀리고
온갖 보화로 가득 차 있던 내 가슴은
손 털고 일어서는 투전판의 노름꾼인 냥
한 순간에 텅 비었습니다.
그 날부터 나는 걸인이 되었습니다.
오만과 자존의 대명사였던 내가
이제는, 그대에게 측은하게 보일 궁리만하여
동전 한 잎 같은 그러나 천금보다 귀한
그대의 마음 부스러기라도 주워 담으려는
걸인이 되었습니다.
다른 걸인은
따뜻하고 번화한 거리에 서 있지만
나는 춥고 그늘진 곳만 골라
추수가 끝난 빈 들녘에 허수아비처럼
텅 빈 거리에 서있습니다
그 것은 내가 바보라서가 아니라
그대의 시선을 끌기에 더 좋은 까닭입니다.
그대의 미풍 같은 한 마디가
내게는 태풍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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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5)* 마지막 戀書 *
그대여!
오늘 같은 날은
그 눈물로 젖은 편지로 인해
내 이토록 장님이 부럽고
내 이다지도 귀머거리가 부럽고
내 아무리 부정해도 벙어리가 부러웠소,
옷깃만 스치며 인연으로 남을 것을
입술까지 스쳐 이별에 이른 것은
한줌의 모래알 같은 우리 사랑
너무 꽉 쥐어, 모두
손가락 사이로 흘리고 말았소---
이제금
불장난 끝에 세월만 태워서
한줌의 재를 허공에 날린, 지금
마지막 한마디 입 속에 맴도는 것은
素月의 詩 한 구절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그러나
아침이슬처럼 영롱한
숱한 기억들이 메마를 즈음
종기가 아문 자국 같은
흉터 하나 남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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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6)* 이정표 없는 꿈길에서는 *
그대 오신단 말 없어도
길 없는 꿈길을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도
침향(沈香)을 사르옵니다.
이정표 없는 꿈길에서는
오솔길 같은
하늘하늘 타오르는 향연(香煙)을 따라
꿈길로 오십시요
행여나 발이라도 헛디딜까 저어되어
호롱불 등잔 심지도 다듬어
머리맡에 두었습니다.
길 없는 꿈길로
임이 오시는 날이면
그 숱한 밤의 고독을 몽땅 들어내
온 하룻밤을 하얗게 달빛에 우려
달달 볶으고 졸여 한 옹큼 사리처럼
내 영혼의 탑 속에 간직하면
밤마다 또 하나의 별로 뜨겠지요.
저녁나절 빈 들녁같이 호젓한
내방엔
짚단 같은 고독이 널브러져 있고
심지 돋은 호롱불 옆에서는
침향(沈香)이 하늘하늘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정표 없는 꿈길에서는
어느 곳도 마다하고
내게로만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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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7)* 그대 가슴에 *
난 지금
그대 가슴에 빛이 되고 싶네
밤하늘 같은 그대 가슴에
하나의 별이 되어
한 줄기 빛이 되고 싶네,
난 지금
그대 가슴에 바람이 되고 싶네
옷깃에 묻은 고독의 그림자도 지우는
그리하여 인생의 허무함도
흘러간 청춘의 아쉬움까지 쓸어내는
바람으로 남고 싶네,
난 지금
그대 가슴을 적시는 물이 되고 싶네
갈증으로 목 타는 그대 영혼에 스미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푸르른 나무를 키우고
그리하여 새들을 불러 모아
그대 가슴을 노래로 채우는
해 맑은 물로 남고 싶네,
난 지금
그대 가슴에 꽃으로 피고 싶네
태양을 따라 도는 해바라기처럼
그대의 얼굴을 보며 피는
한 떨기 꽃이 되고 싶네
그리하여 그대 눈길이 닿는 곳에
은은한 향기로 남고 싶네,
난 지금
그대의 둥지가 되고 싶네
울적할 땐 위로해주고
괴로울 땐 감싸주며
외로울 땐 안아 줄 수 있는
그대 영혼의 마지막 안식처
포근한 둥지로 남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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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8)* 메트릭스의 우발적 변종으로서의 인간 *
나는 어떻게 여기 있는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결함인 사랑과
인간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인 희망이 있어
조물주를 닮은 우발적 변종으로 존재한다!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놓지 못할 화두는
세월의 지층 속에서 화석으로 풍화될지라도
되풀이 되는 가장 무의미한 질문을 두고
바랑을 짊어진 인간은 오늘도 탁발을 한다!
조화로운 우주에 단 하나
불균형한 방정식의 나머지의 합집합으로
오답이자 우발적 변종으로 남은
조물주의 검산이 필요한 무한수열의 개체는
플러스마이너스 극한으로 수렴하고 있다.
조물주가 잘못 조작한 프로그램은
몸뚱이란 하드웨어 속에서
감정이란 바이러스가 끝도 없이 분열하여
마침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결함인
사랑이란 감정이
논리와 이성의 껍데기를 비집고 발현되니
아주 간단한 사실조차 잊을 수 있어
단순할수록 뜨거운 사랑은 인간의 꿈이 되고
무모할수록 숭고한 용기는 인간의 힘이 되니
이룰 수 없는 것까지도 희망으로 남아있다.
이성을 갉아먹는다하여
무모한 인간의 궁극적인 꿈으로 표출되는
사랑을, 누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결함이라 했던가?
현실을 부정한다하여
나약한 인간의 환상적인 힘으로 무장되는
희망을, 누가
인간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라 했던가?
인간은
사랑이 있어 오늘이 즐겁고
희망이 있어 내일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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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9)* 여의도 횟집 *
형용사만 빼어나게 살이 오른 모국어(母國魚)를
한 마리 한 마리 낚아 올려,
여의도 횟집에 납품하니
가시 바르고 비늘 벗긴 국회(國膾)는 한 접시뿐
온갖 잡어를 섞어 끓인 매운탕만 푸짐하네!
손님들은
멸치, 꽁치, 갈치 등
유독 비린내가 진동 하는
치자 돌림 생선만 좋아 하는지
국회(國膾)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소금에 절인 꽁치보다, 더 맛이 간
비자금에 절은 정치(政治)만을 안주 삼네!
너도 한번 나도 한번
울화가 치미는 오장육보를
에칠알콜로 소독하다가
큰상(長床)도 물린 파장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개다리소반엔
아무도 먹지 않는 국회(國膾) 한 접시만
시들시들 남아 있네!
억억(億億) 거리는 정치(政治)도
치자 돌림이라 그렇게
비린내를 온 세상에 풍기나!
헉헉거리는 궁민(窮民)들이여
오늘같이 세상이 돈짝만한 날은
내가 한번 호기 있게 쏠 테니
술값 신경은 잠시 꺼두어도 좋습니다.
자~! 떠나자, 여의도 횟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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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10)* 해돋이 *
임은 성군(聖君)이로소이다.
어둠을 물리고 행차 하오리까?
여기저기에서 신음소리를 죽이며
달의 폭정에 시달리던 세상만물이
온 밤을 지새우며 임을 기다리던
지난밤은
너무 길었습니다.
조용히 술렁이기 시작한 바다에서는
온갖 물새들이 소금물에 양치를 하고
말끔한 얼굴로 비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 밖에선 밤새 불침번을 섰던 파도가
이제 푸르른 도포로 정장을 하고
너울너울 춤을 추며 수평선 위에 도열 하였습니다.
바다 속에서는 온갖 물고기들이
지느러미를 가다듬고
순라를 돌 차비를 하고 있습니다.
바람은 구름을 다듬질하여
맵시 있는 휘장도 드리웠습니다.
자~ 이제 납시지요.
저 멀리 갯가에서는 행차하실 물목에 갯바위 까지
하얀 거품을 내며 닦아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 웅장한 위용을 뽐내지 마시고
서서히 인자한 모습을 드러내십시오.
수평선에선 환영의 붉은 물결이 넘실거리고
지평선에선 환희의 붉은 구름이 온 세상에
임의 왕림을 고할 것 입니다.
백성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붉은 곤룡포에 화려한 옥좌에 앉아서
지난밤의 달의 폭정을 상기 시키는
치졸한 짓을 하지 않아도
세상만물은 새날이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임은
모든 것을 가리고 홀로 빛나던 달처럼
세상만물 위에 군림하지 마시고
돌보지 않아 잡초가 우거진 묘지도
비루먹은 강아지가 뒤지던 쓰레기통
하물며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찌르는
시궁창까지도 마다하지 마시고
그저 밝게 드러내시기만 하면 됩니다.
임은 가만히 있어도 새날이 왔음을 알리는
성군(聖君)이로소이다.
**************** - 끝 -

♣ 서부련(徐浮蓮) 시평(詩評) ♣
강기옥 (시인.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예술은 표현의 방법에 따라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등으로 구분한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 표현한 영화를 종합예술이라 하는 것도
각 장르의 고유성을 인정한 데서 출발한다.
한 편의 시를 읽으면 그림이 떠오른다든가,
세레나데와 같은 음악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바로 시가 지닌 종합예술적 성격이다.
결국 예술은 장르에 따라 표현 방법이 다를 뿐 공통적으로
삶을 표현행위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이를 실증하듯 나는 모처럼 사랑의 세레나데를 들었다.
세레나데(serenade)는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남자가 여인의 집 창가에서 부르는 노래다.
사랑을 고백하는 연가(戀歌)이기 때문에
감미롭고 아름다운 리듬이 세레나데의 특징인데,
경쾌한 리듬으로 청중에게 가뿐한 감동을 주는
모차르트의 세레나데가 대표적인 곡이다.
그러나 성격이 내성적인 슈베르트의 세라나데는
분위기가 우울하다.
장중한 가락이 흐르는 ‘겨울 나그네’에서 슈베르트의 특성을
잘 알 수 있듯이 그의 세레나데는 애수가 깊다.
서부련(徐浮蓮) 시인의 시는 본인이 제목에서도
연가(戀歌)라 했듯이 사랑의 노래다.
그래서일까.
지터벅(jitterbug 일명 지르박)과 같은
경쾌한 리듬으로 들리기도 하다가
블루스(blues)풍의 잔잔한 가락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춘향가의 ‘사랑가’ 와도 같은 판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피카소풍의 입체화와 바람이 머무는 숲새의 수채화가 보이기도 한다.
모처럼 크로스 오버의 경지에서 시를 음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문학의 종합예술적 성격 을 잘 살려낸
서부련 시인의 시심 때문이었다.
문제는 시를 읽으면서도 괴테나 헤세, 미당과 같은 시인보다
슈베르트와 모차르트 같은 작곡가가 먼저 떠오른 점이다.
그러나 역시 시는 시를 불렀다. 괴테의 사랑이었다.
아 - 누가 그 아름다운 날을 가져다 줄 것이냐, /
저 첫사랑의 날을. //
아 - 누가 그 아름다운 때를 돌려 줄 것이냐, /
저 사랑스러운 때를.//
쓸쓸히 나는 이 상처를 기르고 있다. -후략
“나는 체험하지 않은 것, 급박하지 않은 것을 시로 쓴 적은 없으며
말로도 해 본 적이 없다. 연애시는 다만 연애하고 있을 때에만 썼다.”
21세에 약혼녀와 이유없는 이별을 한 후 머무는 곳마다
사랑의 염문을 뿌리고 74세에 19세의 울리케 폰 레베초프에게
청혼할 만큼 사랑에 빠져 살던 괴테에게 사랑은 곧 삶이자 문학이었다.
모든 것이 체험이라는 그의 고백처럼 그의 모든 작품에는
사랑의 대상이 따로 있었다.
서부련(徐浮蓮) 시인의 시도 괴테와 같은 체험적인 시였기에
내게 던져 준 시적 감동은 더위를 잊게 하는
괴테의 사랑이자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였다.
‘땅콩껍질 속의 戀歌’는 주어진 한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운명처럼 평행선을 그린 사랑의 아픔을 노래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껍질이 깨지고
살이 으깨지는 아픔을 감수하더라도 한 몸이 되어
완전한 사랑을 이루고 싶은 욕망이 애처롭다.
요즈음 이기적 사랑으로 시끄러운 세상에 던지는 시인의 계시다.
사랑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희생과 아픔이
뒤따라야 한다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시다.
이어 ‘오늘은’ 은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는 시다.
시인은 일상적인 삶을 곱게 다듬어 시적 언어로 재생해내야 한다.
그런 시라야 감칠맛이 있다.
이 시는 서부련 시인의 언어적 감각을 잘 보여준다.
전통적 풍물을 살려낸 소재의 선택도 좋지만
‘가난을 곱게 접어 시렁 위에 치워둔다’는 표현은 압권이다.
이 한 구절로 아내를 향한 시인의 마음과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의 삶은 충분하다.
서양인들은 아내나 남편을 베터 하프(Better Half)라 한다.
단순히 husband나 wife가 아니라 상대방을
나보다 낫다고 하는 명칭이 아름답지 않은가.
서부련 시인의 시어 선택이 심상치 않다.
아내에 대한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담아낸 최고의 예우인 것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의 바가지를 Korean Better Half라 한다.
지붕 위의 박을 따다 솥에 찐 후 톱으로 잘라 반쪽을 내면 바가지가 되는데
그것이 우리의 전통 바가지다.
그 바가지가 부부애의 상징이다.
물샐틈 없는 반쪽,
그 정확한 반쪽을 위해 시인은 더 아름다운 사랑을 다짐한다.
‘나이테’와 ‘걸인(乞人)’ ‘이정표 없는 꿈길에서는’은
시적 감정의 전개가 비슷하다.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과 같은 자기 심경의 고백으로
‘나이테’에서는 그루터기로 남은 이유를 설명한다.
오겠다는 약속이 없어도 언젠가는 오실 임을 위해
이정표로 남아 기다리며 길잡이와 휴식처가 되겠다는
결연한 사랑의 고백이다.
더불어 ‘걸인’은 요즈음의 시쳇말로 필이 꽂힌 대상에게 마음을 뺏겨
사랑에 빠진 상태를 노래했다.
나비효과와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당신의 말 한 마디,
그것은 내 삶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태풍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절대적 사랑의 경지에 빠진 사람에게만 해당한다.
그 대상은 무엇일까.
그것도 분명 사랑하는 임이 틀림없겠지만 각자의 처지에서 생각하면
그 대상은 가장 절실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정표 없는 꿈길에서는’ 꿈길이라는 가상의 길을 제시해 놓고
침향을 사르며 님이 오실 길을 닦는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가실 길에 꽃을 뿌리겠다는 상황과 비슷하면서도
모든 고독을 탑 속에 모아 별로 뜨게 하겠다는 발상이 이색적이다.
그런 중에 모든 시선을 내게로 집중한다.
내게로 오라는 갈구와 희원,
그것은 이정표 없는 꿈길에서나 가능한 일이겠기에 감동의 여운이 크다.
‘마지막 戀書’는 제목이 자극적이다.
마지막이라는 전제는 임과의 사랑이 비정상적일 때 쓰는 말이다.
옷깃 스치는 인연만으로 남을 것을 입술까지 스치는 인연으로 깊어진 것이
이별을 앞둔 마당에서는 오히려 아픔이다.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요.’라는 시구로 마음을 달래기에는 너무 아프다.
그래서 헤어지면 그 임도 종기 자국과 같은 상처에
마음이 아플 것이라며 아쉬워 한다.
아픈 마음을 꿰뚫는 것이 시심이요,
그 아픔을 초월하는 것이 시다.
괴테는 사랑의 체험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듯 서부련 시인도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것이기에 애잔하다.
그렇다고 우리는 ‘마지막 연서’가 사랑의 종말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픔을 딛고 더 고운 사랑으로 피어날 것이라 기대한다.
그것이 시심이요, 시를 읽는 기대감이다.
‘그대 가슴에’는 마지막 연서를 남기고 난 뒤에 쓴 시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시적 감흥이 깊다.
처음 만나서 사랑이 깊어갈 무렵에 나는 당신에게 꼭 필요한
빛, 바람, 물, 꽃, 둥지와 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늘의 별도 따주겠다는 것은 초기에 환심을 사기 위한 단계다.
그보다 더 깊은 사랑의 고백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제는 그런 것을 초월한 단계로서 더구나 이별을 앞둔 단계에
나는 당신에게 때를 따라 필요한 이러이러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는
아쉬움을 고백한 것이다.
다시 사랑을 회복하면 그런 사랑을 하리라는 다짐으로
사랑의 세레나데를 맺는다.
서부련 시인은 소녀적 감상으로 애련으로 물든 개인적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요구한다.
매슬로우가 주장한 욕구 단계설의 생리적이고 안전을 추구하는
기초적 욕구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의 사랑에 동기를 부여한다.
국가의 장래와 인류애를 나타내는 통이 큰 사랑으로 분출하는 것이다.
‘메트릭스의 우발적 변종으로서의 인간’은 과학발전으로 인한
인류의 내일을 걱정하는 시다.
‘불균형한 방정식의 나머지의 합집합’으로
인간을 뭉뚱그려 정의해버리고,
사랑과 감정보다 논리와 이성에 종속된 인간에게
사랑은 가장 근본적인 결함이라 절규하고
희망은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절망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아무리 인간이 기계처럼 논리적이고 로봇처럼 과학적이라 할지라도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기에 내일이 즐겁다는 인류애를 토로한다.
그것이 큰 사랑이다.
갈수록 과학화 되어가는 세상일지라도
인류의 멸망보다는 희망을 예견한다.
그것이 시인의 역할이자 이 시대를 선도하는 선구자적 사명이기에
서부련 시인의 목소리는 경쾌할 수밖에 없다.
‘여의도 횟집’과 ‘해돋이’는 참여문학적 성격이 짙다.
시인이라 해서 순수서정시인이 따로 있고 목적문학으로서
참여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이
시인이요, 소란한 사회를 향해 목탁을 두드리는 것이 시인의 목소리다.
‘여의도 횟집’과 ‘해돋이’가 바로 이 사회를 향한 시인의 울림이다.
특히 여의도 횟집은 언어의 유희를 이용하여 정치인을 나무란다.
‘억억거리는 정치’는 물신주의에 물들어 뇌물이 오가는 정치인을 풍자했고
‘헉헉거리는 궁민(窮民)’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국민(國民)을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여 멋진 해학을 자아낸다.
더구나 국회(國會)를 국회(國膾)로 풍자하여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횟집으로 바꿔버리는 재기(才氣)를 발휘했다.
요즈음 정치로 인해 실망한 사람들에게 한바탕 시원한 웃음을 선사하는
풍자의 극치다.
그러나 시인은 그렇게 혹평으로 사회를 참혹하게 하지는 않는다.
문제 해결은 못하더라고 해결의 대안은 제시하는 것이
또한 시인의 역할이다.
‘해돋이’가 바로 그 대안이다.
성군을 기다리는 백성의 심리, 그것은 나라에 대한 사랑이자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사랑이다.
성군이 나라를 다스려야 나라가 조용하고 백성이 편하기에,
임에 대한 무조건적인 기대를 피력한다.
어둠의 시대, 달이 지배하던 폭정의 시대는 가고
밝은 태양이 얼른 솟아나기를 기다리는 백성들은
손님 맞을 준비에 바쁘다.
그러면서도 성군에 대한 충언을 잊지 않는다.
어둠이 시대에 빛나던 달처럼 홀로 군림하지 말라는
따끔한 충언은 바로 성군에 대한 사랑이다.
서부련 시인은 시의 전개나 시어의 선택으로 보아
중년을 넘긴 분 같다.
지나간 날을 반추하며 삶을 있는 그대로
고백할 수 있을 만큼 사신 분 같다.
사회와 나라와 인류를 사랑하는 폭넓은 가슴으로
해학과 풍자를 담아 사랑시를 쓴 다는 것은
연륜이 깊은 사람이 맛깔스럽게 김치를 담는 이치와 같다.
자기감정에 취해 설명적으로 서술한 부분이 보이기도 하지만
사랑을 주제로 독자와 충분히 교감할 수 있는 시다.
전술한 바와 같이 모처럼 서부련 시인으로 인하여
모짜르트와 슈베르트의 세레나데가 있는 CD를 들으며
종합예술로서의 시의 기능과 괴테의 사랑을 생각해 보았다.
무디어진 내 사랑의 시심에 자극을 준 서부련 시인께
무궁한 발전과 문운이 있기를 기원한다.
****'가난을 곱게 접어 시렁 위에 치워둔다’ 서부련시인의 시를 대하면서 쓰고자하는
도전의 마음을 누를 수가 없다. 모름지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도전 받는 체험도
중요하다 여긴다. 신작로든 산길이든 걸어보고 느껴보는 것이 좋으리라.
시인은 많은 체험을 하는 것이 곡간에 가득 채워지는 재산이라 할 것이다.
해학과 풍자를 불러올 수 있는 능청스러움도 시를 더욱 맛깔스럽게 빚어내는 솜씨리라.
오늘은 봄을 캐러 들판이라도 나가 보아야 겠다. 아지랑이가 먼저 오기 전에......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