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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지 않고 반항적 언동을 일삼는 아이들로 초등학교 5곳 가운데 1곳(22.5%)이 학급 붕괴를 경험했다.'
일본에서 정규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 부모들이 만든 `도쿄슐레'를 찾은 지난 15일 <요미우리신문> 1면 머릿기사 제목이다. 도쿄 교육청의 공식조사 결과를 인용한 이 기사는 담임교사가 주의를 주면 반항적인 언동을 하는 학생이 학년이 높아질수록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이지만 일본의 아이들은 왜 교사의 말을 듣지 않고 심지어는 부모들한테도 반항을 하는 것일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를 가지 않았다는 다카하시 노카(20)양은 “학교를 가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교가 싫어지면 친구도 싫어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오빠 다카하시 즈바사(21)군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학교를 가지 않았다. “수영을 못하거나 얼굴에 상처가 있는 것만으로도 따돌림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따돌림당하는 학교가 싫은데 부모는 자꾸 학교를 가라고 강요만 했어요.” 다카하시 남매는 그 때부터 학교 밖에서 인생수업을 해야 했다.
마츠이 사야(19)양은 좀 다른 사례에 속한다. 고등학교까지는 정규학교를 다닌 그가 `도쿄슐레' 대학을 찾은 동기는 이렇다.
“고교 졸업장을 가지고 있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은 친구들과 다를 것이 없다. 졸업장 이 취직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장래에 대한 불안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공부를 해도 자신들의 미래에 그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아차린 것이다. 도쿄슐레 관계자는 이런 학교교육에 대한 아이들의 냉소가 더이상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그럴 듯한 해석을 내리고 있었다.
학교와 가족으로부터 도피한 이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려 하던 일본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 `우리 아이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등교 거부를 걱정하는 전국 네트워크'가 결성돼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 90년대 초반이라고 한다.
이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오쿠치 게이코씨는 “정보소비 사회로 가면서 많은 변화와 정보를 접하게 된 아이들은 점점 더 학교에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학교가 변하지 않고 있어 등교 거부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등교를 거부한 초·중학생은 97년 10만명을 넘어섰다.
`등교 거부를 생각하는 전국 네트워크'는 다음달 20일부터 21일까지 일본 시마네현에서
전국대회를 연다.
어린이와 어른들의 패널토론이 열리는 이번 대회에선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자란
하니미오(35·멀티미디어 프로듀서)씨가 `산다는 것은 단순히 재미있다'란
주제로 강연도 한다. - 한겨레/4/28/99 -
* 학교와 시장논리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교육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경쟁사회'에서 뒤처진 아이들이 상처받은 마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에서 교사와 학부모가 힘을 합쳐 경쟁의 논리를 추방하고 학교를 교육공동체로 만들자는 운동을 펼쳐온 사토 마나부(49) 도쿄대 교육학과 교수를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문화관광부 청소년정책자문위원장)가 최근 만나 집중인터뷰 했다. 편집자
조한=전지구적 자본주의화로 교육에서 경쟁의 논리가 강조되면서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교육개혁을 추진한다면서 시장경제 논리를 교육정책에 도입하려 하고 있는데, 일본에서의 경험은 어떠한가?
사토=일본은 냉전구조가 붕괴되고 나카소네 정부가 들어선 84년을 기점으로 `좀더 강한 개인'을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교육관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을 하향평준화하는 교육을 막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자는 것이다. 정부가 교육의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없으므로 민간에 권한을 상당부분 넘기자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의 공공성보다는 자립성·개별화·사립화를 추구하는 이런 정책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교과선택제 등 자유로운 선택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학교를 가지 않는 낙오된 학생들이 늘어났다.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면서 공동체정신이 파괴되고 학교로부터 도망가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축적된 자본을 가진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의 갈등이 생겨난 것도 문제다. 가정마다 자녀가 줄고 학교의 자본이 줄면서 학생을 확보하려는 학교간 경쟁이 생겨났다.
조한=그런 과정에서 낙오된 학생들은 어떤 사회문제를 일으켰는가?
사토=년부터 특히 중학교를 중심으로 집단괴롭힘(이지메)이 크게 늘어났다. 아이들의 신체적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압축성장에 따른 동아시아 교육의 문제점이 일본에서 제일 먼저 발생한 것이다. 교사를 때리는 학생이 생겨나고 아이들끼리의 폭력이 늘어났다. 이런 교내폭력은 가정에서 부모를 때리는 폭력으로까지 발전했다. 교내폭력이 가정내 폭력으로 발전하고 그 다음엔 이지메로 번져나갔다.
84년에 이지메가 절정을 이뤄 12만건이 보고됐다. 현재는 6만건으로 줄었지만 이지메로 생긴 등교기피 현상은 아직도 증가 추세에 있다. 학교에 안가는 초·중학생 수만 10만명이나 된다. 일본 고교의 실질적인 학생 중퇴율도 10%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일본내 전체 범죄의 절반 가량이 이런 청소년 폭력으로 채워지고 있다.
84년부터 신자유주의 교육이 학교에 침투하면서 교과선택제가 늘고 학급이 없어졌다. 선택과목이 많은 학교를 일본에서는 `쇼핑몰 고교'라고 부르는데 이런 학교일수록 학생들의 중퇴율이 높게 나타났다.
조한=낙오된 학생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급선무일 텐데 일본 문부성의 정책기조가 궁금하다.
사토=낙오된 학생들은 대부분 야간학교로 가거나 길거리를 떠돈다. 하지만 문부성은 2003년부터 필수과목도 선택과목화한다는 방침이다. 학교를 서비스기관으로 보고 시장경쟁 기능으로 통제하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학교들간의 살아남기 경쟁이 계속되면 도쿄시내 학교의 25% 가량이 문을 닫아야 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문부성은 초·중·고교 뿐 아니라 국립대학까지 민영화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차원의 규제완화로 교육재원 확보가 어렵고, 아이들에게 자율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본 학부모들의 낭만적 요구가 높다는 이유 때문이다.
전후 집중적으로 태어난 2천만명 가량의 `단카이(團塊) 세대' 학부모들은 대부분 6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여론은 아이들이 여유를 갖지 못할 만큼 공부에 지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자녀(단카이 주니어 세대)는 일본의 어느 세대보다도 공부를 적게 하고 있으며 `가치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에서 자율의 확대는 규제완화라는 정부정책과도 맞물려 있지만, 민영화 추세로 혜택을 보는 것은 교육산업에 기댄 기업들 뿐이다.
조한=학생들의 폭력화를 막으려면 오히려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사토=선택권을 준다 해서 질식상태에 빠져든 아이들의 느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입시로 서열화되어 있는 일본의 고교교육 체제다. 성적이나 학력 중심에서 내신 중심으로 평가방식을 바꿨지만 학교를 하향평준화하는 결과만 초래했다. 선택의 폭을 넓혀줘도 서열화된 학교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중학교가 가장 황폐화됐다. 입시가 있는 한 능력있는 아이들은 공립학교보다 여건이 좋은 사립학교로 진학하려 한다. 실제로 도쿄대 재학생은 대부분 사립학교 출신이다.
조한=문부성은 공립학교 육성을 위해 중·고교과정을 통합한 6년제 엘리트 공립학교를 만들기로 하고 법제화까지 마친 것으로 아는데.
사토=부모들이 원한다고 입시 전문 엘리트 공립학교를 만드는 것은 전쟁 전으로 돌아가자는 발상이다. 학교간 경쟁을 부추겨 입시연령이 더 낮아지고 심각한 부작용만 부를 것이다. 20~35살까지 여러가지 기회에 다양한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연령별로 고정되지 않은 사회여야 개인의 사회참여가 늘고 정보화사회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실업률도 낮출 수 있다.
조한=교육의 공공성이 무너지면 심각한 사태를 빚을 것이다.
사토=그렇다. 교육을 민영화하는 추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신자유주의자들은 학교의 슬림화를 얘기한다. 하지만 국가 중심의 공공성은 준다 해도 지역사회에서의 교육의 공공성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학부모와 지역사회 인사가 학교운영에 참여해 평생교육과 학교교육을 연합하는 길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문부성과는 달리 각 시·도교육위원회에서는 `풀뿌리운동' 방식인 지역사회 중심의 교육을 많이 채택하고 있다.
조한=시민사회운동 방식의 교육공동체가 건설되는 것은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의 대안교육은 어떤가?
사토=년대에 주목받은 일본의 대안교육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학교 밖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공립학교 안에서 대안교육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대안의 보편적 확산은 불가능하다. 공립학교가 바뀌어야만 교육이 바뀐다. 그리고 공립학교는 지역별 특성에 맞게 다양하게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지방일수록 교육재정이 취약한 게 문제다. 또 농촌의 학교와 도시의 학교가 같은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것도 문제다.
전교생이 600명 가량인 요코하마의 하마노코 초등학교는 학부모의 80% 가량이 교사와 힘을 합쳐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반농반어의 지역특성을 감안해 농·어촌의 생활내용을 교육과정으로 반영시킨다. 어떤 학부모는 보조교사로 수업을 돕고, 어떤 학부모는 도서관 운영이나 학교급식을 지도한다.
조한=한국에서는 학생수 100명 이하의 소규모학교를 통폐합하려고 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사토 = 일본에서도 70년대에 학교 통폐합을 많이 했다.
하지만 학교가 사라지면서 많은 주민들이 마을을 떠났다.
그래서 주민의 동의가 없으면 학교를 없애지 않는 것이 일본의 방침이다.
- 한겨레/99 -
* 교육의 파이프가 새고 있다
서울의 중·고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요즘 학교에서 비디오 보는 게 일과다.
「매트릭스」 「주유소 습격사건」,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철도원」까지
본다.
교실은 학습공간이 아니라 비디오상영관이 되어 있다.
선생님에 따라 자습실이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자습시간이라 하더라도 「자습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교장선생님이 「순찰」하시니, 야단스런 장난과 수다가 주춤할 때도 있지만 잠시뿐이다. 집중력 강한 아이도 집중할 도리없게 시끄럽다. 또 혼자 공부하는 티 내다가 「은따(은근히 따돌림 받는 아이)」가 될지 모른다.
반장 부반장 아이들은 대개 교실에 없다. 「똘똘하고 믿을 만한」 그 아이들은 교무실에서 선생님 혼자 처리하기에는 과중한 「잡무」를 돕는다. 반아이들이 제출한 봉사활동기록표의 시간을 확인해 평가서에 적는다. 특기·취미조사서 정리도 한다. 그래야 선생님이 「잡무」를 기일 안에 마칠 수 있다.
개학은 했지만 2월의 중·고 교실은 이렇게 「논다」. 기말고사가 끝난 12월초부터 겨울방학 전의 2주동안에도 그렇게 「놀았다」. 법정수업일수 220일 중 7분의 1인 30일 이상을 온 중·고교 아이들이 「낭비」중이다.
이제 이 노는 기간에 대해 교육당국자도, 교사도, 학부모도 정말로 심각하게 생각하고 해결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벌써 15년 이상이나 된 관행이다. 말이 안 된다. 국가적으로 보면 교육의 파이프가 새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흘려버리는 시간이 아깝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 가득 차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스펀지처럼 지식을 빨아들일 아이들이 시간 보내는 데 길들여져간다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담임을 맡지 않아 학년말 잡무가 없는 선생님들은 또 얼마나 괴롭겠는가. 철없는 아이들은 선생님들도 수업하지 않아 편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교사로서의 역할 상실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법정수업일수 때문이라고 한다. 12월초에 기말고사를 치르고 수업진도도 다 나갔지만 법정수업일수를 채우려면 이름뿐인 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작은 그랬을 것같다. 그러나 근본원인은 시험 외에는 가르치거나 배울 동기를 발견하지 못하는 교육시스템에 있었을 것같다. 교사를 나무라는 이들도 있다. 어쨌거나 교사들이 프로그램을 개발해 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교사들에게 일임하고 있지는 않다. 잘못된 수업상황을 방치해온 국가도 있는 것같지 않다. 미 교육부의 2000년 최우선과제에는 「교사들이 수업아이디어를 발견하도록 돕는 웹사이트 개발」(www.ed.gov/inits.html)이 들어 있고 영국에는 공립학교의 수업을 심사하는 기관(www.ofsted.gov.uk)이 있다.
교육부 학교정책과는 수업일수를 170일로 줄이기, 주5일 등교등 여러 방안을
검토중이라지만 하려면 시험 때문에 가르치고 배우는 시스템 파괴가 먼저다.
특히 교육부가 발상의 전환을 하고 내년부터라도 교사들이 응용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2/9/00-
* 선생님들이 일군 숲속학교 - '가락재'
“이건 무슨 꽃일까?”
삼태기를 허리에 낀 선생님이 질문을 던지자 호미를 손에 든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 동시를 목청높여 외운다. “자주꽃 피는 자주감자, 하얀꽃 피는 하얀감자~”
지난 13일 경기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 장락산 자락의 `가락재 숲속 나눔터'를 찾은 서울 서교초등학교 3학년1반 학생들은 내리쬐는 뙤약볕을 그렇게 이겨내고 있었다.
`가락재'는 전국교직원노조 서울초등지회 교사들이 4년 전부터 가꾸어온 숲속학교다. 큰 거실과 작은방 2개, 조리대와 화장실을 갖춘 25평 크기의 컨테이너 숙소는 30여명의 초등교사들이 주머니를 털어 모은 1500만원으로 지난해 봄 마련했다. 숙소 앞 개울을 건너면 200여평의 밭이 있고, 숲 안쪽엔 엽새우와 버들치가 사는 작고 맑은 계곡이 있다. 숲과 계곡의 작은 교실터는 이 마을 정광일(48) 목사가 무료로 제공했다.
초등지회 교사들은 4계절에 한번씩 돌아가며 학생들 손을 잡고 이곳을 찾아 감자와 콩·옥수수 등 10여가지 작물의 씨를 뿌리고 호미로 흙을 고르며 `생태교육'을 한다. 숲속학교인 `가락재'엔 전문지도강사나 참가비가 따로 없다. 그대신 이곳에 따라오려면 일기도 잘 써야 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학교생활을 해야 한다.
이날 체험학습엔 그렇게 뽑힌 `황금용'과 `바둑이' 두 모둠 학생 12명이 담임 김은미(39) 교사와 함께 참여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현호(10)는 들뜬 나머지 밭이랑을 뛰어다니다 김 교사의 꾸중을 들어야 했다.
“낮은 고랑으로 다녀야 해요. 예쁜 홍당무와 감자들이 숨을 못쉬면 불쌍하겠지요.” 김 교사의 설명처럼 밭고랑의 잡초를 뽑고 흙을 고르며 학생들은 생명의 소중함을 몸으로 배운다.
텃밭 건너 `가락재' 숲속 개울가는 월곡초등학교 3학년5반 학생 7명이 담임교사와 함께 `점령'했다. 근수(10)는 엽새우에 정신을 팔다 손바닥에 생채기가 나자 엄살을 부린다. 김두림(38) 교사는 밭에서 캔 쑥을 개서 상처에 붙여주며 어린 학생을 달랬다. “쑥을 대면 피가 곧 그친단다.” 선생님의 위로에 근수는 새로운 반창고를 발견했다며 신기한 표정이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뒤엉켜 `질경이 씨름'(질경이 풀을 엇대 줄기를 끊는 놀이)을 할 때쯤 숲속에서 초희(10)가 상기된 얼굴로 뛰쳐나오며 “네잎 클로버다”라고 외친다. 치훈이와 세희, 문성이는 숙소 뒤 풀속에서 메추리알보다 더 작은 산새알을 발견했다.
“어머! 알이 다섯개나 되네. 어미새가 슬퍼하지 않도록 제자리에 놔두렴.” 학생들의 어린 손에 잡힌 산새알을 보며 김 교사는 “아이들 눈이 참 맑다”고 말했다.
커다란 숲속은 말 그대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는 교실이 된다. 도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을 얻으며 학생들은 학교 구분없이 쉽게 친구가 된다.
“아이들은 흙을 만지며 커야 해요.
흙 속에서 자라는 생명을 발견하는 것도 소중한 교육이죠.”
김은미 교사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학생들만이 아니다.
`부모는 동행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참여한 상현이 엄마 신성애(37)씨는
“선생님들이 일궈낸 숲속학교가 믿기지 않는다”며 “기차를 타고 시골길을
걸으며 담임선생님과 친구처럼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 한겨레/4/28/99 -
* 교사들 활발한 교과모임 - 준비된 선생님들
준비된 수업은 학생들을 즐겁게 만든다. 하지만 교과서와 교사용지도서만으로는 즐거운 수업을 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교과모임'을 찾는다. 올해 2월 교육부가 전국의 유치원과 초·중·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과교육연구회' 계획서를 공모했을 때 5000여점이 넘게 접수된 것도 이런 열기와 무관하지 않다.
교사모임의 `원조'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김민하) 산하 전공별 단체모임이다. 지난 62년 만들어진 한국수학교육학회(회장 윤옥영·서울 금성초등학교 교장)에는 교수와 교사 등 1000여명이 가입해 각종 세미나와 워크숍을 열고 학술논문집도 발간하고 있다. 회원수 800여명의 한국국어교육연구회, 한국사회과교육연구회, 한국중등영어교육연구회 등 교과별로 10여개의 모임이 오랜 활동의 역사를 자랑한다.
한국교총은 교과별 모임 외에도 회원 1만5000명을 거느린 한국교육방송연구회(회장 유태영·이화여대 교수)를 비롯해 한국학교보건교육연구회, 한국학교도서관연구회 등 전공별 단체모임도 있다. 또 지난 97년부터 교사동아리 활성화에 나서 부산교원문학회, 우리동요사랑회, 학급경영연구회 등 10여개 모임을 지원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80년대 들어 젊은 교사들 중심으로 발전한 것이 국어·영어·체육 등 교과모임과 환경·통일·생활지도 등의 주제별 모임이다. 이들 모임의 교사들은 상당수가 전국교직원노조(위원장 이부영)의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국과학교사모임의 회장인 서만석(41·서울 광양고) 교사는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교과연구실을 찾았다. 5~6명의 교사와 함께 `통통 튀는 얌체공 플러버 만들기' 실험을 위해서다. 이런 연구결과물과 수업 경험은 <함께하는 과학>이란 교과연구지로 1년에 2차례 발표된다. 교과모임은 지역별 모임까지 생겨났다. 속초·고성·양양 과학교사모임은 올 봄 <과학수업 5분 전에 들려주는 136가지 이야기>란 교사용 교재를 펴내기도 했다.
회원수 4000명인 전국국어교사모임(대표 김주환·서울 장위중 교사)의 <함께 여는 국어교육>을 비롯해 전국미술교사모임의 <신나는 미술시간> 등 교과연구지는 교과별로 12가지나 된다. 이들은 교과별 인터넷사이트도 갖고 있다. `서울초등환경교육연구회'는 `환경을 생각하는 전국교사모임'에 속한 13개 지역모임 가운데 하나다.
환경교사모임은 계간지 <녹색교육>을 펴낼 뿐 아니라 지난 5일 환경의 날엔
`동강살리기 1만 교사 서명운동'을 벌여 만만치 않은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황석연 기자
- 한겨레/4/28/99 -
* 초등환경교육연구회 '흙바람'
“우리는 잘 가르치고 싶다. 교육환경 개선하라.”
서울시 신당동 전국교직원노조 서울초등지회 사무실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이 글귀를, 서울초등환경교육연구회 `흙바람' 회장인 서교초등학교 김은미 교사는 사무실을 찾을 때마다 가슴에 담는다. 지난 94년 모임이 처음 만들어질 때만 해도 뜻맞는 교사들의 여행동아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잘 가르쳐보고 싶다는 열망이 교사들을 바꿔놓았다.
지난 10일 오후 7시께 사무실에 모인 회원들은 모두 6명. 책상 위에 밤게, 칠게, 갯우렁이 등 8종의 갯벌생물을 올려놓고 토론을 시작했다. 20일 강화도 갯벌로 떠난 `어린이 자연학교' 준비작업이었다. 지난달 16일 북한산 우이천에서 물속생물을 관찰한 것을 시작으로 10월까지 한달에 한번씩 열기로 한 `어린이 자연학교'는 올 여름 경기 가평의 `가락재'에서 여름캠프를 열 예정이다. 당중초등학교 이혜련(31) 교사는 아이들을 위한 자료집 준비를 맡았고, 수업준비는 신상계초등학교 이성숙(34) 교사가 책임지기로 했다.
“자연에 대한 바른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게 하자는 목표 아래 교실밖 자연학교를 기획하게 됐지요.” 연구회의 맏형인 수색초등학교 정기훈(45) 교사의 말이다.
“잘 가르치려고 마음먹으면서 갈등이 생겨났어요. 틀에 갇힌 학교에서 혼자 풀 수 없는 것들이었죠.” 다섯살배기 아들 동영이를 데리고 연구회에 나온 대림초등학교 김재숙(34) 교사는 이런 교사들의 자발적인 모임이 활성화될수록 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 아니냐”며 환하게 웃었다.
`흙바람' 회원교사들은 요즘 지난 5년간의 환경기행 결과를 모아 <숲속활동 자료집>을
곧 펴낸다는 즐거움에 잔뜩 부풀어 있다. - 한겨레 -
* 학교의 수행평가제
`수행평가' 그게 뭐지?
올해부터 전국의 거의 모든 학교에 처음 도입된 수행평가제도를 두고 교사들은 대뜸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학부모와 학생들도 불만스런 표정이다. 교실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평가의 대상이고 내신성적에 영향을 주게 된 때문이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지난 10일 오전 서울 불암중학교 3학년14반 교실. 선생님이 작은 종을 흔들자 `시장바닥' 같던 교실이 찬물을 끼얹은 듯 이내 조용해진다. 종소리는 옆사람과 `토론'을 마치고 선생님에게 주목해 달라는 교사와 학생의 약속이다. 학생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를 필요도 없다.
“학생이 40명이나 되는 교실에서 토론수업을 하려면 아이들을 다잡는 요령이 필요했어요.”
이미숙(40·도덕) 교사는 지난해부터 `작은 종'을 이렇게 토론수업에 활용한다. 이 교사를 도와주는 것은 `작은 종'만이 아니다. 이 교사의 교무실 책상엔 2개의 고무도장이 있다. 하나는 `한마음' 도장이고, 또하는 `최고야' 도장이다.
이 교사는 이 도장을 기분내키는 대로 막 찍어주는 것은 아니다. 한 학급을 10개조를 짠 뒤 발표를 잘하거나 교육활동이 충실한 학생들을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학생들의 동의를 얻어 칠판 옆에 조별로 `바를 정'(正)자 방식으로 표시를 해준다. 또 조별활동을 잘하면 `한마음' 도장을, 개인활동을 잘하면 `최고야' 도장을 `바를 정'자 수만큼 학생들의 공책에 찍어준다. 물론 도장의 갯수는 학기말에 `수행평가' 점수로 반영한다.
학생들의 공책은 수업중에 토론한 내용과 자신의 생각들로 가득하다. 숙제를 해오거나 칠판에 적힌 내용을 받아쓸 필요도 없다. 학생들의 공책은 말 그대로 `시험지'가 된다.
서울 당곡고등학교 강우희(34·사회) 교사는 학기마다 첫시간 수업을 한 학기 길라잡이(오리엔테이션) 시간으로 사용한다. 한 학기동안 배울 내용과 준비물, 평가방식과 조별 보고서 제출요령 등을 가르치는 것이다. 강 교사의 이런 수업은 벌써 4년째 계속되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6차 교육과정 교과서를 보고 수업방법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시간은 이론수업을 하고 1시간은 과제에 따른 탐구수업을 해야 했거든요.”
강 교사는 수업방식을 바꾸기 위해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고 한다. 교과서를 주된 참고도서로 삼고, 수업내용을 재구성해 매시간마다 유인물을 만들어 나눠줬다. 공책에 붙여진 유인물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은 토론을 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보고서를 만들어 교사에게 제출한다. 이렇게 제출된 공책과 보고서는 매학기마다 총점(100점)의 10%까지 수행평가 점수로 반영된다.
수행평가를 시도하면서 과목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장점으로 꼽힌다. `실험학습'의 도입이 대표적인 예다. 서울 대림여중의 남호영(37·수학) 교사는 지난달 `함수관계'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보고서 양식'을 나눠주었다. 학생들은 보고서 양식에 따라 교실 밖에서 수학적인 실험을 한다. 주제에 따라 스스로 실험방식을 정하고 역할을 나눠 실험결과를 그래프로 그려내는 것이다.
대림여중 2학년 권소라양이 속한 조는 `종이태우기'를 선택했다. 종이의 질량에 따라 종이가 타는 시간이 달라지는 것을 그래프로 그리고, 실험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첨부했다. 어떤 학생들은 재질이 다른 옷감을 다리미로 태우며 그래프를 그렸고, 또다른 학생들은 페트병에 구멍을 내고 물이 흘러나오는 시간을 잰 뒤 그래프로 그렸다.
국어시간에나 가끔 하던 토론수업이 도덕이나 사회교과에 응용되고, 과학시간에나 하던 실험이 수학시간에 응용되면서 아이들은 살아있는 지식을 체험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점도 많이 드러났다. 불암중학교 한 학생은 선생님에게 이런 편지를 띄웠다. “수업시간의 활동 하나하나가 점수에 반영되면서 수업시간마다 너무 긴장이 돼요. 심지어 인간적인 비애를 느끼기도 합니다.”
학생들의 스트레스는 긴장감 뿐이 아니다. 학사일정이 정해져 있다보니 과목별로 보고서 제출기한이 겹쳐 감당하기 힘들다는 하소연도 생겨난다. 교사들의 부담이 늘어난 것도 문제다. 주당 20시간 안팎의 수업에 담임업무와 행정업무를 처리하다보니 수업에 필요한 자료제작과 수업 뒤 평가를 위해 집에까지 가서 일을 해야 하는 때가 많은 것이다.
“열린 수업을 하려면 수행평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수행평가를 하라고 강요하기엔 현재의 업무가 너무나 많습니다.”
교사의 `자율재량'이 중요하다는 게 이미숙 교사의 생각이다. - 한겨레 -
- 수행평가, 수업방식 발상전환부터
수행평가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따라서 수행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수업방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관심있는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우선 `수업 및 평가계획서'를 만드는 게 기본이다. 만들어진 계획서는 학생들에게 미리 나눠주고 평가기준을 밝힌다. 불암중 이미숙 교사는 1년동안의 도덕과목 64시간을 분기별로 4등분해 계획서를 짠다. 교과서에 담긴 이론내용은 1분기 16시간중 4시간만에 끝낸다. `스피드 퀴즈' 형태로 질문지를 만들어 나눠주고 학생들이 교과서 내용을 정리하게 한다. 나머지 12시간은 이 교사가 만든 보조자료로 다양한 학습방식을 활용한다.
교육청에서 내려온 `체벌금지' 공문을 보여주고 `벌점카드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토론에 붙여본다. 지난 10일 수업 땐 <한겨레>의 `박시백 그림세상'을 실물화상기로 보여주고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토론수업을 했다. 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녹화해 두었다가 6~7분짜리 수업교재로 다시 편집하기도 한다.
강우희 교사(당곡고)는 1주일에 한번꼴로 `전국사회교사모임'에 나가 교과연구를 하고 수업자료를 만든다. 교사모임에서 나온 <민주사회와 교육>은 좋은 지도서가 된다. 청소년 문화강좌나 교사들을 위한 교양강좌에서 얻은 보조자료들을 파일로 보관해 두었다가 토론수업에 활용한다.
“교실 밖 세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을 자료로 활용하지 않으면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특성입니다.” 강 교사는 토론할 줄 모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토론수업을 하려면 그만큼 교사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사모임을 통해 수업문항과 평가문항을 공동개발하기는 대림여중 남호영 교사도 마찬가지다. 그는 수학교사 모임인 `수학사랑회'에 나가 축적된 자료를 책으로 펴내는 일을 맡고 있다.
준비된 수업에서 준비된 수행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들 교사의 한결같은 견해다,
하지만 이런 준비과정을 교사 개인에게만 맡기는 것은 무리이며, 교육부와
교육청 등 교육행정·연구기관이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를 모아 교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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