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규범의 비판을 넘어선 ‘못 찍기’의 사진미학적 의도와 경향
검색·검토 결과, 의도적 ‘못 찍기’는 단순히 기존의 잘 찍는 규범을 폭로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진의 선명성과 완성된 구도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시간, 운동, 감각, 기억, 상실, 친밀성, 우연, 매체의 물질성 등을 만들어내기 위한 적극적인 형식으로 사용되어 왔다.
중요한 구분은 다음과 같다.
규범 비판적 못 찍기가 “왜 이것만 잘 찍은 사진이라고 하는가”를 묻는다면, 생산적 못 찍기는 “흐림과 실패를 통해서만 나타나는 경험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1] 눈에 보이는 외형보다 심리와 정신을 표현하려는 경향
의도적 불선명성은 사진 초창기부터 나타났다. 줄리아 마거릿 캐머런(Julia Margaret Cameron)은 초점을 완벽하게 맞추지 않고, 인물을 매우 가까이 촬영하며, 얼룩·긁힘·손자국 같은 제작 흔적도 남겼다. 당대 사진가들은 이를 기술적 미숙함으로 비판했지만, 캐머런에게 부드러운 초점은 인물의 외모를 정확히 기록하기 위한 실패가 아니라 내면과 정신적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따라서 여기서 못 찍기는 사진 규칙에 대한 비판보다 외형적 정확성을 희생하여 정서적·정신적 진실을 얻으려는 표현주의적 선택에 가깝다. V&A는 캐머런의 흐린 초점과 공정 흔적이 의도적인 실험이었다고 설명한다.
[2] 정지된 순간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려는 경향
안톤 줄리오 브라갈리아(Anton Giulio Bragaglia)와 아르투로 브라갈리아(Arturo Bragaglia)의 미래주의 사진에서는 흔들림이 시간과 운동을 표현하는 핵심 형식이었다.
일반적인 사진은 빠른 셔터로 움직임을 멈추고 하나의 선명한 순간을 만든다. 그러나 브라갈리아 형제는 장시간 노출과 운동 흔적을 이용하여 몸이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이동하는 과정을 한 장 안에 겹쳐 놓았다. 이는 ‘찰나의 포착’이 아니라 지속되는 시간과 운동의 궤적을 보여주려는 사진이었다. MoMA는 이들이 단일 순간 안에 시간의 경과를 전달하기 위해 포토다이내미즘을 고안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흔들림은 실패가 아니다. 선명한 사진이 지워버리는 ‘움직이는 동안의 시간’을 되찾는 방법이다.
[3] 촬영자의 신체적 경험을 사진에 남기려는 경향
흔들리고 기울어지고 잘린 사진은 촬영자의 몸이 움직였다는 흔적을 보존한다. 카메라가 안정된 관찰 장치가 아니라 걷고, 뛰고, 부딪치고, 놀라고, 반응하는 신체와 결합되는 것이다.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다이도 모리야마(Daidō Moriyama) 등의 불안정한 화면은 단지 구도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도시를 차분하게 관찰한 결과라기보다 사진가가 도시 속에서 겪은 속도, 혼란, 긴장, 피로와 충돌의 흔적이다.
특히 일본의 《프로보크(Provoke)》 계열은 거친 입자·흔들림·초점 이탈을 뜻하는 ‘아레·부레·보케(are, bure, boke)’를 통해 전후 일본의 급격한 사회 변화와 도시적 불안을 감각적인 사진 언어로 만들었다. SFMOMA는 이 형식이 전후 일본의 사회·정치적 격변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시각언어였다고 설명한다.
이 경우 못 찍기는 현실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언어라기보다 현실과 부딪칠 때 몸이 받은 충격을 전달하는 언어이다.
[4] 친밀한 관계의 내부에 머물기 위한 스냅사진 경향
낸 골딘(Nan Goldin)의 사진에서 직접 플래시, 거친 색, 어색한 절단과 불균형한 구도는 단순한 기술적 결함이 아니다. 사진가가 객관적인 외부 관찰자가 아니라 촬영 대상과 함께 살아가는 관계의 내부자였음을 보여준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정돈할 수 없고, 사건이 진행되는 중이기 때문에 완벽한 순간을 기다릴 수도 없다. 이러한 사진은 객관적이고 완결된 기록보다 사랑, 성, 중독, 폭력, 우정, 상실이 뒤섞인 관계의 불안정성을 보존한다.
골딘의 스냅사진 형식은 사진을 “타인을 잘 포착한 이미지”에서 서로의 삶에 참여하면서 남긴 사적 일기와 공동체의 기억으로 바꾸었다. MoMA는 골딘의 사진을 일기의 페이지에 비유하며 일상적 관계의 친밀성과 폭력, 상실을 함께 기록한다고 설명한다. 프린스턴대학 미술관 역시 《성적 의존의 발라드》를 개별적인 결정적 순간이 아니라 인물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파편적 서사로 해석한다. Princeton University Art Museum
[5] 기억·상실·부재를 표현하려는 경향
기억은 선명한 사진처럼 모든 세부를 동일하게 보존하지 않는다.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변형되며, 감정과 결합하여 불완전하게 되돌아온다.
빌 제이컵슨(Bill Jacobson)은 초점이 맞지 않는 인물사진을 통해 에이즈 시대의 죽음과 상실을 다루었다. 그의 흐릿한 인물은 나타나는 동시에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기억이 흐리다”는 상투적 비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죽은 사람을 보존할 수 있으면서도 그 사람 자체를 되돌려줄 수는 없다는 모순을 드러낸다.
미시간대학교 미술관은 그의 흐릿한 형상을 출현과 소멸, 죽음과 상실, 사진의 기억 능력에 관한 작업으로 설명한다. University of Michigan Museum of Art
따라서 초점 이탈은 기억을 장식하는 분위기 효과가 아니라 붙잡으려 할수록 사라지는 존재의 상태를 만드는 형식이 된다.
[6] 인간의 실제 지각방식을 탐구하려는 경향
우리는 현실의 모든 부분을 동시에 선명하게 보지 않는다. 한곳에 주의를 기울이면 주변은 흐릿해지고, 시선은 계속 이동하며, 눈앞의 사물보다 주변부의 빛이나 공간을 먼저 감지하기도 한다.
우타 바르트(Uta Barth)는 일부러 빈 공간에 초점을 맞추거나 배경을 흐리게 하여 무엇을 찍었는지 분명하지 않은 사진을 제작하였다. 여기에서 초점 실패는 기억이나 감정의 은유라기보다 인간이 어떻게 보고 무엇을 놓치는지를 연구하는 지각 실험이다.
대상이 무엇인지 찾으려는 관객은 곧 자신의 시선이 항상 뚜렷한 사물과 중심 대상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나 작품의 핵심은 그 요구를 비판하는 데만 있지 않다.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주변시, 빛의 변화, 초점 바깥의 공간을 경험하게 하는 데 있다. Getty Museum은 바르트의 흐릿한 사진이 비어 있는 공간과 주변 지각을 탐구한다고 설명한다.
[7] 고정된 정체성 대신 출현과 소멸을 표현하려는 경향
프란체스카 우드먼(Francesca Woodman)은 장시간 노출과 신체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자신의 몸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몸은 벽지나 가구에 스며들고, 나타나는 동시에 사라지며, 분명한 윤곽을 유지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독특한 자화상을 만들기 위한 효과가 아니다. 사진 속 인물이 하나의 고정된 얼굴과 정체성으로 확정되는 것을 피하고, 몸을 공간·시간·욕망이 교차하는 불안정한 존재로 만든다. SFMOMA는 우드먼의 신체가 흐려지거나 공간에 둘러싸이며 출현과 소멸 사이를 이동한다고 설명한다.
이때 못 찍기는 대상을 정확히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인간은 하나의 선명한 정체성으로 완전히 규정될 수 없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8] 개별 사진의 아름다움보다 개념·과정·체계를 앞세우려는 경향
개념미술에서는 한 장 한 장을 잘 찍는 일이 작업의 중심이 아닐 수 있다. 에드 루샤(Ed Ruscha)의 《스물여섯 개의 주유소(Twentysix Gasoline Stations)》는 주유소를 무심하고 평범한 스냅사진처럼 촬영하여 책으로 배열하였다.
사진 한 장만 보면 특별한 구도나 결정적 순간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정한 경로를 따라 대상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책이라는 체계로 조직하는 발상이다.
MoMA는 루샤의 사진을 차갑고 비숙련적으로 보이는 ‘탈숙련(de-skilled)’ 방식과 ‘무관심의 미학’으로 설명한다. 사진은 개별적인 명작이 아니라 개념적 작업을 수행하는 자료가 된다. MoMA, Photography at MoMA
여기서 못 찍기는 사진을 망치는 행위가 아니라 촬영 능력보다 선택·반복·순서·분류·개념을 작품의 중심으로 이동시키는 전략이다.
[9] 우연과 물질이 작품을 만들도록 허용하려는 경향
일반적인 사진 제작에서는 먼지, 긁힘, 빛샘, 현상 얼룩, 색의 변질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실험사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작가가 완전히 통제하지 않고 감광재료·빛·화학약품·인화 과정이 스스로 이미지를 발생시키도록 허용한다.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의 카메라 없는 추상사진처럼 사진은 외부 대상을 재현하는 창이 아니라 빛과 감광물질이 직접 만나는 물질적 사건이 된다. MoMA는 틸만스가 카메라 없는 추상 이미지부터 일상의 스냅사진까지 사진 제작의 여러 가능성을 실험했다고 설명한다.
이 경우 오류는 규범을 비판하기 위한 부정적인 기호라기보다 작가·장치·재료·우연이 공동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생성 원리이다.
[10] 디지털 이미지의 이동과 변형을 보여주려는 경향
동시대의 ‘못 찍기’는 촬영 순간의 실패를 넘어 저해상도, 압축, 픽셀화, 복사 오류와 같은 디지털 이미지의 열화로 확장되었다.
토마스 루프(Thomas Ruff)는 인터넷에서 얻은 낮은 해상도의 JPEG 이미지를 크게 확대하여 픽셀과 압축 흔적을 드러냈다. 여기에서 낮은 화질은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전쟁·재난 이미지가 인터넷을 통해 저장되고 전달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MoMA는 루프가 저해상도 JPEG를 거대한 크기로 인화하여 픽셀 구조를 노출했다고 설명한다.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의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 역시 중요하다. 빈곤한 이미지는 복제·다운로드·압축·재편집을 거치면서 화질은 낮아지지만 더 빠르고 넓게 이동한다. 따라서 이미지의 가치는 원본의 선명도나 희소성보다 접근성, 공유, 변형, 정치적 유통에서 발생할 수 있다. 슈타이얼의 「빈곤한 이미지를 옹호하며」
이는 못 찍기의 의미를 촬영의 실패에서 이미지의 이동 경로와 사회적 생애에 대한 탐구로 확장한다.
[11] 결론
의도적 못 찍기는 하나의 통일된 사조가 아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작가가 비슷한 기술적 결함을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 여러 경향의 묶음이다.
기존 규범의 폭로와 비판을 제외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사진미학적 의도가 분명하게 존재하였다.
① 외형보다 내면과 정서를 표현하기
② 정지된 순간이 아니라 시간과 운동을 나타내기
③ 촬영자의 신체적 경험과 충격을 남기기
④ 관계 내부의 친밀성과 불완전성을 보존하기
⑤ 기억·상실·부재를 가시화하기
⑥ 인간 지각의 한계와 주변시를 탐구하기
⑦ 고정되지 않는 신체와 정체성을 표현하기
⑧ 개별 사진보다 개념·과정·배열을 중시하기
⑨ 재료·장치·우연의 생성력을 받아들이기
⑩ 디지털 이미지의 복제·열화·유통을 드러내기
따라서 의도적 못 찍기의 적극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못 찍기는 잘 찍기의 반대만이 아니다. 잘 찍은 사진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시간, 감각, 관계, 기억, 부재와 이미지의 이동을 발생시키는 또 하나의 사진적 언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