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중국에서 싸이의 10 년 전 노래 <아버지>가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에선 크게 인기를 얻지 못했던 노래입니다. 성인이 된 아들이 아버지에게 건네는 이해와 위로의 곡입니다. 가사를 살펴보면
“yo~ 너무 앞만 보며 살아 오셨네 / 어느새 자식들 머리 커서 말도 안 듣네 / 한 평생 처자식 밥그릇에 청춘 걸고... 위에서 짓눌러도 티낼 수 없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와도 피 할 수 없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더 이상 쓸쓸해하지 마요/ 이제 나와 같이 가요/ 당신을 따라 갈래요 “
같은 유교 권 국가인 중국에서 산업화의 선봉에서 앞만 보고 달려가다 노년을 맞이한 아버지들의 모습이 우리와 유사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반항적이고 악동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싸이도 나이가 들고 자기도 아버지가 되어 보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어 이런 노래를 부른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11살 초등학생이 쓴 시를 보면 깜짝 놀라게됩니다. ‘학원가기 싫은 날’ 이라는 시의 가시입니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이 시집이 논란이 되자 출판사가 전량 폐기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시가 나온 것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 교실의 급훈은 ”엄마가 보고 있다“ 입니다. 어느새 엄마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헌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긴장과 스트레스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아이들을 쉴 틈 없이 학원으로 내모는 현실이 이런 잔혹한 동시를 만든 것입니다.
어느 문화권에서나 부모 공경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며 그 마음을 무시하고 반대의 길을 가면 인간으로서 잘못된 것이며 성공할 수도 없다고 가르칩니다. 부모 공경(즉 효)이란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사회와 가정이 유지됩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부모 섬길 줄 모르는 사람은 인간의 첫 걸음을 벗어났다” 고 했고,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은 “내게 오늘이 있는 것은 천사와 같은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링컨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계모가 키워주었으니까 기자들이 묻습니다. “어느 어머니를 말하는 것인가?” 링컨은 대답합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이지 낳아준 어머니와 키워준 어머니를 굳이 구별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처럼 부모 공경, 효도는 기독교, 유교, 학교의 가르침에서 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본문에서 말하는 효도는 다릅니다. “주 안에서”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바라 볼 때 주 안에서 보면, 부모님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시대가 악해져서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화도 없고 연락도 거의 안 하고, 만나도 마음으로 원망 불만 상처가 가득해 불편합니다. 어느 방송국에서 여론 조사를 해 보니 결혼하여 따로 사는 자녀들이 부모님께 평균 일주일에 한 번 전화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난다고 합니다. 바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나도 할 말도 없고 불편하고 어색해서, 차라리 필요한 데 쓰시라고 계좌이체 해드리고, 해외여행 보내 드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불편하게 된 이유는 상당부분 부모님께 있습니다. 어릴 때 성장과정에서 부모가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니 내가 효도 못하는 이유가 부모가 좋은 부모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은 전적인 오해입니다. 좋은 부모에게는 누구나 효도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재산문제 권을 놓고 더 대립이 심각하고 법정 투쟁까지 갑니다. 효자의 부모는 다 좋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효자가 부모를 바라보는 눈이 다를 뿐입니다. 좋은 점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불효는 부모가 원인이 아니라 우리의 죄성 때문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부모라 할지라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는 힘은 “주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내가 주안에 있으면 부모님께 순종하게 됩니다. 순종하는 것은 부모가 바로 섰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가 바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며 부모가 변화하기만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모가 바로 섰던 아니던 우리는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부모가 바로서지 못한 책임은 하나님께서 나중에 부모에게 물으십니다.
예수를 믿지만 주 안에서 아직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영적으로 침체되고 기쁨이나 열정, 자신감이 상실된 상태에서는 부모님과의 관계 또한 좋을 수가 없습니다. 구약성서의 룻을 봅시다! 그는 모압 여인이었으나 약하고 늙은 시어머니를 잘 섬겨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그렇게 좋은 시어머니였을까요? 룻이 나오미의 좋은 점만을 본 것입니다.
레슬리 필즈가 쓴 “부모 용서하기” 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의 집은 가난한데,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나마 있는 재신을 다 갖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러니 남은 사람들의 삶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가득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사는데, 어느 날 우체통에서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발견합니다. 편지의 내용은 아버지가 예수를 믿고 거듭났으며 자기를 만나기 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읽고 고민합니다. 그렇게 몇 십 년 동안 아무 연락도 없다가 이제 와서?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용서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두고 사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입니다. 이 세상사는 동안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고 나아가서 부모와의 관계가 바로 되여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날 하루 만이라도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 부모님 마음을 헤아려 보라고 어버이날, 어버이 주일이 있는 게 아닐까요?
끝으로 송강 정철의 시조를 인용하겠습니다.
어버이 사라신제 섬기기를 다하여라/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하리/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정채봉 “어머니의 휴가”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만
그래, 단 5분만 온대도/난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엄마와 눈 맞춤하고/젖가슴 만지고
그리고 단 한 번만이라도/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딱 한 가지/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가 우리자신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었는지 부모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었는지. 우리는 매일 달라고만 하지 감사하다고 표현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자녀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모와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