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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스크랩 2008 안나푸르나 생추어리 트레킹 - 카트만두 주변
박종율 추천 0 조회 147 10.08.29 23:4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08 안나푸르나 ABC/Poon Hill 트레킹 - 카트만두 주변

 

 

< 일정 개요 > 

 

2008년 1월 15일(화)

05:30   포카라 짱 출발

06:00   사랑코트 토착

07:00   사랑코트 출발

07:30   포카라 짱 도착

13:10   포카라 출발(비행기 캔슬로 버스 임대)

18:40   카트만두 도착

19:00   바비큐 파티

 

2008년 1월 16일(수)

08:30   시내관광 출발(스와얌부나트, 파슈파티나트, 보우더나트)

13:00   타멜. 점심식사

14:30   쇼핑 및 자유시간

18:00   옥류관(공연, 만두, 냉면 등)

 

2008년 1월 17일(목)

08:30   파탄 관광 및 출국 준비

13:30   입국수속

17:00   카트만두 출발(KE696)

01:25   인천공항 도착 (+1)

 

 

< 운행개요 >

 

이른 아침 포카라 최고의 View Point인 사랑코트에 올랐으나, 짙은 안개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포카라에 내려와 공항에 연락하여 오늘의 비행계획을 알아보았다. 오늘은 전면 취소될 예정이란다.

일단 12시까지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날씨가 좋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버스를 이용하여 카트만두로 가기로 하고, 여행사에 임대버스를 급하게 수배하였다.

오후 1시 10분 포카라 출발. 저녁 6시 40분 카트만두 도착. 5시간 30분 만에 주파!

결과적으로 ABC에서의 1박을 포기하고 하루의 일정을 단축한 것이 전체적인 일정에 도움이 되었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1월 15일)

 

포카라 사랑코트에서 - 안나푸르나 파노라마 2005. 02. 촬영

이번 여행 중 사랑코트에서는 날씨가 좋지않아 안나푸르나의 파노라마를 보지 못했습니다.

 

포카라 페와호수의 보트들.

 

포카라 폐와호수 주변의 나무와 쉼터 

 

거리를 활보하는 우공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하여, 급하게 임대한 버스로 카트만두로 향하였다. 5시간 30분 만에 주파 !

 

나무잎 속의 도마뱀 

 

카트만두에서 67km 떨어진 말레쿠(Malekhu)에서 잠시 휴식 

 

말레쿠(Malekhu)의 노천시장

 

말레쿠의 노천 야채시장 

 

네팔 짱에서 준비한 통돼지 바비큐 

 

카트만두 안나푸르나 호텔 앞에 새롭게 문을 연 옥류관 

 

옥류관의 스?이 서빙하고 있다. 메뉴는 만두와 냉면, 전골 등이 있는데 가격은 약간 비싼 편이다.

 

공연시간도 있으나 현지의 전력사정이 원활하지 못하여 정전이 잦아 매끄러운 진행이 되지 못하였다. 

 

 

 

카트만두 관광(1월 16일) - 카트만두 덜발스퀘어, 스와얌부나트. 파슈파티나트, 보우더나트, 파탄

 

카트만두 개요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산맥의 아래에 있는 네팔은 문화와 언어가 다른 30여 종족이 되는 여러 인종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로써, 2,500만명 가까운 인구가 산속 곳곳에 발달한 마을에 고루 흩어져 살고 있다. 민족구성을 보면 크게는 남부의 인도 아리안 계통과 북부의 티베트, 버마 계통으로 나눌 수 있다. 카트만두 분지를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네왈리족, 그 주변의 타망족, 에베레스트 산지의 유명한 셀파족이 있는가 하면, 그 동쪽으로는 몽고계통의 부족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중서부에는 마가르족, 포카라 주변에 구룽족, 테라이 지방에 인도계 타루족 등이 분포되어 있다. 종교적인 대립보다는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특히 네팔은 불교 석가모니의 탄생지여서 2,000년 전의 불교문화는 물론 현재 세계유일의 힌두왕국으로서 힌두교와 관련있는 오래된 유적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해발 1,400m의 Kathmandu Valley에 자리를 잡고 있는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는 칸티푸르(Kantipur)라는 옛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약 180만명의 사람들이 중세와 현세,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 전 세계 히피들의 마지막 종착지라 일컬어지는 이 도시에는 중세도시와 힌두교, 불교의 성지인 파탄, 박타풀, 스와얌부너트, 파슈파티너트, 보우드너트 등과 전 세계 여행자 들의 만남의 장소인 타멜 거리가 함께 어우러져있다. 카트만두 계곡은 풍요로운 평지로서 고도 1,200~1,500m 사이이며, 이 계곡은 570km2의 작은 면적이다. 그러나 크기는 작아도 여기에는 카트만두, 파탄, 박타풀의 세 왕궁 등 유네스코가 지정한 7개의 세계문화유산(World Heritage)이 있다. 단일면적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카트만두는, 아니 네팔은 신의 나라이다. 인도처럼 카스트가 존재하고, 힌두의 신들에게 기도를 함으로써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곳곳에 힌두사원이 있고 스투파가 있으며 사당이 있다. 신의 범주를 떠난 일상생활은 생각할 수 조차도 없다고 한다. 특히 카트만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원이 있는 도시로 유명하다. 비록 짙은 매연으로 인해 쾌적한 도시라고는 할 수 없어도, 카트만두는 살아있는 여신의 불가사의와 볼거리로 가득한 신비한 도시임에는 분명하다.

 

카트만두 시내 및 주변 지도

 

카트만두 시내 및 주변의 관광지


더르바르 광장 Durbar Square과 그 주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Kathmandu Valley의 세 왕궁의 광장 중 하나로서 시내 중심에 있는 옛날 카트만두의 왕궁이다. 광장에 있는 건축물들과 석상들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네팔의 옛 장인들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19세기까지 네팔왕족이 거주하였고, 네팔 군주의 대관식과 같은 국가의 주요 행사가 행하여졌던 하누만도카 옛왕궁 단지(Hanuman Dhoka Palace Complex)이다. 지금도 여기서는 국가의 주요행사가 이루어진다. 2만 평방미터의 왕궁단지는 두 개의 주요 초크(Chowk : 광장)나 내원(內院)으로 나눠지며 우아한 탑 등이 있다. 16세기에 건설을 시작했으나, 나머지 건물은 18세기의 샤(Shah) 왕조와 19세기 라마의 통치자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 왕궁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나무창과 창틀로 치장되어 있으며, 네팔을 외국에 문호를 개방한 군주인 트리부반왕을 기념하여 만든 트리부반왕 기념박물관(King Tribhuwan Memorial Museum)과 그의 아들인 마헨드라에게 헌납된 마헨드라 박물관(Mahendra Museum)이 있다. 궁전 내의 접견실도 방문해 볼 수 있다. 더르바르광장의 남쪽 끝에는 네팔에서 가장 호기심을 유발하는 명물 쿠마리 초크(Kumari Chowk)가 있다. 이 도금한 옥사에는 라즈 쿠마리(Raj Kumari)가 있다. 이것은 고대부터 신비한 선택과정을 거쳐 힌두교 모신인 더르바(Durba) 신의 화신으로 간택된 어린 소녀이다. 이 소녀는 종교의식을 지내는 기간에는 숭배를 받으며, 보수를 받고 일반에게 공개된다.


옛 왕궁, Hanuman Dhoka

이 거대한 왕궁단지와 내원과 탑들이 늘어선 사원들은 12세기와 18세기 사이에 건립되어 카트만두 국왕의 대관식과 이 도시의 각종 행사를 주최하던 곳이다. 하누만 도카 더르바르(Hanuman Dhoka Durbar)는 원숭이 수호신인 하누만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곳은 여행자들이 필수코스로 삼는 문화유산이며, 달발광장 밀집지역에서부터 수많은 사원들과 옛왕궁 하누만도카 쿠마리 초크(Kumari Chowk)와 쿠마리 여신이 현신한 쿠마리 바할(Kumari Bahal) 그리고 카트만두의 현재 이름이 유래된 카스타만다프(Kasthamandap)등이 있다.


처녀신이 살고 있는 사원, "Kumari Ghar 'House of the Living Goddess"

두르바르와 바산트푸르 광장이 만나는 지점에 처녀신인 쿠마리신의 화신으로 뽑힌 소녀가 살고 있는 사원으로 평소에는 바깥에 나갈 수 없는 이 소녀는 일년에 7번 있는 축제 때만 나갈 수 있는 여신의 역할을 한다. 이 소녀를 보려면 그 가족들에게 약 5루피 정도를 주고 시주를 하면 2층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어 관광객들에게 얼굴을 보인다. 18세기 때 마지막 말라 왕이 왕권을 오래 유지를 하려고 어린이 소녀를 뽑아서 신으로 모시고 숭배를 하였는데 그때부터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가 지금까지 존재하게 되었다. 살아 있는 여신으로 불리는 "쿠마리"에게는 왕 또한 신으로 섬긴다. 쿠마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쿠마리 템플" 에서 가족들과 보내며 "인드라 쟈트라" 축제와 인드라 신의 생일날 축제에 참석한다.

 

카트만두 덜발광장 

 

카트만두 덜발광장 

 

카트만두 덜발광장 

 

카트만두 덜발광장에 있는 쿠마리 하우스(살아있는 신) 

 

살아있는 처녀신 꾸마리 - Living Virgin Goddness, Kumari 

 

살아있는 처녀신 꾸마리 - Living Virgin Goddness, Kumari 

 

카트만두 덜발광장의 입구에 있는 티베트 기념품 노점상

 

 

아산초크의 옷가게 

 

각양각색의 색갈로 염색된 숄.

 

현재의 왕궁 정문 

 

카트만두 타멜거리의 모습. 

 

카트만두 타멜거리의 모습.  

 

카트만두 타멜거리의 모습. 

 

 

스와얌부나트

 

원숭이사원 스와얌부너트 Swayambhunath

나무로 울창한 숲을 뚫고 원뿔형 지붕을 이룬 황금탑이 솟아오른 스왐부너트 스투파(사리탑)는 카트만두 분지에 모셔진 모든 사원들 중에서도 고풍적이고, 불가사의한 탑이다. 스왐부너트라는 이름보다는 "몽키템플" 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곳으로 이곳에 살고 있는 많은 무리의 원숭이들은 어린 아이들과 여자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빼앗으려 겁 없이 달려들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네팔 사람들이 좋아하는 신 중에 "하누만" 이라는 원숭이 신이 있는데 "하누만" 이 원숭이 신이지만 그렇다고 "하누만" 을 원숭이라고 부르는 것은 삼가야 한다. 네팔의 원숭이들과 "하누만" 은 그 처지가 분명히 다르기에 "하누만" 의 탈이나 석상을 보고 "몽키"라고 부르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우뚝 솟은 하얀 돔과 번쩍이는 황금빛 첨탑은 계곡의 어디에서나 멀리서도 잘 보인다. 석주의 비문에 새겨진 역사적 기록들은 5세기 경에 이미 불교 주요 순례지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원래의 기원은 부처가 이곳 카트만두 분지에 오기 훨씬 이전에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에 대한 각종 전설의 수집품들(15세기의 Swayambhu Purana)은 과거 부처에 의해 심겨져 카트만두 분지를 뒤덮고 있었던 호수에서 피어난 기적의 연꽃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연꽃은 찬란한 빛을 뿜어내었고 그리하여 이곳의 이름은 '스스로 창조된' 또는 '스스로 존재하는'을 뜻하는 스왐부(Swayambhu)가 되었다. 이곳 주변도 티베트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으로 보름날 많은 사람들이 산 주위를 돌며 기원을 드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무튼 이곳도 보더너트의 불탑처럼 많은 순례자들이 경건한 불심으로 마니차를 돌리면서 탑을 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투파를 한 번 돌면 불경을 1천 번 읽는 것만큼의 공덕이 쌓아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스투파의 금색 상단의 4면에도 붓다의 눈이 그려져 있고, 둥근 하단의 몸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5가지 원소를 관장하는 각각의 부처 형상이 보존되어 있다. 상단 이마에는 역시 제 3의 눈이 그려져 있는데, 그렇다면 카트만두에만 존재하는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의 이마에 있는 제 3의 눈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에피소드> 옛날 카트만두가 호수였다고 한다. 어느 날 호수의 물이 빠지자 이 야산이 위로 솟아났고 "스와얌부"라는 말은 스스로 나왔다는 뜻으로서 이 사원의 이름이 그렇게 해서 생겼다는 전설이 있다.

 

 

스와얌부나트의 불탑 

 

금강저(金剛杵, Vajra) - 금강저(金剛杵, Vajra)는 원래 도리천의 주인인 제석천(인드라)의 무기이다. 금강저의 원어는 바즈라(Vajra)로 번개나 벼락을 의미한다. 제석천은 불법에 귀의한 후에 부처님을 수호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이 되어 부처님의 뒤에서 금강저를 들고 호위한다. 또한 제석천뿐만 아니라 금강역사도 금강저를 들고 부처님을 호위한다. <열반경>에는 금강역사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금강저로 모든 악마를 티끌같이 쳐부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에 근거하여 우리 나라의 신중(神衆)탱화에서는 동진(童眞)보살이 반드시 금강저를 들고 있다. 

금강저는 또한 여래의 금강과 같은 지혜로써 능히 마음속에 깃든 어리석은 망상들을 파멸시키는 보리심을 상징한다. 주로 밀교에서 금강저를 특히 중요시하여 의식과 수행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때 금강저는 금강령과 함께 사용되기도 합니다. 천태종의 종기에도 이 금강저가 나타나 있습니다.

금강저는 금. 은. 동. 철 등으로 만들어지며 불교의 금속공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형태는 손잡이 양쪽이 뾰족한 끗을 가졌다. 모양에 따라 뾰족한 끗이 하나인 것은 독고(獨孤), 2.3.4.5.9 갈래로 갈라진 것은 3고저. 4고저. 5고저. 9고저라 한다. 최초에는 그 형태가 무기형으로 뾰족하고 예리했으나 불구로 사용되면서 끝의 가락이 모아지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들중 독고가 가장 오래된 형태이다. 금강저를 만드는 법과 효능에 대해선 불설다라니집경(佛說陀羅尼集經) 12권. K-308(11-1063). T-901(18-785) 의 불설발절라공능법상품(佛說跋折 功能法相品)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금강저로는 국립 중앙 박물관에 길이 22㎝의 고려시대 청동5고금강저가 가장 오래된 금강저로 소장돼 있으며 일반 사찰에서는 조선 시대의 금강저를 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사경. 변상 도에는 가장자리를 금강저문(金剛杵紋)으로 장엄한 예가 자주 나타나며, 현존 신중 탱화에서는 대부분 금강저를 볼 수 있다.

금강저는 여러나라, 여러 문화에서 존중되었다.

 

 

 

 

 

스와얌부나트 사원에서 내려다 본 카트만두 시내.

 

 

파슈파티나트 

 

힌두사원 파슈파티너트 Pashupatinath

타멜거리에서 동쪽으로 약 4km 정도를 가면 네팔 힌두교 최대의 성지 파슈파티너트가 나온다. 이곳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며, 보우드넛과 연결하여 여행할 수 있다. 이 사원은 원래 시바신에게 헌납되었고, 파슈파티너트는 시바가 가지고 있는 많은 이름 중의 하나이다. 파슈(Pashu)는 '생명체'를 뜻하며, 파티는 '존엄한 존재'를 뜻한다. 금빛 사원본당 내부는 힌두교도 외에는 입장이 금지되어 있다.


인도 바라나시의 갠지즈강(강가강)에서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는 경건한 의식을 볼 수 있듯이 네팔에서는 파슈파티너트 사원 앞을 흐르는 바그마티(Baghmati)강에서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그러한 광경을 엿볼 수 있다. 바그마티 강둑의 파슈파너트 사원은 네팔 힌두교뿐만 아니라 힌두교도 전체의 성지이며, 독실한 힌두교도들이 이곳으로 찾아와서 죽고, 화장되어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들은 여기에서 죽고 화장되는 것이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는 또 하나의 충격거리다. 보다나트의 시큼한 기름 냄새와는 달리 이곳은 입구부터 썩어 가는 강물과 사람의 시체가 타는 냄새가 우선 후각을 강하게 압박한다. 강둑으로 늘어선 화장터(가트, Ghat)에서는 부모와 형제의 시신을 태우며 통곡하는 가족과 자식들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도 촬영은 허용되지만, 멀리서 신경을 거슬리지 않도록 찍는 것이 예의이다. 상류에는 부유층과 귀족들의 화장장이, 하류로 내려올수록 가난한 사람들의 화장장으로 나뉘기 때문에 공평? 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에피소드> 지금 사원이 자리하고 있는 장소에 옛날 시바신이 부인과 함께 이곳을 여행하러 왔다가 숲에서 수많은 바바들하고 살았다는 전설과 옛날 카트만두 분지에는 목장들이 많았는데 현 사원의 자리에 매일 암소 한 마리가 땅에 젖을 주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그 자리를 파 보았더니 시바신의 상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 시바신을 모시는 사원을 건립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보우더나트

 

보우드너트 Boudhnath Stupa

시내에서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보우드너트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탑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리탑이 38m 높이이고 아래 크기는 직경 약 100m이다. 이곳은 고대 카트만두와 라싸 사이의 고대 무역로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티벳과 네와르 불교신자들에 의해 숭배를 받는 곳이며, 티벳인들은 이곳이 고대 부처의 사리가 묻혀있는 곳이라고 믿고 있다. 세계 문화 유산에 지정된 이 탑은 언제 만들어 진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네팔 사람들은 약 2,000년 전에 만들어진 탑 안에는 부처님의 사리가 있다고 믿는다. 영화 'LITTLE BUDDHA'의 촬영장소이기도 했으며 오전 일찍부터 늦은 저녁까지 많은 티베트인들과 불자들이 시계 방향으로 "마니차"를 돌리거나 간혹 "오체투지"로 탑 주변을 도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탑 주변에는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했을 당시 티베트를 탈출하여 네팔로 들어와 정착한 많은 티베트인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다.


<에피소드 Ⅰ> 옛날 한 여인이 왕에게 물소가죽 한 장으로 덮을 수 있을 정도의 탑을 만들 테니 탑을 만들 땅을 달라고 요구를 하였다. 그러자 왕은 물소가죽 한 장 크기라는 말에 여인에게 허락을 하였는데 여인은 가죽을 얇게 썰어서 땅에다 최대한 넓게 뿌렸다고 한다. 왕은 어쩔 수 없이 그만큼의 땅을 주었고 그 자리에 탑이 세워졌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에피소드 Ⅱ> 이곳은 자드지모(Jadzimo)라는 천민에 의해 지어졌으며, 그는 부처에게 공양할 것을 찾다가 왕에게 이곳을 건설할 것이라고 허락을 받고 지었다고 한다. 천민에 의해 거대한 사원이 완성되는 것을 보고 지방 귀족들이 중상모략으로 왕에게 이 사원을 헐라고 탄원을 하였으나 선량한 왕은 '한번 허락된 것은 철회할 수 없다'(Jarung Kashor)라는 말을 하였고, 이 사원은 완성되었다. 훗날 이 공덕으로 자드지모의 아들은 8세기 티벳 불교를 확립한 왕으로 환생하였다고 한다.

 

 

 

 

 

 

 

 

파탄

 

파탄(구 왕국) Patan

카트만두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카트만두 시에서 두 번째 큰 도시이다. 파탄은 '랄릿푸르(Lalitpur)' 이라고도 불리는데 '러리트 풀" 은 아름다운 도시라는 라는 뜻이다. 도시 사방으로 탑이 있는데 아쇼카 왕이 약 2세기 중반에 파탄을 방문 했을 때 세웠다고 한다. 16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말라 왕조의 왕들이 건립한 왕궁과 사원들을 파탄 "덜발광장" 이라고 한다. 구왕궁을 중심으로 일반 주택가들이 밀집된 지역으로 예전의 번성한 모습들은 찾기 힘들지만 독특한 건축양식이 볼만하다.


파탄은 카트만두 분지에 있었던 마쯔라의 세 왕국의 수도였으며, 카트만두 왕국, 파탄 왕국, 그리고 박다푸르 왕국 중 가장 먼저 건설된 곳이다. 후에 세 왕국으로 갈라지면서 앞 다투어 서로의 것을 모방했기 때문에 세 도시의 모습은 비슷비슷해서 구별이 안 갈 정도라고 한다. 규모 면에서는 카트만두가 가장 크고, 가장 잘 보존이 된 것은 박타푸르라고 한다. 파탄은 불교의 유적이 잘 보존되고 있고, 이것을 기념하듯 성 밖 주위에는 아쇼카 대왕이 세웠다는 스투파들이 남아 있다.


BC 250년 아소카왕이 방문한 기념으로 44개의 큰 사리탑이 도시의 4곳에 서 있다. 그 후 네와르족(族)의 중심지, 특히 불교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창하였으나, 1768년 구르카족의 프리트비나라얀에게 정복되어 대규모 약탈을 당하였다. 그러나 마헨드라나트사(寺)를 비롯하여 수많은 불교사원과 옛 궁전 등 불교건축물이 남아 있다. 현재는 네와르족의 반라지족(支族)의 중심지로, 보리·쌀·밀·기장·야채·과일 등의 농산물이 생산되며, 전통적인 금은세공으로 알려져 있다.


파탄은 특히 네팔의 불교가 가장 번성한 시기에 불교와 함께 발전된 도시여서 많은 불교유적지가 남아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덜발광장" 에서 주변 골목들을 살펴보면 자그마한 화랑들이 많아 저렴한 그림을 구입하기에 좋고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기념품을 파는 노천 상점들이 많은 곳이다.

 

 

 

 

 

 

 

 

 

 

 

 

박타푸르(구 왕국) Bhaktapur

카트만두와 나갈코트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박타푸르는 9세기경에 "아넌드 데브" 라는 왕부터 시작이 된다. 박다푸르를 "바드가운" 이라고도 하는데 "바드가운" 은 "신사들의 마을" 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카트만두, 파탄과 함께 박다푸르는 말라 왕조의 3개 왕국중의 하나이고 17세기 말라 왕조에 의해 건설 되었지만 1934년 대지진 때에 많은 부분이 손상되어 다시 복구가 된 부분이 많다. 그래도 비교적 복구 보전이 잘 되어 있어서 네팔을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한번은 꼭 들려보기를 권하고 싶은 곳이다.


장인들이 나무를 조각한 55개의 창이 볼만한 "판챠판나쟐" 궁과 네팔에서 제일 높은 다섯 개의 창을 가진 "냐타플라" 사원 등 볼거리가 제법 많은 곳이다. 또한 광장 중간에 위치한 목조건물이 "레스토랑"으로 사용이 되고 있어 옛 목조건물에 앉자 차를 마시면서 광장을 바라본다거나 주변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독특한 즐거움이 있기도 하다. 말라 왕조 시대에는 영화를 누리기도 했지만 지금의 박타푸르 사람들은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카트만두에 제공되는 야채들은 대부분 박타푸르에서 재배가 된 것들이다. 박타푸르에서는 조각이 멋진 나무창틀 모양의 약자와 토기항아리 등의 소품들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카트만두와 나갈코트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나갈코트 여행 때에 들려 보기에 좋다.

  

 

 

 

 

 

 

 

 

너걸코트 Nagarkot

카트만두 분지에서 동쪽으로 32km 지점에 고도 2,190m의 너걸코트 전망대가 히말라야의 전경을 가장 잘 지켜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맑은 날에는 안나푸르나의 남봉(7,273m)에서 부터 안나푸르나 제3봉(7,557m), 제일봉(8,090m), 제2봉(7,937) 그리고 동쪽으로 에베레스트(8,848m), 칸쳉정가(8,597m)까지 모두 볼 수 있다. 방문하기 좋은 시즌은 11월에서 2월까지이다. 3월에서 10월까지는 흐린 날이 많으며, 대부분은 구름에 의해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빨간색, 진홍색, 핑크빛 색조로 물드는 일출과 일몰은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장관을 연출한다. 휴양지답게 좋은 시설과 전망이 좋은 리조트, 호텔, 게스트하우스 등의 숙박업소와 레스토랑이 잘 갖춰져 있다.


장엄한 히말라야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여행하고 있으나, 설산을 보는 것 이외에 공기가 맑아 휴식을 즐기기도 좋고 마을을 오가는 숲길을 산책하는 재미가 좋아 시간적 여유가 있는 여행자나 트레킹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아주 괜찮은 곳이다. 카트만두에서 택시로 약 1시간 정도 거리에 있으며 버스도 운행을 하고 있지만 운행 간격이 길고 횟수가 적어 버스를 이용하기에는 불편하니 되도록 택시를 타거나 차량을 렌트하는 것이 좋다.


나갈코트에서 내려올 때는 버스 시간을 미리 체크를 하여 카트만두로 오는 길에 박다푸르에 들려 박다푸르를 둘러보는 코스를 잡는 것이 좋다. 오후 2시~3시경에 카트만두를 출발하여 나갈코트에서 일몰을 보고 다음 날 일출을 보고 박타푸르에 들려 관광을 하고 카트만두로 돌아오는 1박2일 일정도 추천할 만하다. 너걸코트의 일반 게스트하우스는 비수기에는 예약을 하지 않아도 적당한 흥정을 통해 할인을 받을 수 있지만 성수기에는 방을 잡기 어려우니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좋고, 좋은 호텔이나 리조트 들은 미리 카트만두에서 여행사를 통해 예약을 하는 것이 비용절약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나갈코트에서 - 2005년 1월에 하루종일 기다렸으나 이 사진이 유일하게 촬영한 사진임.

 

나갈코트에서 - 날씨가 좋으면 우측으로 에베레스트와 마카루를 볼 수 있다고 한다.

Source : 조성식님의 2007 ABC 트레킹'에서 

 

 

인드라 초크와 아산 광장  

구왕궁 쪽에서 사원이 있는 번화가 인드라 초크로 나와 곧장 나아가면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바자르가 나타난다. 즐비하게 들어선 목조가옥 1층에는 일회용품과 식료품, 선물 등을 진열해 놓은 가게가 들어차 있고 좁은 길은 사람과 릭쇼(자전거 인력거)가 뒤얽혀 혼잡스럽다. 2층 창문에도 융단이며 옷가지를 걸어놓고 있다. 바자르에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구시가지의 중심지 아산 광장이 나타난다. 사방으로 길이 뚫려 있는 이 광장은 사람의 물결과 릭쇼의 나팔소리가 어울려 가장 카트만두다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산 광장을 보지 않고서는 카트만두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시장 가운데에 곡식의 여신 "안나풀나" 사원이 자리 하고 있다. 여행자들의 거리 타멜과 덜발광장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어서 어느 방향에서든 보도로 구경을 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으며 요즘에는 이곳에서 여행자들이 머리를 염색하는 천연염료 "해나" 를 좋은 가격에 구입하기도 한다. 조금은 복잡한 감은 있지만 네팔의 소시민들이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잊혀진 풍물들을 발견하게 되는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마첸드라나트 사원(Machendranath)   

인드라 쵸크와 면하고 있는 아산 광장에 있는 비의 신 마첸드라신에게 제사하는 사원이다. 사원에는 작은 스투파(불탑; stupa)도 서 있다. 본존의 얼굴의 색은 파탄의 라트(적색) 마첸드라와는 달리 세트(백색) 마첸드라라고 불리운다.

 

 

덕친 칼리

카트만두에서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힌두교의 신으로 피의 신이라 불리는 "칼리" 신을 모시는 곳으로 힌두교의 유명한 성지이다. 이곳에서 동물의 피를 받치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믿는데 수컷 동물의 피를 받치는 것이 특징이다. 주로 토요일과 화요일에 많은 피를 받치는데 그 날 피를 받치며 깔리신에게 기도를 드리면 전달이 잘 된다고 믿는 힌두교의 의식이다.



둘리켈 

둘리켈 또한 카트만두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히말라야 설산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이곳도 좋은 시설의 리조트와 호텔, 게스트하우스가 있지만 너걸코트에 비해서는 그리 많은 숙소가 있는 곳이 아니다. 여행자의 방문도 적은 곳이지만 반면에 좀 더 조용한 분위기에서 휴식을 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카트만두에서 32km 거리에 위치하고 너걸코트 보다는 비교적 낮은 곳이어서 기후가 따뜻하고 이곳에서도 산간마을 사람들의 생활상을 근접하여 볼 수 있으며 짧은 미니 트레킹 또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버스를 이용을 할 경우 1시간30분에서 2시간 정도 시간이 예상된다.   

 

그 유래는 14세기 말라 왕조 때 왕의 꿈에 깔리 신이 찾아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 사원을 만들라는 계시를 내렸는데 깔리 신의 계시대로 여러 지역을 찾아 헤매다 현재의 자리에서 깔리 여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돌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지금의 사원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네팔 최고의 명절인 "다사인" 기간에 가장 많은 피를 받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박물관 

카트만두(라스트리야 성그라하라아) 국립박물관은 타멜에서 택시로 약 20분정도 거리 차우니에 있다. 이 박물관에는 사하 왕조들이 사용한 칼(떨바르) 중, 하나가 4피트 9인치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칼과 여러 옛 무기들 그리고 네팔의 동전들이 전시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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