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홀로코스트는 유럽에서 깊이 뿌리박혀 있던 유태인에 대한 악감정에서 출발합니다.
유태인들은 오랜세월 나라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이 외로운 처지에 믿을 건, 돈 뿐이다!'라는 생각이 깊이 빠졌죠.
그래서 유태인들은 옛날부터 은행업이나 고리대금업으로 재산을 모았고,
많은 유럽인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었죠. 남의 나라 녀석들이 자기나라에 흘러들어와 돈을 끌어모으면...
안좋게 생각하는게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도 악덕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이 유태인으로 나옵니다.
이를 보면 당시 유럽인들이 얼마나 유태인들을 싫어했는지 알 수 있지요.
그러나 가장 미움을 받은 이유는 종교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유럽인들은 예수를 구원자로 믿는 반면, 유태인들은 예수를 그저 예언자로만 보고,
언젠가 하느님이 세상에 내려오면 자신들-유태민족-을 가장 구원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나라 없는 와중에도 민족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지키고자 한 의도로 내놓은 유태교의 주장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다른 유럽인들에겐 오만과 이단으로 비춰질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서 1939년,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할 때...
당시 유태인들의 인구수는 독일 전체 인구의 13% 정도였지만...
그들이 가진 경제규모는 독일 전체 경제의 80%가 넘었고, 서서히 정치계에도 발을 들이려고 했습니다.
독일인들이 유태인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지사...
히틀러는 이를 이용했습니다.
그리하여 히틀러가 영도하는 나치당이 집권한지 얼마 후, 유태인들은 차별적인 대우를 받기 시작합니다.
'다비드의 별'이라 불리는 노란색 별 모양을 그린 완장을 유태인들에게 채운 것도 이때에 시작되었죠.
그리고 모든 공직의 유태인들은 파직당하고, 부부 중에서 유태인이 섞여 있으면,
그 부부는 강제로 이혼 당했습니다.
유태인들은 길거리에서 두들겨 맞았고, 경찰은 아무 제지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유태인 잡기'는 서서히 극을 달합니다.
유태인이 경영하던 모든 회사는 '아리아인 경제 연합'이라는 단체의 손에 넘어갔고,
유태인들은 모두 새로 신분 등록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 '게토(Geto)'라 불리는 집단 거주 구역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가혹한 육체노동에 시달렸죠.
그러나 이러한 생활은 그나마 나았습니다.
나치는 유태인들을 게토에서도 몰아내고, 끝내는 모두 수용소에 가두었습니다.
영화 '피아니스트', '쉰들러 리스트'에서도 이 게토에서 유태인들을 몰아내는 장면이 나오죠.
그러나 이 수용도들에 모두 가스실이 있던 것은 아닙니다.
가스실이 있던 수용소는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제2 아우슈비츠 구역',
'소비버', '마이다네크' 등등... 11개 정도 였습니다.
나머지는 노동을 시키는 수용소였죠.나치는 유태인 중에서 일을 시킬수 있는 자들만을 살려두고,
나머지는 모두 가스실로 보내 죽였습니다.
목욕용 탈의실로 위장된 곳에서 모두의 옷을 벗게 하고
그 다음 샤워실과 닮은 가스실로 모두 밀어넣고 '치클론-B' 가스로 죽였죠.
<대량 학살의 장소인 가스실 이라고 합니다.>
<구멍으로 가스가 나오는 사진입니다.>
그 가스실안의 광경은 아주 비참했답니다.
서로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 마구 밀치고 밑에 깔린자들을 밟고 올라섰기 때문에 쌓인 시체의 분포가
아래로 갈수록 노약자, 위로 갈수록 비교적 건강한자 였다고 합니다.
시체는 밀고 밀리는 통에 두개골이 깨어지고 팔이 늘어나 사람 키만큼 되고...
이런 일들은 보통이었다고 하는군요...
그 시체들을 소각로에서 태워 비누나 칫솔, 사료로 만들었죠...
<사료로 만들었다는 소각장 이랍니다.>
여담이지만
대전 당시 치클론 가스를 생산했던 기업이,
얼마 전에 유태인 추모 공원 건설권을 따내어 독일내에서 말이 많았었습니다.
그리고 나치는 이들 유태인들을 이용해 생체실험을 했었습니다.
그 자료는 모두 연합국 측으로 넘어갔었지만....
여하튼 이런 식으로 죽인 유태인 수가 600만이었고,
그나마 소련에서 학살된 유태인들 수는 추정 불가능입니다.
-출처 네이버-
이런 감정적/종교적으로 전쟁을 하는 독일인이 이상하다 생각 할 정도로 무섭게 유태인을 학살한 것에 대해서
조금 사믓 일본인의 침략이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유태인은 돈이 많고 지금 역시도 미국에서도 유태인이 돈을 많이 쥐고 있는 현실이고........
필요로 위해서 죽이고 필요로 위해서 친구가 된다는건 이해를 못하는 부분입니다.
(영화에서 독인인 '한스'가 필요로 위해서 친구'라즐로'를 가차 없이 수용소로 보내는데 정말 눈물이 났습니다.
그 '라즐로'를 수용소로 보내고 전쟁이 끝나는걸 알고 있는 '한스'는 '라즐로'를 구해주지 않고
필요로한 교수를 구해주더군요........한대 때리고 싶었습니다.)
사진을 보니 더 끔찍한 장면이 생생히 떠 오르는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태인 추모 공원이 있다고 합니다.
<밑의 그림은 유태인 추모 공원 입니다.>
'글루미 선데이'란 영화로 인해 독일인 히틀러에 대해서도 조금 다가간것 같고
유태인을 왜 싫어 했는지도 조금 알았던 것 같습니다.
더많은 자료로 이해하기 쉽도록 찾고 독일 영화에 관심이 많아 졌습니다.
앞에 내용에서 말한듯이 유태인 학살에 대해 언급했듯이
영화'셔익스피어','피아니스트', '쉰들러 리스트'의 영화를 그냥 눈으로만 보고 느꼈지만
다시 하여금 독일문화에 대해서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