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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4일 아산 UBF 주일메시지
한알의 밀
말씀 / 요한복음 12 : 20-50
요절 / 요한복음 12 :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오늘 성경말씀은 어떻게 하여야 많은 열매를 맺는 인생이 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밀알의 진리를 영접하고 배워서 우리 모두가 주렁주렁 열매 맺는 거목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한 알의 밀이 죽으면(20-26)
20절과 21절을 보십시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는 온 유대뿐 아니라 이방에서 거주하다가 유월절을 지키러 온 유대인들까지 와 있었습니다. 말씀에는 헬라인들 몇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헬라인은 지금의 그리스인을 지칭합니다. 그리스 하면 철학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인생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에서 절대 선이란 무엇인가? 고민하고 찾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우주의 기원에 대하여 연구하였고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성을 동원하여 인생의 진리, 삶의 본질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죽음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몸을 잃어버린 영혼은 영원히 어두운 밤하늘을 떠돌아야 하는가?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의 구원과 메시야를 기다리는 히브리인들의 유대교에 대하여 그리스인들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러 온 이 사람들은 유대교에 깊이 동참한 헬라인인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린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풀리지 않는 죽음의 문제를 예수님께 해결 받고 싶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 찾아와 헬라식 이름을 쓰고 헬라어를 아는 것으로 보이는 빌립에게 청하고 빌립은 안드레와 상의한 후에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주십니다. 23,2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께서 헬라인들의 방문을 받으시고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실 때가 왔다고 하십니다.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란 예수님께서 메시야의 진면목을 보여주실 때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모두에게 알게 하는 때요, 그리스도의 인류구원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나타내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셔서 세상을 구원하는 위대한 역사가 선명하고 뚜렷하게 이루어지는 때를 말하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를 말합니다. 지금까지 유월절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구원역사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명절이었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이집트의 모든 집을 덮어서 파라오의 첫 아들로부터 종의 첫 아들까지 다 데려갈 때,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은 넘어가고 지나갔습니다. 유월절 사건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모든 우상을 헛되게 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잘 나타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두고두고 유월절 명절을 지내며,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사랑하시
는 하나님의 은혜가 분명하게 드러난 이날을 기념합니다. 유월절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기념하는 날이며, 만유의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도 큰 영광과 은혜를 드러내는 날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유월절 어린 양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동안의 유월절은 모형이었습니다. 이제 전 인류의 구원이 실체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진정한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으로 하는 진정한 유월절, 참 유월절로 나타납니다.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이루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동안의 모든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마굿간에 나셨습니다. 메시야이시면서 가난한 나사렛 사람이 되셨습니다. 모든 병자와 장애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을 가지시고도 힘으로 이기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적들과 혈과 육으로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고 이제 죽음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죽기를 두려워하며 열매 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생명의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천안 UBF에 있을 때, 저보다 먼저 와서 ‘내가 아브라함 되어 볼랍니다’ 했던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다음 날 ‘저는 안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나중에 자기가 그렇게 아브라함이 되겠다고 했다가 다시 안되겠다고 했었다며 저에게 이유를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그는 1980년 5월에 광주에 있었습니다. 이대 다녔던 아름답고 똑똑한 그의 누나가 충격으로 조현병 폐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계엄군에게 죽었던 사람들이 덜 배우고 더 가난한 사람이었다고 하였습니다. 똑똑한 사람, 배운 사람들은 숨었으며, 자기도 지하실에 숨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하여 죽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하게 하고 자기는 숨었다는 것이 가책이 되어 그 짐을 안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화면 앞에서 정의를 외칩니다. 많은 사람들이 키보드로 정의로운 나라도 이루고 키보드로 천국도 만듭니다. 5만 10만 100만 길거리로 다른 사람들이 나오면 많은 사람들 속에 묻어서 나갑니다. 정의를 사랑하고 정의를 갈망하고 정의를 말하는데 정의를 위해서 왜 나서지는 못하는가? 죽기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죽으면 아내와 아이들은? 죽으면 많이 아프지 않는가? 정의, 민주주의 이런 거창한 이슈를 거론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학생은 독일로 가볼래? 독일은 공부를 정말 확실하게 시켜준대,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이 “독일어 배워야 하잖아요?”입니다. 독일, 헝가리, 체코, 유럽 각지에서 크게 인정해주고 큰 일을 하고 평생 영광을 얻는데, 그 영광에 이르기 까지 당연히 수고가 따르지 않습니까? 많은 수고 중에서 기본이 되는 것인데, 독일어 공부 해야되잖아요? 말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대답입니까? 사람들은 영광은 얻고 싶은데 죽기가 두렵습니다. 인정받고 싶은데 힘든 일은 두렵습니다. 성과를 얻고 싶은데 수고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좋은 결실을 하고 싶지만 희생은 두렵습니다. 영향력 있는 삶을 살고 싶지만 사람들에게 잠시 욕 먹는 것은 두렵습니다. 두렵기 때문에 말 따로 생활 따로입니다. 두렵기 때문에 이중적입니다. 두렵기 때문에 위선적입니다. 두렵기 때문에 나약하게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죽기를 두려워하여 열매 맺지 못하는 인생들에게 죽음으로써 열매 맺는 비밀을 알려 주십니다. 죽어서 열매 맺는 비밀은 만물에 깃든 진리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통과하여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밀알의 진리를 말씀하셔서 ‘십자가와 부활’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헬라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연과학을 발달시켰습니다. 저는 중학교 수학시간에 피타고라스 정리를 배웠습니다.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70년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생기기 몇 백년 전 사람입니다. 헬라인들은 그런 시대에 피타고라스 정리를 세운 것입니다.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 1/2 곱하기 밑변의 길이 곱하기 높이, 원뿔의 부피를 구하는 공식 1/3 파이 곱하기 반지름의 제곱 곱하기 높이, 2천년 그 이전에 헬라철학자들 수학자들이 규명한 것입니다.
자연과학을 세우고 자연만물로부터 인생의 본질을 알려고 하였던 헬라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자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을 들어 구원과 생명의 진리를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밀알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헬라인들도 십자가를 이해하고 영접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밀알 속에는 배와 배젖이 있습니다. 배는 자라나서 식물로 성장하는 것이고 배젖이 그 양분이 됩니다. 밀알이 죽는 다는 것은 배젖이 배의 양분으로 완전히 분해되는 것을 말합니다. 배는 배젖이 제공하는 양분을 먹고서 뿌리를 내고 새싹을 틔웁니다. 이 때부터 싹은 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고 뿌리는 땅으로부터 물과 양분을 빨아들입니다. 그리하여 열매를 맺는데 4개월이 지나면 80-120개의 밀알을 열매로 맺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죽음으로써 4개월 후 약 100개의 밀알이 되는 것은 백배의 성장입니다. 그 100개의 밀알을 그대로 다시 심어서 결실하고 이것을 반복해 나가면 기하급수적으로 열매는 늘어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인생들이 영생과 하나님나라의 복락을 누리도록 썩는 한 알의 밀알이 되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영생의 열매로 맺으십니다. 예수님의 순종으로 영생의 풍성한 열매가 모든 백성에게 가득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도 누구든지 이 진리를 따르면 복이 있습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밀알의 진리는 예수님께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시니까 죽으셨다가 부활의 영광을 얻으시는 것이고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면 예수님 말씀에 위배됩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26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죽고 썪어서 열매를 맺는 진리는 우리 인생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밀알의 진리는 우리의 실생활에 적용되어야 하는 진리입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생활비를 벌려면 땀흘려 일 하여야 합니다. 취업 하려면 회로를 볼 줄 알든가, 코딩을 할 줄 알든가 일잘하는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취업 했지만 30대에 짤리는 신세를 면하려면 코딩만 배울 것이 아니라 기획력도 가지고자 석사도 따고 경험도 쌓아야 합니다. 40대에 명예퇴직, 정리해고 되어서 치킨 장사 하느라 튀김기름에 손데고 악플에 상처받으며 살지 않으려면, 회로 설계할 줄도 알고 데이터 프로세스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55세에 정년 마치는 사기업 임원이 아쉬우면 박사도 따고 논문도 써서 60세 혹은 65세까지 일하게 해주는 전문기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직업은 편해요. 이 일은 쉬워요. 그런 것은 이제 없습니다. 수고하며 끊임없이 고난 받지 않아도 때되면 연봉 올라가는 직종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공기업도 점점 성과를 강조합니다. 공무원들도 경쟁을 도입합니다. 교사들도 경쟁, 퇴직제도를 세웠습니다. 수고 없이 소득을 얻는 곳은 없습니다. 쉽게 일하고 쉽게 승진하는 곳도 없습니다. 여름에 땀흘리지 않은 농부가 가을에 추수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피하려 하지 말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써 고난을 영접하고 환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의 주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므로 예수님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나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소원과 개인의 욕망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죽지 않습니다. 오히려 얻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 승리를 얻습니다.
27,28a절을 보십시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밀알의 진리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께서 죽기를 싫어하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죽으실 수 있는지, 어떻게 십자가를 지셨는지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죽어야 열매맺는다. 죽으면 다시 산다 말로만 가르치는 것은 영향력이 약합니다. 육체에 매여 죽기를 두려워하는 우리들에게 예수님도 죽기를 부담스러워하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고통했음을 보여주시고, 그러한 한계를 기도로서 극복하셨음을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고통하시면서도 하나님의 힘을 힘입어서 십자가를 감당하셨으니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기도 하면 어려운 십자가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7-9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도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예수님도 육체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셔서 십자가를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도 기도하여 순종을 배워나가면 됩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 주신 기도를 배우면 우리에게 주신 열매 맺는 진리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28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십자가를 감당하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직접 하늘로부터 음성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30-3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 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세상을 뒤덮은 죄와 사망의 어둠의 세력들은 그 힘을 잃고 쫓겨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이 모든 인류를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승리의 십자가요, 영광스러운 십자가입니다.
2.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34-50)
34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왜 죽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산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죽는다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구절만 믿고자 합니다. 성경 곳곳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음을 당하신다는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자 합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원하는 메시야만을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35,3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유대인들은 자꾸만 안 믿는 쪽으로 가고자 합니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든지 예수님을 부인하고자 합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어둠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안믿으려고 하는 마음, 고집스러운 마음, 불신하려는 방향을 고치는 것입니다.
37-4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오래도록 유대인들을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끝내 회개하지 않으려고 작정하는 자들, 예수님을 믿지 않으려고 작정하며 배척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입을 수 없게끔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하는 유대인들을 그대로 불신상태로 두셨습니다.
42,43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믿으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땅위에 가진 것이 많고 이루어 놓은 것이 많은 자들로써 사람들에게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하는 자들이었습니다.
44,4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지극히 경외한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배척하고 믿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것은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에서 유대인들의 불신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판단을 집중적으로 기록한 것은 요한복음 기록 당시 초대 교회 성도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공회에 오는 크리스천들을 내쫓았습니다. 너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며 저주를 선언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견고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독교 교회는 초기여서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오히려 유대인들이야말로 예수님께 정죄받은 자들이며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서 멀리 있는 자들임을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기초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기독교인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바보가 되고 십자가 지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당당하고 목소리가 더 커지는 시대입니다.
요즘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행동과 실천 측면에서 고난 회피가 아닙니다. 요즘 청년들을 접해 보면 귀가 고난을 회피합니다. 자기에게 유익을 준다고 해도 듣기 싫은 말은 듣지 않는 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라고 해도 귀가 말을 걸러서 듣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말, 내가 듣기 원하는 것만 듣고자 합니다. 그 길로 가면 비정규직 계약직 밖에 하지 못한다. 그 직종은 30대에 직장을 잃는다. 그 방향으로 가면 40대에 어려움을 겪는다. 지금 일어나는 일을 전해주어도 듣지 않습니다. 가까운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신경쓰지 않습니다. 지금 내 귀가 듣고 싶어 하는 말, 지금 내 귀에 달달한 것만 듣습니다. 이런 세상을 향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변함없이 선포하여야 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46-5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어둠에 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저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지 않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주신 말씀이 마지막 날에 예수님을 배척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영생이며 이 영생의 말씀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다행히 귀가 온전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영접하였다고 해도 그것을 잘 간직하여야 합니다. 들은 것을 잘 간직하지 못하고 쉽게 날리는 경우를 봅니다. 예수 안에 생명이 있다는 말씀을 받았으면 이 말씀을 잘 간직하여야 합니다. 들은 말씀을 잘 간직하고 지켜야 합니다. 예전에 어떤 학생은 저녁에 이렇게 하겠다고 하고는 다음 날 아침에 기숙사에서 취업도 한 적 없고 세상살이도 해보지 않은 학교 선배들의 말을 듣고는 그거 안 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청년이 비전을 영접하였으면 그 비전대로 나가고 기꺼이 긴 시간 수고를 감당하여야 합니다. 청년이 주의 말씀을 받았으면 그 말씀을 오래 지키고 그 말씀을 붙들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잘 받고 간직하는 것에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 알의 밀은 생명력이 있고 가능성은 큽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도 큰 가능성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죽지 못하면 한 알 그대로 일 뿐입니다. 죽으면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모두가 열매맺는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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