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 신천동에 소재하는 하연 선생 묘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 선생의 묘가 있다. 하연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의정부에 들어간 지 20여 년 동안 법을 잘 지켜 ‘승평수문(昇平守文)’의 재상이라 일컬음을 받았다. 그의 묘소는 소래산 기슭에 있고, 그 주위에는 홰나무가 있다.
후손들이 홰나무를 베는 것을 막은 하연
하연은 벼슬을 내려놓고 시흥시 신천동 계란마을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러다가 1453년에 별세를 하였는데, 별세하기 전에 이미 자신의 묏자리를 잡아 놓고, 그 주위에 홰나무를 심어 놓았다. 수백 년이 지나서는 하연이 심어 놓은 홰나무가 자라나 큰 숲을 이룰 정도로 무성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하연 묘소 주위에 있는 홰나무를 탐내었다. 그런데 그의 후손들이 어느 때부터인가 묘소 주위에 있는 홰나무를 한 그루, 두 그루씩 팔기 시작하였다.
어느 해 관아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부임하는 부사(府使)들이 내려오자마자 원인도 모르게 횡사(橫死)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부사로 내려가는 것을 모두 꺼렸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힘이 세고, 담력이 큰 사람을 선정해서 부사로 내려 보냈다. 새로 부임한 부사는 육방관속(六房官屬 : 지방 관청의 아전들)들을 모두 불러 놓고, “내가 밤을 샐 터이니, 동헌(東暫) 곳곳에 불을 밝혀 놓도록 하라.”고 명을 내렸다.
시간이 지나서 한밤중이 되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높은 사람이 행차할 때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재상(宰相)의 조복(朝服)을 입은 사람이 신임부사 앞에 나타났다. 신임부사도 뜻하지 않은 일에 순간 놀랐으나, 정신을 가다듬고 동헌 뜰로 내려가 재상을 맞이하였다. 그리고는 동헌으로 오르기를 청한 다음 머리를 굽혀 “신임부사 문안드리옵니다.”라고 하였다. 재상은 “고맙소. 나는 재상 하연이오. 내게 한 가지 소원이 있어서 신임부사에게 온 것이오. 그런데 신임부사들이 모두 놀라서 죽고 말았는데, 그대에게 내 소원을 말하게 되어 참으로 기쁘오.”, “어서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힘닿는 데까지 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소래산에 있는 내 무덤 주위에 홰나무가 많아, 내가 밤에 그곳에서 가끔씩 놀았는데, 못난 자손들이 홰나무를 팔아버려서 거의 다 없어지게 되었소. 그러니, 부사는 더 이상 홰나무를 베지 못하게 해 주시오.”, “명심해서 거행하겠습니다.”
다음 날, 부사는 하연의 후손들을 찾아가 홰나무를 베지 말도록 일렀다. 그리고 이미 벤 자리에는 홰나무를 다시 심도록 하였다. 그 후부터는 하연의 혼이 나타나 부사와 놀다가 가곤하였다. 그런데 하연이 아무리 재상이었지만, 하연의 혼을 만나는 것이 부사도 부담이었다. 하연이 재상이었기 때문에 상대하기도 불편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혼(魂)과 자주 만나는 것 때문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하연의 혼이 찾아왔을 때 물었다. “이 세상에서 죽은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물건이 무엇입니까?”, “귀신이나 영혼은 복숭아를 싫어하지.”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부사는 하연의 혼이 찾아왔을 때 복숭아를 깎아서 내놓았다. 그러자 묵묵히 앉아있던 하연의 혼이 부사에게 “내가 오는 것이 싫은 모양이군. 오는 것을 싫어하니 다시는 오지 않겠소.”하고는 그 후부터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영험한 모습을 보이는 하연
위의 설화는 영험한 모습을 보이는 하연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연의 혼이 부사에게 나타나 후손들이 홰나무를 훼손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또한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하연의 영정을 훔쳐 가려하자 이를 막았으며, 후손들의 꿈에 나타나 영정을 다시 찾게 하였다는 설화도 함께 전한다. 이와 같은 설화를 통해 보이는 하연의 영험함으로 하연 묘소와 홰나무, 영정 등이 잘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