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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 오브 라이프> - 우주의 존재들은 어떻게 펼쳐지고 모여지는가
1. 프롤로그 -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일부이다
20세기 논리철학과 언어분석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철학자였던 오스트리아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짧고도 함축적인 명제로 이루어진 <논리철학논고>의 머리말에서 ‘이 책은 이와 같은 생각을 했거나 혹은 비슷한 생각들을 이미 스스로 했던 사람들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글로 시작하고 있다. 장르와 형태는 다르지만 테렌스 맬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도 이와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의 영화는 누구나 쉽게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수준의 높낮이를 떠나서 기존 장르에 익숙한 이들에겐 낯설고 다 보았다 하더라고 미지의 영역처럼 여겨지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최근에 개봉된 상당수의 영화들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고,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카페에서 짧은 영상물을 보여준 이후 영화역사에서 볼 때 영화는 그 숫자의 비율에 있어서 적은 작품들인 예술적 입장과 대다수 작품들인 대중적 입장의 특정 위치에서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 왔다. 그러므로 <트리 오브 라이프>는 영화에서 일상의 고단함과 드라마적 감동을 기대하는 대다수의 이들에겐 아쉬울 수도 있겠으나, 여전히 영화가 예술적 가치와 숭고함을 추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겐 상업영화의 어마어마한 범람의 모래 속에서 찾아온 오아시스와도 같은 작품으로서의 위치를 보여준다. 우리가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이 소수의 이들에겐 예술적 측면을 보고자 하는 것들이고 다수의 이들에겐 대중적 측면을 보고자 하는 것처럼 영화는 공교롭게도 첫 부분에서 우리는 삶에서 두 가지 중 하나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것은 세속적인 삶과 은총과 자비의 삶이라는 것을 내레이션을 통해 들려준다. 전자의 길은 대다수가 추구하는 육신과 욕망의 길에 가까운 길이고 후자는 소수가 추구하지만 영혼과 구원의 길에 가까운 길이다.
돈,명예,권력 등으로 불릴 수 있는 이른바 세속적 삶이란 지상의 삶이고 끝이 보이는 삶이다. 육신이 다하면 같이 끝날 수 밖에 없는 시한부적인 삶이다. 그러나 은총과 자비의 삶으로 불릴 수 있는 이른바 영혼의 삶이란 육신을 지녔으니 지상의 삶이긴 하더라도 중심은 영혼이니 우주의 삶에 가까운 길이다. 그러면서도 그 끝을 알수 없는, 육신이 다하더라도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의식적 존재로서 영원의 삶에 가까운 길이다.
그러나 위의 구절들은 영혼의 입장에서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겐 쉽게 이해되거나 공감이 가는 내용이지만 세속적 삶에만 중심을 두는 이들에겐 이해가 되지 않거나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일 것이다. 테렌스 맬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도 마찬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기존 장르를 기대하거나 익숙한 이들에겐 따분하거나 난해하게 다가오지만 영화를 장르적 형태적 선입견없이 예술적 측면의 모든 가능성을 지닌 작품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을 때 매우 의미있고 행복한 작품으로 다가올 수 있다. 또하나 더, 영화의 역사나 예술적 가치를 모두 떠나 특별한 지식을 제쳐두고라도 영혼의 삶에 가까운 삶을 사는 이들에게 <트리 오브 라이프>는 의미심장하고 공감이 가는 영화에 가까운 작품이다.
현대과학이 밝혀낸 수준으로 볼 때 우주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의 지름이 150억 광년이라고 한다면, 인간이 출현한 이후 본격적인 문명을 이루는 기간이 불과 1만년밖에 넘지 않고 우리가 탐사할 수 있는 비행선이 이제 화성을 지나고 있다면, 육신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우주에서 먼지보다도 못한 존재이다. 현미경으로 보는 미시세계이든 허블망원경으로 보는 거시세계이든 우리가 볼수 있는 세계는 극히 일부이고 우리가 볼 수 없는 세계는 미지의 영역에서 어마어마한 존재로 순환하며 움직이고 있다.
동식물에도 나이가 있듯이 별들에도 나이가 있고 지구도 생성된 초기가 있었을 것이다. 지구가 생기기 전에는 다른 별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모든 별들이 있기 전의 시기는 아마도 우주의 태초에 가까울 것이다. 테렌스 맬릭 감독은 태초의 빛인 상태에서 광활한 우주가 펼쳐지며 별들의 초기 생성 과정을 보여주며 태초의 시간부터 얘기를 하고 있다.
2. 세상의 창조 - 우주의 별로부터 지구의 인간까지
<트리 오브 라이프>는 ‘내가 땅에 기초를 놓을 때에 너는 어디 있었느냐?’ 라는 욥기의 38장 4절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이 언급은 현대의 한 가족이 이루어지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이 지구와 우주에서 일어났는지를 간명하게 언급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영화는 미국의 어느 마을 한 가정을 보여주며 여성(잭의 어머니)의 나레이션으로 삶이란 세속적인 것과 은총과 자비의 삶, 곧 영혼의 삶이라는 두가지가 있다고 얘기한다. 이때의 가정은 매우 전형적인 형태의 한 모습이다.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그리고 세 아들이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는 모습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평범한 가정에 가깝다. 영화에 나오는 아버지보다 더 엄하고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란 이들도 있을 것이고, 영화에 나오는 어머니보다 더 자애로운 어머니에게 자란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기억과 좋은 추억, 끔찍한 상처들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어른이 되어서도 오랬동안 가치판단과 인간관계와 삶의 목적에 변수로 작용한다. 어린 시절의 잭은 어른이 되어서도 젊은 시절의 동생을 잃은 후 그 상처와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다. 엄한 아버지를 만났고 동생을 잃은 트라우마는 과거를 직시하고 마음으로부터 풀지 않으면 내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그것을 풀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방식일런지도 모른다. 동생의 죽음은 육신을 지닌 존재의 끝이다. 모든 존재는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 존재의 시작은 동생이 육신으로 탄생했을때일까? 육신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육신을 제어하는 의식이 있고 그 의식을 영혼으로 부를수 있다면 그 영혼이 반드시 육신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진짜 마음을 열고 영화를 바라보는 시작이 될 것이다.
영화가 세속의 삶과 영혼의 삶이라는 두가지 갈래의 길이 있다고 얘기했을 때 이미 감독은 영혼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기를 바란다는 것과 같은 설파를 하고 있는 셈이다. 영혼은 육신처럼 금방 왔다가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상당히 긴 나이를 지닌 존재이고 또한 영혼의 입장에서 우주란 서로 단절된 세계나 대상이 아니라 모든 것이 긴밀히 관계되어 있거나 연결된 존재이다. 그러므로 영화는 아들 혹은 동생의 죽음에 대해 그 육신의 끝을 얘기하기 위해 우주 태초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 진짜 시작을 알면 진짜 끝도 알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지 못한다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것이다. 지구 위에 육신으로 잠시 왔다가 나이가 다 되어 혹은 어느날 사고로 불현 듯 허망하게 사라지는 육신이 그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면 잠시 그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의식하는 영혼의 진짜 탐구를 한번 해보자고 감독은 감히(!) 얘기하고 있다.
영혼의 삶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트리 오브 라이프>가 우주의 시초를 보여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인간이 지구에 오기 전에는 공룡과 같은 다른 동물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동물들이 지구에 나타나기 전에는 식물이 있었을 것이다. 식물이 오기 전에는 바다가 있었을 것이고 대륙이 있었을 것이다. 바다와 대륙이 미처 형성되기 전에는 소용돌이의 지구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지구에 생명 자체가 최초로 나타났을 5억년전의 선캄브리아기의 전의 지구 초기 모습이란 온갖 격변과 가스가 휘몰아치는 행성 덩어리에 불과했다. 실제 지구의 나이는 45억년으로 추정되니 생물이 나타났을 5억년을 뺀 40억년은 그저 가스 덩어리의 행성이었을 뿐이다. 생물이 나타났을 때이든 그 이전이든 지구는 많은 격변으로 인해 대륙지도가 자주 바뀌는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그 지구조차도 45억년전 훨씬 이전에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137억년이 현재 과학이 측정하는 우주의 나이라면 92억년간은 지구 이전의 우주였다. 그 우주는 지구 이외의 태양과 같은 별이 있었을 것이다. 태양이 없었다면 태양계가 없었을 것이고 태양계가 없었더라도 그와 비슷한 이웃의 별이 있었을 것이다. 그 별들의 이전으로 시간을 돌린다면 우주 태초의 모습은 별조차 없는 허공, 기껏해야 가스 덩어리였을 것이다. 그 시작은 태초의 빛으로 불릴 수 있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그 태초의 빛으로부터 시작해서 별들의 탄생, 지구의 생성, 육지와 바다의 변화, 식물과 동물의 탄생, 인간의 탄생을 연이어서 보여준다. 생명이 오기 전의 지구 격변의 모습과 바다에 생물이 등장했을 당시의 모습, 육지로 동식물이 나타나고 공룡이 지구를 주름잡던 시절의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어린 잭과 동생이 놀았을 법한 개울물에서 백악기의 공룡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은 시기적으론 다르되 지구의 역사라는 점에서 단절된 시간이 아니다. 힘센 육식공룡이 약한 공룡을 잡아먹을 수도 있지만 그는 엄연히 의식을 지닌 존재로서 순간순간을 판단하는 존재이다. 그 공룡은 배가 불러서 다른 동물을 안 잡아 먹었을 수도 있고 그 지역의 정찰을 목적으로 다녔을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그 공룡도 경험과 진화의 가능태인 의식의 존재라는 점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태초 우주로부터 별, 지구, 육지와 바다, 식물, 동물에 이어서 현재 가족의 시점까지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은 시간적인 흐름이기도 하면서 단절이 아닌 연속적인 측면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우주의 일대기이다. 이 모든 것은 신의 계획으로 볼 수도 있고 우주의 섭리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것을 의식하는 존재가 분명히 있다는 점이다. 신이 그것을 의식하는 지는 신의 입장이 되어봐야 안다. 그러나 인간이라도 이 우주의 일대기를 어렴풋하게나마 혹은 확연히 의식한다면 그 존재는 이미 이 섭리의 일부로서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3. 영혼의 진화 - 영혼의 존재와 진화의 방식
영화는 미국 한 가정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다가 잭의 동생의 죽음을 알려주며 불현 듯 태초의 우주로 떠난다. 이는 한 영혼이 여기에 오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그 시작부터 보여주는 마음의 여행이자 영혼의 일대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우주와 가족 혹은 다큐와 일상이라는 이분법으로 보는 것은 바로 버려야 할, 가장 위험한 해석의 하나이다. 맬릭 감독의 입장에서 영화는 자신의 철학을 담는 것이고 그것을 공유하기에도 바쁘기에 두가지의 이야기를 하나의 영화에 담을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하나의 이야기만 공감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그가 이야기를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것이 그가 가장 잘할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태초의 우주는 지금의 인간에게 아득한 과거의 시간일런지는 몰라도 우주의 영혼이라는 입장에서 볼때는 자신의 어릴적 태어나던 모습이다. 이 인간조차도 어느 다른 곳에서가 아닌 우주에서 왔기에 시간의 상대적인 차이만 있을뿐 결국 우주의 일원으로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이 우주에서 존재하는 것이란 어떤 것이든 그것을 내가 조금이라도 인식하는 한, 완전히 단절된 존재란 없다. 그 존재가 지구가 생기기 전의 아득히 먼 과거의 것이라도 그 흔적과 역사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준다. 지구가 지금의 크기보다 두배정도 더 컸더라면 나의 삶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나의 수명도 다르고 경험도 달랐을 것이다. 태양의 크기가 지금보다 반이 작았더라면 지구의 공전주기도 달라졌을 것이고 생명들도 다른 환경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수명은 지금보다 훨씬 길거나 훨씬 짧아졌을 것이다. 공간적으로 아무리 멀리 있든, 시간적으로 아득한 과거이든 모든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고 앞으로도 영향을 줄 것이다. 이 우주가 두 동강이 나지 않는다면.
<트리 오브 라이프>는 영혼(혹은 신, 우주라고 봐도 좋다)의 섭리와 진화를 감독 특유의 방식으로 얘기하는 진귀한 영화이다. 미국 현대의 한 가정을 다루기 전에 나타나는 지구 태초의 모습과 동식물의 묘사 등은 그 섭리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주로 다룬다면 가정이 이루어진 이후의 모습은 작은 영혼들이 성장하면서 경험하며 커가는 모습들을 주로 다룬다. 즉 모든 것은 의식의 섭리로 은연중에 작용하고 있지만 신의 대상적 측면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모습은 개개인의 인간들은 짐작만 할뿐 좀처럼 간파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인간 영혼은 섭리의 씨앗이자 일부이고 주체자로 나아가는 단계의 존재이므로 그가 어릴적부터 경험하는 하늘과 바람의 모습, 피부로 느끼는 공기들, 식물들과의 교류, 동물들과의 재롱, 다른 인간들과의 교류 더 나아가 부모들의 모습에서, 사춘기의 성장통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영혼적인 측면에서 많은 것을 수용하고 버리면서 성장해 나아가고 진화를 향해 간다. 또한 그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신의 섭리, 보편적인 다른 말로는 우주의 섭리가 직간접적으로 작용하면서 그의 성장에 기여한다. 아침에 계획했다가 저녁에 바꾸는 변덕쟁이의 인간에게 삶이란 불확실성 투성이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하늘을 보고 자연을 보고 섭리를 조금씩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영혼의 입장에 가까운 삶을 살 때 세계는 무질서와 혼돈보다는 놀랍도록 질서로운 세계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세계는 통제되지 않은 세계이나 자유로운 세계이고 어느 정도 운명적인 길이 있으나 닫혀 있지 않은 열린 가능성의 세계이다. 테렌스 맬릭 감독은 영상의 시점을 통해서 신의 섭리가 작용할 때는 위에서 내려다 보여주며 작은 영혼이 자라면서 자연과 하늘에 경외하는 시점에서는 우러러 보여준다. 지상위의 영혼은 큰 영혼을 조금씩 짐작하면서 진화해 가는 것이다. 그것이 때론 시행착오를 겪고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영혼이 그것을 의식하는 한 그는 나아가는 존재이다.
4. 상처와 화해 -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있다
잭의 어머니는 아들을 잃어버린 후 -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떤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런 사건이 일어난 소소한 이유보다는 그 사건으로 인해 겪게 되는 존재와 그 의식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관객들은 영화에서 사건들의 아주 구체적인 상황이나 아들의 이름은 무엇인지 군대에서 죽었는지 사고로 죽었는지 이런 것들에 너무 치중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 '왜 내게 이런 일이' 라면서 절규한다. 우리는 살면서 착한 사람이 피해를 받거나 나쁜 사람이 잘먹고 잘 살거나 더없이 귀엽고 이쁜 아이들이 일찍 죽거나 하는 등등의 아주 많은 사례들을 만나면서 삶이란 왜이리 부조리한가 하는 생각에 휩싸이곤 한다. 그러나 그 이유를 확연히는 알지 못하더라도 인간들이 이루어 온 지금까지의 긴 역사를 생각한다면 그 개연성이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심증은 가질 수 있다.
인간들을 먹여살리고 키워주는 지구도 나이가 있으므로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 지구와 그 위에 사는 생물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위대한 존재인 태양도 언제가는 불꽃을 다하고 식은 후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다. 모든 것에는 나이가 있다. 그 길고 짧음의 차이만 있을뿐. 하물며 이땅에 잠깐 왔다가는 인간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병으로 죽든 나이가 다 되어 죽든 우리의 육신은 언젠가는 땅으로 돌아간다. 맬릭 감독은 영화에서 목사의 입을 통해 말한다. 베푸는 것도 신이고 거두는 것도 신이다. 오고 가는 것은 모두 섭리의 작용이다.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 자연스럽게 살다가 죽는 것이나 갑자기 죽는 것이나, 자연스러운 이별이나 갑작스러운 이별이나 헤어짐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갑작스런 사건에 인간은 큰 충격을 받기 마련이고 그것에 감정을 쏟아붇는 것이 인간적이고 그렇지 못할 때 비인간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우주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런 사건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지혜는 어렵긴 하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그 사건으로 인해 감정이 응축되거나 상처가 되거나 집착이 될 때 그 이후의 삶은 자유로워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잭은 두가지의 점에서 큰 장애(정신적인 애로)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경험이 하나이고 동생을 잃은 상처가 하나이다. 엄한 아버지로 인한 상처의 경험은 성실하게 다니던 직장에서 힘을 거의 잃게 된 아버지의 회환과 성찰 그리고 본인이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어느 정도 닮게 된 것을 의식하면서 차츰 그 상처가 완화되어 간다. 또하나 매우 큰 상처로 남아있는 동생의 죽음은 그에게 오랜 시간 왜 그 착하디 착한 동생이 죽었으며 그 일이 왜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는지 등에 대한 관념으로 오랬동안 그의 마음에 작용해 왔다. 그는 번듯한 직장과 직업인의 길을 걷고 있지만 정신적인 불안과 상처를 안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런 트라우마는 그에게 앞일에 직간접적으로 장애요소가 된다. 그가 무엇을 하든 그는 자유로워지기 힘든 것이다. 그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대상들과 화해를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자유로워지기 위해 그 대상들을 자유롭에 해 주어야 한다. 보내주어야 한다. 테렌스 맬릭 감독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이 화해와 자유의 장면을 할애하고 있다.
5. 치유와 구원 - 해원은 본성을 향해 간다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곳은 해안가 어디이기도 하고 바다의 근원, 생명의 근원인 물에 가까운 길로 가는 여정일 수도 있고 그 모든 것일수도 있다. 그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살아 있는 존재이기도 하고 이미 죽은 존재이기도 하다. 과거의 나이기도 하고 현재의 나이기도 하다. 과거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웃에 살던 사람들과 친구들, 살게 되며 알게 된 모든 존재들이 모여 있다. 그러므로 그곳은 꿈의 공간이자 환상의 공간이자 마음으로부터 불러낸 기억의 공간이다. 어쩌면 그 셋 중의 하나일수도 있고 그 모든 것일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곳은 영혼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잭은 그곳에서 아버지를 이해하며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를 느낀다. 어릴 때 장난으로 못살게 굴어서 미안했던, 먼저 보낸 동생을 만나 화해를 하고 진심으로 그를 보낸다. 즉, 이 공간은 만남의 공간이자 화해의 공간이다. 만나서 화해하고 진정으로 자유롭게 보내줌으로써 해방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잭의 영혼은 그 영혼에 상처가 되어 내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쉴곳이 없던 곳을 화해와 해원을 통해 자유롭게 만들고 비우게 만든다.
새로운 비움속에 새로운 창조가 생기는 법이다. 우주 속의 공허한 공간에 별이 생긴 것처럼.
6. 에필로그 - 하나로 시작된 것은 하나로 수렴된다
우주(혹은 신, 섭리로 불러도 좋다)는 매우 큰 크기의 별로부터 시작해서 지구, 자연, 식물, 동물, 아주 작은 크기의 인간이라는 사례를 통해 생명의 나무를 통해 다양하게 가지쳐지고, 심고 뿌리고 키워왔지만 그 작은 존재들은 다시 씨앗이 되어 우주의 어딘가로 뿌려질 것이다. 그 뿌려진 존재들은 이전에 배웠던 태초의 모습부터 잠재적으로 배우면서 새로운 성장과 탄생에 이바지 할 것이다.
신의 영혼은 인간의 영혼에는 비할바 없이 큰 존재이지만 같은 영혼의 바다에서 나왔다면 같은 형제인지도 모른다. 아주 이전에 존재했던 큰 존재의 영혼은 자연과 하늘의 작용과 섭리를 통해 우리의 영혼을 일깨우고 본성을 향해 오라고 손짓을 한다. 그 손짓을 먼저 볼수 있는 영혼의 시선이 있다면 그는 머지않아 큰 존재로 다가가 하나가 될 것이다. 이는 <천부경>에서 얘기한 하나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은 하나로 수렴되리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얘기일 것이다.
테렌스 맬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는 우주의 시작과 현재까지의 모습을 영혼의 입장에서 바라본 파노라마이다. 그것은 세포의 미시세계와 별의 거시세계라는 공간을 아우르고 지구의 태초와 인간의 삶이라는 시간의 역사를 아우른다.
이 영화적 시도는 거대하고 무모했을런지는 몰라도 그의 뜻은 주체성과 용기를 지녔으며, 시적이고 아름다운 영상으로도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영화는 단시간에 팔리는 베스트셀러보다는 영혼의 삶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혹은 영상의 영혼적 조짐에 끌린 이들에게 꾸준하게 알려질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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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좀전에 트리오브라이프를 보고,석촌호수를 걷다가 집에왔어요.. 행복해지는길은 사랑뿐이야..사랑이없으면 모든게 흩어지고말지라고 읊조리면서요!!영화보다 더 친절한 글 곱씹으면서 읽습니다^^
Thanks for your wonderful review. Incredible in its scope and scale in dealing with the various subjects, your writing almost reads like Malick's film itself!!^^
One thing I must point out is that 'The Tree of Life' is, after all, an enormously EMOTIONAL and COMMUNICATIVE film. Brahms and Mahler symphonies are a case in point; when I first heard Mahler 4th and Brahms 4th they came across like highly intellectualized, abstract pieces devoid of any emotional elements. But then upon repeated hearings, I soon realized there is no other music more emotionally powerful than these composers
'The Tree of Life' is just like that. You just need to see it more than once to fully appreciate its scope and depth, AND to become on the same wave length as Malick's spiritual world.
I've seen it four times and I am going to see ten more times at least! Each time I see it revealed a new layer of subtlety and nuance that were not obvious from the last viewing.
Here in Seattle, the movie ran almost three months in theaters. I hope it will continue to play in Seoul until I get there in December!
제글에 대한 언급은 과찬이시고 빨리 쓴거라 조금 두서가 없습니다. 다만 브람스와 말러에 대한 내용과 맬릭에 대한 언급은 대부분 공감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트리 오브 라이프>는 다양한 층위와 뉘앙스의 느낌에서 고전처럼 다시 볼수록 새롭게 느껴지는 스타일의 영화임에 분명합니다~
아직도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흑흑. 12월 22일 전에는 꼭 보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별들을 볼 때마다 유한한 존재가 무한과 존재의 탄생과 소멸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헉,,,그때까지 설마 상영할까요?? 여기서는 3달했는데.... 만일 그렇다면 제게도 또다시 희망이 생기는군요!! 근데, 맬릭감독의 차기작품 'Burial' 이 거의 완성됬고, 'Voyage of Time'이라는 IMAX영화도 만들고 있다네요.
저도 아직 영화를..ㅠ.ㅠ정말 서울 상경이라도 해서 보아야 하나 싶습니다.^^
광주극장에 항의라도 할까요. 제발 어떻게.
Hello 하늘나리 & 자유롭지만 고독하다,
If it is still in theaters in Dec. I will invite both of you to the movie!!
안타깝게도 12월까지 상영할것 같진 않습니다. 벌써 극장수가 많이 줄어들었거든요. 다만 Poincare님 귀국하신다면 그때까지 못보신 분들 서로 모여서 이벤트(!)를 해보는게 어떨까 궁리중입니다만^^
율리시즈님 좋은 아이디어네요~~ 불루레이를 다함께 모여서 감상할수 있는 곳이 있나요? 자막이 단지 영어(또는 스페인어)밖에 안나오겠지만...
상영할 수 있는 곳은 몇군데 있습니다. 비용이 거의 안드는 곳부터 조금 드는 곳까지^^ 자막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차라리 일찍 극장상영끝나고 블루레이 타이틀이 바로 나오면 좋으련만.
Poincare님~영화 보여주신다는 거죠?ㅋ말씀만 들어도 넘넘 감사해요~~**정말 이 영화 꼭 봐야할 듯해요~^^
저는 11월 서울 상경 계획이 있으니 그때 기회를 봐서라도~꼬옥~ㅎㅎ
참, 하늘나리님 광주극장에 왜 안들어는지 한번 여쭤볼게요~^^
자유롭지만 고독하다 님,
12월20일 이후에도 서울에서 극장상영하면 보여드릴께요~ 이곳 씨애틀에서는 6월 17일부터 시작해서 지난달 중순까지, 그러니까 약 4달을 상영했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둘, 그리고 저처럼 한번, 두번 계속보는이들이 몰려들렀지요. 만일 12월전에 종영하게되면 율리시즈님과 함께 가지고 있는 불루레이를 큰화면에 틀어드리는 방향으로 (12/19-25중에 하루 골라서) ... 여러말 들으실거 없습니다. 그냥 Seeing is Believing입니다!
여러번 알려드렸는데요, 이 영화에는 말러, 브람스, 슈만, 스메타나, 베를리오즈, 고레츠키, 풀렝크둥의 고전음악이 많이 나옵니다.
제가 좋아하는 레스피기의 옛풍의 춤곡과 아리아도 나옵니다 ㅋㅋ
참고로 제가 가지고가는 불루레이는 여러 평론가들로부터 - 영화자체를 떠나서 - 금년도 최고의 디스크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즉, 화질과 음질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얘기. 프로젝터만 좋으면 왠만한 극장에서 보는것보다 낫습니다.
이 영화, 디스크를 구해서
율리시즈님의 설명과 함께 감상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음감회의 성격으로, 영화를 같이 보면 넘 좋겠네요.
가능할까요 ?
ㅇ ㅎㅎ. 가능합니다. 제가 이 영화 여러 포맷의 고화질 버전으로 소장하고 있어요. 영화번개 한번 할까요?^.^
@율리시즈 옙... 꼭 그래요
장소 없음 집에서 모여 같이 봐도 좋고
그러시지요. 시간 한번 만들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