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또래의 장애유아 부모들은 대부분 추억의 코미디 "봉숭아 학당"을 기억할 것이다. 90년대로 기억이 된다. 나를 포함해 내가 가르쳤던 특수학교의 아동들이 무척이나 즐거워하며 본 프로그램이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다음날이면 아이들이 어김없이 TV에서 본 것을 하자고 덤벼들었다. 그러면 난 어쩔 수 없이 김형곤이나, 김한국이나 임하룡씨가 맡았던 선생 역할을 하여야 했고, 아이들은 서로 "맹구" 흉내를 내려고 야단들이었다.
맹구의 특징은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수업시간의 대표적인 그의 특징은 선생님이 질문을 하였을 때 다른 아이들을 깔아뭉개고, 때리고, 그것도 모자라 책상위로 올라가서 오른 손을 빙빙빙 돌리면서 높이 들어 아무도 자기 보다 먼저 대답할 수 없게 해놓고 나서, 결국 그의 그러한 오버페이스에 밀린 선생님의 지적을 받으면 청산유수로 이어지는 그의 헛소리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장애유아교육에 있어서 표면적으로 가장 탁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언어치료"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아이가 단지 말만 늦다고 생각되거나 자폐성, 혹은 기타의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부모들이 언어치료에 기를 쓰고 달려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부모들의 노력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언어란 인간과 다른 무엇과 구별될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며, 그 사람의 성취수준을 표면적이고 즉각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장애 진단에는 필수적으로 언어능력에 대한 판단이 포함된다. 부모들도 아이가 말이 늦다면 다른 모든 부분에서 늦된다고 판단하기가 쉽다. 또는 다른 부분은 관심이 없고 오직 말만 잘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 그렇게 때문에 부모들은 언어치료에 매우 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더욱 뒷받침하는 것은 언어 다음에 이어지는 "치료"라는 용어에 대한 심리적인 기대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치료라는 용어의 사용은 기본적으로 아동을 환자로 가정하여야 가능하며 그렇기에 아동은 병적인 존재이며, 원인을 제공한 병인(病因)을 제거한다면 완치가 가능하다는 통상적인 개념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의 내포가 주는 장점에 따라 치료라는 용어가 장애아동과 관련된 분야에 점차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마치 치료라는 용어가 없이는 장애아동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느낌마저도 든다.
언어치료에서 치료적인 부분만을 생각해 본다면 몇 가지 증상에서 치료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폐아동의 경우처럼 언어의 문제가 비교적 항구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경우에 그들에게 실시하는 치료적 행위(?)가 과연 다른 행위와 구별될 수 있는 독특한 행위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아동에 대한 언어치료와 언어교육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이며 치료와 교육의 방법상의 차이는 존재하는 것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론적으로 그 차이가 존재할지라도 아이에게 적용하는 것에서 또 그 결과에서 특별한 구별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인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언어치료면 어떻고 언어교육이면 어떠랴. 사실 그 자체는 아동과 부모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볼일이다. 현재 언어치료 및 온갖 장애관련 조기교육 프로그램은 아무런 법적인 제재도 필요로 하지 않는 그야말로 무풍지대이다. 아무나 마음만 있으면 실시할 수 있다. 이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부모들의 욕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수요자는 엄청난데 공급이 딸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의 괴물 같은 손놀림에 의하여 장애아동을 위한 각종 치료행위에 대한 비용이 제 멋대로다. 국가의 지원과 통제가 절실히 필요한 부분이다. 개인의 계약자유를 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독과점이나 담합 등은 엄격히 법률로 규제되고 있다.
현재 장애유아의 치료(?) 혹은 교육은 치료나 교육의 근본 이념보다는 시장경제의 논리로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는 장애인 교육과 복지에서 가장 중요한 최적기에 해야할 자신의 중차대한 의무를 시장 상인에게 맡겨버리고 있는 느낌이다. 교육과 관련된 법이든, 의료와 관련된 법이든, 혹은 경제와 관련된 법이든 장애유아와 관련하여 국가적으로 어떠한 형태든 규제와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하여 시장논리에 맡겨져 비용부분에서 엄청난 부담을 겪고 있는 장애부모들에 대한 부담감이 해소되어야 한다.
그러한 일의 수행은 또한 나처럼 언어치료 비용을 한 타임에 5만원 받는 사람을 사기꾼으로 몰아붙이는 편협된(?) 혹은 정상적인 내 시각을 개선하거나 격려하는 일도 될 것이다.
각종 치료라는 행위가 유행처럼 조기교육에 번지는 현상을 막을 수는 없다. 그만큼 장애아동의 교육에 사회적인 관심이 증가된 것이고, 아이들에게 기회가 확대된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들이 마치 "맹구"의 설쳐댐과 같다면 이를 무작정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