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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론 85
요한계시록 21:22-27
어린 양이 그 성전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의 하나가 요한 사도에게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재앙을 다 보여준 다음에 하늘의 예루살렘을 보여주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말씀드렸다. 같은 천사가 보여주었다는 것은 심판과 구원이 하나라는 의미이다. 즉 묵시의 것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차원에서 전후 순서를 가지고 나열된 것뿐이다. 그렇다면 일곱 대접 재앙은 세상의 이방인을 위한 것이고 구원은 성도를 위한 것으로 구분해서 볼 문제가 아니라 성도의 모습을 재앙과 환난에서 나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보여주시는 차원이다. 거룩한 성의 모습으로 교회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말씀하였다면 이제 예루살렘 성의 내부를 보여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 안에 있는가를 말씀한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22절). 성전의 의미는 성막에서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광야에서 시내산 언약을 통해 율법과 성막을 주셨다. 그리고 그 성막에 제사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희생 제사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드러내셨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텐트를 치고 이스라엘과 함께 사신다는 것을 이렇게 나타내셨다.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향해 감에 있어서 이동이 쉽도록 주어진 것이 성막이었다면 약속의 땅에서는 성전을 허락하셨다. 이 성막, 성전은 창조 언약 안에서 에덴이라고 울타리를 세워 성전의 의미로 나타내셨다. 이는 곧 하늘 성전을 창조 언약으로 계시하신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이 모든 것이 모형과 그림자라고 하였다.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히 8:5)
그 성막, 성전의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되었다는 것이 이렇게 드러난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19-21)
그래서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라고 말씀한다. 직역하면 ‘그 어린 양이 그 성전이라’는 말로 구약에서 말씀한 그 어린 양이 성막과 성전으로 보여주신 그 성전의 본체라는 뜻이다. 더 이상 건물로서의 성전은 의미가 없다.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완성되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유대인들이 성전을 중심으로 행한 율법적 행위는 이제 무너졌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무너뜨리신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자기 의를 내세우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살아 새 생명의 존재가 되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우리가 바로 신령한 집으로 지어져 가는 성전이 되는 동시에 그 성전의 제사장으로 완성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가 성전으로 완성된 것이다. 그러기에 요한 사도는 거룩한 예루살렘 성에서 이 땅의 건물 성전을 찾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 상태 그것이 바로 참된 성전이기 때문이다. 결국 성전 중심의 율법적 행위가 날마다 죽고 오직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상태에 있는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라는 뜻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23절).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라는 말씀은 구약에서 말씀한 ‘그 해, 그 달’의 비침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이렇게 예언하였다.
그 때에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라(사 24:23)
“등불”이란 헬라어로 ‘뤼크노스’로 ‘빛, 등불’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등잔대’(1:13에서 우리 성경에서 “촛대”라고 번역한)의 ‘뤼크니아’라는 단어가 왔다. 즉 창조 언약을 통해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창 1:14)라고 하신 광명체의 역할, 성막의 성소에 두었던 등잔대의 역할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표현한 것이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결국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빛이 되게 하시는 이 일을 위해 창조하시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성막에 대한 계시를 주셨던 것이다. 그래서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24절)라고 말씀한다. “만국”이란 헬라어 ‘에드노스’는 ‘국민, 민족, 백성, 이방인’이라는 뜻인데 스스로 땅의 왕으로 살았던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 은혜를 입은 존재를 지칭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를 의미한다. 이렇게 보아야 하는 이유는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라는 표현에서 밝혀진다. 헬라어 ‘페로’는 ‘가져오다, 운반하다, 옮기다, 인도하다’라는 뜻인데 이 단어가 성경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페로)(요 21:18)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페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1)
이 외에도 맹인이나 귀신 들린 자, 중풍병자, 즉 자신이 스스로 나올 수 없어 누군가에 의해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는 것에 대해 사용되는 단어이다(막 1:32, 2:3, 7:32, 8:22, 9:17, 19 등). 배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바람에 의해 가는 대로 쫓겨간다는 표현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행 27:15, 17). 한마디로 자의적으로 행하는 상태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이끌림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령에 의해 이끌려 간 상태를 묘사한다(행 4:34, 37, 5:2 등).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페로)(요 12:24)
또한 이 단어는 죽음과 관련하여 열매 맺는 것으로 표현하였는데(막 4:8, 요 15:2, 4 등)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 죽음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본문 말씀은 단순히 문자적으로 보고 자기 영광으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존재가 된 것은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맺은 성령의 열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왕으로 살았던 땅적 존재요 이방인들이 빛 가운데로 다니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자기 영광이 되어 거룩한 예루살렘 성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25절). 성문이란 낮에는 열고 밤에는 닫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성에는 밤이 없기에 닫을 필요가 없다. 이 말씀 역시 구약에서 이미 예언된 말씀의 성취로 선언한다.
11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네게로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가져오며 그들의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사 60:11, 19-20)
유다의 회복에 대해 말씀하신 것인데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라는 표현은 적에 대하여 대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교회요 성도에게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기에 항상 낮의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밤이 없음이라”라는 말씀은 여섯 번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창 1:5, 8, 13, 19, 23, 31)라는 현상이 7일에 완성되어 안식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창조 언약으로 말씀하셨던 안식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하심으로 온전히 성취되어 언제나 진리가 활짝 열린 가운데 있는 상태를 나타낸 것이다.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26-27절). “만국의 영광과 존귀”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동참 되어 얻어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도 “그리로 들어가겠고”를 ‘페로’로 쓰고 있다. 거기에는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용납될 수 없다. “속된 것”(헬, ‘코이노스’)이란 ‘공동의, 보통의, 부정한, 불결한’이라는 뜻이고, “가증한 일”이란 ‘브델뤼그마’로 ‘가증한 것, 몹시 미운 것, 우상’을 의미하며, “거짓말”이란 ‘프슈도스’는 ‘거짓, 허위’라는 뜻으로 ‘알레데이아’(진리)와 반대되는 표현으로 비진리를 의미한다. 즉 이 땅에서 공동의 통용되는 보통의 것은 다 우상에 불과한 것이며 그것은 곧 비진리라는 뜻이다.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5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고후 11:3-5)
바울 사도뿐만 아니라 오늘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요 성도 역시 십자가 은혜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 제거되어 부족함이 조금도 없는 상태가 되었고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되었다. 그 이름이 된 자가 지금 하나님 왕국을 사는 자이다(20240721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