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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는 장애여성공감 창립 15주년을 맞아 ‘장애여성학교’에서 진행하는 장애와 여성주의반 수업 내용 후기를 매 회차 연재합니다. 현재 장애여성운동의 지형을 분석하고 주요 담론과 실천 활동을 통해 일구어낸 성과를 공유하며 더불어 전망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_편집자 주
장애여성공감에서 기획하고 진행하는 장애여성학교가 올해 4회째를 맞이했다. 다른 수업들과 함께 여성주의반, 장애여성운동사반 등을 계속 진행해왔는데 올해는 장애와 여성주의반 수업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 기획 단계에서 유독 고민이 많았다.
그동안 여성주의에 대한 입문과정의 컨셉으로 여성주의에 대해 낯설어하는 참여자들과 함께 공부하며 거리를 좁혀보고 장애여성 운동의 주요 이슈와 역사를 공유하는 자리로 만들어왔다. 소규모 그룹에서 함께 글을 읽고, 서로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그렇듯이 그런 시간을 통해 서로 배우며 나의 삶과 여성주의가 만나는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지점에 멈춰 있고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답답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운동의 역사와 현재의 고민을 바탕으로 운동의 미래를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수업을 통해 장애여성공감의 이슈와 활동 내용을 공유하는 것은 기본이겠지만, 장애와 여성주의반을 진행하면서 장애여성공감이 운동을 해오면서 놓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운동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 누구와 더 만나고 연대를 해야 할지, 그런 미래지향적인 관점으로 커리큘럼을 구성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6월 17일 1강은 ‘장애여성운동에 왜 여성주의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했다.
첫 번째 강의는 나영정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이 맡았다. 나 연구원은 먼저 강좌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 뒤 아직 장애인운동과 적극적으로 만나거나 연대하지 못하고 있지만, HIV/AIDS 감염인이나 트랜스젠더 운동에서는 이미 ‘장애’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운동을 오래 하면 아무래도 정체가 되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새로운 상상력으로 활동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번 장애와 여성주의반 커리큘럼 구성의 의미를 전달했다.
장애여성공감은 올해 창립 15주년을 맞이한다. 나영정 연구원은 장애여성운동을 한 지 15년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집단이 ‘장애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15년을 살아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15년 동안 집단적으로 경험을 계속 이야기해왔고 세월이 흐르면서 고민해온 내용이 쌓이고 그만큼 운동의 의제와 의식도 성장해왔으며 그런 내용을 역사로 잘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시간인 만큼 나 연구원은 여성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이야기하면서 제대로 여성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차원에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여성주의는 하나의 세계관 일 수 있으며 동시에 선언이자 체계적인 사상이기도 하다. 또 실천적인 학문이면서 자기 내면의 성차별주의나 차별에 대한 성찰을 필요로 하므로 멈추거나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와 세계의 관계를 재조정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연구원은 “인종 없이 젠더는 작동하지 않으며, 젠더 없이 인종은 구성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 문장에서 ‘인종’ 대신 ‘장애’를 넣어도 유효하다고 했다. 남/녀 화장실이 있고 그 사이에 성별 구분 없이 ‘장애인 화장실’이 있는 것 자체가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장애인을 젠더가 없는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장애인의 젠더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력과 지배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 서로의 경험을 통해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 소수자들의 존재와 저항을 통해서 드디어 알게 된 내용을 좀 더 우리의 언어로 설명해보는 것. 이런 목표가 있는 장애와 여성주의반 수업이 끝날 때쯤에는 장애여성운동의 전망을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그려볼 수 있기를 바란다.
<장애와 여성주의반 강의 순서> 1강 다시, 질문하기 : 장애여성운동에 왜 여성주의가 필요한가? - 나영정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3강 장애여성운동의 키워드와 담론 : 이슈와 연결되는 제도, 놓치고 있는 관점 - 진경 (장애여성공감)
4강 장애여성 반성폭력운동의 쟁점과 고민지점 -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5강 가족구성의 새로운 서사 : 장애여성과 가족구성권 ① - 나영정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6강 가족구성의 새로운 서사 : 장애여성과 가족구성권 ② - 나영정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7강 반성매매 운동의 쟁점과 성판매여성의 사회적 위치 - 보리(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8강 장애인 성서비스와 성매매 : 서비스와 권리 담론을 넘어서 -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9강 낙인, 혐오, 만성질병을 공유하기 : HIV/AIDS 감염인과 장애인 ① - 윤가브리엘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10강 낙인, 혐오, 만성질병을 공유하기 : HIV/AIDS 감염인과 장애인 ② -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11강 비정상적인 몸, 몸에 대한 인식, 몸의 변형을 고민하기 : 트랜스젠더와 장애인 ① - 승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12강 비정상적인 몸, 몸에 대한 인식, 몸의 변형을 고민하기 : 트랜스젠더와 장애인 ② - 승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13강 활동보조 받는 삶을 정치화하기 : 장애여성과 활동보조 - 김상(장애여성공감)
14강 어쩌면 도돌이표 같은 이야기: 장애여성의 주체성, 자기결정권, 당사자성 -워크샵
15강 필요한 건 상상력과 실천 : 장애여성운동의 밑그림 그리기 - 나영정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