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22일(목)
여섯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폭죽 소리가 또 들린다. 커튼을 젖히니 하늘이 잔뜩 흐리다. 비가 내리고 있다.
오전에 루쉰 공원에 다녀오고 오후엔 항저우로 갈 계획이다. 택시를 타고 루쉰 공원으로 간다. 이번에는 별 하나 등급의 기사다. 18 위안이 나왔다.
쓰촨베이루(四川北路) 루쉰 기념관 입구에 세워준다. 루쉰(노신(魯迅))이 누구인가? 찬이는 아직 잘 모른다. 5.4 운동은 중학교 2학년 사회 과정에서 나온다. 중국 개화기의 위대한 사상가라고 알려준다. 예전에 <아큐정전>과 <광인일기> 등 그의 작품을 읽었는데도 내용이 가물가물하다. 다시 돌아가면 읽어봐야겠다.
역시 공원 주인은 노인들이다. 아침부터 운동을 하고 산책을 하거나 담화를 나누고 있다. 새 소리 대신 아침부터 폭죽 소리가 쩌렁 쩌렁 울린다. 소리 반향으로 인하여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홍커우 축구장의 존재가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가 루쉰 공원을 찾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윤봉길 의사의 거사 장소이기 때문이다. 입구에 세워진 공원 안내문에는 1896년 사격장으로부터 시작된 홍커우(虹口) 공원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공원은 처음엔 중국인 출입 금지되었고, 후에 인공 호수를 만들고 루쉰 공원으로 이름을 바뀌었다. 게다가 일본과 우정을 위하여 시계탑을 세우고 벚꽃 단지를 조성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윤봉길 의사의 거사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단, 매화 동산[梅園]이 있어 국제적으로 유명한 곳이라는 구절만 있을 뿐이다. 안내판 영문 표기의 오기를 하나만 지적한다. 영묘(靈廟)를 뜻하는 'mausoleum'을 ‘nausoleum'으로 적고 있다. 속히 고쳐지길 바란다.
상하이에 가면 홍구 공원에 윤봉길 기념관이 있다는 얘기만 듣고 방문한 경우 안내판으로는 찾을 방법이 없다. 중일우호를 위한 시계탑 표지판만 눈에 띈다. 도대체 무엇인가 싶어 그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찻집에는 타이완 차를 음미하는 노인들로 가득하고, 아침부터 장기를 두고 있는 노인들도 보인다. 중국 장기알에는 왕이 없다. 또한 장기알의 크기가 모두 같다. 대장이나 졸이나 평등하다는 생각을 반영하여 장기판을 변형시킨 모양이다. 사교 댄스 팀은 서로 붙들고 돌리기 시작한다. 해바라기 영어마을(Sunflower English Village)도 보인다. <중일청년세대우호(中日靑年世代友好)>라는 글씨가 새겨진 고장 난 시계탑이 보인다. 우호 시계가 아니라 조선과 중국 침략에 대하여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런 기념물은 세우지 말았어야 하는 건 아닌가. 1932년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아는가?
시계탑 구석에 한자의 <中>과 <日>을 겹쳐서 도안하고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도안을 보니 더욱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곳에서 한국이나 조선은 없는 것이다.
발길을 돌리다보니 공원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메타 세퀘이어 가로수가 쭉 뻗어있는 좁은 길이다. 길거리 야채 노점이 펼쳐 있다. 죽순과 시금치, 콜리 플라워 등을 팔고 있다. 건너편 작은 가게에서 김이 모락 모락난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만두집이다. 하나에 7각하는 고기만두(鮮肉包子)를 4개 샀다.
아침 대용이다. 어제 먹었던 작은 만두보다 맛이 훨씬 좋다. 찜통에서 금방 꺼내준 것이라 잘못하면 입에 데기 쉽다. 공원을 구경하고 더 사 먹기로 하고 다시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루쉰 기념관에 들어간다. 입장료가 8위안이다. 학생은 4위안인데, 찬이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건물이 아주 깨끗하고 고급스럽다. 외국어 안내 팸플릿에는 영문과 일본어로만 되어 있다. 한글 안내문이 빠져서 아쉽다. 한국 사람들은 잘 찾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루쉰의 생애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아주 훌륭한 자료와 전시를 해놓고 있다. 떠들썩한 관광객을 찾을 수 없고 진지하게 뭔가 적으면서 들여다보는 학구파 탐방객만 보일 뿐이다. 낮고 은은한 조명으로 제대로 된 전시장이다.
루쉰의 생애에 대해 좀더 연구하고 그의 책을 읽고 사상에 대한 이해를 한 뒤에 둘러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전시관이다. 세계 각국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을 붙여놓은 벽에 우리 나라에 번역된 책들도 많이 보인다.
고등학생 이상 방문하면 꼭 들러볼 곳이다.
다리가 아프면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창에 앉아 차를 한 잔 마셔도 운치가 그윽하겠다.
한마디로 루쉰 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어진 기념관이다. 벅찬 감동마저 일으키게 한다.
여행을 마치고 최근에 루쉰과 쉬광핑[허광평(許廣平)]의 편지를 묶은 <루쉰의 편지>를 읽어보았다. 전통적 혼인 관계에서 찾을 수 없었던 허전함을 쉬광핑이 나타남으로 채워갔던 루쉰의 삶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혁명의 시대를 살아갔던 두 남녀의 얘기는 개인의 연서조차 사회적인 가치를 지니고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 여행 기간 : 2007년 2월 20일(화)-2007년 2월 27(화) 7박 8일
* 여행 장소 : 인천-중국(상하이-항저우-쑤저우-상하이)-인천
* 누구랑 : 연오랑 세오녀 찬이(만 11세) 가족
* 환전 : 1 위안=121원
* 연오랑의 다른 여행기는 앙코르사람들과의 만남http://cafe.daum.net/meetangkor 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