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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세기 語文政策論 |
閔 賢 植
한글 專用論者들과 國漢混用論者들은 그동안 상호 비판적 운동만 하는 단체로 국민에게 비쳐져 왔다. 그러나 양측은 愛國心이라는 공통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漢字 및 漢文敎育의 必要性과 强化를 주장하는 점에서는 서로 一致한다. 단지 그 시기를 언제부터 하느냐로 의견이 불일치할 뿐이다. 초등학교부터 하자는 國漢混用論者들과 중학교 때부터 해도 된다는 한글專用論者들의 주장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人才 養成과 國家競爭力 向上의 차원에서 이 부분만을 대화로 집중 협의하여 '漢字敎育 統一案'을 국민 앞에 내놓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제 새천년을 맞아 양측은 그동안 이 문제를 풀려고 해 왔던 국민 대상의 계몽 운동적 접근 방법을 마감하고 대화 협의적 접근으로 문제를 풀도록 해야 하며 정부는 이를 위한 시한부 임시 협의체 같은 것을 구성하여 정책적 결론을 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1. 半公用語化(반공용어화)한 英語
1998년에 英語 公用語(공용어) 문제가 갑자기 소설가 복거일씨에 의해 주장되고 조선일보를 통해 논쟁이 일어난 바 있다. 그 결과 젊은층들이 주 사용자인 인터넷에서의 찬반 토론에 의하면 英語 公用語 찬성이 45%쯤 된다고 할 정도로 세대간의 언어의식도 매우 개방적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공용어라는 것은 원래 식민지 국가였거나 多言語國家(다언어국가)일 경우 국가 對內的(대내적)으로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위해 公用語를 정하는 것이지 우리 나라와 같은 單一言語國家(단일언어국가)에서 다른 종족의 언어인 英語 같은 것을 公用語로 새롭게 정할 필요는 없다. 하루아침에 英語를 公用語로 추가해 단일 언어 국가를 二重言語國家(이중언어국가)로 만들겠다는 발상이야말로 민족 正體性(정체성)을 훼손시키는 발상이건만 이러한 사실을 沒覺(몰각)하는 한국 知性界(지성계)의 방향 없는 세계화 의식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英語 公用語론을 주장하는 분들도 나름대로 주로 국제 경쟁력 강화라는 애국적 논리를 깔고 있는 경우가 많아 그 衷情(충정)은 이해하지만 英語 公用語론과 英語 敎育 강화론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 이를 신중히 구별하여 접근할 일이라고 본다.
이처럼 英語 公用語 논쟁이 새삼 벌어졌지만 1997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부터 英語敎育을 의무화한 것은 母國語敎育보다 초등학교 입학 후 불과 2년 늦은 정도에 불과해 英語가 우리에게 이미 半公用語가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모국어보다 2년 정도 늦은 敎育이라면 그것이 거의 公用語 敎育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리고 일부 계층에서는 아예 유치원을 英語로만 하는 유치원에 보내고 있고 그런 학원이 성업 중이라 하며, 3-4세부터 英語 동화 들려주기 등으로 모국어 정규敎育보다 앞서서 독자적 早期英語敎育을 하고 있어 그런 이들에게는 英語가 第一言語(제일언어), 제일 公用語화하여 가고 있다고도 하겠다.
그런데 이런 언어 정책상의 심각성이 이미 國民敎育에서는 오래 전부터 漢字敎育의 縮小로 나타나고 있건만 이에 대해서는 지식인들이나 국어국문학 전공자들이나 모두 무감각해져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특히 대학에 漢文學科가 분리 설치되고 부터는 국어국문학 전공자들 중에도 漢字敎育에 대한 공감이 없고 겨우 漢文學 전공자들이나 그 필요성을 외치는 형국이니 그 전공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專攻 利己主義로 비쳐져 외로운 목소리만 내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일반 국민들이 漢字敎育의 필요성을 외치고 私敎育에 의존하는 현실이다.
2. 漢字 政策의 歷史
우리 나라의 漢字 어문정책은 해방 후에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1948. 10. 9)이 "대한민국의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 동안 필요한 때에는 漢字를 倂用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한글전용을 원칙으로 하고 당분간 漢字混用을 인정하는 것으로 기본 정책을 삼아 왔다.
특히 1970년부터 한글전용을 강화하면서 초등학교의 漢字敎育이 사라졌으며 중고교에서는 국어 교과서에 漢字를 괄호에 넣는 國漢倂用體(국한병용체)로 지금껏 이어오고 있고 漢文敎育은 중학교부터 漢文 과목이라는 별도의 과목으로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1995년부터 시행된 6차 敎育과정부터는 漢文 과목도 환경, 컴퓨터와 같은 선택과목 범주에 묶여 있는데 일선 학교들이 漢文을 선택하지 않는 추세라서 서서히 소멸 추세이며 기존 漢文 교사 처리 문제로 편의상 漢文을 선택해 주도록 잠정적으로 권장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교사의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과목이라면 이미 그 과목은 退出(퇴출) 명령이 내려진 상태로 보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1998년 12월에 공포된 제7차 敎育과정에서는 漢文 과목을 고2 때에서야 가르치도록 명문화하여 더욱 위축되게 되었다.
이런 사태에 이르기까지 한글전용과 漢字혼용의 논쟁은 해방 후 50년 동안 되풀이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논쟁 속에서도 어문정책 당국인 교육부와 문화부는 ' (1)한글전용 원칙은 지속한다, (2) 漢字나 漢文敎育은 중학교부터 시행한다'라는 일관된 정책을 견지해 오고 있어 대중들은 대체로 한글專用論者(이하 한글론)들의 편을 들어주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에 漢字混用論者(이하 국한론)들은 漢字混用을 달성하고자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1998년에는 혼용을 지지하는 국회의원들이 漢字混用을 청원하기도 하였고 1999년 초에도 문화부의 漢字倂用論 발표를 둘러싸고 문자 논쟁이 再燃(재연)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동안의 숱한 논쟁들을 보면 쟁점이 흐려져서 진정한 결론을 도출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양측의 감정 대립으로 치달은 경우가 많았다. 가령 1998년 10월 24일에 敎育방송(EBS)의 '爛商討論'(난상토론)이라는 토론 프로그램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는데 여전히 토론자들이나 청중 참여자들의 주장 중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나타난다.
(1) 말과 글의 문제를 혼동하는 주장이 많다. 우리말에 漢字語가 있다는 사실과 그것을 한글로 적을 수도 있고 漢字로 적을 수도 있는데 이 점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한글론자들 중에는 한글과 고유어를 혼동하거나 고유어는 무조건 좋고 漢字語는 무조건 나쁜 양 극단론으로 흐르는 논의가 자주 나타난다. 고유어이든 漢字語이든 모두 조상들이 남긴 국어 유산으로서 그것이 쉬운 말이든 어려운 말이든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언어문화재임을 명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본다. 반면에 국한론자들의 주장에서는 漢字語라서 漢字로 적어야 하는 주장인 양 오해를 주는 경우가 나타난다.
(2) 한글론자들도 漢字 및 漢文敎育을 중학교부터는 해야 한다고 인정하거나 현재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므로 양파의 논쟁은 앞으로 漢字敎育을 중학교부터 하느냐 초등학교부터 하느냐에 대해서만, 즉 漢字敎育 시행 학년 문제로만 제한해야 논쟁을 효율적으로 이끌 수 있다.
특히 漢字혼용파도 한글의 우수함은 인정하므로 논쟁 중에 한글이 우수해서 한글만으로 모두 적을 수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원론적 주장은 논의 초점을 흐리는 것이 되므로 그런 발언은 아예 금지시켜야 한다.
요컨대 앞으로의 문자 정책 논쟁에서는 한글이 우수하다는 원론적 주장이나 듣자는 것이 아니고 어느 학년부터 漢字敎育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냐의 문제로만 단일 의제로 집중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주무 부서인 국어정책과는 시한부 임시 협의체를 구성하고 양측의 의견 절충을 보아 통일된 의견을 국민 앞에 내놓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도 그동안의 한글전용과 국한혼용의 다양한 주장들은 여기서 다루지 않고 가급적 漢字 敎育의 시기 문제와 관련하여 21 세기 국제경쟁력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우리의 인재 양성을 위한 국민 敎育을 위해 초등학교 漢字敎育의 당위성 여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3. 漢字敎育의 실태
우리들의 漢字어 이해 상태를 보면 최근에 여러 흥미 있는 현상이 관찰된다. 가령 다음 몇 가지를 주목하자.
(1) 같은 漢字어로 오해하기 쉬운 類似(유사) 混同(혼동) 漢字語들이 많은데 한글 세대들은 이들에 대해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門外漢(문외한)-無賴漢(무뢰한)'을 발음상 혼동하거나 '手荷物(수하물)-小貨物(소화물)'을 '수화물'로 혼용하는 것과 같은 혼동 현상이 있다. 다음 예도 그런 예이다. 籌備 - 準備 擊滅 - 輕蔑 開發 - 啓發 體制 - 體裁 決裁 - 決濟 意外 - 以外 物議 - 無理 異義 - 疑意 - 意義 不汗黨 - 浮浪兒 - 浮浪黨* - 不良輩 再現 - 再演 -再燃 '垂直線(수직선)-水平線(수평선)'의 '수'를 같은 漢字어로 오해한다든가, '抒情詩(서정시)-敍事詩(서사시)'의 '서'를 같은 漢字어로 혼동하는 것과 같은 현상도 마찬가지다.
(2) '전자파'(①電磁波 electromagnetic wave, ②電子波 electron wave) 와 같은 동음이의어를 구별하지 않고 대충 이해하는 현상이 있다. 같은 예로 포항제철에 붙어 있는 간판 '철강보국'의 보국은 '保國, 報國, 輔國' 중에 어느 것인지 '국기를 흔들다'의 '국기'는 '國旗, 國基, 國紀' 중에 어느 것인지(박광민 1999) 불문하고 대충 막연한 지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한글전용이 확산되면서 漢字 동음이의어들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지고 그 결과 漢字 동음이의어들에 대해 동일어의 다의어인 양 착각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령 '사이버'는 흔히 '가상'이라 번역하는데 漢字어로는 어느 것인가? '가상'은 '假想, 假象, 假像'으로 즉 동음이의어로 사전들에 올려 있지만 그 의미차의 변별이 쉽지 않아 혼동을 주는 데다 漢字를 모르게 되다 보니 漢字어로 구별하던 변별성이 무의미해지게 되어 이들을 한 단어의 다의어인 양 착각하는 다의어화 현상이 한글 세대들에서 나타나게 된다. 다음 예들도 그런 예들이다. 수정: 修整, 修訂, 修正 부인: 婦人, 夫人 교정: 矯正, 校正, 校訂 이상: 異常, 異狀, 異象 대가: 對價, 代價 공용: 供用, 共用, 公用 조정: 調停, 調整 음덕: 蔭德, 陰德 송공: 誦功, 頌功 선도: 先導, 善導 유용: 有用, 流用 체감: 體感, 遞減
이들은 원래 漢字어 자체로서도 의미 변별이 명확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어 복잡한 양상인데 한글 세대들에게는 그나마 변별되던 것도 거의 변별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3) 생활 주변에서 한글로만 적으면 이해가 안 되는 경우의 예가 많다. 역사 유적물의 漢字, 漢文 기록물, 역사뿐만 아니라 각종 학문 분야의 漢字 용어를 이해하려면 漢字 어원을 알고 있는 것이 유용하다. 가령 '유관순 열사 사우 관리 사무소'의 '사우'는 '祠宇'인데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어렵다(박광민 1999). 전술한 '전자파'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전문용어가 대개 漢字어인데 괄호 안에 漢字 병기조차 하지 않아 학생들의 어휘 이해에 몰이해와 오해의 고통을 주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혼란이 잉태되고 있는 현재의 漢字敎育 실태는 어떠한지 살펴보도록 한다.
3.1. 초등학교 漢字敎育
초등학교에서는 漢字 및 漢文敎育이 공식적으로는 없다. 그러나 교장 裁量(재량)으로 운영하는 '재량' 시간이라는 것이 있어 이것을 이용해 교장 재량으로 漢字나 태권도, 컴퓨터 敎育을 한다. 그러나 학교별 재량이다 보니 漢字敎育을 하더라도 학교마다 교재, 교수법 등의 차이가 백인백색이며 그 결과 비정규적, 비체계적, 무목적적 敎育이 되고 있다. 어느 학교는 교장의 의욕으로 明心寶鑑(명심보감)을 가르치고, 어느 학교는 특정 학습지 회사의 漢字 학습지를 하고, 어느 학교는 한 학기 동안 수십 개 漢字어를 공책에 연습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등 천태만상이다. 또한 漢字敎育을 한다지만 漢字의 철저한 새김 암송 학습과 같은 기초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또 어린이 신문의 漢字 학습란을 오려서 공책에 베껴 쓰는 학습도 꽤 하는 편인데 막상 혼용체 신문이나 논저를 아동들이나 대학생들이 읽지를 못한다. 아동들이 漢字 낱글자를 열심히 베껴쓰는 것을 대견해 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막상 국한혼용체 문장을 거의 읽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 원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필자도 이 사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원인은 간단하다. 아동들이 漢字 학습시 낱글자 그리기만 했지 문장과 연관된 국한혼용체 독해 학습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한 漢字 그리기로 끝나는 초등학교의 재량 시간 漢字敎育은 비효율적 낭비 학습이 되고 있다.
교장 재량 시간에 漢字 베껴쓰기 敎育을 받은 학생들이 국한문체 신문 같은 것을 읽지 못하는 현상은 문장 속에서의 漢字敎育으로 응용되지 못하고 단지 단어 차원의 연습으로 끝나는 데 심각한 문제점이 있는 것임을 정책 담당 관리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일부 학교에서 재량 시간에 漢字 지도가 이루어진다'고 한다는 외형만 주목하고 초등학교에서 漢字敎育이 이루어지는 양 오해하고 있다.
따라서 관리들이나 양측의 학자들은 漢字 낱자를 익힐지라도 문장 속에서 익히는 훈련을 받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베껴 써도 결국은 문장 속에 나온 漢字를 못 읽게 되어 허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깨닫는 사실에서부터 논의의 출발을 삼아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초등학교 漢字敎育은 교장 재량이라서 하라니까 하는 것이며 그것도 漢字敎育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젊은 한글 세대 교사들은 사명감도 교수법 개발 의욕도 자발적으로 가질 리가 없다. 실제로 대다수 젊은 국어과 교사들 다수가 국어 교과서에 漢字 괄호 倂記(병기)는 전혀 가르치지도 않고 있으므로 漢字 倂記(병기)는 하나마나라고 이야기한다.
초등교사를 양성하는 전국의 敎育대학 敎育과정에서 漢字나 漢文 敎育 관련 교과는 필수로 되어 있지도 않으며 선택과목이라 해도 학생들의 기피 과목이 되어 제대로 이수되고 있지도 않다. 이는 전국의 사범대학 국어敎育과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국어 교사들조차 漢字敎育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敎育을 거의 받지 않고 졸업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인데 당국은 초등학교에서도 교장 재량에 의해 '거의' 漢字敎育을 하고 있다고 강변하며 대중들도 그렇게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의 재량 시간에 漢字敎育을 모두 하고 있지도 않거니와 하는 경우라도 漢字敎育은 漢字 몇 십자를 단순히 그리는 시간이 되어 시간 보내기식이고 비효율적, 비능률적, 비체계적 敎育이 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학생들에게 국어敎育 안에서 평가도 없고 동기도 없으니 하나마나한 낭비 敎育의 표본이 되고 있다.
[1] 國語科와 漢文科의 경우
중학교에 와서는 국어 교과서 안에 주요한 漢字語 옆에 漢字를 병기해 준 國漢倂用體가 나타난다. 그리고 연습문제란에 漢字 낱자를 몇 개 제시하여 익히는 연습란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학교에서 국어 교사들이 다루지 않고 거의 그대로 통과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倂用 漢字語들도 정작 필요한 경우에는 누락되고 倂記(병기)하지 않아도 되는 漢字語에는 병기를 해서 어떤 漢字語에 漢字를 병기하는 것이 타당한지 병용 漢字語의 기준도 불확실하다.
또한 국어 시험 문제에 漢字 讀音(독음) 문제조차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니 評價(평가)가 없는 漢字 학습을 열심히 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중학교 國漢倂用體 교과서는 漢字 학습에 관한 한 있으나마나 하다. 오직 漢字敎育을 하고 있다는 展示行政用(전시행정용) 증거로만 유효할 뿐이다. 더욱이 학생들에게는 괄호 안에 쓴 漢字라는 것이 교재 읽을 때 일차로 읽기 대상이 아니고 건너뛰어 가게 되므로 완전히 死角地帶(사각지대)에 놓인 漢字에 불과한 것이다.
국어 교사들 역시 사범대학 國語敎育科나 國文科 교직과정을 거치면서 漢字를 國語敎育 범주 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 敎育받지 않고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현실이다. 즉 漢字敎育이 국어 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의 國語敎育科 교과과정 안에서도 이미 추방된 현실이므로 국어 교과서를 가르칠 때 사명감을 갖고 漢字에 신경 쓰는 국어 교사가 거의 없다. 시중에 나와 있는 國語敎育學 槪論書(개론서)들에 漢字敎育 문제를 다룬 개론서가 거의 없다는 현실에서 오늘날 대학의 國語敎育學 전공자들이 漢字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드러난다.
또한 國語敎育科 학생들이 漢字나 漢文敎育을 받는 것이 필수도 아니고 敎育大學들처럼 교양선택과목 차원에서나 소수 학생들이 선택하는 정도이므로 배출되는 교사들의 漢字 지도 능력조차 의심스러운 것이다. 학부모나 학생들의 교사들에 대한 불신은 이런 漢字 지도 능력에서도 드러난다. 전국 사범대학 國語敎育科의 교과과정에는 漢字나 漢文敎育 관련 과목이 과거에는 있었으나 현재는 없어지는 추세라서 요즈음 배출되는 국어 교사들의 漢字, 漢文 지도 능력이 의심받게 된다. 또한 일부 대학교의 일반 교양과목인 '敎養漢文'을 中文科에서 주관하거나 중문과 출신 강사가 가르치는 현실도 오늘의 비극적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서 중학생들의 정규 漢字 敎育은 선택 과목으로 되어 있는 '漢文' 과목에서 '漢文' 교사 자격증을 가진 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漢字 익히기부터 시작해서 초보적 漢字 語句, 俗談, 四字成語, 漢詩 등에 걸쳐 학습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 과목이 선택 과목이 되다 보니 평생 漢字敎育을 안 받고 중 고교, 대학을 졸업하는 사람들도 자연계, 실업계 학생들 중에서는 물론 인문계 학생들 중에도 수두룩하게 많아져 가고 있다. 이미 중등교육에서 漢字 학습 경험이 없거나 미약한 사람들에게는 漢字를 섞어 쓰자고 하거나 입사나 승진 시험에 漢字 검정 시험을 보아야 한다든가 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 진로를 괴롭히는 방해자들로 비쳐져 짜증을 내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중등학교에서 漢文 과목을 선택해서 漢字敎育을 조금 받았다고 하는 학생들조차 대학에 들어오면 國漢混用體(국한혼용체) 論著(논저)를 왜 못 읽는가? 이는 漢文 교과 학습이 국어 교과서에서 분리된 채 외국어 과목처럼 학습되고 과목 내용에서도 漢文 과목이다 보니 漢文 문장은 다룰지언정 정작 국어생활에 쓰여 온 國漢混用體 독해는 교과 내용에 없기 때문에 국한혼용체 논저나 신문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漢字 학습이 漢文 시간에만 갇힌 학습이 되어 여전히 초등학교 재량 시간에서처럼 漢字 낱글자 그리기 학습으로 끝나고 漢詩(한시)나 漢文 語句(어구) 및 短文(단문)으로 된 名文(명문) 몇 단원 공부하고 끝날 뿐이기 때문에 정작 필요한 국한혼용체 독해 학습 경험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漢字 단어 학습으로 그치는 초등학교의 재량 학습이나 어구나 漢文 단문 학습으로 치우친 중학교 漢文敎育은 모두 國漢混用體 敎育을 소홀히 함으로써 정작 국한혼용체를 못 읽는 학생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학생들은 국어 교과서에서는 독서를 할 때 漢字 부분을 건너뛰게 만드는 國漢倂用體(국한병용체)가 있을 뿐 혼용체 학습을 못하고, 漢文 시간에는 漢字 그리기나 漢文 단문 학습으로 시간을 보낼 뿐 역시 혼용체 독서를 못한 채 중 고교 6년을 보내므로 사회나 대학에 와서 국한혼용체 논문이나 신문을 못 읽을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는 國語科와 漢文科가 분리되어 국어과에서 遊離(유리)된 漢文敎育이야말로 漢字, 漢文敎育에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고 漢文 과목도 약화시키고 國語敎育도 절름발이로 만들게 한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國語科와 漢文科는 서로 유기적으로 통합적 협조가 필요한데 國語敎育과 교과과정이나 國語敎育學 개론서들에서 보다시피 국어 교과에서는 漢字敎育이나 漢文敎育을 추방하여 거의 다루고 있지 않고 있고, 漢文科는 독자 노선만 추구하다가 선택과목으로 전락하여 국어과의 적극적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어 상호 발전을 위한 대책이 더없이 절실한 현실이다.
[2] 國語, 漢文 이외 과목(國史, 科學 등)의 경우
國語와 漢文 과목 외에 漢字를 중시해야 할 國史 과목의 경우 교과서에는 漢字가 괄호 속에조차 나타나지 않고 한글전용체로 된 國史敎育을 받고 있으니 漢字 학습은 더욱 설 땅이 없다. 특히 漢字가 없으므로 교사들은 漢字 용어에 대해 漢字를 다시 써서 보여 주는 二重苦(이중고)를 치르니 비효율적 학습이 되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국사 과목에서 역사상 등장하는 어려운 漢字 용어에 대해 漢字 뜻에 따른 分解的認知(분해적인지)를 못하고 한글로 된 漢字語 덩어리 전체로 익히는 集合的認知(집합적인지)를 하고 있다.
가령 '經筵制度'(경연제도)라는 용어가 중학교 국사 책에 한글 표기로만 나오는데 학생들이 이 단어를 이해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경서 經, 자리 筵'이라는 漢字 낱자의 새김을 통해 '경서 따위를 가르치는 자리' 정도로 分解的(분해적), 分析的(분석적)으로 인지함으로써 '경연'을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 더욱이 이것을 '경연'이라고 써 놓으면 '競演, 慶宴' 등과 혼동할 필요가 없으므로 表意的認知(표의적인지)라고 부를 수 있다.
또 다른 이해 방법으로는 '經筵'의 漢字 낱자별 새김을 통한 분해적인지를 하지 않고, 즉 漢字 어원과는 아무 연관 학습을 하지 않고 '聽音 印象'(청음 인상), 즉 '表音 印象'(표음 인상)만을 가지고 단어를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는 '경연'을 '임금이나 왕자가 학문을 배우고자 신하에게 경서를 강론하게 하는 일, 또는 그런 자리'라는 뜻풀이를 집합적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이는 '경연'이라는 단어의 전체 뜻과 단어 전체의 표음 인상만을 집합적으로 기억시키는 단어 인지법이므로 集合的認知(집합적인지), 또는 表音的認知(표음적인지)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競演, 經筵, 硬軟, 慶宴' 등의 同音漢字語에 대해서도 분해적인지를 하지 않고 집합적, 표음적인지를 바탕으로 앞 뒤 문맥 속에서 변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英語를 배울 때 英語 단어를 어원 분석을 통해 분해적인지 학습을 하는 경우는 적고 청음 인상에 따른 표음적인지 학습을 하거나 단어 철자에 대한 시각적 반복인지 훈련만으로도 단어 암기를 잘 하는 것을 보면 집합적인지만으로도 단어 학습은 충분한 듯이 보인다.
실상 오늘날 한글 세대들의 경우 漢字語 학습은 구성 漢字의 이해를 분석적으로 하여서 이해하기보다는 英語를 처음 배울 때처럼 표음적, 집합적인지 방식을 위주로 하는 단계에 와 있다. 장차 漢字敎育이 사라지면 장기적으로는 漢字語 이해를 집합적 인지로 하는 현상이 일반화할 것이다. 그 결과 이미 '自習'(자습)을 '스스로 하는 학습'이라고 분해적인지를 하지 않고 '아침 자습'의 준말로 착각해 '아침에 하는 공부'로 엉뚱하게 답하는 아동들도 생기고 있고, 漢字語의 의미에 대해 奇想天外(기상천외)의 의미로 오해하는 일들이 많아져 漢字語 이해에 대혼란이 생기고 있다. 따라서 漢字語에 대한 정확한 단어 의미 敎育은 한글전용을 하더라도 더욱 중요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英語는 同音語(동음어)가 漢字語에 비하면 많지 않기 때문에 청음 인상에 의한 단어 이해만으로도 가능하지만 漢字語는 동음어가 많고 문맥 속에서 파악해야 하는 문맥 의존도가 높아 英語 학습처럼 집합적, 청음적인지 위주로 접근할 수만은 없다. 즉 漢字語는 단어 학습의 기본 방식인 표음적인지법 외에 漢字 낱자별 새김 이해를 통한 분해적, 표의적인지 학습법이 단어 이해에 절대적으로 유용하므로 분해적인지 학습도 병행하여 요구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漢字語에 대한 이해가 분해적인지 학습으로만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漢字語가 분해적인 뜻의 결합으로만 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弟子'는 분해적인지법으로는 '아우 弟, 아들 子'이지만 실제 뜻은 '아우의 아들'은 아니기 때문에 분해적인지법이 무익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漢字語는 아직은 漢字 낱자별 새김의 總和(총화)에 따른 분해적 이해가 유지되는 편이므로 분해적인지를 돕는 漢字敎育은 그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 '부모'라는 말을 미취학 시절부터 배울 때 그것을 '아비 父, 어미 母'라고 분석한 후 습득하지 않고 뭉뚱그려 집합적으로 전체를 이해하므로 어휘 습득 초기에는 대개 단어 전체에 대한 집합적, 청음적인지로 어휘 습득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 점만으로는 漢字語의 漢字 형태소별 분해적인지가 불필요한 듯 보인다. 그러나 나중에라도 '부모'가 '아비 부, 어미 모'라는 漢字 형태소로 구성되는 것을 알면 '父情, 父性愛, 父權…' 등의 단어와 '母情, 母性愛, 母權, 母國, 母乳…' 등의 어휘를 이해할 때도 체계적, 논리적 이해를 하게 되어 유익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鬱陵島'라는 단어를 처음에는 집합적으로 인지하며 또한 漢字로 못 쓸지라도 장차 '울릉도'라는 漢字 형태소의 어원을 분석해서 '울창한 구릉(언덕)처럼 보이는 섬'이란 뜻에서 울릉도라고 했다고 이해하면 그 섬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깊어지는 것이다.
'진실을 호도한다'의 경우도 '호도하다'가 '덮어버리다'의 뜻을 지닌다는 것만 알면 되며 漢字로 못 써도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단어의 뜻을 아는 사람 중에도 '糊塗'를 漢字로 못 쓰는 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糊塗'가 '풀 호, 바를 도'로 '糊口之策'의 '호'와 연결되므로 '호도, 호구지책'도 그런 분해적 인지로 더욱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있기 때문에 漢字 의미를 알면 그만큼 漢字語의 정확한 이해에 유익하다. 또한 '糊塗'의 '도'가 '塗褙(도배)'의 '도'와 같다고 하는 것을 알면 그만큼 국어 어휘의 계열적 이해력이 높아지는 것이며 그것은 구체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무형의 국어 실력이 된다.
물론 '도배'의 경우 대개 집합적으로 인지하고 있고 漢字로 쓰라면 못 쓰는 사람이 많으며 漢字語라고 생각할 사람도 드물어 분해적 인지의 필요성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즉 일상생활에서 '도배'라는 전체 音相(음상)만으로 그 뜻을 알고 漢字로 못 써도 일반적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도배, 호도, 호구지책'의 단어를 음상에 따라 집합적으로 이해하려면 여러 경우의 발화 문장 속에서 터득하는 경험적 반복이 필요하여 시간이 소요되는 편이다. 반면에 형태소별로 분해적으로 배우면 신속히 논리적, 체계적으로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되어 어휘 학습에 유용하다. 또한 '호'나 '도'의 계열성을 아는 것은 국어 어휘 지식과 고도의 어휘 사용 능력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공연한 지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胎生的(태생적)으로 뜻글자가 합성된 漢字語의 이해에는 漢字 낱자별로 새김을 익히는 분해적 어휘 인지가 1차적 어휘 학습법으로 일정하게 기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언어 습득 능력이 뛰어나며 어휘 학습 활동이 왕성한 초등학교 敎育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국 중고교의 국사 교과서의 경우 분해적인지로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경연'과 같은 상당수의 漢字語가 한글로만 제시된다면 학생들로 하여금 집합적, 표음적인지만을 강요하는 것이라 단어 이해에 부담을 주는 학습이 된다. 더욱이 이 학생들은 단순히 표음적, 집합적인지로 어휘를 습득하는 것이 특징인 유년기 아동들이 아니고 어휘를 체계적, 논리적, 계열적, 분해적으로 왕성하게 습득해야 할 시기의 학생들이고 또 그런 분석적 지능이 한창 발달중인 학생들인데 어휘敎育은 유아 대상의 집합적인지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경연' 이외에도 '馬加(마가), 牛加(우가), 猪加(저가)…大使者(대사자), 使者(사자)' 등의 관직명이라든가 '細形銅劍(세형 동검), 烽燧(봉수)제도, 勳舊(훈구)세력, 均役法(균역법), 重商學派(중상학파), 實事求是(실사구시), 衛正斥邪(위정척사), 挺身隊(정신대)' 등이 漢字를 괄호에 병기조차 하지 않은 채 한글 표기로만 실려 있어 학생들은 우격다짐으로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구름 잡는 심정으로 집합적인지를 강요당하고 있다.
이런 속에서 국사의 정확한 내용 지식 敎育을 통한 바른 역사관 확립이 제대로 될 리가 있을 것인가? 이는 모든 교과의 가장 기본이 되는 도구 교과인 국어과 敎育에서 국어 어휘敎育의 부실이 국사 과목과 같은 전문 교과에서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일으키는가 보여 주는 사례가 된다. 따라서 국사 교과서에서도 중요 漢字語에는 국한혼용체를 당장 안 하더라도 적어도 국어 교과서처럼 漢字를 괄호에 병기한 國漢倂用體나마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漢字敎育의 파행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과목은 국어, 국사뿐만 아니라 전문어가 많은 사회, 과학 등의 다른 교과목에서도 나타난다. 가령 과학 교과도 漢字語는 많은데 漢字를 괄호에 병용조차 하지 않아 漢字 형태소를 기반으로 한 분해적인지를 하지 못하고 전문용어마다 집합적인지를 강요하고 있으며 분해적인지로 가르치려고 해도 교사들조차 漢字 실력이 없고 과학 시간에 일일이 漢字 용어를 漢字로 써가며 敎育하기도 한계가 있어 학생들은 우격다짐으로 집합적인지를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萬有引力(만유인력), 重力(중력), 放電(방전), 感電(감전), 銀河(은하), 糖尿病(당뇨병), 反作用(반작용)' 등의 漢字 용어를 분석적으로 인지하고 있지 않아 엉뚱한 개념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령, '당뇨병'을 漢字 형태소별로 분해적으로 인지하여 '오줌에 당이 나오는 병'으로 이해하지 않고 '뚱뚱해지면 걸리는 병, 단 것 먹으면 안 되는 병' 등의 주변적 의미로 엉뚱하게 아는 경우가 많아 기초 개념 敎育이 중요한 초중등 敎育은 어휘敎育에 관한 한 대란에 빠져 있어 지력이 떨어지고 敎育이 부실해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
'반작용'의 경우도 '반만 작용하는 것'으로 오해한다거나 '수소는 상온에서 기체다'라는 표현의 '상온'도 '常溫'이 아닌 '上溫' 즉 '高溫'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으며, '수정'이 '水晶'인지 '受精'인지 구별하지 않은 채 집합적으로 인지하고 '사암'을 '砂巖'이 아닌 '死岩'으로 오해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서양에서는 과학, 의학, 법학, 신학, 철학 敎育을 할 때 용어 敎育을 중시하며 라틴어 어원부터 가르친다고 하는데 이는 우리에게 과학에서 漢字語로 된 전문용어의 敎育이 漢字 형태소 敎育에 의한 분해적인지 학습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
이상과 같은 중학교의 漢字, 漢文敎育의 문제점은 고등학교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國漢倂用體로 된 국어 교과서에서 漢字는 중학교 때처럼 사각지대로 소외되고 대학입학 수학능력 시험이나 본고사에서는 國語科에서 漢字 독음 문제조차 없으니 학생들이 漢字 공부를 할 이유가 없고 漢字 학습에 대한 평가가 國語科에는 없으니 漢字敎育이 될 리가 없다.
고등학교 漢文 교과도 국어과와 분리된 漢文 문장 학습만 그것도 문과 학생들이나 하는 정도이니 대한민국의 모든 중고교생은 국한혼용체의 독해 훈련 경험이 없이 졸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문어가 허다한 고교 사회, 과학 등의 교과에서도 漢字 용어들에 대해서는 漢字 표기를 병용하지 않아 교사들은 가르칠 때 힘들어하고 학생들은 용어를 집합적으로 이해하도록 강요받아 애를 먹는 것이다.
특히 7차 敎育과정에서는 漢文敎育이 더욱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즉 1997. 12. 30에 발표한 7차 敎育과정에 따르면 고등학교 漢文 과목은 현재 고교 漢文 학습보다 1년 늦은 고2(漢文), 고3(漢文 고전) 때 선택과목으로 가르치게 되어 있고 국민 공통 敎育과정이라는 초등 1학년-고교 1년까지의 10년 과정에는 漢文 교과가 아예 명문화되어 있지도 않아 '재량 활동' 시간에나 기대해야 할 漢文敎育은 더욱 衰落(쇠락)할 운명이다.
3. 3. 대학의 漢字, 漢文敎育
초중고교의 漢字, 漢文敎育과 달리 公的인 교과과정이 없는 대학의 漢字, 漢文敎育의 실상도 왜곡된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나마 漢字敎育에 관심 있는 대학들은 敎養國語 敎育에서 漢字 펜습자 등을 부과하거나 敎養國語 교재 안에 漢字敎育 내용을 포함시킨 경우가 있지만 교양국어가 필수에서 선택과목으로 전락한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漢字敎育이 교양국어 敎育과정에서 더더군다나 설자리를 상실하고 말았다.
최근에 일부 대학에서는 漢字敎育 강화를 위해 漢字 관련 과목을 필수로 지정한 대학들도 있지만, 기존의 古典 漢文 강독 방식의 敎養漢文 차원으로 운영하려다 학생들의 반발을 산 경우가 있다고도 하며 일부 대학에서는 敎養漢文 과목을 中文科가 운영하는 등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敎養漢文 과목이라는 것도 구태의연한 교수법과 교재로 漢文을 싫어하는 신세대 학생들에게 따분한 인상만 주고 있어 인기 하락 과목이 되어 있다.
특히 敎養漢文을 中語中文學科에서 운영하는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점도 드러난다. 즉 敎養漢文을 中語中文學 전공자가 강의할 때 國漢文學을 제대로 배운 경험이 없는 중문과 출신이 漢文을 가르침으로써 우리의 悠久한 國漢文學의 전통이 바르게 가르쳐지지 못하며 대중들에게는 漢文 과목을 중문과의 과목으로 잘못 인식하게 만드는 歪曲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 한 예가 日刊 新聞의 漢字 학습란을 國漢文學 전공자가 하지 않고 중문학 출신들이 집필하는 현상을 들 수 있으니 언론조차 이런 인식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日刊紙가 국민을 대상으로 漢字敎育을 하고 싶다면 그것은 文字敎育인 만큼 國語敎育者나 國漢文學 전공자 중에서 적임자를 찾는 것이 학문 정도상 옳기 때문이다. 만일 國語敎育 전공자 중에 漢字敎育 전공자를 키우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國語敎育學이라는 학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3.4. 敎育대학원 漢文敎育 전공
敎養漢文 강좌의 운영을 중문과가 하는 대학들에서는 敎育大學院의 漢文敎育 전공도 중문과가 운영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경우 교과과정은 韓國 漢文學 과목이 대부분이고 中國 經書 과목과 中文學 관련 비교문학 강좌 정도가 추가되는데 그 韓國 漢文學 講座를 中文學 교수들이 "獨習하여"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中文學 전공자들이 韓國 漢文學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獨習하여 가르치는 현상을 가상하다고 해야 할지 학문적 양심으로 헤아려 볼 일이다.
설령 中語中文學 전공자들이 漢字는 그들 분야에서도 기초이므로 가르칠 수 있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방대한 유산으로 남아 있는 國漢文學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중국의 방대한 中國語文學 유산을 전공해서 한국에 소개하는 것이 1차 사명이기 때문이다.
혹시 中文學과 國漢文學을 比較文學的으로 연구하는 이가 있어 漢字, 漢文敎育을 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비교문학적 특수성에 기인하는 개인적 문제이지 中語中文學 전공자 전체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런데 中語中文學 전공자가 漢文學을 가르치려는 이런 왜곡 현상이 이 땅의 상당수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고 國漢文學은 물론 中語中文學의 학문적 정체성조차 훼손시키고 있다.
우리는 漢字 및 漢文敎育의 의무와 책임은 국어교육자들이나 國文學, 漢文學 전공자들에게 1차적으로 있고 中語中文學 전공자가 관여하는 것은 혼란만 줄 뿐이라 국가 어문정책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4. 漢字, 漢文 敎育觀의 재정립
漢字나 漢文敎育을 중문과 출신이 주관해야 한다는 인식이야말로 漢字가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는 단순한 사실로 대중을 현혹하려는 발상이거니와 이는 어떤 문자를 만들지 않았어도 필요에 따라 다른 나라가 사용하고 있으면 그것은 그 나라의 自國語 언어교육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결과이다.
알파벳이 이집트, 그리스에서 만들었지만 다른 나라에서 널리 쓰이고 가르치듯이 漢字, 漢文敎育은 國語敎育이나 國語國文學, 漢文學 영역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오늘날 國語國文學 및 國語敎育學 학자들조차 잊어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중국 漢文文化를 수입하여 우리의 사상과 문화를 漢字로 표현하여 고대이래 開化期까지 허다한 漢文 文籍이 언어문화 유산으로 남아 있으므로 이들 漢文 유산들은 國語國文學, 國史學, 韓國哲學, 國語敎育 전공자들과 같은 국학 전공자들의 기본 연구 대상이지 중국어문학 전공자들의 기본 연구 대상이 아니다.
중국어문학자들이 우리 漢文文化를 연구한다면 比較文學과 같은 비교문화 차원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漢文 유산인 國漢文學을 중문학 전공자들이 中語中文學의 전공 영역으로 간주하고 가르친다면 이것은 國恥가 아닐 수 없으며 이런 사태를 방치한 國語國文學, 漢文學, 國語敎育 종사자들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漢文 과목은 과목 성격이 廣開土大王碑文, 三國史記, 三國遺事 등을 비롯하여 開化期 漢詩에 이르기까지, 인물로는 高句麗 유리왕, 최치원, 이규보에서 박지원, 황현 등에 이르기까지 2천여년간 산적한 國漢文學으로 구성되는 것이 기본이고 論語, 孟子, 諸子百家, 漢詩를 가르치는 것이 기본이 아니건만 많은 대학의 敎養漢文을 國漢文學을 모르는 중문과 출신들이 가르치다 보니 四書三經이나 漢詩 정도를 가르치면서 한 학기를 보내어 中國 古典 漢文學 강좌로 변질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교양 國漢文學과 교양 中國漢文學을 구별시켜 경쟁하게 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대학의 漢文 과목 명칭을 '敎養 國漢文學'으로 바꾸어 중문학 전공자가 할 것이 아님을 보일 필요가 있고 이를 일반 학생들에게도 분명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요컨대 漢字를 중국 문자로만 국한하려는 의식은 고쳐야 하며 조상들이 漢字를 생활 문자로 썼다는 점에서 우리의 古文字로 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조상들의 전통 漢文文化 유산을 이해하려면 漢字와 漢文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므로 古文字 차원으로 봄은 당연하다. 5. 傳統 喪失과 歷史 斷絶의 深刻性
이제 이러한 漢字, 漢文敎育 소홀로 인한 가장 큰 폐단은 우리 국민의 傳統文化에 대한 심각한 沒理解 현상이다. 평소 중등교육에서 漢文文化가 대중적 교양으로 학습되고 향유될 때 장차 대학에서 한국 傳統文化의 기반이 되는 古典文學, 漢文學, 國史學, 韓國哲學 등에 대한 전공 희망자 층도 두터워지고 傳統文化의 기반도 두터워질 텐데, 그러한 漢文敎育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학창 시절부터 대중적 교양으로 향유되는 훈련을 받아 보지 못한 채 剝製(박제)가 된 비효율적 漢字, 漢文敎育을 받다 보니 상술한 대학에서의 漢文文化 관련 전통 기초학문들은 枯死 상태에 빠져 있다. 더욱이 學部制 바람은 이런 현상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흔히 傳統 漢文文化 연구는 漢文 전공자를 양성하면 된다고 하지만 국민적 교양으로 漢文文化가 이해되고 사랑 받으면서 중등교육에서부터 漢字, 漢文敎育의 기초가 탄탄히 이루어지는 분위기 속에서 漢文文化 관련 전공이 선택, 연구되는 경우와, 이와 달리 부실한 漢字, 漢文敎育 위에서 겨우 대학에 와서야 일부 전공자만이 선택 연구하는 경우를 비교하면 그 학문의 결과가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을 것이 분명하므로 漢字, 漢文敎育이 前者의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은 당연하다.
이대로 漢字, 漢文文化가 대중 사이에서 소멸하고 博物館에나 갇힌다면 우리의 歷史 단절이 너무나 크고 서구문화의 유입은 가속화되어 뿌리 잃은 민족으로 전락될 것이 우려된다. 또한 우리 漢文文化 유산을 中國人이나 日本人 또는 中國語文學이나 日本語文學 전공자들에게 연구 의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도 예상된다.
나아가 우리만이 韓, 中, 日 漢字 文化圈의 역사적 현실에서 스스로 소외되고 중국과 일본과는 역사적 차원에서의 文化的 對話를 차단함으로써 고립될 것도 우려된다. 이미 일본에서는 한국 유학생을 非漢字文化圈 유학생으로 대우한다고 한다. 6. 21세기 문화전쟁 시대의 어문정책
단지 우리는 傳統 漢文文化 가치에 대해 국민 누구나 이해하고 향유할 수 있는 대중적 가치를 찾고 누릴 수 있는 정도의 차원에서 최소한 '읽을 수 있는 정도의 차원에서 만이라도' 초보적 漢字敎育은 早期에 이루어져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실용적으로 말한다면 오늘의 학문의 바로 직전 시기인 70년대까지 이루어진 國漢混用體로 된 학술 자료를 오늘의 대학생들이 못 읽어 학문 이해와 전승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면 漢字敎育과 國漢混用體 讀解敎育은 정규 국어교육에서 일정 시간 어려서부터 제공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주장은 國漢混用論者들의 기존 주장이 國漢混用體로 써야 한다는 것을 강요한 듯한 인상을 준 것과는 다소 다르다. 즉 우리는 國漢混用體로 써야 한다는 것까지 의무화하는 漢字敎育을 요구하지는 않더라도(따라서 한글專用 정책의 명분을 유지하려는 현행 國家政策의 틀을 건드리지 않으며) 단지 國漢混用體를 讀解할 수 있는 최소 수준의 능력 함양을 위한 漢字敎育과 國漢混用體 讀解敎育을 조기에 도입하게 하라는 것일 뿐이다.
이미 한글 세대들에게 강한 저항감을 줄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요구 사항으로까지 비치는 "國漢混用體를 쓰게 하려는 것"에 目的이 있는 것이 아니라 國漢混用體로 되어 있는 최근세 1세기 곧 20세기의 現代 韓國 文化史를 이해하려면 이 시대의 주류 문체였던 "國漢混用體 文化를 讀解할 수 있는 能力을 함양하는 것"에 초점을 둔 실리적 漢字敎育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 미래를 위해 조기 영어교육을 시키면서 우리 존재의 뿌리가 되는 조상들이 썼던 漢字를 애써 외면하는 것은 조상과 전통 문화에 대한 존재 부정으로 귀결되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조기 영어교육이 세계화 시대에 미래를 위한 經濟的, 物質的 豊饒를 위한 부득이한 투자라면 조기 漢字敎育은 文化競爭 時代에 文化民族 自存의 미래를 위한 精神的 投資인 것이다. 국가 전략적으로 본다면 조기 영어교육이 西歐 文化圈을 制覇하려는 교육이라면 漢字, 漢文敎育은 東洋 漢字 文化圈을 制覇하려는 교육이라고 본다.
특히 漢字 素養을 어려서부터 길러 주면 日本語와 中國語를 익히기도 쉬워 장차 일본, 중국과 경쟁하여 이들을 制御해야 할 우리로서는 일본과 중국에 대한 이해와 정보 획득 능력을 국민 다수가 자연히 높일 수 있으므로 뒤늦게 대학에 가서 漢字 기초를 익혀 이들 언어를 익히게 하는 것보다 백 배 더 유리할 것이라고 본다.
흔히 어려운 漢字를 초등학생들에게 왜 가르치느냐고 한글론자들은 주장하지만 언어 학습은 12∼13세 이전에 완성되므로 초등학교 단계에서 빨리 할수록 유리한 것이다. 서구에서도 다중언어교육을 초등학교 저학년 단계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 추세라는 점도 참고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西歐 制覇와 東洋 制覇라는 도전적 국가 경영전략 차원에서라도 동양과 서양이라는 두 문화권 이해를 위해 양 방향의 언어교육이 장차 우리 민족이 세계적으로 도약하기 위한 두 날개 역할을 하는 語文政策이라고 믿는다.
오늘날 국가 생존을 위해 구미 多重言語 국가들은 다중언어교육으로 다중언어의 날개를 아동들에게 어려서부터 달아주는 추세인데 우리가 영어 일변도로 나아가고 전통 漢文文化의 도구 문자인 漢字조차 조기 습득을 포기하는 것은 孤立과 滅亡으로 치닫는 행동으로 생각되어 심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초등학교의 교장 재량으로 하는 漢字敎育을 正式으로 體系化하고 초중고 국어 교재에서도 古文體 학습 차원에서 70년대까지 각종 學術書에 써왔던 國漢混用體를 20-30% 정도 배정하여 漢字 文盲者 量産을 예방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어교육 평가에도 漢字 해득 능력을 일정히 반영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일은 한글전용의 대원칙을 계속 유지하더라도 새삼 한글專用과 國漢混用의 논쟁을 되풀이할 필요도 없이 傳統文化 繼承과 傳統文化 學習 차원이라는 大義名分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요컨대 우리는 漢字混用을 새삼 明文化하고 義務化하지 않더라도, 古文敎育 차원에서 조상들의 古文字였던 漢字를 읽게 할 수 있는 능력은 길러 주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만이라도 조기 漢字敎育과 國漢混用體 교육을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마치 우리가 영어교육을 잘 받아도 쓰기, 즉 영작 능력은 쉽게 습득하기 어렵지만 영문 자료를 대략적으로 읽는 초보적 독해 능력은 먼저 어느 정도 함양되듯이 漢字 2000字 정도를 교육하여서 비록 漢字를 능란하게 쓰지는 못해도 최소한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능력 함양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國漢混用體 讀解를 1차 목표로 초등학교 고학년 단계에서부터 정규 漢字敎育과 國漢混用體 讀解敎育을 함으로써 漢字문화의 급작스런 단절은 막아야 한다고 본다.
<필자 약력> 서울대 국어敎育과, 서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문학박사) 강릉대 교수, 국립국어연구원 어문규범부장 역임. 현재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첫댓글 정독으로 잘 새기고 갑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