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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대구광역시종친회(김해김씨,허씨,인천이씨) 부녀회 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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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게시판 스크랩 계단, 한칸 두칸 직접 걸어 더 높이 `삶의 비상`
휘목 추천 0 조회 72 12.11.12 23:4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사람과 계단 공존의 사회학…두발 운명들이 꿈꾸는 도약공간

인간은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어디든 '멀리' 갈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키가 큰 사람이라도 뛰어 도달할 수 있는 '높이'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인간은 낮은 곳과 높은 곳을 연결하는 도구를 만들었다. '계단'이다.

 
대구 계산성당 맞은편 청라언덕으로 가는 90계단(3`1운동길).
 
경북 포항 호미곶에 있는 한 등대의 내부 계단.
 
대구 중구 계성고의 명소인 50계단.
팔공산 동화사의 대웅전 계단.
 

인간 문명은 '멀리'의 욕망을 채운 다음 어김없이 '높이'의 욕망도 채우려 했다. 멀리 더 멀리 영역을 확장하며 세운 문명의 땅 위에는 경쟁하듯 높은 건축물을 세웠다. 고대의 바벨탑부터 현대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1970년대 초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명성을 떨친 미국 뉴욕 소재 건축물)까지. 그 내부를 소통과 통행을 위해 연결하는 건축의 '마침표'도 계단이다.

◆역사를 담는 계단

시대가 흐르면서 계단은 '역사'도 담게 됐다. 대표적인 계단이 대구에 있다. 계산성당 맞은편 청라언덕 가는 길에 있는 '90계단'(3`1운동길)이다. 이름 그대로 90개의 '단'으로 이뤄진 이 계단은 1919년 대구에서 일어난 3`1운동 당시 계성학교, 신명학교, 대구고보 학생들이 일본 순사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장사꾼인 척 흰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던 길이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3`1운동길'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대구 중구청이 진행 중인 '근대골목투어'의 주요 코스로 자리 잡았다.

90계단에는 독특한 흔적이 있다. 층층으로 된 계단 말고 평면으로 된 경사면도 함께 있는 것. 당시 자전거나 수레를 끌 수 있도록 설치한 것이다. 이달 5일 90계단에서 만난 관광객 박광훈(33`광주시) 씨는 "요즘 계단을 만들 때 한쪽에 자전거를 끌 수 있도록 경사면을 설치하는데 그 원조인 것 같다"며 웃었다.

역사를 담은 계단은 사실 사찰에 많이 있다. 우리 지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때 지어진 불국사(사적 502호)의 연화교`칠보교(국보 22호)와 청운교`백운교(국보 23호)가 유명하다. 동쪽 편에 서로 이어진 청운교(아래)와 백운교(위)는 속세와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계단 총 개수인 '33'은 아직 부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33가지 단계를 뜻한다. 서쪽 편에 서로 이어진 연화교(아래)와 칠보교(위)는 계단 총 개수는 18개로 규모는 작지만 섬세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 웅장한 멋을 내는 청운교, 백운교와 조화를 이룬다.

이외에도 팔공산 동화사(보물 1563호) 대웅전 앞에 있는 8단의 반원형 돌계단과 통일약사여래대불로 향하는 108계단이 유명하다. '갓바위'로 유명한 팔공산의 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 431호)으로 가는 길은 산 밑에서부터 돌계단으로 이뤄져 있어 1시간 정도 걸으면 오를 수 있다.

◆추억으로 걷는 계단

굳이 거창한 의미를 담지 않더라도 계단에는 소소한 '추억'이 어린다. 학창시절 매일 오르내리던 학교 계단이 그렇다. 우리 지역에서 대표적인 곳이 대구 중구에 있는 계성고의 '50계단'이다. 학교 정문에서 본관으로 향하는 경사로에 설치된 50개의 계단은 양옆으로 줄지어 선 나무들과 함께 계절마다 색다른 운치를 풍긴다. 그래서 영화(누가 그녀랑 잤을까)나 드라마(제5공화국)의 촬영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50계단은 학교의 명예를 빛내기도 했다. 김재엽(1988년 서울 올림픽 금메달), 안병근(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금메달) 선수 등 계성고 출신 유도 스타들이 오르내리며 피나는 훈련을 한 계단으로 유명한 것. 1980년대에 50계단은 유도부 부원들이 새벽이면 일어나 체력 단련을 하던 곳이었고, 체력 테스트를 실시해 제대로 뛰어 오르내리지 못하면 유니폼을 벗어야 해 '눈물의 계단' '비정의 계단'으로 불리기도 했다. 50계단을 발판삼아 계성고 유도부는 1980년부터 82년까지 3년 동안 16개 전국대회 단체전을 모두 석권하는 전성기를 누렸다.

이외에도 재미난 사연을 담은 학교 계단이 우리 지역에 적잖다. 대구 북구 침산동에 있는 경상여고 졸업생 신주현(24`여) 씨는 "학교 안에 경사가 심한 계단이 있다. 학생들은 '여우계단'이라고 부른다. 이곳을 오르다 멈추면  '재수'를 한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특히 고3들은 '헉헉' 거리며 이를 악물고 계단을 올랐다"고 말했다.

대구 동구 용계동에 있는 정동고에는 학교 건물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운동장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졸업생 정민찬(24) 씨는 "계단 경사가 너무 가팔라 체육시간이면 운동장에서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학생들을 지치게 해 정신을 흐릿하게 만든다고 '천국의 계단'이라는 별칭이 붙었다"고 말했다.

경북대 법과대학 건물 뒤편 내리막 계단은 '바보계단'으로 불린다. 겉으로 보기엔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한 단의 폭이 일반 계단보다 조금 넓다. 그래서 사람의 평균 보폭에 맞지 않아 걸음을 어기적거리게 되고 결국 '바보처럼' 걷게 된다는 것이 학생들의 설명이다.

학교 계단은 청춘 문화도 담는다. 우리 지역에서 계명문화대 돌계단이나 경북대 북문 계단 등은 젊은이들의 약속 장소로 선호되는 등 지명이 고유명사화됐고, 계단을 관람석으로 삼으면 작은 공연장이 쉽게 마련돼 즉흥 밴드 공연도 자주 이뤄진다.

◆생활 속으로 들어오는 계단

서울 '63빌딩'에서는 매년 재미난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지난달 21일 열린 '63 계단 오르기 대회'로 올해 10회째를 맞이했다. 해발 264m, 1천251개의 계단을 마라톤 동호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우스꽝스런 복장을 하고 오르며 '수직 마라톤'이라는 종목을 만들어냈다.

이렇듯 계단은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피트니스 센터'다. 경북 포항시는 지난 9월 시청 청사 비상계단을 '건강계단'으로 지정했다. 평소 활용도가 낮았던 비상계단을 테마 디자인으로 꾸며 직원들의 건강 증진은 물론 엘리베이터 사용 감소에 따른 에너지 절약 효과도 얻어낸다는 것.

실제로 계단을 활용한 운동 방법이 매스컴 등을 통해 바쁜 직장인들 사이에 보급되고 있다. 특히 '두 계단 오르기'는 발끝에 힘을 주고 계단 끝만 밟으며 두 단씩 오르는 운동 방법으로 다리의 근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날씬하게 만들어준다. 계단 오르기는 일반 걷기보다 3배의 칼로리가 소모되는 운동으로 하루 10분 이상 하면 심폐 기능을 강화시켜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락방'이 없어지면서 함께 사라졌던 주택의 실내 계단이 최근 부활하고 있다. 침실, 서재, 작업실 등을 같은 층 안에 복층으로 설치하고 계단으로 연결해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는 '복층 인테리어'가 최근 붐을 타고 있는 것. 특히 복층형 오피스텔은 법으로 중단됐다가 최근 다시 도입돼 주택시장의 복층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공간 활용 층이 하나 더 있어 실제 사용 면적이 늘어나고, 기존 1인이 거주하던 공간에 2, 3인 거주도 가능해 비용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인간에 대한 배려와 즐김이 공존하는 곳, 계단

계단은 남성들의 눈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영화`드라마 등 각종 발표회나 기자회견에서 미모의 여성 연예인들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 낮은 계단을 밟는 순간을 촬영한 사진이 인터넷 연예 뉴스 면을 거의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은 까닭에 계단을 오를 때 아슬아슬한 각선미가 부각되는 사진이 대부분이다.

아슬아슬한 각선미를 보며 즐길 때, 무대 옆 낮은 계단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인간은 조금만 높은 곳도 계단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오를 수 없음을 보여준다. 계단에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담겨 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예를 우리 전통가옥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단순한 한 단짜리 계단인 '디딤돌'이다. 전통가옥에서 안방, 대청, 사랑방 등으로 연결된 마루 아래에는 신발을 벗고 발을 디디는 디딤돌이 반드시 놓였다. 주로 편편한 자연석을 구해 썼다. 큰 기와집에서는 디딤돌 대신 나무로 3계단 층층다리를 놓아 권세를 표현하기도 했다.

계단 속 배려의 의미는 지금의 건축법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계단 높이가 3m 이상 될 경우 높이 3, 4m 이내마다 '계단참'을 설치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단이 계속 이어지다가 잠시 평평한 면이 지속되는 부분이다. 계단을 걸을 때 일종의 중간 휴식 장소로 삼고, 보행자 안전도 고려한다는 목적이다.

배려를 추구하기 위해 계단을 아예 없애는 파격이 나오기도 한다. 기존 두 단의 출입 계단을 없앤 '저상버스'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는 계단이 아닌 불필요한 '턱'을 없애는 개념이다. 필요한 계단은 그대로 둔다. 경사가 완만한 휠체어용 통로를 옆에 설치한다고 해서 기존 계단을 없애지는 않는다.

'계단, 문명을 오르다'의 저자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계단의 시대적 가치'에 대해 "기능과 효율이 계단을 지배하면서 인간사는 삭막해지고 사나워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20세기 기계 문명이 등장하며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 등이 보급됐고, 계단은 걷는 데 드는 시간과 체력 및 설치하는 데 드는 공간과 공사비를 낭비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계단은 화재 등 재난 시 대피를 위한 중요한 생명줄이고, 선진국에서는 다른 효율과 기능 이전에 안전을 우선순위에 두고 계단을 설치 및 관리한다. 계단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걷는 즐거움은 물론 지난 수천 년 동안 건축 방식이나 디자인 등에 예술, 종교, 정치 등 다양한 즐김의 요소를 녹여냈던 계단의 인문사회학적 의미를 복원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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