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
처음사랑과복음증거 .
요한계시록2:1~7 .
최용호목사.
Sunday Sermon.
First Love and Gospel Testimony.
Revelation 2:1-7.
Pastor Yongho Choi.
영혼의 양식 5
처음 사랑과 복음 증거
[요한계시록 2:1–7]
이기는 자
우리가 교회에서 자주 나누는 인사 중 하나가 “한 주간 승리하세요”라는 말이지요.
누군가는 이 말이 교회의 승리주의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의 참된의미는, 성경에서 말하는 ‘이기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라는 격려의 말입니다. 이기는 자가 되라는 이 권면은 단지 경쟁에서 이기라는 말이 아니라,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극복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이기라는 것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이겨야 할까요?
주님의 평가: 본궤도에서 이탈한 교회 에베소 교회는 많은 면에서 칭찬받을 만한 교회였습니다. 본문 2절과 3절에서 주님은 그들의 수고와 인내,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지킨 것을 칭찬하십니다. 당시 에베소는 소아시아 최대의 도시였고,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유명한 우상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에베소 교회는 진리를 지키며 버텨낸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운 이 교회는 디모데가 목회했고, 이후에 사도 요한도 이 교회를 돌봤습니다. 그만큼 말씀으로 깊이 훈련받은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2년을 가르쳤습니다. 이방 종교의 중심지, 우상 숭배가 산업을 지탱하는 도시에서 진리를 수호하는 일은, 이러한 수고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교회를 향해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처음 사랑,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 문제라고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처음 사랑, 처음 행위: 복음 전파에 대한 열정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단지 감정적인 뜨거움이 식었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주님을 향한, 그리고 그로 인한 세상을 향한 뜨거운 사랑은 우리의 신앙의 중심이 무너지지 않게 합니다.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씀에서 주님은 “처음행위를 가지라”고 하십니다. 그 사랑이 중심이 되지 않고, 사랑의 실천이 사라졌다는뜻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단지 느낌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담을 허셨던 주님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배제와 편견 없이 사랑의 행동을 확장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의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는 좀 다른 메시지입니다. 뜨거운 사랑,편견 없는 사랑의 행동은 일반적으로 모든 교회가 보여주고 있고, 또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가치임이 분명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계시록의 다른 여섯 교회보다 많은 정보가 알려진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9-20장, 그리고 바울이 쓴 에베소서를 통해 우리는 에베소 교회가 어떤 교회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처음 사랑, 처음 행위는 성령의 놀라운 능력과 말씀을 통해 이루어지는 복음 선포와 힘찬 부흥이었습니다(행19:20).
에베소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은 교회 내부의 순수성이었고, 책망하신 것은 교회바깥세상과 관련된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비슷한 말씀을 전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랑이 식는다고 한탄하시면서, 끝까지 견디
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하시면서 모든 민족에게 천국 복음이 전해지는 비전을 이야기하셨습니다(마24:12-24). 어렵고 힘들어도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랑을 잃지 않아야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있는 2년 3개월의 시간에 온 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듣게 되는 일을 목격했습니다(행19:10). 소아시아의 중심지였던 에베소로 오고 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주의 말씀을 듣게 하는 일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일이었고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복음 증거의 사명 회복과 촛대를 옮기신다는 경고 하지만 궤도를 이탈한 에베소 교회는 그 빛을 간직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빛을 세상에 비추는 일에는 실패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고, 빛을 나누지 않는다면, 아무리 교회 안에서 신앙을 잘 지킨다 해도 주님은 그것을 문제 삼으십니다. 복음은 지킴과 동시에 전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간직하는 교회는 많지만, 진리를 흘려보내는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그 처음 사랑, 복음을 향한 열정을 회복하길 바라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실 것입니다.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더이상 교회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촛대는 교회를 뜻합니다. 아무 빛도 비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이되 교회가 아닙니다. 형식은 있지만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스가랴서 4장을 보면, 스룹바벨이 성전을 건축할때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순금 등잔대와 그 옆의 두 감람나무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성전도, 교회도 사람의 열심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빛은 소멸합니다. 촛대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과 공동체입니다. 그를 통해 주님은 영광으로 드러나십니다.
주님은 밝히 빛나는 촛대 사이를 다니시기 때문입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어질 생명나무의 실과7절은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으로 마무리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 생명나무는 단지 상징이 아닙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로 인해 잃어버린 바로 그 생명나무입니다. 계시록 22장에 보면, 생명수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고, 열두 가지 과실을 맺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생명과 풍성함을 의미하며, 하나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완전한 회복의 선물입니다.
이 약속은 단지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본문은 성령이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말합니다. 이 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기는 자는 그 생명나무의 열매를 맛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보람, 생명의 기쁨은 지금 우리 삶 속에서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삶이 힘들어도, 고통과 아픔이 있어도, 그 안에서 보람이 있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바로 그런 ‘살 만한 이유’, 존재의 보람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