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관음사(妙觀音寺)
최 화 웅
31번 국도를 타고 갯가로 나선다. 송정, 일광을 지나 해송 가로수길 따라 동백, 신평, 칠암, 문중, 문동마을이 차례로 이어진다. 옛사람들은 이 다섯 마을을 한데 묶어 문오성(門五聖) 또는 문오동(文五洞)이라 불렀다. 지난 80년대 민중화가 오윤의 작품 ‘천렵’의 무대였던 좌광천이 정관으로부터 임랑 해수욕장으로 흘러들며 일광과 장안을 나눈다. 문오성을 지나면 ‘임랑’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오고 600년 묵은 해송이 버티고 서서 길손을 맞고 보낸다. 31번 국도 오른편으로는 물 맑은 동해바다, 왼쪽으로는 동해남부선이 정겹게 달리는 갯마을의 아기들을 깨운다. 길섶에 엎드린 오두막집 도가지에서는 멸치젓갈 익는 냄새가 풍길 것 같다.
모든 게 ‘달 안에 있다’는 월래(月內)로 가다보면 왼편 언덕바지에 묘관음사(妙觀音寺)라는 큼직한 표지석 안으로 몇 걸음 올라선다. 딴 세상이다. 철길이 지키는 정적을 뛰어넘으면 바로 경내다. 기장군 장안읍 임랑리 산 1번지에 자리 잡은 묘관음사는 동해남부선 철길이 일주문이다. 초입부터 청량한 솔향기와 대숲에서 이는 바람이 일상에 찌든 나그네의 온몸을 씻어내린다. 일렁이는 숲 사이로 고즈넉한 절집 용마루가 수줍은 듯 얼굴을 내민다. 시인 이문조는 묘관음사를 두고 “너무 맑고 고요하다.”라고 썼었다. 그렇다. 사철 푸르고 울창한 대숲이 오늘도 정갈하다.
기장에는 장안사와 안적사를 비롯한 신라의 천년 고찰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이곳에는 모두 71곳이나 되는 크고 작은 사찰이 골짝마다 자리 잡고 교회 56곳, 성당 6곳이나 세워질만큼 이곳 사람들의 삶 또한 고달프고 한(恨)이 많았나 보다. 작고 아담해서 한눈에 들어오는 절집, 묘관음사가 창건된지 겨우 고희라지만 참선도량으로 탄탄한 맥을 이어온 사찰이다. 대웅전을 가운데 두고 왼편에 길상서원, 오른편에 산호당을 두었다. 대웅전과 마주보는 입구 아래쪽에 천왕문을 둔 ‘ㅁ’자형 가람배치다. 사역으로는 대웅전, 길상선원, 천왕문, 조사당, 삼성각, 요사체가 세우지고 한쪽에는 범종각과 부도밭이 조용히 자리 잡았다. 창건 당시 향곡 스님이 담양에서 옮겨다 심었다는 왕대 숲이 우거지고 열대 야자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웅전 앞뜰에서 한 쌍의 홍단풍과 청단풍이 단아하게 마주보며 속삭인다. 불심 깃든 바닷바람이 풍경소리와 함께 절집의 적막을 흔들어 깨운다. 시끌벅적한 세간을 떠나 이곳에 서면 숨소리마저 소음일까 두렵다.
갯가 절집, 묘관음사는 여느 절집과 다른 모습이다. 그 첫째는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가르는 일주문이 없다는 것이다. 절집에 일주문이 없다는 것은 부처님 앞에 나아가는 길에 아무런 경계와 제한, 나아가서 막힘과 격식이 없다는 것이다. 원래 일주문은 성과 속을 나누는 자리지만 모든 것이 부정되어야 존재의 참모습을 보게 된다는 붓다의 가르침, 즉 공관(空觀)의 의미를 확인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자리는 정신적이고 인격적 품위를 가늠하는 윤리적 범주에 속한다. 일주문까지는 세간(世間)의 번뇌와 망상이 넘쳐나는 땅이요 무서운 내적검열을 통해 일주문을 들어서면 출세간(出世間)으로 번뇌를 씻어낸다. 일주문 안은 비로소 부처님 땅이고 진리의 공간이다. 수행자들은 진리의 공간에서 어떠한 화두에도 얽매이지 않고 초월적인 선을 추구하며 용맹정진한다. 오래된 절은 일주문과 금강문, 천왕문과 불이문 등 4개의 문을 지나야 본전에 이르지만 묘관음사에는 유일하게 천왕문이 있을 뿐이다. 그만큼 소박하고 겸손한 절이다. 거기다 사방을 둘러친 담장도 없고 그 흔한 철조망 하나 없다. 일주문과 담장이 없다는 것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부처님과 대중이 거침없이 만나 소통하고 공감하는 곳이요 부처님이 살아계심을 느낀다.
다음은 법당에서도 바다를 바라보고 들을 수 있다. 바다의 들숨과 날숨, 그 깊은 숨소리를 통해 침묵과 외침을 듣는다. 이곳에서 듣는 파도소리는 독경소리요 풍경소리가 된다. 발끝에 바다를 마주하고 서면 절로 해인삼매(海印三昧)에 빠져든다. 흔히 우리나라의 4대 해수관음도량으로 동해의 낙산사 홍련암과 서해의 강화 보문사, 그리고 남해의 향일암과 보리암을 든다. 그러나 임랑의 묘관음사는 어느 절집보다 낮은 자세로 바다를 향해 엎드렸다. 바다의 소리를 듣고 관(觀)하게 하는 경지에 이른 모습이다. 불가에서 관은 모든 것을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곳에 들어서면 호사스런 치장이나 허세를 볼 수 없다. 가난하고 질박한 살림과 소박하고 단순한 삶의 전통이 고스란히 묻어날 뿐이다. 소유에 병들지 않은 자발적 가난과 사심 없는 청빈의 삶을 실현하는 도장이다. 그 흔한 국보나 보물, 문화재도 한 점 없다. 쉼 없이 들려오는 파돗소리가 오직 기도와 깨우침을 일으키는 절집이다. 이곳에서는 반야심경(般若心經)에 푹 빠져 모든 것이 시작과 끝도 없는 공(空)이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마저 없다는 수수깨끼 같은 불교교리의 연기(緣起思想)를 맛볼 수 있다. 마음의 문을 어떻게 열어야 하고 왜 열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세속의 때를 씻어내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성과 속이 동시에 공존하는 세상에서 불도를 닦으려는 대중에게 지워진 성스러운 몫이리라.
묘관음사는 금모대(金毛臺)에서 시작되었다. 운봉스님이 처음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속 토굴에서 면벽(面壁)수행하다 금모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고작 한두 명이 들어앉을 수 있는 토굴선방에서 어렵사리 초가삼간 암자를 마련하고 안거를 해제한 수행자들이 좌천, 월래, 일광, 기장, 서생 등 인근 마을로 탁발공양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태를 보낸 1943년 운봉(雲峰) 스님의 제자 향곡(香谷) 스님이 묘관음사를 창건하기에 이른다. 절집이 세워지고 참선도량인 길상선원이 들어서자 이름난 선승들이 찾아들었다. 우리나라 근대불교의 새벽별이라 일컫는 경허(鏡虛) 스님의 제자 혜월(慧月) 스님도 한 때 이곳에서 홀로 불성을 밝히는 수행에 용맹정진했다. 이런 일화도 전해진다. 혜월은 논밭을 개간하여 절 대중을 먹여 살렸던 일 때문에 흔히 개간선사로 불리기도 한다. 어느 날 도둑이 들어 갓 추수한 쌀가마를 몰래 지고 가려고 끙끙대는 모습을 본 혜월이 도둑의 등을 밀어주며 “먹을 것 떨어지거들랑 다시 오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혜월은 겨울산에서 땔감으로 솔방울을 따려고 팔을 내밀었다가 소나무가지를 잡은 채 끝내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묘관음사에 토굴선방을 낸 운봉 스님과 그의 제자 진제(眞際) 스님, 절집을 짓고 선방 길상선원을 연 향곡 스님, 1949년 향곡의 절친한 도반 성철(性澈) 스님이 이곳에서도 생식하며 밤에도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로 안거를 철했으며 대선사 경허, 혜월, 운봉, 향곡, 진제로 이어지는 한국선불교의 법맥을 이은 성지다. 그뿐인가. 서옹, 석암, 구산, 성철, 월산, 자운 스님으로 이어지는 선종의 깊은 고독이 묻어난다.
영등할멈이 내려올 때면 절집 마당까지 파도소리가 높다. 파도가 기도가 되고 예불을 이끌어 대중에게 들리는 만큼 깨우침을 전한다. 작은 포구에는 닻을 내린 어선들이 하나같이 법문을 향해 머리를 같은 방향으로 둔 채 귀 기울인다. 파도소리가 깔린 경내에 청아한 풍경소리 문득 세상을 향한 법문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번뇌와 욕심이 헛됨을 깨친다. 이 밤도 잠들지 않은 파도소리는 소유와 집착의 허무를 버리고 소통과 득도에 이르도록 죽비를 내리치며 “시비를 떠나 부처님 법대로 살아라.”는 법어를 되풀이 한다. 묘관음사에는 지난날 수많은 선사들이 소리 소문 없이 머물다 떠났듯이 갯가 작은 절집을 둘러싼 해무가 우리의 부끄러움과 어리석음을 가리고 섰다. 묘관음사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군림하기보다는 온유하고 겸손하며 자비와 평화를 나누는 생활 속에서 버림으로써 가득 채우는 충만의 삶을 깨우치게 한다.
첫댓글 그리움님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참나리님! 함께 나누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 쪽으로 많이 다녔는데 무심코 지나쳤습니다. 온유와 겸손 자비와 평화는 우리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네요. 감사합니다.
명금당님! 아무래도 주님과 부처님은 통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움님! 정겹고 그냥 지나치게 될 것을 상세히 적어주심 잘 읽고 기회가 주어지면 더 잘 보게 되겠죠.?^*^
"묘관음사는 세상사람을 군림하기보다는 온유, 겸손, 자비, 평화 나누며 버림으로써 더 크게 채우는 충만의 삶을 스스로
깨우치게 한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은총 충만한 나날 이시길......행복하세요.^^*
차사랑님! 나의 신앙이 소중하듯 부처님 오신 날도 기쁨에 넘칩니다.^*^
선생님!
언젠가 지리산 실상사에 갔는데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여! 평안하라."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지요.
선생님의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관음사에서 버림으로써 가득 채우는 충만의 삶을 깨우치고 싶습니다.
청초이님! 믿음은 마음으로부터 일테죠?
저는 오래 전부터 31번 국도를 오가며 들르는 묘관음사에서 믿음과 신앙의 마음을 닦는답니다. 고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