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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주의 잔혹사'와
반(反)자본주의 지식인들 ○○
70년 동안 '철의 장막'에 갇혀 내막이 알려지지 않은 공산주의 나라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마르크스가 그린 완전 평등이 실현되어 노동자들이나 백성들은 말 그대로 유토피아적 삶을 누렸을까?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들은 '지상 천국'이 아니라 '지상 지옥'의 삶을 살았다.
프랑스 우파가 지은 『공산주의 잔혹사』(The Black History of Communism, 1999)(이하 『잔혹사』)는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수백 만부가 팔렸으며 20세기의 저서 중 가장 영향력있고 논쟁적인 책 중의 하나다.
저자들이 말하는 공산주의는 '레닌주의', '마르크스∙레닌의 공산주의' 즉 20세기에 실제로 존재했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정권을 의미한다.
『잔혹사』는 공산주의자들이 나치가 학살한 2500만 명의 4배나 되는 대량학살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공산주의자들은 나치보다도 훨씬 더 잔혹한 학살자들이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쿠르토와(Courtois)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공산주의 이론과 실천을 구분해야 한다. 정치적 철학으로서의 공산주의는 플라톤의 공화국이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처럼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철학적 공산주의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공산주의 즉 블라디미르 레닌(소련), 피델 카스트로(쿠바), 마오쩌둥(중공)과 같은 실제적 공산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잔혹사』에 의하면, 공산주의 정권들에 의해 죽은 사람 수는 9400만 명 이상에 달한다. 사망자 수에는 굶어 죽은 사람, 맞아 죽은 사람, 강제노역으로 죽은 사람, 총살로 죽은 사람 수를 포함한다.
비판자들은 숫자가 부풀려졌다고 비난하지만 지지자들은 누락된 숫자를 더하면 1억 명 이상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쟁이 아닌 상태에서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국민을 이토록 많이 죽였다는 것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거한다.
○ 국가별 사망자 수
국가 별 사망자 수는 다음과 같다.
- 중공(6500만 명)
- 소련(2000만 명)
- 캄보디아(크메르루즈)(200만 명). 크메르 루즈는 안경
쓴 사람, 손이 고운 사람은 부르주아지라면서 처형했다.
- 북한(200만 명). 1994~1999년의 고난의 행군 기간 동안에만 약 33만~69만 명이 굶어죽었다.
- 이디오피아(170만 명)
- 아프가니스탄(150만 명)
- 동유럽(100만 명)
- 베트남(100만 명)
- 중남미(15만 명)
○ 필연적으로 독재로 가는 공산주의
공산주의는 혁명에 의한 폭력으로 정권을 장악하므로 독재를 하기 마련이다.
소련의 레닌에 의한 볼세비키 혁명, 중공의 마오쩌둥에 의한 혁명, 쿠바 혁명 등, 북한은 점령군 소련의 독재자인 스탈린이 임명한 김일성(본명 김성주)이 공산당 대표로 들어선 후 3대 종신 세습 독재를 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정부'의 성격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경제 토대가 중요하고 상부 구조인 '정부는 지배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권력을 탈취한 공산주의자들은 당∙군∙정의 권력 장악을 통해 인민의 모든 삶을 옭아매는 큰정부를 실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당의 방침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감시하고 처형하기 위해 강력한 '비밀 경찰'을 유지해야 했다.
둘째 반대자들을 통제하고 교화시키는 '강제수용소'가 엄청나게 필요했다.
셋째 정부가 인민의 모든 삶을 지도하고 감시하다 보니 '관료조직'이 엄청나게 비대해 졌다.
레닌도 혁명 직후에 엄청나게 비대해지는 관료조직에 놀랐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부가 경찰국가, 병영국가 및 계획경제를 주도하다 보니 관료조직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재권력이 경제발전에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구소련의 레닌은 거듭된 경제 실패를 공포정치로 대응했다. 각 지역에 3인 위원회를 두고 이들에게 처형자 숫자를 수시로 할당했다.
중공의 마오쩌둥은 잘 알려진 참새잡이 사건과 가정별 용광로 사건으로 경제가 실패하자 당 내부의 반발이 엄청나게 심했다.
때마침 소련에서는 흐루쵸프의 스탈린 격하운동이 강하게 일어나서 중∙소 사이가 으르렁거릴 때였다.
경제실책에 대한 당내의 반발이 거세지자 마오쩌둥은 친위 혁명을 통해 자신을 비판하는 반자본주의 세력을 거세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문화대혁명'이다.
마오쩌둥은 문화혁명을 통해 ‘중공의 흐루쇼프’인 류사오치(유소기)를 거세하고 등샤오평을 격하시키면서, 중공의 전통 문화를 파괴하고 자본주의자들을 색출하고 처형하는 10년간의 혁명을 주로 10대 홍위병을 통해 성사시켰다.
이후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마오는 군대를 동원하여 홍위병을 해산시키고 반문명적 문화대혁명은 막을 내렸다.
북한에서도 김일성은 자신의 실책을 무마하고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 한때 동지였던 연안파, 갑산파, 소련파 등을 무자비하게 숙청했다.
○ 하이예크의 ‘노예의 길’
자유주의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예크(1899~1992)는『노예의 길』(1943)을 통해 사회주의-나치(국가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필연적으로 독재를 통해 사람들을 ‘노예의 길’로 인도한다고 경고했다.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려는 사람 때문에 이 세상은 정확히 천국에서 멀어진다."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하이예크가 1944년 2차 대전 기간 중,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 변화가 전체주의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위기 의식에서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집필했다.
사회주의는 유토피아를 약속하며 좌파들의 교리가 되었다. 사회주의는 새로운 자유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부의 평등 분배를 이루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과연 누가 이런 것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그 누군가가 해주려면 그 누군가가 권력을 쥐게 된다. 자유의 길을 찾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은 ‘노예의 길’로 가는 것이다.
사회주의, 전체주의를 따르다 보면 국가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게 되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독재의 길, 즉 나치즘, 스탈린식 공산주의, 파시즘 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하이예크의 주장이다.
하이예크의 예측은 나치즘, 파시즘 및 공산주의에 대해 맞아떨어졌다. 모두가 허황한 이상을 좇다가 독재로 흘러서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 상태로 전락시켜서 결국은 망해버렸다.
○ 무오류한 공산주의의 만행
송재윤은 『슬픈 중국』에서 공산당의 만행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공산당은 위대하고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과도한 자기중심주의와 무오류주의에 빠져있는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 은폐는 일도 아니다.
마오쩌둥이 저지른 엄청난 반인륜범죄는 중국 공산당이 기술한 역사에는 당연히 빠지게 돼 있다.
천안문사태에서 희생된 인명도 거의 없고, 코로나19의 발원지가 중공임에도 그 사망자수는 주요 서방국가들에 비하면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뭐 이런 식이다. . . ."
송재윤은 저서에서 공산정권의 대량학살은 엉터리 삼단논법(syllogism) 하에서 자행됐다고 진단한다
1. 대전제: 공산주의는 (인류를 구원하는) 절대선이다.
2. 소전제: 반대세력은 (공산주의에 저항하는) 절대악이다.
3. 결론: 절대선(=공산주의)을 위해 절대악(=반대세력)은 제거돼야만 한다.
따져 보면, 대전제 자체가 경험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유사(類似) 종교적 믿음일 뿐이다. 공산 정권이 사용한 대량 학살의 삼단논법은 결국 그릇된 믿음에서 당위를 도출하는 엉터리 논증이다. 계급 학살(classicide)의 합리화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정부가 필요한 이유는 '자본가' 잔당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본가 잔당에 국한되지 않고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반대세력의 이름은 반혁명분자, 부르주아지(자본가), 주자파, 제국주의자, 수정주의자, 수구세력, 우경분자, 친일파, 친미파, 극우파 등이다.
반대세력이 뭐라고 불리든 대량 학살의 논리는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우리 편이 아니면 바로 적’이라 낙인 찍고 ‘적의 제거는 곧 선의 실현’이라 미화하는 소아병적 억지주장이다.
○ '증오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
인간 평등과 노동 해방을 부르짖는 공산주의 정권들이 대체 왜 그토록 잔혹한 대량 학살을 자행했을까?
공산주의 사상 이면에는 '증오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이 역사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에 대햔 '자비'가 아니라 자본가에 대한 '증오'로 공산주의 혁명를 주창했다.
레닌도 자신이 대학 재학시 사소한 일로 퇴학을 당하자 증오와 복수심으로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렸다. 그는 혁명을 위해서는 반대파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의 좌파들도 군사 독재에항거하다가 투옥, 고문 및 각종 불이익을 당한 후 '분노'와 '복수심'으로 '적의 적은 동지'라는 단순한 논리로 거중(중국을 두려워함), 종북, 반미, 친일의 프레임으로 우파를 대적해 왔다.
한국의 좌파들도 우파와 투쟁하다가 정신이 해이해지거나 마음이 약해지면 반대자에 대한 분노와 중오심울 키우라고 독려한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또한 '사탄숭배자'였다. 당연히 그는 기독교를 대적했다. 기독교를 대적하는 영은 애굽의 바로나 예수님 당시의 헤롯왕 처럼 대량학살을 서슴지 않는 '짐승의 영'(계 13징)이자 '적그리스도의 영'(요일 4장) 이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기독교는 대량학살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는 '루시퍼의 제자들'인 공산주의자들과 사활이 걸린 전쟁을 치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경직 목사도 북한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끔찍한 만행을 피해 월남했으며, 그들은 '붉은 용'(계 13장)의 세력들이므로 기독교인들은 반드시 그들을 격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외에도 공산주의에는 거짓의 영, 가난의 영이 역사한다. 네 것 내 것 없이 모두 평등한 지상천국을 내세우지만 실제는 지상지옥이고, 모든 사람을 거지로 만들고 있다.
경제 파탄으로 멸망한 구소련과 위성국가들, 중미의 베네스웰라와 쿠바, 북한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일당 독재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중공은 세계 최빈국에서 40년만에 G2국가로 상장했고, 베트남의 경제도 급성장하고 있다.
○ 반(反)자본주의 지식인들
이처럼 '공산주의의 잔혹사'가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거나 미화하는 자들이 있다. 세상에서 유명세를 탄 소위 말하는 지식인들이다.
왜 지식인들 중에 반자본주의자들이 많은가? 여기서 말하는 지식인은 주로 학자, 언론인 및 고위공직자들을 말한다.
라이너 지텔만은 『부유한 자본주의와 가난한 사회주의』에서 그 이유를 몇 가지 제시한다.
첫째 플라톤의 '정신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잘못된 이원론의 영향이다. 더군다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농업은 중시했지만 이윤을 붙여 파는 상업은 도둑질이라고 경시했다.
둘째 지식인은 자신들이 인생만사의 해법을 알고 있다는 지적 교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돈벌이만 잘하는 사업가를 천박하게 여기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공부 머리'와 '사업 머리'는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이 두 가지를 다 가지면 '재벌급'이 된다. 하버드 대학 출신인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거, 서울 공대 출신 네이버의 이해진과 카카오톡의 김범수를 들 수 있다.
셋째 똑똑한 지식인 보다 더 잘사는 자본가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강하다. 일반적으로 학창 시절에 공부도 못한 자들이 사회에 나와서 돈 좀 벌었다고 행세하고 잘난 체하는 것에 대한 지식인 특유의 시기와 질투가 강하다.
넷째 많은 지식인들은 정신 보다 돈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증오심이 워낙 강하다 보니 공산 독재자의 대량 학살조차 평가 절하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리 바르비스'와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대표적이다.
바르비스는 1926년 종군 체험일기인 『포화』를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후 소련 스탈린의 광적 숭배자가 되었다. 그는 이런 글을 남겼다.
"그(스탈린)의 인생은 온갖 고난을 극복한 승리의 역사였다. 그는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위대한 행적을 남기지 않았으나 단 한 가지만으로 명성을 얻기에 족했다. 이것이 강철 인간 스탈린이다. 그는 모든 명예를 누릴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사르트르는 "공산주의자들과 평화"란 글에서 "스탈린 체제 하에서 강제수용소는 없다"고 말했다. 사르트르는 1954년 소련 방문 후 ‘소련에는 표현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된다’는 터무니없는 발언을 했다.
사르트르의 계약 결혼 상대자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이라는 페미니즘 작품으로 유명한데, "마오쩌둥이 혁명을 일으킨 것은 고도의 윤리"라고 칭송했다.
사르트르는 자본주의에 반하는 것, 즉 쿠바의 혁명 영웅 체 게바라를 비롯해 독일의 적군파,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를 죽인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캄보디아 전체 인구의 20퍼센트에 달하는 200만 명의 국민을 학살하여 ‘킬링 필드’라는 영화까지 제작된 캄보디아의 폴 포트 등 자본주의에 반하는 모든 것들을 찬양하고 지지했다.
사르트르처럼 지식인들의 좌파에 대한 찬양과 숭배는 끝이 없다.
특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1928)는 베트남의 베트콩과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 레바논의 헤즈볼라의 민간인 학살과 고문을 정당화하고 이를 왜곡시켰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촘스키는 한국의 좌파들이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자주 인용한다. 그는 돈을 밝히는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공산주의의 대량학살 보다 더 증오한다.
그가 현재 미국 유명 대학의 명예교수로서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일차적 이유는 자본주의의 '돈' 덕분 아닌가?
만일 그가 공산주의 치하에 있었다면 그런 물질적 풍요와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까? 그는 또한 실패로 끝난 김대중의 햇볕정책과 종전선언 추구를 지지한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살인마 마오쩌둥을 존경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3대 종신세습 독재자 김정은 '수석 대변인' 역할을 하는 등, 백낙청, 조정래 리영희, 신영복, 김영환 같은 종북/주.사.파 대부들과 주.사.파들도 서양의 좌파 지식인들과 다를 바 없다.
한번 사회주의/공산주의 아편에 중독되면 세상 모든 이치를 '만민 평등'의 '목적' 달성이라는 좁은 프레임으로 보면서 폭력, 거짓, 살인, 선동 등의 모든 '수단'을 정당화 하기 때문이다.
이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해독제는 참 진리인 성경과 예수 밖에 없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4-5).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