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정리해둔 자료를
컴퓨터 하드드라이브에서 찾다가 몇 시간만에 결국 포기하고
옛 기억을 더듬어 포스팅한다.
유럽 근대철학에서 인간의 정신능력을 知・情・意로 나눈 사람은 칸트라고 흔히들 알려져 있다.
순수이성, 판단력, 실천이성이 각각 知・情・意에 상응한다.
물론, 이 삼분법은 칸트 이전에 Tetens가 한 것이지만,
사상사적으로 Tetens의 저작(1777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은 미적/취미 판단을 다룬다.
미적/취미 판단의 대상은 감성적인 것인데,
Tetens에서 Kant에 이르기까지 18세기 독일어 문화권에서는
감각(Empfinden/ Empfindung), 심성(Gemuet), 감정(Gefuehl) 등의 개념 구분이 이루어져 왔다.
知・情・意 삼분법에서, 情이란 범주 아래에
감성적인 것( --> 미적인 것), 심성, 감정/정서/정념 등이 포괄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미학"이란 말 대신에 "감성학"이란 말을 쓰자는 사람들도 요즘에 있다.)
다만, 칸트는 인지/지각이라는 문제와 관련해서, 감각(적인 것)은 <순수이성 비판>에서 다룬다.
또, 칸트는 먼저 知[logos]를 우위에 두고서
다시 그 범주 아래에서 知・情・意를 구분, 배치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본디 칸트는 로고스중심주의자인 것이다.
意의 범주는 리비도에서 충동 및 정동을 거쳐 의지까지를 포괄한다고 할 수 있는데
독일 사상사에서는 쇼펜하우어, 니체, 프로이트가 큰 기여를 했다.
인간의 영혼/정신 능력 일반과 관련해서는 칸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아퀴나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까지 들춰내야만 하겠지만
여기서 굳이 그러기는 힘들며 불필요하다.
知・情・意라는 번역어 개념이 근대 일본 문헌에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哲学字彙>(1881, 1884 등)라고 해야 할 것 같다.
1881년 본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주목할 점은 intellect가 智力으로 번역되어 있다는 점이다.
emotion 정서
ethics 윤리학
feeling 감응
intellect 智力
will 의지
知・情・意 삼분법에 대해서 거론한 일본의 최초 문헌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의 『文芸の哲学的基礎(문예의 철학적 기초)』(1907년 강연)로 알려져 있다.
"吾人は今申す通り我に対する物を空間に放射して、分化作用でこれを精細に区別して行きます。同時に我に対してもまた同様の分化作用を発展させて、身体と精神とを区別する。その精神作用を知、情、意、の三に区別します。"
한편, 나쓰메 소세키는 그의 소설 『草枕(풀베개)』(1906년)을 이렇게 시작한다.
山路を登りながら、こう考えた。
智に働けば角が立つ。情に棹させば流される。意地を通せば窮屈だ。とかくに人の世は住みにくい。
住みにくさが高じると、安い所へ引き越したくなる。どこへ越しても住みにくいと悟った時、詩が生れて、画が出来る。
산길을 올라가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智에 움직여지면 모가 난다. 감정에 휘저어지면 떠내려가게 된다. 고집이 통하게 되면 갑갑해진다. 아무튼 인간세상은 살기 어렵다.
살기 어려운 게 심해지면, 편한 곳으로 옮기고 싶어진다. 어디로 옮겨도 살기 어렵다고 깨달았을 때, 시가 생겨나고 그림이 태어난다.
1906년과 1907년 사이에 智・情・意가 知・情・意로 바뀐 셈인데
나로서는 어떠한 사정이 있었는가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일본 쪽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智와 知가 크게 봐서 결국 같은 글자라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아무튼, 애당초에 智였다는 것은
黒田清輝(쿠로다 세이키, 1866-1924)의 그림 제목만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1899년의 유채 연작 <智・感・情>이 그것이다.



情 感 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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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다 세이키의 경우에는 智・情・意가 아니라 智・感・情로 되어 있다는 게 좀 의아하고 궁금하기는 하다.
최근 어느 일본의 미술사 연구에 의하면,
쿠로다 세이키의 이 작품은 스펜서 심리학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19세기말 일본 미술계에 널리 소개된, 스펜서의 <심리학 원리>에서의 <미적 정조론(美的情操論)>(?)에
感覚[感]・知覚[智]・情緒[情]라는 삼분법이 있는데
쿠로다 세이키의 그 작품이 바로 그 삼분법의 영향 아래에서 그려졌다는 것이다(과연?).
아무튼, 나쓰메 소세키는 그의 소설 『草枕』의 후반부에서 그 나름의 예술론을 다음과 같이 독특하게 펼치고 있다.
善は行い難い、徳は施こしにくい、節操は守り安からぬ、義のために命を捨てるのは惜しい。これらをあえてするのは何人に取っても苦痛である。その苦痛を冒すためには、苦痛に打ち勝つだけの愉快がどこかに潜んでおらねばならん。画と云うも、詩と云うも、あるは芝居と云うも、この悲酸のうちに籠る快感の別号に過ぎん。
선은 행하기 어렵고, 덕은 베풀기 어렵고, 절조는 지키기 쉽지 않고, 의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애석하다. 이런 것들을 굳이 하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고통이다. 그 고통을 무릅쓰려면, 고통을 이겨낼만한 유쾌함이 어딘가에 잠복해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림이라고 해도, 시라고 해도, 혹은 연극이라고 해도, 이 비참하고 쓰라림 속에 깃든 쾌감의 별칭에 불과하다.
智・情・意든 知・情・意든 간에 인간 정신능력의 삼분법이라는 틀이
유럽으로부터 일본, 중국, 한반도 등의 동북아시아 지역으로 전해들어 온 것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다.
그런데, 이런 틀에 연연하지 않고,
體라는 다소간에 도발적이고 이질적인 범주를 통해서 중국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고자 한 게 바로 모택동이다.
모택동은 <新青年> 第3卷 第2号(1917년 4월)에 "二十八畵生"이란 필명으로 "体育之研究"를 발표했다.
(모택동이 최초로 발표한 글이라고 알려져 있다.)
知・德・體라는 삼분법이 오늘날 교육 분야에서 흔히 쓰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중국혁명에서 군사 부문의 역량이 차지한 역할을 생각해 본다면
정말, 모택동은 나름대로 아주 탁월한 면이 있다.
新青年第3卷第2号.pdf
***** 부기
중국 근현대 초기에 知・情・意 범주가 어떻게 소개, 수용되었는가는 좀 더 알아봐야 한다.
특히, 스펜서의 <심리학>이 어떻게 소개되었는가를 살펴야 한다.
관련 문헌이나 자료를 알고 계신 분은 댓글로 가르침을 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