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6(수)
적멸보궁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수마노탑의 형상을 대신했다.
<정암사>
신라의 큰 스님이었던 자장율사가 태백산 서쪽 기슭에 정암사를 창건했던 때가 선덕여왕 14년이었다.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다’ 라는 의미에서 정암사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이 절은 오대산의 상원사, 양산의 통도사, 영월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과 더불어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5대 적별보궁중의 한 곳이다.
자장율사는 28대 진덕왕 때 대국통의 자리에서 물러나 강릉에 수다사를 세우고 살았다. 어느 날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자장율사에게 말했다 “내일 너를 대송정에서 보리라” 그 말을 듣고 놀라 깨어난 자장이 대송정에 이르자 문수보살이 나타나 “태백의 갈반지에서 만나자”하고 말 한 뒤 다시 사라져 버렸다. 그 말을 따라 태백산에 들어가 갈반지를 찾아 헤매던 자장은 큰 구렁이들이 나무 아래 서로 얽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그 곳이 문수보살이 말한 갈반지라 여겨서 ‘석남원’(石南院, 곧 정암사)이라는 절을 지었다.
정암사는 숙종 39년(1713)에 중수되었으나 낙뢰로 부숴져 6년 뒤 다시 중건되었고, 1771년과 1872년에, 그리고 지난 1972년에 다시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정암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수마노탑은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마노석으로 만든 탑이라 하여 마노탑이라고 한다. 마노 앞의 수(水) 자는 자장의 불심에 감화된 서해 용완이 마노석을 동해 울진포를 지나 이곳까지 무사히 실어다 주었기에 ‘물길을 따라온 돌’이라 하여 덧붙여진 것이다. 이 탑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와 백성이 복되게 살기를 기원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전체 높이가 9m에 이르는 칠층모전석탑인 이 탑의 1층은 마노석을 15단으로 쌓아 높이 103cm, 한 변이 178cm 되게 만들었으며, 층수가 한 단계 높아질수록 그 크기는 줄어들고 있다. 탑의 1층 남쪽면 중앙에는 1매의 판석으로 짜여진 문비가 있으며, 문비는 철제 문고리도 장식돼 있다.
지붕돌은 낙수면에 층단이 있는 전탑의 양식을 따랐고, 추녀 폭은 전탑 임에도 불구하고 넓은 편이다. 지붕돌 층급받침은 1층에서는 7단으로 되어 있으나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한 단씩 줄어 7층에서는 1단이 되었고, 낙수면의 층단도 1층에서는 9단이지만 층을 거듭할수록 한 단씩 줄어 7층에서는 3단이 되었다.
상륜부는 화강암으로 조성된 노반 위에 갖가지 청동제 장식이 완전하게 얹혀 있고. 각 지붕돌의 네 모서리에 풍경이 가지런히 매달려 있다. 빗속에 바람이 불고 그 풍경이 청량한 소리를 내는 시간 먼데 산 위에 흰 구름이 문득 외롭기 그지없다.
수마노 탑은 전체적으로 그렇게 큰 탑은 아니지만 그 수법이 정교하다. 한편 탑 앞에는 배례석이 놓여 있는데, 새겨진 연화무늬를 살펴보면 고려시대의 특징이 보인다. 이 탑은 정암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알려져 있지만 탑의 양식으로 볼 때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정암사 비명에 의하면 18세기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으며, 지난 1972년 해체·복원된 이래 지반이 기울고 있어 몇 년 전에 전면 보수를 하였다. 한편 1972년 해체 수리 당시 탑지석(塔誌石)과 사리 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이 절을 세운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석가의 신물(信物, 사리·치아·염주·불장주·패엽경 등)을 ‘세 줄기의 칡이 서린 곳’에 나누어 각각 금탑, 은탑, 수마노탑을 모셨다고 한다. 그러나 후세 중생들의 탐욕을 우려한 자장율사가 불심이 없는 중생들은 금탑과 은탑을 육안으로 볼 수 없게 숨겨버렸다고 하는데 가끔씩 못골마을의 못위에만 나타난다고 한다. 정암사 북쪽으로 금대봉이 있고 남쪽으로 은대봉이 있으니 그간의 어디에 금탑과 은탑이 있을 것이라고도 전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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