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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전혀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온 국민이 슬퍼하고 공분하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어언 3年이 되어 추모현수막을 학교에 달겠다는데 누가 딴죽을 걸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뜻밖에도 교장선생님이 난색을 표했습니다. 학교 명의로 하나 걸면 됐지 전교조 분회까지 걸 필요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교총도 안 걸기로 했으니 전교조도 걸지 않는 게 형평성에 맞다는, 교장의 수준 이하 논리는 교총을 핑계 삼아 전교조를 제어하려는 以夷制夷(이이제이) 술책입니다. 속내 빤히 보이는 잔머립니다.
부아가 치밀었지만 그래도 계통은 밟아야 하겠기에 두어 번의 내부통신망(쿨메신저)과 직접 면담, 급기야는 조합원 전체와 교장, 교감에게 보내는 공개질의로 교장을 설득하기도 하고 압박하기도 했지만 도무지 소용이 없습니다.
31년 전, 같은 해에 함께 교사로 부임한 교장인지라 사석에서는 말을 놓지만 공개질의는 공적인 질문이어서 나름 예를 갖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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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씀은 생략하고 교장선생님께 질의합니다.
어제 교장선생님은 본 분회가 교감선생님을 통해 전해드린 본 분회 명의의 세월호 추모 현수막 교내 게시를 거부하셨습니다.
그 현수막은 세월호 3주기를 맞이하여 전교조 서울지부가 제작한 것이고, 세월호 추모는 서울시교육청에서도 공문(정책 안전기획관-3031)을 통해 권장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교장 선생님은 본 분회의 세월호 추모현수막 게시를 거부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다는데 또 달 필요가 있느냐’고 어제 5교시 후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마주친 본인에게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셨고 ‘퇴근 전까지 최종 답변을 달라’는, 이후 본인의 쿨메시지 질의에도 교장선생님은 같은 답변을 하셨습니다.
‘공개질의를 하겠다’는, 복도에서의 본인 항의에 ‘하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질의합니다.
교장선생님.
추모나 조의는 누군가 한 사람만 하면 됩니까? 선생님들이 喪을 당했을 때 한 사람만 장례식장에 가서 조의를 표하면 됩니까? 교장선생님이 조문을 가면 다른 선생님들은 구태여 조문 갈 필요가 없습니까?
궁색한 말씀입니다.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死者들의 넋을 위로하자는데 현수막의 숫자를 따짐은 우스운 일입니다.
슬픔과 고통에 처한 친구가 있으면 그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힘껏 힘을 모아 도와줘야 한다고 우리는 학생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행동으로 본을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개개인의 일도 이럴 진대, 하물며 세월호 같은 국가적인 재난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국민 모두가 차가운 맹골수도 4月의 바다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집단 수장되고 만 삼백 사 명의 어린 넋들을 추모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그것은, 人之常情입니다. 거기에는 정치 성향도, 종교 구별도, 지위의 고하도 없습니다. 사측과 노조의 입장 차이도 없습니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은 본 분회의 세월호 추모를 막았습니다. 학교가 할 테니 분회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 삼 년 전의 이 말을 아직도 우리가 들어야 합니까?
글을 맺습니다.
바라건대 교장선생님께서, 학교 운영의 최고 관리자인 교장선생님께서 이번 일을 원만하게 잘 ‘운영‧관리’하셨으면 합니다.
오늘 하루, 지켜보겠습니다.
- 전교조 서울지부 사립강서남부지회 ○○고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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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교장은 요지부동입니다. 마치 그것이 공평한 처사인 양, 균형 잡힌 행정인 양 교총과의 형평성만 동어 반복합니다.
교육청에서도 세월호 3주기 추모를 권장하고 초등학교 꼬맹이들조차 수업시간에 엽서를 쓰고 노란 종이배를 접어 추모하는데 추모 현수막 하나 달지 못하게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해서, 지난 주 금요일 점심시간에 교장을 찾아가 최종 통보하고는 전격적으로 달았습니다. 때마침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을 맞으며 현수막을 달고는 좋아라, 인증샷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1시간도 안 되어 교장이 찾아왔습니다. 찾아와서는 언성을 높입니다. 분회에서 안 떼면 행정실 직원을 통해 떼겠다고 윽박지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그시 쳐다만 볼 뿐 대거리를 안 했더니 얼레? 정말 떼었습니다. 현수막이 사라진 현장을 뒤늦게 보는 마음이 그 휑한 공간만큼이나 허전했습니다.
교장과의 ‘밀당’이 무지하게 유치했지만 그러나 이렇게 끝낼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잘 됐다 싶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찍어 물증으로 남기고 전교조 서울지부에 상황보고를 하자 지부 선생님도 혀를 찹니다. 전교조신문에 낼 만하다고 하여 기자를 연결해 줍니다. 기자에게 상황을 다시 설명한 후 사진 두 장을 이메일로 보내주었더니 그제 드디어 인터넷 기사로 떴습니다. 조만간 종이신문으로도 나올 것입니다.
기사 내용이 괜찮으냐는, 기자의 문자 물음에 ‘서울의 ㅁ고’는 너무 막연하니 ‘금천구’를 넣으라고 일렀습니다.
세월호 학생들도 우리들의 제자인데, 그 제자들의 허망한 죽음을 함께 슬퍼하고 기억하자는데, 온 국민이 다 그렇게 하는데 현수막 한 장에 驚氣(경기)를 일으키는 교장이라니..... 어렵사리 세월호는 올라왔지만 교장의 의식수준은 아직도 저 물 밑 한참 아래입니다. 끌어올리기 難望입니다.
아래의 글은 전교조신문 기사입니다.
이런 내용이 아직도 활자화되는 현실이, 교육현장이 참 우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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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추모’ 전교조 분회 현수막 뗀 사립학교
서울 ㅁ고 “학교 것으로 통일해 달자”... 학교장이 일방 철거
최대현 ㅣ 기사입력 2017/04/20 [10:46]
▲ 서울의 한 사립학교가 전교조 분회의 세월호 3주기 참사 현수막을 일방 철거해 물의를 빚고 있다. 전교조 서울지부 ㅁ분회의 현수막 © 전교조 서울지부
서울의 한 사립학교가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추모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교내 현수막을 동의 없이 철거해 물의를 빚고 있다.
20일 전교조 서울지부에 따르면 서울 금천구 ㅁ고의 전교조 분회(전교조의 학교단위 조직)는 지난 14일 오후12시 30분경 교내 쉼터에 세월호 참사 추모 현수막을 달았다. 서울교육청이 정한 참사 3주기 추모기간(4월10일~16일)에 맞춰 전교조 서울지부를 통해 제작한 것이었다.
내용은 ‘4.16 3주기 세상과 교육을 바꾸겠습니다. 입시경쟁교육 이제 그만, 협력과 배려의 교육으로!’였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새로운 교육을 만들겠다는 ㅁ고 분회의 추모였다.
그러나 이 현수막은 오래가지 못했다. 학교장이 오후 2시 20분경 분회 현수막을 철거한 탓이다. ㅁ고 분회 추모는 그렇게 사라졌다. 이유상 분회장은 “교내의 게시물 관리는 학교장에게 권한이 있겠으나, 4.16같은 국가적인 슬픔에 추모의 뜻을 표하려는 현수막 게시를 교장이 불허한 것은 행정적인 절차 이전에 국민 정서에 어긋나는 ‘교장 갑질’”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ㅁ고 분회의 추모 현수막 게시도 서울교육청의 추모기간으로 보면 늦은 편이었다. 이 역시 학교장이 현수막 게시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학교장은 분회장에게 “학교에서 다는데 뭘 또 달려고 하느냐”, “중복 게시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한다”는 등의 이유로 분회의 현수막 게시를 승인하지 않았다. “(현수막)문구를 보자”고도 했다.
분회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 다양하게 표현할수록 추모의 뜻이 깊어진다”,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망자들의 넋을 위로하자는 데 현수막의 숫자를 따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면서 현수막 게시를 주장했지만, 학교장은 끝내 동의하지 않았다. 학교측은 서울교육청의 추모 계획에 따라 정문에 ‘그날을 잊지 맙시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게시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분회는 지난 14일 자체 판단으로 현수막을 달았다. 하지만 학교장은 2시간여 만에 추모 현수막을 철거했다. 이 분회장은 “교장의 독단적 행위는 교육청 지침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학교측은 현재까지 분회 현수막을 행정실에 보관하고 있다. 윤 아무개 교장은 “학교가 현수막을 다니, 통일적으로 다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한국교총한테도 이렇게 얘기했을 때, 동의하더라”며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없게 해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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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래야 교장이 될수 있습니다. 만년 교사와 경사가 더 멋있습니다.
나 경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