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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1073
땅과 자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히브리서 11:8-22)
2021-12-5
하나님을 믿음으로 교회와 함께 하늘의 도성을 향해 나그네로 살아가자
어린이 설교
오늘은 믿음에 대해서 가르쳐요. 믿음이 뭘까? 생각해보세요. 믿음은 분명히 내가 생각하고 내 속에 있는 거죠? 그런데 믿음은 내 바깥에 있는 겁니다. 내 바깥에 있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나한테 복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나타났고 우리에게 복 주신다고 말했어요. 오늘 우리가 읽은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고 아브라함에게 복을 준다고 말했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꼭 붙들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주실 복을 생각하며 살아갔어요. 믿음은 뭐라고요? 내가 하는 거지만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바깥에 있는 거라고요. 내 바깥에 있는 믿음. 그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에 대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뭐를 약속했느냐? 영원한 천국을 약속했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세상 살아가면서 마지막 천국을 향해서 걸어가는 여행을 하듯이 살아갔어요. 어린이 여러분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제일 좋은 약속 천국을 생각하고 천국을 주신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아가도록 해요. 계속해서 말씀을 들읍시다.
우리 다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교회와 함께 하늘의 도성을 향해 나그네로 살아갑시다. 염려되고 불안한 일이 사람에게는 계속 있습니다. 그 원인이 여러 가지 있지만, 확신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확신이 없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목표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향할 것인지 목표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간 믿음의 성도들은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한 그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약속한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나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도 오늘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교회와 함께 하나님께서 주신 하늘의 목표를 향해서 믿음으로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둘째로, 아브라함과 그 자손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을 바라보고 땅에서 여행자로 살아갔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가문에게 자손을 약속해주셨는데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고 나갈 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새롭게 해주시고 그 약속 때문에, 약속을 향하여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나가는 우리에게 성령께서 새로운 힘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1) 믿음의 대상: 삼위 일체 하나님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믿음이라 할 때 믿음에는 몇 가지 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의 대상이 분명한 것이 믿음입니다. 내 안에 있으면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했는지를 성경에서 보여주는데 그런 일을 행한 하나님을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이 되시고 저와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하늘 성소로 들어가셨습니다. 히브리서 9:12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땅에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것은 하늘에서 일어난 것을 표시합니다. 하늘에서 하늘의 성전, 아버지 하나님이 왕좌에 앉아 계신 하늘의 성전에 피를 뿌리면서 먼저 가신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 되셔서 거기로 들어가셨습니다. 또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2) 믿음의 복: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일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계획했습니다. 믿음에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들어가신 하나님의 나라로 우리도 따라 들어갑니다. 요즘처럼 주택 장만이 힘들 때 아파트 하나 얻어서 들어가면 참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영원히 살 하늘의 나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우리는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그 나라의 시민으로 불러주신 모든 성도는 그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곳에 우리가 영원히 살 우리의 조국이 있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성도는 대한민국 시민이지만 이미 하늘 나라의 시민입니다. 우리의 참된 조국은 천국입니다.
3) 믿음의 과정: 고난 가운데 인내(10:32-39)
그런데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과정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0:32부터 봅시다. 성경 같은 페이지인데요. 앞서간 성도들은 큰 고난을 견뎌냈습니다.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갑니다. 고난 가운데서 “비방과 환난”을 겪으면서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감옥에도 갇혔고 재산도 뺏겼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기쁘게 당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구한 소유”,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 길을 걸어갑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에 이 땅의 고난 가운데서 인내하고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이렇게 담대하게 나아가는 이유는 하늘의 큰 상, 하나님 나라의 큰 상 때문입니다.
4) 믿음의 확실성: 바라는 것의 실상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11:1)
우리의 믿음은 확실합니다. 11:1에서 말합니다. 같이 한번 읽읍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첫째, 믿음은 실상입니다. 믿음의 대상인 삼위 하나님도 실제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도 실상입니다. 믿음으로 받는 복인 죄용서와 영원한 천국 생명도 실재하는 것입니다. 막연히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믿는 거죠? 보지 못하는 것을 믿지만 거기에는 분명히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분명한 증거를 얻게 하십니다. 또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나님께서 증명해주십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앞서간 성도들의 믿음에 대해서 가르치면서 우리가 믿음의 길을 어떻게 걸어갈지 가르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특별히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지를 가르칩니다.
2. 아브라함과 자손은 땅에서 하나님의 성을 바라보며 나갔다(8-12절)
1) 믿음으로, 부르심을 받고 약속을 믿고 나그네로 거주(8-10)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 그분에 의해서 시작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아브라함과 그 자손은 땅에서 하나님의 성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 전체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아브라함의 믿음은 자기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불러주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이쪽으로 가자.”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의 계시와 하나님이 나타나신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은 창세기 12:1-3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아, 고향을 떠나라. 네 친척을 떠나라. 그리고 가라.” 어디로? “내가 너에게 줄 땅으로 가라.” 말하자면 땅을 주겠다, 자손을 주겠다, 모든 민족이 너를 통해서 복을 받게 해주겠다, 세 가지 복을 약속하면서 아브라함에게 떠나라 그랬습니다. 땅과 자손과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는 기원이 될 것을 약속하며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말씀할 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우왕좌왕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디로 갈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떠나라 하고 세 가지 약속은 했지만 어디로 떠날지는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나타나셨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순종하고 나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계시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다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그 약속을 믿고 따라 나갑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유업으로 받을 땅”, 그것은 상속지로 받을 땅인데요, 땅은 원래 여기서 땅이 아닙니다. 8절에 나온. 그냥 장소라는 뜻입니다. 일부러 그 말을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9절에서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있는데 이방 땅에 있는 것처럼, 남의 땅에 있는 것처럼 그냥 천막치고 살았다, 그 약속의 땅이 마지막 땅이 아니라서. 약속의 땅이란 것은 이스라엘 땅이죠? 저쪽에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지금의 이라크가 있는 데서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가라 해서, 여행해서 이스라엘 땅까지 왔는데, 그 땅, 약속의 땅은 맞아요. 약속의 땅이라면 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데 집도 안 짓고 천막치고 다녔습니다. 그걸 보니까 아브라함이 나아간 곳은 땅이 아니라 한 장소란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일부러 하나님이 주신 상속의 장소로 갔다, 우리 성경에는 8절에서 땅으로 갔다 했지만, “약속의 땅”, 곧 장소로 갔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간 그 장소는 어디인가? 10절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 터가 있는 성이다. 터가 있다는 것은 기초가 튼튼하다는 뜻입니다. 가나안 땅, 이스라엘 땅, 아니 이 세상 모든 땅은 기초가 튼튼하지 않습니다. 이 땅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초가 튼튼한 영원한 성을 만드셨습니다. 도시를 만드셨습니다. 그 도시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세우신,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세우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2에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창세기에는 그것이 분명히 나오지 않지만, 아브라함이 그때 가진 믿음을 이 히브리서가 잘 가르쳐줍니다.
일단, 우선은 약속의 땅에 있었지만, 천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물론 나중에 그 후손은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곳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장소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장소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도시, 천사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먼저 믿음을 따라간 성도들이 있는 그곳입니다. 이 하늘의 도시를 히브리서 4:3에서는 “안식”이라고 다르게 표현합니다. 안식. 안식이란 말은 구약 여호수아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그곳에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 안식 말고 다른 안식, 그 안식은 진짜 안식이 아니라, 진짜 안식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가지고 계신 안식, 하나님의 안식입니다. 히 4:4에서, 제 7일에 하나님께서 “쉬셨다”, 그것이 안식인데 세상을 창조하신 다음에 쉬셨다 할 때 그 안식은 하나님이 이미 자기 안에 안식을 갖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2) 하늘의 조국을 향한 여행자(13-16절)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주었지만, 여호수아가 정복하여 땅을 받았지만, 그 땅도 안식의 땅이 아니라는 겁니다. 안식의 땅은 하늘에 있는 그 성입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천막을 치고 왔다 갔다 하면서 하늘의 안식을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13-16절은 조금 더 자세히 아브라함의 후손의 여행길을 말합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끝까지 하늘의 안식을 바라보고 나아갔습니다. 천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원래 고향 땅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4:6에서 아브라함이 그의 종에게 이삭의 결혼을 위해 약속의 땅에서 아내를 구하지 못해도 다시 고향으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빌 3:20) 자로서 그들의 조국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그 조국을 향하여서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갔습니다(벧전 2:11).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땅을 바라보고 그것을 목표로 나아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함께 천막생활을 했던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이 주신 것을 높이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의 하나님”이라고 하며 존귀하게 생각하십니다(삼상 2:30).
3) 하나님의 아들께서 더 확실하게 약속하신 하늘의 성과 이 땅에서의 보호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이 성, 그 장소는 예수님과 함께 준비하신 곳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세상에 오셔서 이 땅에서 고난받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 나라로 들어 가셨습니다. 구약 성도도 신약의 우리도 하늘의 성에서 쉼을 누릴 것을 목표로 살아갑니다. 요한복음 14:1-3을 봅시다. 신약 172쪽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들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기 하루 전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여전히 우리에게 하시고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말했을 것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장소입니다. 오늘 8절에 나와 있는 아브라함이 누릴 땅이라고 번역된 말, 사실은 장소라고 했죠? 아브라함이 바라보고 갔던 장소, 그것은 예수님께서 준비하신 장소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준비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환영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 안식의 장소는 인류의 타락 때문에 그냥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준비해야 할 장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며 당신의 피를 뿌리시면서 하늘의 도성으로 들어갔고, 하늘의 도시로 들어갔고 이제 우리도 들어오게 하십니다. 오늘 히브리서에서 말한 하나님께서 준비한 장소, 그곳은 바로 예수께서 당신의 피를 통해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면서 준비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 장소를 향하여 나아갑시다. 믿음으로 우리가 행진할 곳은 바로 그곳입니다. “염려하지 말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장소를 준비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삶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6:30-34에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는데 백합화처럼 아름답게 하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늘을 향해 여행하는 우리에게 이 땅의 것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않고 믿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목표하고 나가야 할 곳은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나라에서 쉬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 쉬기 위해서 이 땅에서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향해서 여행하는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여행 중간에 허기져서 주저앉게 하지 않습니다. 그 나라를 구하고 목표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더해준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안식을 향해 나가는 성도들은 이 땅에 염려할 것이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경제적인 것, 건강, 많은 것이 불확실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목표를 먼저 분명히 하라. 목표를 분명히 하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겨우 주시기도 하지만 풍족하게 주시기도 합니다. 사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아주 부자였습니다. 양 떼가 굉장히 많았고 하나의 고대 국가, 조그만 나라의 왕과 같았습니다. 야곱은 밤낮으로 땀 흘려 일하면서 재산을 불렸다고 합니다. 수고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할 때는 더 열심히 일해서 남의 재산을 지키면서 자기 재산을 불렸습니다(창 31:40,41, 구약 48쪽).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너무 복을 주시니까 주위 나라 사람들이 시기 질투하여서 이삭이 판 우물을 메꿔버리고 뺏기도 했습니다. 이삭이 다른 데 가서 우물을 파니까 물이 나오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질적으로도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나라 사람들이 이삭을 보고 평화조약을 맺자고 했습니다(창 26:12-35, 구약 36쪽). 그렇지만 그들은 땅에서 풍요로웠지만, 땅을 종착지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늘을 종착지로 알고 나갔습니다. 누렸지만, 많은 것을 가졌지만, 없는 것처럼 하늘을 향해 나갔습니다. 물질적 복을 받았지만 물질적 복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살아가는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없더라도 마태복음 6장에서 말하지 않습니까? 땅의 것이 많지 않더라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많건 적건 간에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이 우리의 종착지가 아닙니다. 열심히 수고해서 학교에 들어가는 것, 야곱이 했듯이 우리도 합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기업을 일구고 우리가 이 땅에서 할 일입니다. 주택문제도 잘 해결하는 것,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천국의 안식을 향해 나가는 수단으로서 이것을 생각합시다. 천국을 향해 나가는 우리의 삶의 기준은 하나님께서 주신 의를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이 땅의 것으로도 주시지만, 그것을 통해서 마치 유리처럼 그것을 통해서 하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시지만, 하늘을 우리의 상속지로 줍니다. 우리는 믿음의 여행객으로 이 세상을 지나갑니다.
3. 자손 축복: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증거를 얻었습니다(11, 12절)
1) 믿음으로 자손의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 체험(11-12절)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로 아브라함에게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자손 축복의 증거를 얻게 하셨습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했는데 바로 아들의 출생에서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11절에서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사라는 단산했다고 합니다. 단산이라는 것은 두 가지 말이 들어 있는데 불임이라는 것과 폐경기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힘이란 것이 능력입니다. 능력을 얻었습니다. 상식으로는 불가능한데도 힘을 얻었습니다. 누구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얻었습니다.
어떻게? 믿음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믿음을 통하여 얻었습니다. 어떤 믿음?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미쁘다는 것이 무슨 뜻이라고 그랬죠? 신실하다. 믿을만하다. 현실은 이 약속과는 다르게 움직이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약속은 확실하고 약속하신 분은 반드시 이룬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분에 대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당장 나타나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갈 때 그것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믿을 때 나타납니다.
그런데 사라가 처음부터 믿음을 가진 게 아닙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아브라함아, 너와 사라 사이에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말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제 자녀를 출산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습니다. 그때 사라가 저쪽 천막 뒤쪽에서 듣고 어떻게 했죠? 피식 웃었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말했죠. “사라, 내가 말하는 데 왜 웃냐?” 그러니까 안 웃었다 했죠. 그러자 하나님이 다시 “너 웃었다.” 이야기가 끝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코미디 같은데요. 그렇게 피식 웃었는데 하나님께서 또 오셔서 사라에게 아브라함에게 이야기하고 다시 말씀하시면서 믿음을 더해주셨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에게 믿음을 더해주시면서 믿게 해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약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들을 때 믿음이 커지고, 약속을 붙들고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더하기 위해서는 정말 예배가 중요합니다. 예배에 계속해서 참여하면서 약속의 말씀을 계속 들어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계속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이 커가기를 바랍니다.
사라가 믿음이 커질 때 믿음으로 약속을 믿을 때 12절은 말합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그때 아브라함도 죽은 것과 같았습니다. 살아있었지만 자녀를 출생할 수 있는 능력에서는 죽은 것과 같았습니다. 죽은 것과 같은 사람으로부터 많은 자녀가 나온 것. 이건 사실 하나님의 부활 능력입니다. 생명이 생길 수 없는데 생명이 나온 것. 죽은 것으로부터 생명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서 4:19-22(신약 244쪽)은 말합니다. “그(아브라함)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 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자녀를 바침(17 -19절)
이 일은 아브라함의 삶에서 다시 한번 반복됩니다. 약속의 자녀 이삭이 청소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너 사랑하는 아들, 약속의 자녀를 제물로 바쳐라.” 우리의 삶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셨는데 약속과는 다르게 하나님께서 끌고 가십니다. 이삭을 통해서 민족이 번성하게 하겠다 약속해주셨는데, 또 제물로 바치라 하시는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합니까? 일단 순종했습니다. “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수 없는데, 어떻게 할까?” 당연히 고민되었지만 그는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거기에 무슨 믿음이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바치라 했기 때문에 바치면, 죽으면 약속을 하나님께서 이루셔야 하니까 살리실 거라는 부활 신앙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활 신앙으로 이끌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이삭에 대해서 말하면서 아브라함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도로 받았다, 아브라함의 몸이 죽은 것 같았는데도 태어난 이 아이, 이 아이가 다시 또 죽은 것 같은 데서 도로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삭이 태어나는 것과 이삭이 제물로 바쳐지다가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거의 같은 것으로 말합니다. 거기 말씀 개요에도 되어 있지만, 아브라함이 이삭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부활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능히 일으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 능력이라는 말과 생각한다는 말이 들어 있고, 11절에 사라가 이삭을 임신할 때도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거기 두 가지 같은 단어가 있습니다. 능력, 알았다. 또 사라에게 “너로 말미암아 씨”, 사라가 자손을 잉태한다 했는데 씨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도, “이삭으로 말미암아 씨를 얻으리라”인데, 같은 말이 쭉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삭이 태어날 때, 이삭을 시험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능력을 아브라함 부부에게 확신시켜 주신 것입니다. 구약 성도에게도 하나님께서는 가장 중심적인 믿음으로서 부활 신앙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불가능해 보일 때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우리는 죽을까 봐 두려워서 마귀에게 끌려다니고 죄를 짓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죽으면 부활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믿음으로 걸어갑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다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만 같을 때도 우리는 부활 신앙으로,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약속하신 그분께서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믿고, 그분의 능력을 믿고 나아갑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9절). 우리 성도에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가 이 땅을 떠난 후에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갈 때도 나타나고 예수님 재림하실 때 우리 몸이 부활하여 영생으로 들어가는 데도 나타납니다. 이 땅에서도 우리가 직분을 다할 때 주께서 우리를 부활의 능력으로 붙들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으로 우리가 생존하면서 번성하게 합니다. 우리도 우리 가족도 교회도 번성하게 합니다.
3)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이 번성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의 번성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 6:7에서 말씀이 흥왕하고 제자들의 수가 많아졌다, 말씀이 번성하고 생육하고 제자들의 수가 번성했다고 합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 가정에서 자녀로 태어나고, 교회 안에 새로운 성도가 더 많아지며, 이것을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같은 때는 마치 하나님의 백성이 번성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배가 약해지고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의 수도 적어지고, 그렇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백성은 번성합니다. 가정도 자녀도 믿음 안에서 번성합니다. 이 교회도 하나님께서 번성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약속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을 때, 그리고 말씀이 번성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것입니다.
20절 이후에는 믿음의 조상들이 후손을 축복한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후손을 축복하고 이삭의 아들 야곱도 후손을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후손에게 말해주면서 축복합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직 그 나라에 가지 않았지만, 그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자손이 번성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축복해줍니다.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계속해서 우리 자녀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확실성을 가지고 축복해줍시다. 너희들이 갈 곳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이고 그 나라로 여행할 동안에 이 땅에서도 그 여행에 필요할 만큼은 주신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를, 죽음과 같은 고난이 온다고 할지라도, 다시 일어나게 하시고 우리가, 우리 공동체가 우리 각자의 가정이, 교회가 공동체로 번성하게 할 것이라는 이 축복을 선언합시다. 그러면서 우리 다 함께 영원한 나라를 향하여서 여행자로서 순례자로서 함께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