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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32권
대반열반경_11. 사자후보살품⑥
불성을 분명하게 알려는 이는/ 물러가지 않는 마음/
보살의 불가사의/ 대열반경의 여덟 가지 불가사의/
네 가지로 태어나는 인연/ 사자후보살의 찬탄/
[불성을 분명하게 알려는 이는]
선남자야, ‘만일 중생들이 불성을 분명히 알았으면, 도를 닦을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10주보살은 8성도를 닦고도 불성을 조금만 보는데, 하물며 닦지 않은 이가 볼 수 있겠는가?
문수사리보살 같은 이들은 한량없는 세상에서 이미 성인의 도를 닦았으므로 불성을 분명히 알지만,
성문이나 벽지불이 어떻게 불성을 알겠는가?
모든 중생들 가운데 불성을 분명하게 알려는 이는,
마땅히 일심으로 이 『열반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할 것이며,
이 경을 받아 가지거나 나아가 찬탄하는 이를 보거든,
마땅히 좋은 집과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병을 치료하는 의원과 약으로 이바지하고,
겸하여 찬탄하고 예배하고 문안하여야 한다.
선남자야, 지나간 옛적 한량없고 그지없는 세상에서 한량없는 부처님께 이미 친근히 하여 공양하고 선근을 많이 심은 뒤에야, 이 경의 이름을 듣게 된다.
선남자야, 불성은 헤아릴 수 없으며,
부처님과 법과 승가도 헤아릴 수 없으며,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으면서 알지 못하는 것도 헤아릴 수 없으며,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도 헤아릴 수 없으며,
모든 중생들이 이 『대열반경』을 능히 믿는 것도 헤아릴 수 없다”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모든 중생들이 이렇게 『대반열반경』을 능히 믿는 것이 헤아릴 수 없다 하시니,
세존이시여, 이 대중 가운데에서는 8만 5천억 사람이 이 경에 신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경을 믿는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선남자야, 이런 사람들도 오는 세상에는 반드시 이 경전을 믿을 것이며 불성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물러가지 않는 마음]
사자후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물러가지 않는 보살들이 자기에게 반드시 물러가지 않는 마음이 있는 줄을 알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고통으로 그 마음을 시험하되,
하루에 참깨 한 알을 먹으면서 이레를 지내고,
멥쌀ㆍ녹두ㆍ삼씨ㆍ좁쌀ㆍ흰콩도 그와 같이,
각각 이레 동안을 한 개씩 먹으면서 이와 같이 생각한다.
‘이렇게 하는 고행은 조금도 이익이 없으니, 이익이 없는 일도 능히 하는데,
하물며 이익이 있는 일을 어찌 짓지 않겠는가?’
이익이 없는 일도 능히 참고 견뎌, 물러가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
이렇게 날마다 고행을 할 때에,
모든 살과 가죽은 여위고 쭈그러져서, 여물지 않은 박을 쪼개서 볕에 말린 듯하고,
눈이 움푹 들어간 것은, 우물 밑의 별빛과 같으며,
살이 빠지고 힘줄이 드러난 것은, 이엉이 썩은 초가집 같고,
등골뼈가 드러난 것은, 벽돌을 포개 놓은 듯하다.
앉았던 곳은, 말발굽 자국 같으며,
앉으려면 엎어지고 일어나려면 쓰러지며,
이렇게 이익 없는 고통을 받더라도 보리심에서 물러가지 않는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모든 고통을 깨뜨리고 안락을 주기 위하여,
나아가 안팎 재물[內外財物]과 목숨까지도 버리기를 풀 한 포기같이 하며,
만일 몸과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면,
이런 보살은 반드시 물러가지 않는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알고.
‘나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다’라고 한다.
또 보살이 법을 위하는 인연으로 몸을 갉아 등잔을 만들면서, 천으로 살을 싸고 기름을 부어 심지를 만들어 불을 켜거든,
보살이 그때 큰 고통을 받으면서 스스로 꾸짖어 말하기를,
‘이만한 고통은 지옥에서 받는 고통에 비하면 백천만 분의 일도 되지 못하는데,
너는 한량없는 백천겁 동안에 큰 고통을 받았지만, 아무 이익도 없지 않았느냐?
네가 이만한 가벼운 고통도 받지 못하고야,
어떻게 지옥 속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하여 내겠느냐?’라고 한다.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관찰할 때에는,
몸으로 고통을 깨닫지 않고 그 마음도 물러가거나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으며,
보살은 이럴 때에 내가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을 깊이 안다.
선남자야, 보살이 그때 번뇌를 구족하고 끊지 못한 이는,
법의 인연을 위하여서 머리와 눈과 골수와 수족과 피와 살로 사람에게 보시하며,
몸에 못을 박고 바위에서 떨어지며 불구덩이에 들어가니,
보살이 이럴 때에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물러가거나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으면,
보살이 자기에게 반드시 물러가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며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을 안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의 고통과 번뇌를 깨뜨리기 위하여,
큰 축생의 몸이 되기를 발원하여서 그 몸의 피와 살을 중생에게 보시하며,
중생이 먹을 때에 다시 가엾은 생각을 내고 나서,
보살은 그때 숨을 안 쉬고 죽은 모양을 보여,
먹는 이로 하여금 살해한다는 의심을 내지 않게 한다.
보살은 비록 축생의 몸을 받았으나, 축생의 업을 짓지 않는다.
왜냐하면 선남자야, 보살은 이미 물러가지 않는 마음을 얻었으므로 마침내 3악도의 업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보살마하살은 만일 오는 세상에 티끌만한 나쁜 업의 과보라도 반드시 받지 않을 것이 있다면, 큰 원력으로 중생을 위하여 모두 받는다.
마치 병난 사람에게 귀신이 붙어서 몸속에 숨었다가 주문의 힘으로 모습이 드러나면,
말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성내고 꾸짖고 울고 통곡하는 것과 같으니,
보살마하살이 오는 세상에 받는 3악도의 업보도 그와 같다.
보살마하살이 곰의 몸을 받았을 때에는 항상 중생을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며,
혹은 가빈사라(迦賓闍羅) 새의 몸을 받는 것도 중생들에게 바른 법을 말하기를 위한 것이며,
구다(瞿陀)의 몸ㆍ사슴의 몸ㆍ토끼 몸ㆍ코끼리 몸ㆍ 암양ㆍ원숭이ㆍ흰 비둘기ㆍ금시조ㆍ뱀의 몸을 받는다.
이런 축생의 몸을 받았을 때에도,
마침내 축생의 나쁜 업을 짓지 않고,
항상 다른 축생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한다.
그들로 하여금 법을 듣고, 축생의 몸을 빨리 여의게 하려는 까닭이다.
보살이 그때 비록 축생의 몸을 받았으나 나쁜 업을 짓지 않으므로,
반드시 물러가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살마하살이 흉년 드는 세상에서 굶주린 중생을 보고,
한량없이 큰 거북이나 고기의 몸이 되고,
다시 원을 세우기를,
‘모든 중생들이 나의 살을 뜯어갈 때에, 뜯는 대로 살이 따라 생기며 나의 고기를 먹고 나서 기갈의 고통을 떠나고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를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또 보살의 원을 세우기를,
‘만일 나를 인하여 기갈을 면한 이가 있으면, 오는 세상에 빨리 25유에서 기갈하는 근심을 여의길 원합니다’라고 합니다.
보살마하살이 이런 고통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물러가지 않는 이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을 안다.
또 보살마하살이 병이 유행하는 세상에서 앓는 이를 보고 나서 생각하기를,
‘마치 약 나무가 있는데,
병난 이들이 뿌리를 캐고 줄기를 찍고, 가지를 꺾고 잎을 뜯고, 꽃을 따고 열매를 취하고, 껍질을 벗기고 살을 깎아다가 먹고 병이 낫듯이,
나의 이 몸도 그와 같아서,
병난 이가 소리를 듣거나, 몸을 만지거나, 피와 살을 먹거나, 나아가 뼈와 골수를 먹고 나서, 모두 병이 쾌차하길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또 원하기를,
‘중생들이 나의 고기를 먹을 때에 악한 마음을 내지 말고, 아들의 살을 먹듯이 하며,
병을 고친 뒤에는 내가 항상 법을 말하는 것을 그들이 믿고 생각하고 다른 이들을 가르치길 원합니다’라고 한다.
또 선남자야, 보살이 번뇌를 구족하고 몸의 고통을 받더라도,
마음이 물러가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
반드시 물러가지 않는 마음을 얻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줄을 알아야 한다.
또 선남자야, 어떤 중생이 귀신으로 병이 들렸다면,
보살이 보고는 원을 세우기를,
‘귀신의 몸ㆍ큰 몸ㆍ건장한 몸ㆍ권속이 많은 몸이 되어, 그로 하여금 보고 듣고 병이 나아지길 원합니다’라고 한다.
보살마하살이 중생을 위하여서 부지런히 고행을 닦으면,
비록 번뇌가 있으나 마음을 더럽히지는 않는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비록 6바라밀을 닦더라도 6바라밀의 과보를 구하지 않고,
위없는 6바라밀을 닦을 때에 이러한 원을 세운다.
‘내가 지금 6바라밀로 낱낱 중생들에게 베풀면, 중생들이 나의 보시를 받고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하며,
나도 6바라밀을 위하여 부지런히 고행을 닦으며 모든 고통을 받지만,
고통을 받을 때에도 나의 보리심이 물러가지 않기를 원합니다’라고 한다.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런 서원을 짓는 때를 일러서,
보리에서 물러가지 않는 모습이라고 한다.
[보살의 불가사의]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생사에는 죄와 허물이 큰 줄을 잘 알며,
대반열반에는 큰 공덕이 있음을 관찰하고,
중생들을 위하여 생사 중에 있으면서 가지가지 고통을 받아도,
마음이 물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보살은 불가사의하다고 한다.
또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인연이 없으면서도 불쌍한 생각을 내어,
은혜를 입지 않고도 항상 은혜를 베풀며,
은혜를 베풀면서도 갚음을 바라지 않으므로, 또 불가사의하다고 한다.
또 선남자야, 중생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고행을 닦지만,
보살마하살은 다른 이를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고행을 닦으면서 스스로 이익함이라고 하므로, 또 불가사의하다고 한다.
또 보살이 번뇌를 구족하고도 원수라 친한 이라 하여,
받는 고통을 깨뜨리기 위하여 평등한 마음을 닦으므로, 또 불가사의라고 한다.
또 보살이 만일 나쁘고 착하지 않은 중생을 보고는,
꾸중하거나 좋은 말을 하거나 쫓아내거나 내버려 두거나 하되,
나쁜 성질이 있는 이에게는 좋은 말을 하고,
교만한 이에게는 큰 교만을 보이기도 하지만,
속마음에는 실로 교만이 없다.
이것을 일러, 보살의 방편이 불가사의하다고 한다.
또 보살이 번뇌를 구족하고 재물이 없을 때에,
달라는 이가 많이 오더라도 마음이 좁지 않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불가사의라고 한다.
또 보살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을 때에 부처님의 공덕을 알면서도,
중생들을 위하여 부처님이 없는 곳에서 변방에 나는 몸을 받는데,
소경 같고, 귀먹은 이 같고, 절름발이 같고, 조막손이 같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불가사의라고 한다.
또 보살이 중생의 죄악을 알면서도, 제도하기 위하여 함께 다니며,
그의 뜻을 따르면서도 죄악에 물들지 않으므로, 불가사의라고 한다.
또 보살은 중생의 모습도 없고,
번뇌의 더러움도 없고,
도를 닦아서 번뇌를 여읠 것도 없으며,
비록 보리를 닦는다 하나 보리의 행도 없고,
보리의 행을 성취할 것도 없으며,
괴로움을 받을 것도 괴로움을 깨뜨릴 것도 없는 줄을 분명하게 알고 분명하게 보지만,
그래도 중생들을 위하여 괴로움을 깨뜨리고 보리의 행을 행한다.
그러므로 불가사의라고 한다.
또 보살이 나중 몸[後邊身]을 받아서,
도솔타천(兜率陀天)에 있는 것도 불가사의라고 한다.
왜냐하면 도솔타천은 욕계 중에서 가장 훌륭한 데이기 때문이다.
그 아래 하늘에 있는 이는 마음이 방일하고,
위의 하늘에 있는 이는 모든 근이 암둔(闇鈍)하므로, 훌륭하다고 한다.
보시를 닦고 계행을 닦는 이는, 위의 하늘의 몸과 아래 하늘의 몸을 얻고,
보시와 계행과 선정을 닦으면, 도솔타천의 몸을 얻는다.
모든 보살들은 모든 유(有)를 나무라고[毁呰] 모든 유를 파괴하면서도,
마침내 도솔타천의 업을 짓고,
그 하늘의 몸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살이 다른 데 있어서도, 중생들을 교화하고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욕계의 마음이 없으면서도, 욕계에 나는 것이므로, 불가사의라고 한다.
보살마하살이 도솔타천에 나면,
세 가지 훌륭한 일이 있으니,
첫째는 수명이며,
둘째는 색신(色身)이며,
셋째는 이름이다.
보살마하살은 진실로 수명이나 색신이나 이름을 구하지 않으니,
비록 구하는 마음은 없으나 얻어짐이 훌륭하다.
보살마하살은 열반을 매우 좋아하지만, 유의 인연도 훌륭하다.
여러 천인들은 보살에 대하여, 성내는 마음ㆍ질투하는 마음ㆍ교만한 마음을 내지 않고, 항상 기쁜 마음을 내며,
보살도 천인들에게 교만하지 않다.
그러므로 또 불가사의라고 이른다.
보살마하살이 오래 살 업을 짓지 않지만,
그 하늘에서 끝까지 오래 사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수명이 훌륭하다고 하며,
색신의 업도 없지만 묘한 색신에 광명이 가득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색신이 훌륭하다고 하며,
보살마하살이 저 천궁에 있으면서도 5욕을 즐기지 않고,
불법(佛法)의 일만 하므로 이름이 시방에 충만하니,
이것을 말하여 이름이 훌륭하다고 한다.
이러한 까닭에 불가사의라고 한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올 때에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므로, 또 불가사의라고 한다.
왜냐하면 보살이 내려올 때에 욕계ㆍ색계의 천인들이 모두 와서 전송하면서, 큰 음성으로 보살을 찬탄하며 입으로 바람을 불어서 땅이 진동케 하기 때문이다.
또 보살은 사람 중에 상왕(象王)이며 사람 중에 상왕을 용왕이라고 하는데,
용왕이 처음 태에 들 때에는 모든 용왕들이 이 땅 밑에서 혹은 무서워하고 혹은 깨닫는다.
그래서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며, 그러므로 또 불가사의라 이름한다.
보살마하살은 태에 드는 때와 머무는 때와 나올 때를 알며,
아버지도 알고 어머니도 알며 깨끗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음이,
마치 제석천왕의 머리에 있는 푸른빛 구슬과 같으므로,
또 불가사의라고 이른다.
[대열반경의 여덟 가지 불가사의]
선남자야, 『대열반경』도 그와 같아서, 불가사의한 것이다.
선남자야, 마치 큰 바다에 여덟 가지 불가사의가 있음과 같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점점 더 깊어지고,
둘째는 깊어서 바닥을 얻기 어렵고,
셋째는 똑같은 짠맛이며,
넷째는 조수가 시간을 어기지 않고,
다섯째는 가지가지 보배가 있고,
여섯째는 몸이 큰 중생들이 그 속에 살고,
일곱째는 송장을 묵혀 두지 않고,
여덟째는 모든 강물과 큰 비가 모두 들어가도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음이다.
선남자야, 점점 더 깊어짐에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중생의 복력(福力)이며,
둘째는 바람을 따라 행함이며,
셋째는 강물이 들어가는 까닭이며,
나아가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음이 각각 세 가지가 있다.
이 대열반의 미묘한 경전도 그와 같아서, 여덟 가지 불가사의가 있다.
첫째는 점점 깊어짐이니,
이른바 우바새계ㆍ사미계ㆍ비구계ㆍ보살계와 수다원과(果)ㆍ사다함과ㆍ아나함과ㆍ아라한과ㆍ벽지불과ㆍ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이다.
이 『열반경』에는 이런 법들을 말하였으니,
이것을 점점 깊어짐이라 하며,
그러므로 이 경을 일러 점점 깊음이라고 한다.
둘째는 깊어서 바닥을 얻기 어려움이니,
여래 세존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도 않고,
법 수레를 운전하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받지도 않고,
보시를 행하지도 않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이른다.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지만,
불성은 색도 아니고 색을 여의지도 않았으며,
나아가 수ㆍ상ㆍ행ㆍ식도 아니고 나아가 식을 여의지도 않았다.
이것이 항상 볼 수 있는 요인(了因)이며, 짓는 인[作因]이 아니며,
수다원 나아가 벽지불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번뇌도 없고 머무는 곳도 없으며,
비록 번뇌가 없으나 항상하다고 이르지 않으므로 깊다고 한다.
다시 더 깊은 것이 있다.
이 경전에서 어떤 때는 나라 말하고 혹은 내가 없다고 말하며,
혹은 항상하다 말하고 혹은 무상하다 말하며,
어떤 때는 깨끗하다 말하고 어떤 때는 부정하다 말하며,
혹은 즐거움이라 말하고 혹은 괴로움이라 말하며,
혹은 공하다 말하고 혹은 공하지 않다 말하며,
혹은 모든 것이 있다 말하고 혹은 모든 것이 없다 말하며,
혹은 3승을 말하고 혹은 1승을 말하며,
혹은 5음이 불성이라 말하며 금강삼매ㆍ중도(中道)ㆍ수릉엄삼매ㆍ12인연ㆍ제일의공(第一義空)을 말하며,
자비가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며 정지(頂智)와 신심으로 모든 근(根)과 역(力)을 알며,
모든 법 중에 걸림이 없는 지혜를 말하며, 불성이 있지만 결정되었다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깊다고 한다.
셋째는 똑같은 한 맛이니,
모든 중생들이 똑같이 불성이 있고,
같은 1승이며, 같은 해탈이며, 한 인이며, 한 과보이며, 같은 감로이며,
모든 이가 마땅히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는다.
그러므로 한 맛이라고 한다.
넷째는 조수가 시간을 어기지 않음이니,
경전 중에서 비구들은 여덟 가지 부정한 물건을 받아 두지 못하게 하였고,
만일 내 제자로서 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고 분별하는데,
차라리 생명을 잃을지언정 범하지 말라고 한 것은,
조수가 시간을 어기지 않음이다.
다섯째는 가지가지 보배가 있음이니,
이 경이 곧 한량없는 보배 광이다.
보배라 함은,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분(如意分)ㆍ5근ㆍ5력ㆍ7각분(覺分)ㆍ8성도(聖道)이며,
어린 아기 행[嬰兒行]ㆍ거룩한 행[聖行]ㆍ범천의 행[梵行]ㆍ하늘의 행[天行]이며,
선한 방편과 중생의 불성이며,
보살의 공덕ㆍ여래의 공덕ㆍ성문의 공덕ㆍ연각의 공덕과, 6바라밀ㆍ한량없는 삼매ㆍ한량없는 지혜를 보배 광이라고 한다.
여섯은 몸 큰 중생들이 사는 곳이다.
몸 큰 중생이라 함은 부처님과 보살을 이름이니,
큰 지혜이므로 큰 중생이라 하고,
큰 몸이기 때문이며, 큰마음이기 때문이며,
크게 장엄하기 때문이며, 크게 조복하기 때문이며,
큰 방편이기 때문이며, 크게 법을 말하기 때문이며,
큰 세력이기 때문이며, 큰 무리이기 때문이며,
큰 신통이기 때문이며, 크게 자비하기 때문이며,
항상 변하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에게 걸림이 없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들을 포용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일러 몸 큰 중생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일곱은 송장을 묵혀 두지 않음이다.
송장이라고 함은 일천제를 말한 것으로,
4중금을 범한 것ㆍ5무간죄를 지은 것ㆍ방등경을 비방한 것과,
법이 아닌 것을 법이라 말하고, 법을 법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여덟 가지 부정한 물건을 받아 두는 것과,
부처님의 물품과 승가의 물품을 마음대로 쓰는 일과,
비구와 비구니에게 법답지 못한 일을 하는 것 따위를 송장이라고 하는데,
이 『대열반경』에는 이런 것들을 여의었으므로,
송장을 묵혀 두지 않는다고 한다.
여덟은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음이다.
가없는[無邊際] 까닭이며,
처음과 나중이 없는 까닭이며,
색이 아닌 까닭이며,
지음이 아닌 까닭이며,
항상 머무는 까닭이며,
생멸하지 않는 까닭이며,
모든 중생이 다 평등한 까닭이며,
모든 법의 성품이 동일한 까닭으로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이런 까닭에 이 경은 저 큰 바다에 여덟 가지 불가사의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네 가지로 태어나는 인연]
사자후는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여래의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깊다고 한다면,
모든 중생이 네 가지 나는 일이 있는데,
알로 나고[卵生], 태로 나고[胎生], 습기로 나고[濕生], 화하여 나는[化生]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나는 일이 사람에게는 구족하게 있습니다.
시바라(施婆羅) 비구ㆍ우바시파라(優婆施婆羅) 비구ㆍ미가라(彌迦羅) 장자의 어머니ㆍ니구타(尼拘陀) 장자의 어머니ㆍ반사라(半闍羅) 장자의 어머니 같은 이들은 각각 500아들을 알로 낳았으니,
사람 중에 알로 낳은 일이 있음을 알겠으며,
습기로 나는 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난 세상에 보살일 때에 정생왕(頂生王)과 수생왕(手生王)이 되었다’ 하신 것과,
지금 말씀하신 암라수녀(庵羅樹女)와 가부다수녀(迦不多樹女)와 같으니,
사람들도 습기로 나는 일이 있음을 알겠으며,
겁의 처음에는 모든 중생들이 모두 화생하였습니다.
여래 세존께서 여덟 가지 자재함을 얻으셨는데, 무슨 인연으로 화생하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이 네 가지 나는 법으로 나지만,
성인의 법을 얻고 나서는, 본래와 같이 알로 나거나 습기로 날 수 없다.
선남자야, 겁의 처음에 중생들이 모두 화생하였지만,
그때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지 않았다.
선남자야, 중생들이 병이 났을 때에는 의원이 필요하고 약이 필요하다.
겁초(劫初)의 중생은 화생하여 번뇌가 있지만 병이 생기지 않았으므로,
여래가 그 세상에는 나지 않았으며,
겁초의 중생들은 몸과 마음이 법 그릇이 아니므로,
여래가 그 세상에는 나지 않았다.
선남자야, 여래 세존의 하는 일은 중생들보다 뛰어나 문벌이나 권속이나 부모가 모두 뛰어나므로 말하는 법을 사람들이 믿고 받는다.
그러므로 여래는 화생을 받지 않는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들이 아비는 아들의 업을 짓고 아들은 아비의 업을 짓는다.
여래 세존이 만일 화생한다면 부모가 없을 것이니,
부모가 없으면 어떻게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선한 업을 짓게 하겠느냐?
그러므로 여래는 화생의 몸을 받지 않는다.
선남자야, 부처님의 정법에는, 두 가지 보호함이 있다.
첫째는 안으로 보호함이며,
둘째는 밖으로 보호함이다.
안으로 보호함은 금하는 계율이며,
밖으로 보호함은 친척과 권속이니,
부처님 여래가 화생의 몸을 받으면 밖으로 보호함이 없을 것이므로, 여래는 화생하는 몸을 받지 않는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은 문벌을 믿고 교만한 마음을 낸다.
여래는 이러한 교만을 깨뜨리기 위하여 훌륭한 문벌에 태어나고 화생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여래 세존은 진정한 부모가 있으니, 아버지 이름은 정반이며 어머니 이름은 마야이다.
그러나 중생들은 오히려 환술과 같다고 하는데, 어찌하여 화생의 몸을 받겠느냐?
만일 화생의 몸을 받는다면 어찌 쇄신사리(碎身舍利)가 있겠느냐?
여래는 중생의 복덕을 이익되게 하려고 쇄신사리를 내어 공양하게 한다.
그러므로 화생의 몸을 받지 않는 것이다.
여러 부처님들이 화생하는 이가 없는데, 어찌 홀로 나만이 화생의 몸을 받겠느냐?”
[사자후보살의 찬탄]
그때 사자후보살은 합장하고 한쪽 무릎을 세워 꿇어앉아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더미를
내가 어찌 말씀할 수 있겠습니까만
중생 위해 한 부분만 말씀하오니
이 정성 살피셔서 들어주소서.
중생들이 무명의 어둠 속에서
그지없는 온갖 고통 함께 받는지라
세존께서 벗어나게 지도하시니
온 세상이 대자비라 일컫습니다.
중생들이 생사에서 헤매느라고
미혹하고 혼란하여 괴로운 것을
여래께서 큰 안락을 베푸시매
나고 죽는 먼 길을 끊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에게 낙을 주려고
당신의 즐거움을 탐하지 않고
중생을 위하여서 고행하시매
세상 사람들이 정성으로 공양합니다.
중생들의 받는 고통 애달프게 여겨
지옥의 갖은 고초 생각지 않고
중생을 위하여서 고행하시매
위없이 우뚝하심 한량이 없네.
부처님 중생 위해 고행 닦으시어
바라밀 구족하게 성취하시려
삿된 바람 가운데도 끄떡없으니
세상의 대사(大士)중에 뛰어나시네.
중생들은 안락을 얻고 싶지만
안락의 인 닦을 줄 모르는 것을
여래께서 가르치사 닦게 하시니
외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인 듯.
부처님이 중생의 번뇌 보시고
아기 병을 걱정하는 어머니처럼
치료할 모든 방법 생각하시매
이내 몸을 부처님께 맡깁니다.
중생들은 모든 괴로움 받으면서도
뒤바뀌게 낙인 줄만 여기는 것을
여래께서 낙과 괴로움 연설하시니
그러므로 대자비라 일컫습니다.
세상사람 무명이란 알 속에 있어
껍데기를 깨뜨릴 지혜 없어서
여래의 지혜 부리[智嘴] 깨뜨리시매
큰아들이 되었다고 이르는 것입니다.
삼세에 구애되지도 않고
이름도 자(字)도 호(號)도 모두 없고
열반의 깊은 뜻만 깨달았으매
부처님을 대각(大覺)이라 일컫습니다.
소용돌이치는 강물에 중생이 빠져
무명에 눈이 멀어 못 나오는 이
부처님 오셔서 건져 주시기에
큰 배의 사공이라 일컫습니다.
온갖 법의 인과를 죄다 아시고
괴로움이 없어지는 도(道)까지 통해
중생에게 좋은 약 베푸시기에
부처님 대의왕(大醫王)을 찬탄합니다.
외도들은 나쁜 소견으로 고행을 말하여
그로 인하여 위없는 낙 얻는다 말하지만
여래께서는 참된 복락 말씀하셔서
중생들로 하여금 좋은 쾌락 받게 하시며
여래께서 삿된 외도 깨뜨리시고
중생에게 바른 길을 지시하셔서
그대로 수행하면 안락 얻나니
부처님을 대도사(大導師)라 일컫습니다.
내가 짓는 것도 남이 짓는 것도
함께 짓는 것도 아니며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괴로움 받는 일은
여러 가지 외도보다 뛰어나십니다.
계와 정과 지혜를 갖추어 이루고
이 법으로 중생들을 교화하시되
아끼거나 질투하는 생각 없으시니
그러므로 인연 없는 자비라 하네.
짓는 일도 없으며 인연도 없으나
인도 없고 과도 없는 보(報)를 얻으시니
그러므로 모든 지혜 있는 이는
과보를 구하지 않는 여래라 하네.
방일한 일 사람들과 같이 하시나
부처님께서는 방일에 물들지 않아
그러므로 부사의라 일러
여덟 가지 세상법도 물들이지 못하네.
여래 세존께는 친한 이도 원수도 없어
그러므로 그 마음 항상 평등하시매
제가 사자후로 큰 자비를 찬탄하니
한량없는 사자후를 능히 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