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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4대 세계여행기
역사학자들은 고대 4대 세계여행기(古代 四大 世界旅行記)를 꼽으면서 첫 번째로 당(唐)나라 현장(玄奘)법사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꼽고, 두 번째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 그리고 세 번째는 모로코(Morocco) 이븐 바투타(Ibn Battutah)의 여행기(리흘라:Rihla), 네 번째로 우리나라 신라 혜초(慧超)스님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꼽는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경로 / 마르코 폴로 / 리흘라(Rihla)
1. 현장법사(玄奘法師)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는 AD 7세기, 중국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스승과 경전을 찾아 16년에 걸쳐 중앙아시아와 인도 등 138개국의 정보를 상세히 기록으로 남긴 책으로 전 12권의 여행기이다.
이 이야기를 AD 16세기, 명대(明代)의 소설가 오승은(吳承恩)이 손오공(孫悟空), 저팔계(豬八戒), 사오정(沙悟淨)을 등장시켜 소설화한 것이 중국 4대 기서(奇書) 중 하나인 서유기(西遊記)이다.
2.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은 AD 13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의 마르코 폴로(Marco Polo)가 중국 원(元)나라에 와서 17년간 관리로 일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고향으로 돌아가 쓴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내용이 중국의 실제와 여러 가지 면에서 좀 차이가 있어 학계에서 논란도 있다고 한다.
3. 모로코 이븐 바투타(Ibn Battutah)의 여행기 리흘라(Rihla)
이븐 바투타(Ibn Battutah)의 여행기 리흘라(Rihla)는 14세기, 모로코의 탕헤르(Tanger)에서 태어난 여행가 바투타가 27년간 44개국을 여행하고 기록으로 남긴, 이슬람(Islam)의 눈으로 본 여행기라고 한다.
4. 신라 혜초(慧超)스님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혜초스님 여행경로(旅行經路) / 돈황(燉煌) 막고굴(莫高窟) 전경 / 석굴 벽화에 있는 구법승(求法僧) / 혜초(상상화)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AD 8세기, 신라 고승 혜초가 해로(海路)를 통하여 인도(印度:天竺國)로 갔다가 육로(陸路)로 중국으로 돌아오기까지 10년간의 여행을 상세히 기술한 여행기이다.
신라 경덕왕(AD 8세기) 때 불교의 한 종파인 밀교(密敎) 연구에 심취하였던 혜초(慧超)스님은 만 4년간 인도에 머물며 경전을 연구한다. 공부를 마치고 인도 북단(北端)의 카슈미르(Kashmir),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의 나라들을 여행하며 육로(陸路)를 통하여 중국 장안(長安)으로 돌아온 것이 30세 전후였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총 6,000여 자의 두루마리 형태인데 현재 일부분만이 있다고 한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란 뜻은 ‘다섯 천축국으로 여행 갔던 기록’이라는 말인데, 천축국은 인도를 가리키며, 다섯 천축국이라는 말은 인도가 워낙 넓어서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지방을 한꺼번에 부른 이름으로 인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원본은 3권이었다고 하나,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현존본은 사본으로 전체 내용인지 요약본인지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책은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관한 기록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혜초스님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에 실려 있는 스님의 한시(漢詩)를 찾았는데 혜초스님은 여행가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시인의 재질도 갖추고 있었다.
<혜초(慧超)스님의 한시(漢詩)>
在南天路(재남천로) - 남천축국(南天竺國) 가는 길에서
月夜瞻鄕路(월야첨향로) 浮雲颯颯歸(부운삽삽귀)
달 밝은 밤 고향길 바라보니 뜬구름 너울너울 돌아가고 있네
緘書參去便(함서참거편) 風急不聽廻(풍급불청회)
저 구름 편에 소식 전하려 하였더니 휘몰아치는 바람 내 말을 듣지 않네
我國天岩北(아국천암북) 他鄕地角西(타향지각서)
내 고향은 저 하늘 끝 북쪽인데 머나먼 이역만리 서쪽 변방 끝에 있네
日南無有雁(일남무유안) 誰爲向林飛(수위향림비)
일남(日南)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이 소식을 전하러 고향으로 날아가리
*颯(삽)-바람소리 삽(의성어) *日南(일남)-현 베트남 중부지방 *林(림)-계림(경주)
略題述其愚志(약제술기우지) - 나의 마음을 간단히 적다.
不慮菩提遠(불려보리원) 焉將鹿苑遙(언장녹원요)
깨달음이 멀다고 걱정 않는데 어찌 녹야원이 그리 멀다 하리오?
只愁懸路險(지수현로험) 非意業風飄(비의업풍표)
가파른 길 험하다고 근심할 뿐 업풍(業風)이 몰아쳐도 개의치 않네
八塔難誠見(팔탑난성견) 參著經劫燒(참착경겁소)
여덟 탑을 보기란 정말 어려운데 오랜 세월 겪으며 거의 타버렸으니
何其人願滿(하기인원만) 目覩在今朝(목도재금조)
어찌 뵈려는 소원 이루어지겠는가? 바로 이 아침, 내 눈으로 보았노라.
*鹿苑(녹원:녹야원)-부처님이 처음 설법 한 곳 *業風(업풍)-업보(業報)로 돌아오는 바람
*八塔(팔탑)-석가모니의 탄생, 성도, 최초 설법, 열반의 장소 등에 세워진 8가지 기념물(탑)
悲冥路(비명로) - 저승길을 슬퍼하다.
故里燈無主(고리등무주) 他方寶樹摧(타방보수최)
고향의 등불은 주인을 잃어 타향에서 보배로운 나무가 꺾어져 버렸도다.
神靈去何處(신령거하처) 玉貌已成灰(옥모이성회)
신성한 영혼은 어디로 가버렸기에 옥 같던 모습은 이미 재가 되었는가?
憶想哀情切(억상애정절) 悲君願不隨(비군원불수)
잊지 못하고 그리워서 슬픈 감정 간절하지만 그대 소원을 따르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오.
孰知鄕國路(숙지향국로) 空見白雲歸(공견백운귀)
고향으로 가는 길 누가 알고 있는지 흰 구름 돌아감을 헛되게 바라보네
*같이 여행을 하던 동료(중국인 승려)가 타지에서 죽어서 깊이 슬퍼함
逢漢使入蕃略題四韻取辭(봉한사입번약제사운취사)
-서역으로 들어가는 한나라 사신을 만나 간단히 운을 취해 짓다.-
君恨西蕃遠(군한서번원) 余嗟東路長(여차동로장)
그대는 서역이 멀다고 한탄하고 나는 동쪽 길이 멀다고 탄식한다.
道荒宏雪嶺(도황굉설령) 險澗賊途倡(험간적도창)
길은 거칠고 고개에 엄청난 눈 쌓였는데 험한 산골엔 도적 떼 날뛰는구나.
鳥飛驚峭嶷(조비경초억) 人去難偏樑(인거난편량)
새는 날다가 가파른 산 높이에 놀라고 사람은 굽은 나무 의지하며 어렵사리 넘어가노니
平生不捫淚(평생불문루) 今日灑千行(금일쇄천행)
평생 눈물을 흘리지 않았건만 오늘은 하염없이 떨어지누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역으로 가는 사신을 만나서 귀향하기 힘듬을 토로하고 북받쳐 눈물을 흘림.
冬日在吐火羅逢雪述懷(동일재토화라봉설술회)
-겨울에 토화라에서 눈을 만나 마음에 품은 말을 적다-
冷雪牽氷合(냉설견빙합) 寒風擘地烈(한풍벽지열)
서늘한 눈, 얼음에 붙어 합하고 차가운 바람, 땅을 쪼갤 듯 사납다.
巨海東墁壇(거해동만단) 江河凌崖囓(강하릉애설)
큰 바다는 얼어서 단(壇)을 이루고 강물은 벼랑을 물어뜯는다.
龍門絶瀑布(용문절폭포) 井口盤蛇結(정구반사결)
용문에 폭포는 끊어지고 우물은 똬리 튼 뱀처럼 엉켰나니
伴火上陔歌(반화상해가) 焉能度播蜜(언능도파밀)
불에 의지해 계단 오르며 노래하도다 어떡하면 파미르를 넘어갈 수 있는가?
*吐火羅(토화라)-현 아프가니스탄 북부지역의 옛 명칭 *播蜜(파밀)-파미르(Pamir) 고원
獨夜月(독야월) - 홀로 달밤에
凄凄北風衣鴛被(처처북풍의원피) 涓涓西月生惠庵(연연서월생혜암)
차가운 북풍은 이불깃에 불고 아리따운 달은 혜인암 비추니
僧讀經夜相恩處(승독경야상은처) 衣滴寒塘惠草時(의적한당혜초시)
홀로 독경하는 스님 임 그린 눈물이 빗방울 되어 옷깃에 떨어지네 *衣鴛被(의원피)-원앙새를 수놓은 이불
月夜膽鄕路(월야담향로) - 달밤에 고향길 바라보니
월야담향로(月夜膽鄕路) 浮雲颯颯歸(부운삽삽귀)
달 밝고 적막한 밤 고향길 바라보니 뜬구름만 혼자서 고향을 돌아가네.
咸書參去便(함서참거편) 風急不聽廻(풍급불청회)
편지라도 써서 구름 편에 보내려 하나 바람이 재촉하여 그마저 어려워라.
我國天岸北(아국천안북) 他邦地角西(타방지각서)
내 님은 저 하늘 끝 북쪽에 있는데 나는 지금 땅끝 나라 서쪽에 와 있네.
日南無有雁(일남무유안) 維爲鄕林飛(유위향림비)
햇살 부신 남녘에는 기러기도 없으니 누가 고향 계림으로 소식을 전해주랴.
워먼더 펑요(我們的 朋友/우리는 친구다)
열차 안(南京에서 成都까지 25시간) / 묘족(苗族) 아가씨들 / 어메이샨(峨眉山) 사면십방 보현보살상
중국은 알수록 아리송한 나라이다. 이 에피소드가 그 한 예가 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중국인은 무례하고, 지저분하고, 질서가 없고, 잘난 체를 좋아하는...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그뿐이랴, 중국산 상품들은 싸구려고, 가짜가 많고, 믿을 수 없고... 대부분 거부감을 주는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이 중국 여행을 선호하는 까닭은 유구한 역사에 따른 엄청난 유물 유적들, 곳곳에 널려있는 수많은 아름다운 경관들이 여행객들을 유혹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4년 4월, 여행을 좋아하는 두 친구와 배낭을 메고 홀가분하게 쓰촨성(四川省)의 청두(成都)를 다녀오기로 하고 난징(南京)에서 침대(軟臥)열차를 탔는데 청두까지 25시간이 걸린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웃지 못할, 영원히 기억에 남을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 일행 세 명 중, 한 명은 중국어를 조금 하고 나와 다른 한 친구는 중국어를 거의 못하여 짧은 중국 토막말과 영어로 중국인들과 겨우 눈인사로 얼굴을 익히는 정도였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어 식당차로 갔더니 만석(滿席)으로 자리가 없다. 식탁은 네 명이 한 테이블로 드문드문 빈자리가 하나씩 있기에 할 수 없이 세 명이 따로 떨어져 앉게 되었는데 열차 안에서 눈인사를 나누던 40대 전후의 중국 젊은이 셋이 저녁을 먹다가 종업원을 부르더니 간이의자를 가져오라고 하여 둥그렇게 자리를 만들고는 우리보고 같이 합석(合席)을 하자고 한다. 그러지 않아 말도 안 통하여 곤란하던 차라 덥석, 그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는데 빠이주(白酒/배갈)로 이미 얼굴이 불그레한 녀석이 일어서더니 우리 세 명 저녁을 자기가 사겠단다.
극구 만류하는데도 우리를 눌러 앉히고는 재빨리 카운터로 가서 음식을 시키는데 제법 가격이 나가는 고급요리를 시킨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빠이주를 종이컵에 따라주며 신나게 마셔보잔다.
그리고는 ‘워먼더 펑요(我們的 朋友)’를 외치며 이빠이(一杯/원 샷)를 하자고 한다.
우리 세 사람 중, 두 사람은 술을 조금 하지만 나는 거의 술을 못 마시는데 분위기를 봐서 마시지 않을 수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호기 있게 ‘워먼더 펑요’를 외치며 목구멍으로 술을 쏟아부었다.
바로 옆자리에 않았던 40대 중반의 대머리 중국 녀석이 흘끔거리며 쳐다보더니 자기가 마시던, 옆에 손잡이가 달린 됫병보다 큰 술병을 들고 와서는 합석(合席)을 하며 오늘 신나게 마셔보잔다.
연거푸 잔을 채우고는 ‘이빠이(一杯), 워먼더 펑요(我們的 朋友)’를 반복한다. 에라 모르겠다~~.
‘워 아이 쭝궈런!(我愛 中國人/나는 중국인을 좋아한다.)’, ‘한궈런 쭝궈런 펑요!(韓國人 中國人 朋友/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은 친구다.) 우리는 어쭙잖은 중국 토막말을 내뱉으며 서로 얼싸안고 목구멍에 술을 들이붓다 보니 모든 술병이 바닥이 났는데 이미 모두 곤드레만드레.... 술에 약한 나는 대취(大醉)하고 말았다.
내가 정신이 없는 중에도 술기운 때문이겠지,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 허리를 굽실거리면서 두 손을 모아 흔들며 사방을 둘러보고 큰 소리로, ‘워쓰 한궈런, 워아이 쭝궈런, 워먼더 펑요(我是 韓國人, 我愛 中國人, 我們的 朋友/나는 한국인이요. 나는 중국인을 좋아합니다. 우리들은 친구요)’라고 외쳤더니 모두 두 손을 모아 흔들며 답례를 하고 웃는다.
마침 조금 떨어진 자리에 침대칸 내 옆자리의 20대 초반 아가씨가 앉았기에 벌떡 일어서서 손가락으로 아가씨를 가리키며 중국노래 첨밀밀(甜蜜蜜)의 한 구절을 불러제꼈더니 모두 손뼉을 치며 웃는다.
‘티엔미미 니샤오더티엔미미, 하오샹후얼 카이자이 춘펑리(甜蜜蜜, 你笑得甛蜜蜜 好像花儿 开在春风里/달콤해요, 그대 미소는 달콤하지요. 그대는 봄바람에 피어난 한 송이 꽃과 같아요!)’
아니 시끄럽다고 인상을 찌푸린 사람도 몇몇은 있었을 테지....
거기까지는 그런대로 좋았는데 어쨌거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짜이찌엔(再見/안녕!)을 외치며 일어서는데 도무지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세 놈이 부둥켜안고 비틀거리며 가까스로 자리까지 왔는데, 대취(大醉)한 40대 대머리 중국 놈이 따라와서 주절거리기 시작한다.
두 친구를 가까스로 침대로 밀어 넣는데 이미 인사불성인 한 친구는 바닥에 꼬라 박히더니 이마에 주먹 같은 혹이 생겼다.
같은 칸에 누웠던 승객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몇몇 중국인이 일어나 주절거리는 중국 놈을 데리고 간다. 나는 자리가 3층이라 가까스로 기어오르는 데는 성공했는데 웬걸 누워서 설핏 잠이 들려는가 싶더니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취한 중에도, 잘못하다가는 아래층 자는 사람들한테 복중주(腹中酒)를 쏟아낼까 조바심이 들어 다시 기어 내려와 바닥을 엉금거리며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에 머리를 처박았다. 몇 번을 토하고 나니 조금 나은데 자는 승객들이 얼마나 짜증이 날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시 기어서 화장실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에도 쓰레기통이 있어 몇 번을 더 쏟아내고는 그 앞에 그냥 주저앉았는데 머리가 빙글거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냥 팔짱을 끼고 앉았는데 화장실 있는 곳이 열차 칸의 연결 부위라 바람이 들어와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 턱을 가슴에 처박고 얼마나 덜덜거리며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을 헤매었는지...
정신이 혼미한 중에 갑자기 누군가 내 가슴에 이불을 씌워주는 기척이 있어 가까스로 눈을 뜨고 쳐다보았더니 아까 내가 손가락질하며 노래를 불렀던 그 20대 초반 중국 아가씨가 이불을 가져다 내 가슴에 덮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신없는 중에도 셰셰(謝謝).... 얼마나 지났는지 조금 진정이 되기에 이불을 들고 다시 내 자리로 기어 올라가 설핏 잠이 들었는가 싶었는데 깨어보니 아침이다. 기차가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오길래 나는 그래도 정신을 차리겠는데 두 친구는 아침까지도 술이 깨지 않아 눈을 멀뚱거리며 두리번거리는 것을 서둘러 강제로 질질 끌고 내려야 했다. 가방이고 여권이고 지갑이고...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을 중국 승객들이 주워준다.
그 이후로 나는 중국을 무지무지 사랑하게 되었다. (워 아이 쭝궈/我 愛 中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