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는 학습될 수 있는가?
무모한 택시 기사와 통과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어려운 시험은
인과관계 기저율에서 끌어낼 수 있는 두 가지 추론을 잘 보여준다.
하나는 개인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특성,
그리고 또 하나는 개인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의 중대한 특성이다.
실험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정확한 추론을 내놓았고, 판단도 개선되었다.
안타깝지만 늘 그렇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제 곧 소개할 고전적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기저율 정보에서 자신의 믿음과 상충하는 추론을 이끌어내지 않는다.
이 실험은 심리학을 가르치는 것에 대개 시간 낭비일 뿐이라는 불편한 결론도 내놓았다.
미시간 대학의 사회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Richard Nisbett)과
그의 제자 유진 보기다(Eugene Borgida)는 오래 전에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뉴욕대학에서 몇 해 전에 실시한 유명한 '도움 실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1인용 부스에 들어가 인터폰으로 사적인 생활과 문제를 이야기해보라고 한 실험이다.
이들은 차례로 약 2분 종도 이야기했다. 마이크는 한 번에 하나씩만 켜졌다.
각 조는 여섯 명으로 구성되었고, 이 중 한명은 이들이 심어놓은 사람이었다.
이 '앞잡이'가 가장 먼저 나서서, 준비한 대본대로 이야기했다.
그는 뉴욕대학에 적응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특히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곧잘 발작을 일으킨다고, 누가 봐도 당혹스러운 말투로 고백했다.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도 차례로 이야기했다. 다시 앞잡이의 마이크가 켜졌을 때,
그는 불안해하고 횡설수설하면서, 발작이 오는 것 같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누, 누가, 좀, 도, 와....,(숨넘어가는 소리) 죽을, 것, 같....., 발, 작이.......(숨이 막히고, 곧 잠잠해진다."
이 말을 끝으로 그의 마이크가 꺼지고 다음 참가자의 마이크가 자동적으로 켜졌다.
죽어가는 사람에게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실험 참가자들은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이들은 자기들 중 한 사람이 발작을 일으켜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요청에 응답할 수 있는 사람이 나 말고도 여럿이니, 나는 안전하게 부스에 남아 있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실제로 그랬다. 참가자 열다섯 명 중에 네 면만이 도움에 즉시 응답했다.
여섯 명은 아예 부스에서 나오지 않았고,
다섯 명은 발작을 일으킨 사람이 질식한 게 분명하다 싶을 때가 되어서야 나왔다.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똑같이 도움 요청을 들었다고 생각하면
책임감을 잘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이 결과가 놀라운가? 아마 그럴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은 꽤 괜찮은 사람이고, 그런 상황에서는 달려가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좋은 사람들도 똑같이 행동하리라 예상한다.
이 실험의 핵심은 물론 그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편범한 좋은 사람이라도 발작이라는 달갑잖은 상황을 처리할 다른 사람이 있다 싶으면
달려가 도움을 주지 않는다. 당신도 마찬가지라는이야기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말에 흔쾌히 동의하는가?
'도움 실험을 읽으며서, 나라면 그 낯선 사람을 곧바로 도와주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발작을 일으킨 사람 주변에 나밖에 없다면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이 틀린 모양이다.
내 주변에 그를 도와줄 다른 사람이 있다면, 나는 나서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있으면 내 책임 의식이 생각보다 많이 약해질 수도 있겠다'
심리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독자도 이와 같이 생각했는가?
심리학 교수가 도움 실험을 설명하면서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은
허구의 예일 시험에서 그랬듯이 낮은 기져율을 인과관계로 바라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두 경우 모두, 어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비율이 놀랍도록 높다면
그 테스트가 아주 어렵다는 뜻이려니 추론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배워야 할 점은 해당 상황의 큰 특징, 이른테면 책임 분산 같은 특징 탓에
자신과 같은 평범하고 좋은 사람도 놀랍도록 냉정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생각은 바꾸기 어렵고,
자신을 더 나쁜 쪽으로 생각하기는그보다 훨씬 더 어렵다.
니스벳과 보기다는 학생들이 그런 변화도 거부하고, 달갑지 않은 상황도 외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이 내용으로 중간고사라도 본다면, 학생들은 도움 실험의 자세한 내용을 암기할 수 있고,
또 얼마든지 그러려고 할 것이며, 책임분산이라는 말로 '공식적인' 해석도 거듭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인간 본성에 관한 이들의 믿음이 정말 바뀔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니스벳과 보기다는
뉴욕대학 연구에 참가한 두 명의 짧은 인터부를 담은 동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인터뷰는 짧고 단조로웠다. 그 둘은 상냥하고, 평범하고, 좋은사람 같았다.
이들은 취미, 여가 활동, 미래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 했는데,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었다.
학생들은 인터뷰 하나를 본 뒤에
그 사람이 곤경에 뻐진 낯선 사람을 얼마나 빠르게 도와 주었을지 추측했다.
이 문제에 베이즈 추론을 적용하려면,
우선 인터뷰를 보지 않았다면 두 사람에 대해 어떤 추측을 했을지 자문해야 한다.
이 문제에는 기저율로 대답할 수 있다.
앞에서 도움 실험에 참가했던 열다섯 명 중 네 명만 낯선 사람을 도우러 달려갔었다.
그렇다면 어느 불특정 참가자가 도움을 주러 곧장 달려갔을 확률은 27퍼센트다.
따라서 불특정 참가자를 두고 추측할 때, 그는 앞장서 도움을 주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다음으로, 베이즈 논리에는 개인과 관련한정보가 필요하다.
그런데 인터뷰 동영상은 아무런 개인 정보를 담지 않도록 신중히 만들어졌고,
따라서 인터뷰에 나온 사람이 무작위로 선택된 학생보다
낯선 사람을 도울 확률이 더 높은지 낮을지 알 길이 없다.
이처럼 유용한 추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베이즈 해법은 기저율을 따른다.
니스벳과 보기다는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인터뷰 동영상을 보여주고
두 사람의 행동을 예측해보라고 했다.
이때 첫 번째 집단에는 도움 실험의 과정만 알려주고, 결과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학생들은 인간본성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그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을 예측했다.
다들 예상하겠지만 이들은 두 사람 모두 낯선 사람을 도우러 곧장 달려갔으리라고 예측했다.
두 번째 집단에게는 실험 과정과 결과를 모두 알려주었다.
두 집단의 예측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답할 수 있다.
학생들은 도움 실험의 결과에서 자신의 생각을 획기적으로 바꿀 무언가를 배웠을까?
답을 분영했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두 번째 집단의 학생들이 내놓은 예측도
실험의 통계적 결과를 모른 첫 번째 집단의 학생들이 내놓은 예측과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은 두 사람이 속한 집단의 기저율을 알고 있었는데도
동영상에 나온 두 사람이 곤경에 처한 낯선 사람을 도우러 달려 갔으리라고 확신했다.
심리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에게는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가 실망스럽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도움 실험에 나오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전에는 몰랐던 것을 배우기를, 특정 상황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기를 기대한다.
니스벳과 보기다의 연구를 보면 그런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고,
다른 깜짝 심리 실험을 추가로 실시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도 없다.
사실 니스벳과 보기다는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미미한 사회적 압박을 가하자 사람들은 우리(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예상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강한 전기 충격도 감수했다.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배경의 위력을 새롭게 평가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이 실험에서 어떤 가치도 배우지 못했다.
이들이 낯선 사람이나 자신의 행동을 예측하는 걸 보면,
사람들의 행동을 바라보는시각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은 실험결과를 보고 놀라면서도, 니스벳과 보기다의 말로 표현하자면 ,
그 결과에서 "자신은 (그리고 친구와 지인 들도)슬그머니 제외한다"
그러나 심리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절망해서는 안 된다.
니스벳가 보기다는 학생들에게 도움실험 의 요점을 이해시키는 방법을 제시한다.
두 사람은 새로운 학생들에게 이 실험의 절차를 가르쳐주되 결과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두 개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여준 뒤,
학생들에게 그 두 사람은 낯선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다고만 말한 다음,
전체 참가자가 어떻게 행동했을지 추측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극적인 결과가 나왔다. ,학생들의 추측은 거의 정확했다!
학생들에게 그들이 전에는 몰랐던 심리를 가르치려면 학생들을 놀라게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식으로 놀라게 해야 할까?
니스벳과 보기다는 놀라운 통계치를 보여주는 방식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반면 점잖은 두 사람이 낯선 사람을 돕지 않았다는 개별 사례를 들어 놀라게 했더니,
학생들은그 사례를 곧장 일반화해서 누군가를 돕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추론했다.
니스벳과 보기다는 이 결과를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말로 요약한다.
일반적 사실에서 툭수한 사실을 추론하기를 꺼리는 실험 참가자의 성향은 특수한 사실에서
일반적 사실을 흔쾌히 추론하려는성향으로만 대적이 가능했다.
대단히 중대한 결론이다.
인간 행동과 관련해 놀라운 통계를 배우고 거기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
그 사실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이해하는시각이 달라졌다고는 볼 수 없다.
심리학을 제대로 배웠는지 알아보려면,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이해하는 시각이 달라졌는지를 봐야지,
단지 새로운 사실을 알았는지를 봐서는 안 된다.
통계를 이해하는 것과 개별 사례를 이해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인과관계 해석이 들어간 통계는 인과관계와 무관한 정보보다 우리 사고에 더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그럴듯한 인과관계 통계라도 오래 간직한 믿음이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믿음을 바꾸기는 힘들다.
반면에 깜짝 놀랄 개별 사례는 그 효과가 막강해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그 사례에 담긴 부조화가 해소되도록 인과관계 이야기를 완성해야 하기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끔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일반적인 사람들에 관한 놀라운 사실을 듣기보다
자신의 행동에 나타난 놀라운 점을 찾아낼 때 무언가를 배울 화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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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 통계와 관련한 말들
"그들이 단순히 통계에서 무언가를 배울 것 같지는 않다.
그들에게 대표적인 개별 사례 한두 개를 보여주어 시스템1을 자극하자"
"통계 정보가 무시되었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정보는 그 즉시 전형화를 만드는 데 사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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