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가뭄
내가 마야의 붕괴 원인이라며 간략하게 지적햇던 다른 두 현상,
즉 전쟁과 가믐에 대해서도 좀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고고학자들은 고대 마야인들을 온건하고 평화적인 민족이엇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치열한 전쟁을 거의 습관적으로 끝없이 치렀다.
중앙 멕시코를 통일한 아스텍이나 안데스 지역을 통일한 잉카처럼,
원정군에게 식량을 원활하게 공급할 운송 수단이 없어
한 왕극이 이웃 왕국들을 병합시켜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고학적 기록에 따르면, 고전기의 붕괴를 앞두고 전쟁이 더 빈발했고 더 치열해졌다.
지난 55년간 여러 경로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야 유적을 둘러싼 거대한 성곽들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
돌기념물과 항아리에 생생하게 그려진 전쟁과 포로들 (사진 14),
1946년 보남파크에서 발견된 벽화들, 대부분이
왕의 정복을 찬양한 것으로 밝혀진 마야 문자의 해독 등을 통해서 찾아낸 자료들이 그 증거이다.
마야의 왕들은 치열하게 싸웠고 포로를 잡았다. 코판의 왕, 18토끽 그런 패자 중 하나였다.
포로들은 가혹한 고문을 당했고 참혹한 방법으로 결국에는 희생당했다.
손가락을 힘껏 잡아당겨 뽑아내고 이를 뽑으며,
아래턱을 잘라내고 입술과 손가락 끝을 베어내며 손톱을 뽑아내고 바늘로 입술을 뚫는 등
고문하는 모습이 기념물과 벽화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렇게 고문한 후 포로들의 손과 발을 묶어 공처럼 둥그렇게 만들어 신전의 가파른 계단 아래로 굴려버렸다.
마양의 전쟁을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황극들 간의 전쟁, 한 오아국에 속한 도시가 수도에 저항하면서 왕국에서 독립하려는 반란,
왕구너을 찬탈하려는 반란자들로 인한 내란 등이다.
이런 유형별 구분에 상간없이 전쟁에는 언제나 황이나 귀족이 고나련되었기 때문에
모든 전쟁이 기념물에 기록되거나 그림으로 그려졌다.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인구가 과도하게 늘어나고 땅이 부족해지면서
땅을 둘러싼 평민들 간의 다툼도 점점 잦아졌다.
마양으 붕괴 원인을 이해하는데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현상을 가뭄이다.
마야의 가뭄에 대해서는 마크 브르너, 데이비드 호델, 고(故)에드워드 디베이와
그들의 플로리다 대학교 동료들이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최근에는 리처드손 길(Richardson Gill)이 마야의 가뭄을 주제로 한 책을 발표했다.
호수 바닥의 퇴적층에서 추출한 퇴적물에서 우리는 마야의 가뭄과 환경 변화를 추론해볼 수 있다.
가령 가뭄으로 호숫물이 증발해서 물의 농도가 짙어지면
호숫물이 용해된 석고, 즉 황산칼슘이 침전된다.
동위원소 산소 18로 알려진 무거운 산소를 함유한 물도 가뭄 때 농도가 짙어지는 반면에,
물에 함유된 가벼운 동위원소 산소-19는 대기 중에서 증발하다.
호수에 서식하는 연체동물과 갑각류는 산소를 흠수해서 껍질 속에 저장한다.
그 산소는 퇴적물 속에서 그대로 보존되기 때문에 그 작은 동물들이 죽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기후학자들은 그 껍질 안에 저장된 산소 동위원소들을 분석할 수 있다.
또한 퇴적층을 방사성 탄소법으로 연대를 측정하면,
석고와 산소 동위원소의 분석을 통해 가뭄이나 강우가 있었던 때를 대략 추론해낼 수 있다.
한편 화분학자들은 호수의 퇴적물에서
삼림 파괴(나무의 화분은 줄어들고, 풀의 화분은 증가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와
토양 침식(쓸려내려간 토양에서 진흑과 무기물이 많이 발견된다)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다.
방사성 탄소법으로 호수의 퇴적물을 분석한 결고를 근거로, 기후학자들과 고생태학자들은
마야 지역이 기원전 5500년부터 기원전 500년까지는 상대적으로 습한 지역이었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그러나 고전기 이전의 마야 문명이 발흥하기 직전, 즉 기원전 475년부터 기원전 250년까지는 건조한 기후였다.
기원전 250년 이후 기후가 습하게 바뀌면서
고전기 이전의 마야 문명이 순조롭게 발흥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원후 125년부터 250년까지 다시 가뭄이 닥치면서
고전기 이전에 존재했던 멜미라도르를 비롯한 여러 도시가 붕괴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붕괴가 있은 후 다시 습한 기후가 찾아오면서 고전기 마야의 도시들이 세워졌다.
하지만 600년 경에 닥친 가뭄으로 티칼을 비롯한 몇몇 도시가 일시적으로 쇠락하는 현상을 보였다.
그런데 7000년의 역사에서 최악의 가문이 760년경에 시작되어 800년에 절정을 이루면서
고전기 마야가 속절없이 붕괴된 것이라 추정된다.
마야 지역에 빈번하게 닥친 가뭄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면 가뭄은 208년을 주기로 되풀이 되는 듯하다ㅏ.
태양 방사사열의 작은 변화가 이런 가뭄 주기의 원인이고,
유카탄 반도에서 남쪽은 비가 더 많아지고 북쪽은 더 건조해지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을 아닐까?
태양 방사열의 이런 변화가 마야 지역뿐만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실제로 기후학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마야에서 멀리 떨어진 고대 문명 지역의 붕괴도 마야의 가뭄 주기와 일치하는 듯하다.
예컨대 세계 최초의 제국이던 메소포타미아 아카드 제국이 기원전 2170년 경에 붕괴했고,
페루 해안에 위치했던 제4모체 문명을 600년경에 붕괴했으며,
안데스 지역의 티아우아나코 문명은 1100년경에 붕괴했다.
단순히 가뭄 때문에 고전기 마야가 붕괴되었다고 가정한다면
800년 경에 닥친 함 번의 가뭄이 전 지역에 똑같이 영향을 주면서
마야의 모든 도시들을 동시에 붕괴시켰다고 상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전기의 붕괴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760~910년 사이에 여러 도시를 강타했지만
그 가뭄을 이겨낸 도시들도 있었다.
따라서 많은 마야 전문가들은 마야의 붕괴에서 가뭄의 역할에 회의적이다.
그러난 신중한 기후학자라면 기뭄 가설을 이렇게 단순화시켜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을 따라 내려가 해안 근처의 해저층에 퇴적된 침전물은 해마다 일정한 띠를 이루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런 침전물을 분석하면 연 강수량의 변화를 비교적 정확히 계산해낼 수 있다
이렇게 계산해보면 800년의 '대가뭄'은 실제로 네 번의 정점을 가졌고,
첫 정점이 그나마 견딜 만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정확히 말하면 760년경에 2년동안의 가문이 있었고,
810년부터 820년까지 그야말로 극심한 가뭄이 10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다시 860년경에 3년간의 가뭄이 있었고, 910년경에 6년간의 가뭄이 있었다.
리처드슨이 마야의 여러 도시에서 가장 늦게 세워진 돌기념물들을 추적한 결과에 따르면
붕괴 시기는 지역마다 다르고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810녀, 860년, 910년으로 가뭄이 가장 극심했던 때와 일치한다.
일정한 해에 가뭄의 강도가 지역에 따라 달랐다면 붕괴 시기가 이렇게 구분된다고 놀랄 것은 없다.
요컨대 연속된 가뭄으로 마야의 여러 도시들이 시간적 차이를 두고 붕괴했지만
세노테, 우물, 호수 등에서 안정된 물 공급을 받은 도시들은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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