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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Histoire de la philosophie, 1926-1932)[3권 합본 1938]
브레이어(Emile Bréhier, 1876—1952)
제7권, 1850년후 19세기, 20세기, 788-1021
제13장 실재론 Le réalisme 960
1절 앵글로색슨의 실재론 960
윌든 카(Herbert Wildon Carr 1857–1931)는 관념론을 정의하고자 원했다. 그리고 그는 관념론의 넓은 일반성 속에서, 관념론에게 원리를 부여하고 했다. 그 원리란 인식은 외적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참조 모나드론: 상대성이론의 철학 윤곽(A theory of monads: outlines of the philosophy of the principle of relativity, 1922). 그런데 이것은 상대성의 일반적 형식이다. 결국 경험 조건들과 독립적으로 물리적 관계들을 파악하고자 했던 것은 헛된 것이다. 이런 원리의 측면에서, 비판적 관념론은 또한 영국에서 스타우트(George Frederick Stout 1860–1944)에 의해 표현되었다. 그는 마음과 물질(Mind and Matter 1931)을 썼다. 그는 처음에는 헤겔 관념론과 일치했고 그리고 나서 실용주의와 일치했다.
게다가 실용주의와 앵글로-아메리칸 헤겔주의 사이에는 친구들 사이의 불화가 있었다. 이 불화가 사상의 깊은 공동관심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 공동관심이란 그들이 표현하는 구체적인 취향, 추상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 사실들 속에서 자기 실현의 노력 등이다. 이것은 실용적인 만큼이나 헤겔적인 것이고, 또 이것은 진실한 의미에서 과학적 경험에 참조하기보다 훨씬 더 생명 내적 진행에 대한 일종의 직관에 참조한다. 디킨슨(Dickinson s.d.)는 이렇게 썼다. “인간은, 가능성으로 가득차 있으며 스스로 자신을 창조하는 중에 있는, ... 유한하지 않은 피조물이다. 인간은 신적이라 할 실재저인 어떤 것에 도움을 준다. [그런데 또한] 인간은 악마적이라 할 실재적인 어떤 것에 저항을 한다.” 우리가 곧 보게 될 것이지만 실재성들이란 양자에[헤겔적인 것에도 실용주의적인 것에도 ] 동시에 적대적이다.
헤겔 관념론자들과 실용주의자들 사이에 소위 말하는 철학적 질서의 논쟁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이다. “관계들은 내적인가 외적인가?” 만일 관계들이 내적이라면, 다시 말하자면 한 항이 다른 항들과 관계들에서 그 자체 독립적으로 파악될 수 없다면, 우주는 유일하고 영원하며 불변하나는 전체(un tout unique, eternel, immuable)를 형성한다. 이를 지지하는 자들은 절대주의자들이다. 만일 관계들이 외적이라면, 우주는 독립적인 부분들의 집합들일 뿐이다. 이러한 주제는 실용주의적 다원주의의 주제이다. 관계가 이적일 때, 이 관계 속에 어떤 항의 개입은 그 항의 본성을 변질시키지 못한다. 이처럼 관계란 근접(proche) 관계, 분리된(séparée) 관계, 닮은(semblable à) 관계 등이 있다. 그런데, 실용주의자에게는 규칙에 (함축적으로) 예외가 있는 관계도 있다. [예외 없는 규칙이 없다] 그것은 인식적 관계로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이다. 왜냐하면 실용주의자들 학설의 본질(l'essence)이기 때문이며, 이것에서 인식이란 대상을 변형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신실재론은 외적관계의 학설을 엄격하게 받아들이는 학설로서 정의 될 수 있다. 이 학설은 인지적(cognitive) 관계에 까지 확장하는 것이고, 게다가 상식의 학설에 귀착시키는 것이다. 그 상식에 따르면, 이미 알려진 사실은 알려진 대상에게 아무 것으로도 변질시키지 못한다. 이 학설에 따르면 인식의 대상은 마음에 담기지 않는 특성을 가질 수 있다. 즉 그것은 의식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식주체와 대상 사이에 어떠한 본성적 공통성을 가정하는 것도 필연적이 아니며, 또 매개적인 정신적 관념 또는 상태 같은 어떤 것을 가정하는 것도 필연적이지 않다.
그러나 외적 관계들의 배타적 현존으로부터[존재로부터], 여러 실재론자들은 다른 귀결들을 끌어냈다. 다른 귀결들이란 그 자체들이 완전히 실용주의적 관점에 연결되어 있다. 첫째, 대상에 관한 주장들(les assertations 단언들)이 그 자체적으로 다른 대상들과 관계들에 근거한 모든 주장들로부터 진실로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헤겔주의에 반대하는 원자론 철학의 복원이다. 원자론 철학은 복잡한 현존이 단순한 현존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복잡한 요소들은 단순한 요소들에 의해 구성된다.] 둘째, 일종의 플라톤주의이다. 왜냐하면 이 관계들은 항들에 독립적이기 때문이고, 이를 넘어서 인지적 관계의 외재성 덕분에, 이 관계들은 마치 본질들처럼 알려진 사실들과는 독립적으로 자체적으로 현존한다.
이러한 것들은 무어(George Edward Moore, 1873-1958)가 윤리학의 원리(Principia Ethica, 1903)와 판단의 본성(The Nature of Judgment 1899)에서 그리고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수학 원리들(Principles of Mathematics, 1903)에서 함께 묶어서 발전 시켰던 생각들이다. 도덕영역에서 무어의 의도는 선성(善性 la bonté)이 궁극적 본질(entité)이며, 객관적으로 현존하고 지각될 수 있는 본질이지만, 분석되지 않는 본질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진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진리란 몇 가지 판단들에 대해 정의할 수 없는 성질이라는 것이다. 진리의 정의 불가능성은 신실재론을 실용주의와 가장 잘 구별되게 하는 것이다. 그 실재론(Le réalisme)에 있어서 인식이란 대상을 직관에게 드러나게 하는 무매개적 현전을 의미한다. 따라서 판단의 진리는 판단과 실재성 사이에 상응(대응)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 판단이 진실하다고 말하는 것은 개념들의 연결(la connexion)이 현존재자들(les existants) 사이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매개적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또한 다음과 같은 것을, 즉 실재성이 개념들 서로서로 연관되어 이루어지는 것을 함축한다. 그 실재론의 세계는 논리적 본질들의 세계이나, 체계적인 통일성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말하기를 “논리학은 위대한 해방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말은 그의 작품의 명구(l'épigraphe)로 사용될 수 있었다. 반감이 없지 않지만 그는 철학이 인간의 관심(이익)들에 쓰인다는 생각을 배격했다. 철학은 집착하지 않은 초연한 정신이기를, 즉 논리적 증명에 의해서만 만족되는 정신이기를 원했다. 논리학이 가능한 모든 세계에 속하는 관계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논리학이 우리를 “해방시킬” 것이라 한다. 자유로운 논리적 구축작업들 사이에서 경험이 결단을 내릴 것이다. 러셀 방식 의 특징적인 실례(實例)는 외적 대상에 대한 그의 지각이론이다. 그는 사물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질(qualia)들인 경험의 부정할 수 없는 자료들로부터 출발하여, 논리적 법칙을 가지고 영속적인 대상들의 개념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 공통신념(la croyance commune)이란 공통공간 안에 대상들이 현존한다는 것, 이 성질들(qualia)이란 나의 관점으로부터 대상들이 표현하는 현상(les apparences 겉모습)들 즉 측면들(les aspects)이며, 또한 관점들과 함께 변하는 현상들 즉 측면들이다. 그러나 러셀에게 있어서 실재성이 현상들(겉모습들) 자체이다. 현상들은 공통 곤간 속에 있지 않다. 그러나 현상들은 나의 사적 공간 속에 나의 사적 세계를 구성한다. 대상은 순수하게 논리적 구축이며, 이 논리적 구축은 성질들(qualia)과는 다른 본질들에게 호소하지 않으며, 하찮은 실재성에게 어떤 참조도 하지 않는다. 대상은 모든 현상들로 꽉 찬 완벽한 체계이다. 러셀은, 체계가 정확히 속성들(propriétés)을 가지고 있고, 그 속성들을 공통감각이 대상에게 부과한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했다. 공통공간은 논리적으로 관찰자 각각의 사적인 공간들로부터 논리적으로 구축되었다. 사람들은 러셀의 의도에서 어떻게 자유로운 논리적 구축이 자발적 믿음을 대치했는지를 본다. 그리고 사람들은 의심할바 없이 여기서 러셀이 공산주의와 친근성의 이유를 발견한다. 즉 그 공산주의란 공통의 본능에 어떠한 호소도 하지 않고서, 순수 사적인 이익들로부터 사회적인 것의 논리적 재구축이 된다는 생각을 말한다. 럿셀의 작품으로는 화이트헤드(A. N. Whitehead, 1861-1947)와 함께 수학의 원리(Principia Mathematica, 1910-1913)를 썼으며, 철학의 제문제들(The Problems of Philosophy 1912)(tr.fr 1923), 철학에서 과학적 방법(Our Knowledge of the External World as a Field for Scientific Method in Philosophy. 1914)(tr.fr. 1929), 마음의 분석(The Analysis of Mind, 1921) 등이 있다.
만일 사람들이 실재론을 엄격한 의미에서 규정한다면, 정신으로부터 대상인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 그 대상은 항상 비 정신적 실재성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출생인] 알렉산더(Samuel Alexander, 1859–1938)는 맨체스터대학에서 교수였으며, 공간 시간 신성(Space, Time and Deity 1920)을 썼다. 그는 이 책으로부터 충분한 귀결을 끌어냈다. 그가 정신적 삶을 의지의 순수 작용으로 환원하고자 했을 때, 모든 인식가능한 것은 대상의 측면에서 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더는 대상에 대해 의식(conscience, awareness)하게 되는 관조적 인식이외에, 실재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어떤 종류를 소유하는 것을 인정했다. 이 실재성의 소유에서는 주체와 대상의 이중성이 사라진다고 하고, 또 이 소유를 즐김(enjoying)이라 부른다. 그 결과로서 기억은 과거 속에서 한 사건의 사색(contemplation, 관조)으로 머물 수 없게 되며, 사색이란 정신 속에 대상을 도입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억은 과거 속에 경험을 다시 살게 하는 데 있다. 알렉산더는 내적 경험의 본질적 자료를 정신적 활동의 방향으로 간주했다. 즉 이 방향은 대상의 내용에 따라 변한다. 또한 빛의 다발로서 간주했다. 이 빛의 다발은 인식해야할 사물을 향하여 방향을 잡고 있다.
알렉산더의 실재론은 러셀의 실재론과 매우 다르다. 그의 실재론은 실용주의와 절대주의처럼 우주의 관점으로 향했다. 그 관점은 신실재론의 방식에 비추어보면 감동(l'émtion, 정서)에 박탈당해있고, 다시 말하자면 내재성 없이 있다. 그는 시공간이라는 구성된 실재성 속에서 사물들의 모태를 보았다. 그는 자신의 규정방식들로부터 모든 범주들을 연역해냈다. 범주들이란, 현존 즉 시공의 범위를 차지함; 실체, 사건들이 연이어지는 주변에 의해 제한된 공간; 사물들, 운동들이 조합되어 이루어진 것들; 관계, 사물의 시공적 연결; 인과성 한사건에서 다른 사건으로 연속적 이행(transition). 이 모든 범주들은 칸트의 관념론에 속하는 것이고, 시간과 공간의 다양함을 통일하는 정신의 작용을 함축하는 것 같아보이지만, 그에게 있어서 이 범주들은 정신의 작용으로부터 나온 객관적인 규정들(déterminations)이다. 게다가 정신의 서술에 관해서 보자면, 그는 가능한 한 훨씬 멀리 나가서, 정신을 신경체계와 동일시했다. 신경체계는 시공간의 한 규정일 뿐이다. 조금 전에 말했던 정신의 방향이라는 것도, 그에게 있어서는, 아마도 신경과정의 한 방향일 뿐이다. 정신은 완전히 새로운 성질인 각성(la conscience, awareness)이라는 사실에서만 멈춘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 성질들의 질서는 시공간에 환원할 수 없다. 이 성질들은 관념을 실재성의 수준에서 그리고 진행의 수준에서 도입한다. 대우주(l'Univers) 속에서 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성이 있다고 한다. 이 신성은 항상 보다 높은 형태들을 생산하는 경향성일 뿐이다. 이 형태들의 각각은 하부형태를 기반을 삼고 있고, 그것은 마치 우리 정신이 신체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한 알렉산더의 실재론은 새드워드 핟슨(Shadworth Hollway Hodgson, 1832-1912)과 아담슨(Robert Adamson 1852-1902)의 실재론와 구별해야만 한다. 핟슨은 4권으로 된 경험의 형이상학(The Metaphysic of Experience 1898)을 썼고, 아담슨은 2권으로된 현대철학의 발전과 다른 시론(Development of Modern Philosophy and Other Essays, 1903)을 썼다. 전자에 따르면 의식은 활동성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외적 세계의 표상들을 생산할 수 없다. 이 표상들은 물질 속에서만 자기들의 현존 조건들을 발견할 뿐이다. [물질이 있어야 대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아담슨은 칸트와 반대로 자의식은 정신적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대상들의 실재성을 지탱해주는 데에 결코 쓰일 수 없다고 한다. 여기서 또한 관념론의 반박(The Refutation of Idealism 1903)이란 글을 쓴 무어(George Edward Moore, 1873-1958)을 첨가할 필요가 있다. 그는 알렉산더처럼, 표상하는 작용과 표상된 사물 사이의 구별을 가정했다. 표상하는 작용만이 의식에 속한다고 한다.
만일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전적으로 대상의 측면에서 온다면, 그 결과로 보면, 의식은 인식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우리는 조금 전에 알렉산더가 어떻게 이 난점을 밝히고자 했는 지를 보았다. 미국의 신 실재론자들은 이것을 아주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들은 왓슨(John Broadus Watson, 1878-1958) 심리학의 입장을 채택했다. 왓슨은 행동주의 관점에서 심리학(Psychology as the Behaviorist Views it, 1913을 썼는데, 그는 동물 연구에서 출발했다. 심리학적 과학이 성립하려면, 그 과학이 신체의 태도에 대한 과학으로서만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신체적 태도란 행실(comportement)과 품행(conduites), 즉 영어로 행동(behavior)이다. 이리하여 영혼과 관계 없을 뿐만 아니라 의식과도 관계 없는 심리학, 즉 행동주의(behavior)이 생겨났다. 이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이 인식론(épistémologie)도 없다. 이 신실재론의 운동은 1912년에 다양한 6명의 필진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실재론(New Realism)을 출판하면서 주장되었다. 이들 중의 한사람인 페리(Ralph Barton Perry, 1876-1957)는 제임스(W. James 1842–1910)의 제자이며, 현재 철학적 경향(Present Philosophical Tendencies: A Critical Survey of Naturalism, Idealism, Pragmatism, and Realism, together with a Synopsis of the Philosophy of William James, 1912), 이상들에 대해 현재의 충돌(The Present Conflict of Ideals: A Study of the Philosophical Background of the World War, 1918)를 썼다. 이 글들에서 의식의 무용성을 실질적으로 제시했으며, 단지 우리의 유기체와 유기체의 환경만이 현존한다고 한다. 그리고 동일한 대상들이 심리적 사실들도 되고 또 조건에 따라서는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반작용하는 신체와 특별한 연결이 있었다고 한다. 심리적인 것이란 특별한 관계 속에서 파악되는 물리적인 것(le physique 신체적인 것)이라 한다.
따라서 신실재론은 그 학설 전반의 경우에 특히 러셀(Russell 1872-1970)과 그의 미국 제자들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생명철학과 연속성의 철학인 낭만주의와 전혀 반대되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 그 자신에서 있어서는 논리적 법칙들과 경험의 자료들 사이에 이원론이다. 이 이원론은 형이상학의 첫권(A first book in Metaphysics 1912)를 쓴 마빈(Walter Taylor Marvin)에서 강조된다. 그의 이원론은 일종의 비합리주의에 이른다. 이 비합리주의가 단일한 경험(l'expérience singulière) 안에서 어떤 자료를 제시한다. 이 자료는, 모든 개별적 사건이 극단적으로 논리적 항목이라 할지라도, 어느 수(數)로도 할당할 수 있는 법칙들로 자리매김 하게하는 모든 노력을 좌절시킨다. 이렇게 분석하기에 불가능한 어떤 종류의 실재성이, 쟝 발((Jean Wahl, 1888-1974)이 주목했던 대로 여러 관점에서, 신실재론의 주지주의적 분석의 전형에 반대되는 것이 아닌가?
실재론의 측면에서, 사람들은 미국에서 유사한 학설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이 학설들은 실재론이지만 정신에 부여하는 역할에서 차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산타야나(George Santayana, 본명 Jorge Agustín Nicolás Ruiz de Santayana y Borrás, 1863-1952)는 이성의 생명(The Life of Reason: Or, The Phases of Human Progress(5 vols 1905-1906), 실재론의 세 가지 증명(Three Proofs of Realism, 1920)을 썼는데, 그는 메카니즘 속에서 사물들의 합리적 설명만을 보았고, 방법 속에서는 원인의 작용인만을 보았고, 의식 안에서는 유기체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의 단순한 연관을, 즉 마치 신체의 관심으로 나오는 반향처럼 보았다. 그러나 반대로 그는 의식은 가치들의 유일한 근원으로 간주했다. 이성의 임무는 사물들의 기계적 설명 안에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상적 가치들을 지배하는 구성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것은 마치 생명의 요청들이 이상에 부합하는 것과 같고, 또 이상(理想)은 자연적 조건들에 부합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의 아주 다른 학설에서 정신적인 것의 동일한 의미를 발견한다. 그는 자연의 개념(The Concept of Nature, 1920, 과정과 실재성: 우주론의 시론 (Process and Reality: An Essay in Cosmology, 1929), Science and the Modern World 1925 등을 썼다. 그는 지각과 감동(l'émotion) 사이에, 심리학적 사실들과 효과인 사이에 분리들 아주 만족할만한 우주론에 따른 숙명(fatal)이라 간주했다. 그런데, 데카르트 이래로 거의 모든 유럽의 철학이 이런 분리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데카르트는 사유실체와 부피실체라는 두 실체들의 분리를 발명했다. 이 실체들 각각은 그자체로 현존하기를 요구한다. 즉 “그것은 부정합으로 하나의 덕목을 만드는 것이다” 확실한 원리들로부터 출발하는 이 방법들은 연역법을 사용하게 허락한다. 이것은 철학의 방법이라 잘못 간주되어서, 사람들은 신을 특출한 실재성으로 인정하고, 신으로부터 모든 것이 흘러나오는 것으로 여긴다. 화이트헤드는 인도나 중국의 지혜로부터 입은 영향이 없지 않지만, 많은 점에서 이런 정신 상태에 정반대 방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실재성의 진로(l'orientation)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에게서 실재성은 이미 이루어진 실재성으로부터 연역이라기보다 오히려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채택한 원리는 의식이 경험은 전제로 하는 것이지 그 반대로는 아니다.” 그리고 사실상, 주관적인 한에서 현실적 본질(une entité acutelle)이란 “우주가, 자신의 반작용을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 이외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약간은 벩송 사상에서처럼, 유기체는 이러한 주체의 구성을 향해 잘 방향이 잡혀있고, 이 유기체는 자기 자신을 총체로서 이루어갈 요소들을 우주 속에서 선택하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1904년 제임스(W. James, 1842-1910)가 쓴 논문 「의식은 존재하는가?(La Conscience existe-t-elle?)」에서 제시된 생각들로부터 출발했다. 즉 물리적[신체적] 사물들은 정신적[영혼적] 사물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들 사이에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별만이 있다. 창조적 과정 속에는 일종의 리듬이 있다. “공적인” 우주로부터 사적인 개별성으로 뛰어넘는(sauter) 과정(le procès)이 있는데, 공적인 우주란 사물의 다양성으로 구성된 것이며, 사적인 개별성이란 방향점, 이상적 중심, 사물들이 협력으로 이루는 목적 등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과정은 사적인 개체물로부터, 우주 속에서 효과인 자격으로 자기 역할을 하는 “객체화된 개체의 공중성(publicité)”으로 넘어간다. 사람들은 말할 수 있을 텐데, 즉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우주적 진행(progrès)는 환경 가운데서 유기적 반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관념적 묘사로서 있을 것이다. 중심은 환경의 작용에 의해 풍부하게 되고, 또 중심은 환경에 이미 받아들인 것을 되돌려 준다. 이런 학설이 바로 실재론이다. 이것은 화이트헤드가 실재론을 유물론 동일시하기로 부여한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이 학설은 사물과 정신 사이에 개입된 개념적 구축물 그 아래에서 사물들에 도달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의미에서 이다.
브래들리(Bradley, 1846-1924) 이래로 앞에서 설명되었던 영국의 모든 학설들처럼, 이 학설도 결국은 우주의 서술이다. 이것들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결책들이다. 이 해결책들은 인식할 수 있는 우주 속에서 찾는 비판적 규칙에 따라서 시도된 것이 전혀 아니다. 따라서 이것들은 현상주의(phénoménisme)에 도달하게 되며, 이것들은 오히려 인식론을 경멸하면서 사물들에 바로 갈려는 과감한 관점을 지니고 있다. (45QLA)
2절 독일 실재론: 후설과 렘케 Le réalisme en Allemagne: Husserl et Rehmke 967
논리학은 심리학으로부터 독립적인가? 이런 논의는 대부분에서 오늘날까지도 독일 철학의 발전을 조건지웠다. “심리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칸트주의의 반대자들이다. 우리는 어떤 전향적 운동 때문에 반(anti-)심리학주의자들이 심리주의자들과 아직도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적대관계가 되었는지를 우리가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앞서서 프리스 학파(Fries'schen Schule, l'ecole de Fries 1847-1849)가 심리학에 기여했던 역할을 보았다. ] 마찬가지로 [철학자이며 심리학자인] 슈툼프(Carl Stumpf 1848–1936)도 있는데, 그는 심리학과 인식이론(Psychologie und Erkenntnistheorie, 1891)을 썼다. 그는 지식(인식)의 이론과 심리학의 이론 사이가 따로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칸트이론에서 결함들의 근원을 보았다. 만일 인식 이론의 고유한 임무가 가장 보편적인 인식들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보편적 진리들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아는 문제는, 슈툼프에 따르면, 심리학과 관할에 속한다.
심리주의의 논리학자들 가운데, 사람들은 [독일 철학자] 직바르트(Christoph von Sigwart 1830–1904)를 인용할 수 있다. 그는 논리학: 프라이부르크 1873-1878년(Logik. Freiburg 1873 - 1878, 1895(2권)을 썼다. 그는 논리학에서 사유의 어떤 작용에 대한 연구이와 다른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직바르트에 따르면, 논리학은 심리학과 다르다. 우선 의도의 측면에서 다른데, 왜냐하면 진실한 사유와 보편적 판단의 조건들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내용의 측면에서 다른데, 논리학은 오로지 사유에서 판단의 진위를 판별할 할 수 있는 범위만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판단의 본성에 관한 논의에서, 분명하게도 그는 논리학적으로 정신적 태도에게 기여하는 위치를 주목했다. 그가 말하기를 부정판단은 긍정판단처럼 기원적이지도 독립적이지도 않다. 부정판단은 좌초한 긍정적 주장의 시도와 연관해서만 의미를 갖는다. 부정판단의 주관적 특성은 부정해야할 주어에 대한 것을 모조리 망라하는 방식으로 진술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마치 주어와 술어의 통합이 이들의 분리와 대립될 수 있는 것처럼, 만일 아리스토텔레스가 긍정을 부정에 대립시킬 수 있었다면, 그것은 그가 플라톤의 관념들의 주제를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고, 술어를 독립적 존재로서 고려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교육학자, 철학자인] 예루살렘(Wilhelm Jerusalem, 1854-1923)은 판단기능(Die Urtheilsfunction, 1893). 비판적 관념론과 순수논리(Der kritische Idealismus und die reine Logik 1905)을 썼는데, 그는 또한 논리학 속에서 진실한 사유 이론만을 보았다. 그는 판단을 사유 작용처럼 연구했고, 판단의 전통적인 형식들은 실재적으로 실행된 작용에 상응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미 실행된 작용은 단일한 표상 속에서 “힘의 중심”(un centre de force)을 사건으로부터 본질적으로 분리하는데 있다. 여기서 힘의 중심은 주어(le sujet)이며, 사건은 마치 ‘장미 향기난다(la rose sent)처럼 그 주어를 표현한다.
독일 철학자인 에르트만(Benno Erdmann 1851–1921)은 그의 저술 논리학: 1권 논리 기초학(Logik. 1892)에서 논리학과 심리학의 연관을 다루면서, 언어에 의해 표현된 사유를 논리학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그것은[사유는] 심리학 대상의 일부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학은 심리학의 부분이 아니다. 왜냐하면 논리학은 형식적이고 규범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반(anti-)심리학주의자들이 이해하려고 한 의미에서 보면, 논리학의 독립은 전혀 없다.
브렌타노(Franz Clemens Brentano 1838-1917)는 이러한 것들에 집중했다. 그는 카톨릭 신학자가 되고 난 후에, 뷔르쯔부르크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온힘을 다하여 사유의 논리적 타당성과 사유의 심리학적 발생을 구별했다. 그는 논리학은 심리인지(psychognosie)와 구별했다. 심리인지란 모든 심리학적 현상들이 구성되는 최종적인 심리 요소를 탐구하는 것이고, 또 마치 라이프니츠가 꿈꿨던 것처럼 보편적 지표(une caractéristique universelle)를 가능하게 것이다. 여기서 지표는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법칙들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오스트리아 수학자이며 철학자인] 마이농(Alexius Meinong Ritter von Handschuchsheim 1853-1920)도 이런 생각을 전개하였다. 그의 저작 상위등급의 대상에 관하여(Über Gegenstande höherer Ordnung 1899)에서 그는 모든 대상들(예를 들어 둥근 사각형)은, 만일 그것이 현존하지 않을 지라도 그리고 심지어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지라도 과학적 인식의 대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대상의 이론”은 대상의 가장 일반성 속에서 자유로운 현존대상(daseinsfreie)을 생각한다. 그 대상은, 우리에 의해 이해되든 가 안 되든 가, 또한 그것이 우리에게 가치가 있거나 없거나, 이런 사실과는 독립적이다. 대상 자체 속에서 사람들은 상위등급의 대상들을 하위 등급의 대상로부터 구별한다. 전자는 관계(양식) 같은 것(tels que les relations)이고 후자는 구체적 관계들(les relata)이다.
괴팅겐 대학, 그리고 나서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교수였던 [유태인] 훗설(Edmund Husserl, 1859-1938)은 브렌타노의 제자였다. 그는 처음으로 산술학의 철학: 심리학적이고 논리적 탐구(Philosophie der Arithmetik. Psychologische und logische Untersuchungen 1891)을 출판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숫자 기호의 발명과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인간 정신에서 결함 있는 직관에 보충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제시했다. 이 작품은 그의 둘째 작품인 논리탐구(Logische Untersuchungen 1901)(fr. Recherches logiques. - Eins Teil: Prolegomena zur reinen Logik: Prolégomènes à la logique pure. Zweiter Teil: Untersuchungen zur Phänomenologie und Theorie der Erkenntnis: fr. Recherches pour la Phénoménologie et la Théorie de la connaissance.)을 전혀 예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의 첫권은 순수논리학의 서설인데, 이 내용은 심리학주의에 대한 포괄적 비판을 넘어서, 논리학의 한계를 긋는 작업이었고, 둘째 권인 현상학의 탐구와 인식이론은 여전히 논리학의 영역을 건설할 기초적인 작업들을 포함하고 있다.
심리학주의의 비판은 심리학적 법칙과 논리학적 법칙들 사이에 대립에 근거한다. 전자는 모호하고 경험적이며 사실의 그럴듯함과 확정에 접근한다. 반면에 후자는 정확하고 확실하며 규범적이다. 이 대립에 관해서 후설은 끊임없이 반성했고, 또 이 대립은 그의 작품의 중심으로 남아있다. 1929년 작품인 형식논리학와 선험논리학(Formale und transzendentale Logik, fr. Logique formelle et logique transcendantale, 1929)은 이점에 관해서 자기 사유의 최종 상태를 표시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논리적 형식들은, 이 형식들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함께 동반하는 심리학적 사건들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p. 137) 사람들은 말하기를 개념, 판단, 추론 등은 심리학적 사건들이고, 논리학은 심리학의 한 가지 이라 한다. 그러나 심리학주의의 심층 이성(la raison profonde, 깊은 근거)은 과학적 자연주의 안에, 즉 로크와 흄으로부터 온 “반플라톤주의”(antiplatonisme) 안에 있다. 사람들은 감각적 인상 속에서 무매개적 자료들만을 본다. 그리고 논리학적 형식을 설명을 위해서, 심리학적 법칙들을 따르는 인과적 연쇄관계만이, 즉 예들 들어 습관적 관념연합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은 오직 자료(la donnée)[datum]만이 감각적 실재성이고, 이상적인 것과 비실재적인 것은 자료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상(l'objet, Gegenstand)을 형성하는 독립적인 기준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의식에 나타나는 대상의 다양한 출현에서 수적으로 동일한 것이 남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p. 138) 이 숫적 동일성은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 정리를 증명했던 논리적 연결의 집합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만큼이나 감각적 사물이라는 것이다. 후설의 사유는 칸트의 사유에 대해 반대인 만큼이나 경험론적 사유에도 반대이다. 이 후설의 사유는, 대상이라는 고유한 특성에 이끌려 있는 대상의 개념이 단순한 감각적 객관성보다 훨씬 광범위한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후설은 지향성(l'intensionalité)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용어는 이미 브렌타노가 전개한 것이다. 인식 속에서 주관적인 무엇이, 즉소위 말해서 심리적인 무엇이 있는가? 그 무엇이란 “...로 향하는 방향”이라는, “...에 적용”이라는, 그 대상이다. 브렌타노가 스콜라철학의 어휘에서 빌려와서 지향(l'intension, 의도)라고 불렀다. [심리적으로 의식하여 향하는 것] “의도”가 향하는 모든 것이 대상(l'objet, Gegenstand)이다. 오류를 따라 이 질료에게 나가게 하는 것, 그것은 사람들이 분명(명증)하게 형성하는 협의의 거짓관념이다. [의도는 진리인데 질료(신체)로 향하면서 오류를 범하는 것으로, 이런 것이 거짓관념이라는 설명이다. 이 설명은 전통적으로 플라톤의 이데아는 진리인데, 필연으로 가면서 오류관념(시뮬라크르)가 발생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지향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 진리란 우리에게 오류에 대하여 절대적 확신을 주는 것이다. 사실상 이 지향[의도]은 “지향성의 일반적 형식, 또는 어떤 것의 의식을 지칭하며, 어떤 의식적 대상에서 의식하는 것이며, 자기에 의해 파악되고 자기에 의해 보여지는 의식이다.” [따라서] 대상의 종류만큼이나 많은 종류의 명증(évidence)이 있고, 그것은 경험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종류의 명증이 있다. 예를 들어 외적 경험은 특수한[개별적인] 명증들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대상들은 자신에 의해 소유되는 그 방식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이상적이고 비실재적인 대상들에 대한 경험 즉 명증도 있다. 그런 대상들의 각각은 그것이 실험될 정도로 매우 자주 수적으로 동일한 체 남아있다. 대상의 초월은 동일성과 다른 것이 결코 아니다. 마하(Ernst Mach, 1838-1916)의 철학에서 또는 바이힝거(Hans Vaihinger 1852–1933)의 철학에서 이 동일성은 하나의 허구(une fiction)이며, 심리학주의의 한 형식이다. 이 철학은 “허구들”이 허구 자신들에게 명증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만큼이나 불합리하다.
사람들은 얼마나 반(anti-)심리학주의가 철학적 사유를 흄과 비판주의 편 이쪽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한 극단적인 노력이었는가를 보았다. 그 [반심리학주의의] 노력은 순진한 실재론의 노력들에 닿았으나, 그러나 비실재적인 것의 객관성 이론이란 측면에서 이 노력은 실재론의 노력들과는 매우 다르다.
후설이 이해했던 대로 순수 논리학의 경계짓기(la délimitation)는 옛 형식논리학의 경계짓기와 전혀 다르다. 그는 이것을 과학론(Wissenschaftslere, une doctrine de la science), 이론들의 이론[메타이론], 결국에는 보편학(Mathesis univeralis)라 불렀다. 이 과학론의 목표는 모든 이론적 학문 안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본질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 과학론의 필연성은, 산술학의 철학(Philosophie der Arithmetik, 1891)에서 이미 행해진 논평에 따르면, 후설의 모든 사유의 동기였을 것일 지도 모르지만, 정신의 결함[장애]에서 온 것인데, 이 정신의 결함이란 사실들의 직접적인[무매개적인] 인식에 거의 하찮은 경우에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며, 억지로 증명회로[증명 방식]로 쓰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과학론은 증명이 이루어지게 되는 모든 요소들을 연구할 것이다. [과학론의 내용으로서] 명제들과 새로운 명제들의 연결에서 선언적, 연언적, 가설적 연관 관계들. 대상을 서술하는 범주들로서 객관성, 단일성, 복수성, 수 연관들, 삼단론법과 같은 범주들에 근거하는 법칙들의 탐구. 수에 대한 순수 이론. [이런 내용의 과정을 거쳐서] 이 과학론은 결국 수학의 군론(그룹이론)과 같은 이론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대체로 이 과학론이 고대 논리학을 포함하고, 나아가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 의 정신 속에 포함된 수학적 원리들의 영역도 포괄한다.
그러나 이 논리학의 구출에 접근하기에 앞서서, 후설은 “현상학”(la phnénoménologie)라 부를 학문을 규정하는 것이 필수 불가결 하였다. 현상학이란 이 단어는 전통적인 어휘상에서 보면, 철학의 예비적인 부분을 지칭한다. 예비적 부분이란 실재성 자체를 연구하기에 앞서서 의식 속에 표명되는 방식을 탐구하는 것이다. 헤겔(Hegel, 1770-1831)의 “정신의 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 1807]은 인간이 정신을 의식하기 위하여 지나가는 단계들을 담고 있다. 그 단계들을 통해서 인간은 정신을 하기에 이른다. 후설의 논리탐구(1901)에서 현상학은 (어떠한 설명의 의도도 없이, 어떤 발생의 시도도 없이) 사유 작용들(les actes de la pensée)에 대한 순수 심리학적 서술(description 기술)이며, 이 사유작용에 의해 우리는 논리적 대상들에 도달한다. 우리는 기호화하는 단어들(les mots significaifs)에 의해 대상들을 표현한다. [그러면] 표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호화하다(signifier)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것이 후설의 현상학적 질문이다. 발생적 심리학은 이 질문들을 관념 연합 방식을 많이 사용하여 해결했다. 후설에서 표현은 환원이 될 수 없는 단어 특성(qualité)이다. 행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단어에 의해 어떤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기호화(signification) 또는 의미(sens)는 임의적이고 변화많은 관념연합에 의존하기는커녕, 예를 들어 수 1(하나)의 의미처럼 완전히 고정적이다. 따라서 표현[기호화(의미화)]은 진실한 대상이며, 이 표현은 순수 논리의 대상이다. 표현은 대상의 종들과 그 연관들을 연구한다. 그 표현에서, "동물"의 기호화와 “붉은”의 기호화와 같은 “보편(일반) 기호화”는 시저(César)의 기호화처럼 개별 기호화와 똑같은 자격으로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취해진 현상학의 다른 질문들이 있는데, 그것은 사유의 작용(l'acte de penser, Denken)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는 사유는 지향작용, 즉 어떤 것을 향한 방향이라고 보았다. 이 어떤 것이 동일한 것임(le même)에도 불구하고 지향(l'intension 의도)은 다른 것일 수 있다. [대상은 같은 데 지향이 다른 것이라기보다 대상 자체다 “차히”들이라 지향이 시원적으로 다를 수 있다. 이 말은 인간은 지향하는 작용(사유)이 다를 수 있다. 지향하는 바가 같다고 여기는 것은 이미 선전제로서 지성(이성)은 동일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인간, 생명은 지향자체가 다르다. 벩송은 강의록에서 의도를 다룬다.] 사람들은 그것을[지향작용의 사유를] 순수 사유로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을 표상[재현]할 수 있고, 그것을 긍정할 수 있다. 그 만큼이나 의도의 여러 다른 “성질들”이 있다. [성질들로 생각할 수 있다]. 심지어 만일 순수 사유만이 문제이라면, 동일한 대상은 다른 사유들 전체 일 수 있다. 그 동일한 대상은, 예를 들어, 등각 또는 등변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 사유로부터 인식을 구별해야만 한다. 후설은 인식을 “의도의 완수”(accomplissement: Erfüllung, 채움, 충전, 성취, 적중)라 묘사한다. 의도는 완전하게 될 수 있는데, 사람들이 사유에 의해 향하는 대상은 의식에서 수(數)처럼 대상 자체이다. 의도는 외적 지각에서는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그 지각에서 대상은 어떤 지각 하에서만 파악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된 현상학은 철학자이며 수학자의 특성상의 특징들 중의 하나로 표현된다. 이와 같은 것은 데카르트에서도 발견된다. 그것은 그 원리들 속에는 이상적 자료들이 서로서로 줄지어 놓이는 일종의 조각나누기인데, 수학자는 원리들의 통일성(l'unité)을 찾지 않고 오히려 무엇보다 먼저 연역하는데 필요 충분한 모든 원리들의 명단(나열하기)를 찾는다.
그러나 후설은 탐구의 예비가 되어야 할 논리학을 저술하지 않았다.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Ideen zu einer reinen Phänomenologie und phänomenologischen Philosophie, 1913)은 철학과 현상학적 탐구 연보(Jahrbuch für Philosophie und phänomenologische Forschung, 1913)의 첫권으로 나왔다. 여기에서 후설은 현상학을 철학적 근본과학으로 간주했고, 이 현상학을 통해 철학을 수학과 같은 정확한 과학의 반열에 올려 놓으려했다. 그가 말하고 한 것은 17세기와 18세기에 철학이 유일한 원리로부터 연역적 형식을 파악했던, 즉 사람들이 수학적으로 이해했던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이 수학자들의 방식으로 원리들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수학자들은 이상적 항들의 발생에 고민하지 않고서 경험의 흐름과 독립적으로 나열되고 고정된 이상적 항들을 탐구했다. 본질의 과학(science de l'essence) 또는 형상적 과학(science eidetique)이라 불리는 현상학은 이상적 항들을 발견하는 수단을 제공한다. 이 원칙은 사물들이 주어진 대로 직관에 기원적으로 제공되는 사물들을 단순하게 파악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순진하고 가장 습관적인 세계에 대한 직관은 우리에게, 뒤섞인 일체, 즉 사건의 흐름, 때로는 사라지고 때로는 나타나는 고정된 항들이지만 불변한 체 남아있는 고정적인 항들을 제공한다. 푸름, 붉음, 소리, 판단의 작용 등이 그러하다. 여기서는 조합과 접근에 의해서 형성된 일반관념들 또는 추상관념들이라 불리는 것에 닮은 것은 전혀 문제시되지 않고, 오히려 플라톤의 이데아들의 방식에 따른 불변하는 본질들이 중요하다. 이런 본질들은 특별한 직관, 즉 본질 직관(l'intuition des essences, Wesensschau)의 의해 알려진 것이다. 이 직관은 선천적(a priori)이며, 경험에 독립적이다. 그러나 이 직관은 현상학적 분석에 의해서만 분간될 수 있다. 이 현상학적 분석이란 후설의 사유에서 플라톤의 변증법적 지위에 거의 가까운 것이다. 그것의 본질적 절차는 제외하기(l'expulsion Ausschaltung) 즉 괄호치기(la mise entre crochets)이다. 전형적인 예는, 대상의 인식을 배제하면서 얻어지는 그리고 대상들에 향한 방향만은 간직하는, 사유의 본질에 의해 즉 지향성의 본질에 의해 주어진다. 이번에는 배제하는 것 즉 괄호에 넣는 것이 반대방향으로 배제에 의해 현상학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 분석을 위하여 출발이 되는 자료들은 구체적 자료들이지만, 필연적으로 실재적이지는 않다. 따라서 구체적 허구(la fiction)[켄타우로스, Kentauros, 반인반마]는 실재성과 똑같은 본질을 구별하게 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철학적으로 후설이 데카르트 성찰과 파리의 강연 Cartesianische Meditationen und Pariser Vorträge; Méditations cartésiennes, 1929에서 자신의 사유를 데카르트의 사유와 유사점이 있는 것이라 했다. 그 철학은, 의식과 의식의 여러 양태들의 본질 직관에 도달하기 위하여, 주어진 모든 것들, 즉 물리적 실재성뿐만 아니라 수학적 본질들도 임시적으로 괄호 속에 놓은 것이다. 명석 판명의식은 기호에 의해서, 이미지에 의해서, 순수사유에 의해서 등등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이념들(1913) 아직 쓰여지지 않았던 철학의 서문 격이다. 후설의 후기 작품인 형식논리와 선험논리 Formale und transzendentale Logik, 1929)은 논리학에 경계짓기에 관한 작품인 논리탐구(Logische Untersuchungen, 1901)의 문제로 되돌아오는데, 그 대신 아주 새로운 주의를 집중하여 칸트주의자들에 의해 내쫓긴 형식적 존재론을 논리적 고유권한을 안에서 다시 확립하는 문제로 되돌아 온다. 이로써 증명의 실체가 등장한다. 즉 전통적 수학적 분석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집합(ensemble), 순열(permutation), 조합 등의 개념들을 도입한 근대 수학적 분석은 대상 일반에 즉 어떤 사물 일반에 관여한다. 이 분석들은 우리에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연역형식들(군론, 조합, 계열, 부분과 전체 등)을 가르쳐준다. 이 형식들은 항상 새로운 성질들은 발견하게 해준다. [벩송은 이 수학들이 내재하는 실재성으로 점점 파고들었다고 표현할 것이다] 따라스 수학은 형식적 존재론이다.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주어-술어로 된 판단을 유일한 주제로 삼는 증명의 과학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그 논리학은 대상의 이론이 아니라 오히려 명제들의 단순 이론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형식논리학을 대수 계산처럼 다룰 수 있을 것이고, 불(George Boole, 1815-1864)처럼 산술 계산[연산규칙들로서]으로 논리계산의 특별한 경우들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것은 논리학이 명제의 이론 또는 사물들에 관한 진술로 남아있지 못하게 한다. 후설의 견해로는 이 명제가 환원되어야 한다. 따라서 대상의 모든 형식들, 즉 연결, 연관, 집합 등은 판단의 형식들에서 표현된다. 예들 들면, “다수 판단”(주어가 복수인 판단)을 술어가 집합으로 주장되는 판단으로 변형하는 계산(l'opération)은 수학과 똑같은 대상계념을 개입하게 한다. 그러므로 형식논리는 수학과 동일한 자격에서 대상의 이론이다. 칸트와 반대로 후설이 생각하기를, 형식논리학은 이미 초월적이며, 수학과 똑같은 자격으로 비판을 요청한다. 이 비판은 논리적 본질 인식의 주관적 조건들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에 속한다.
후설은 무엇보다도 수학자이고 논리학자이다. 그러나 그의 학설의 정신은 사실상 철학적 사유의 모든 영역에서 침투될 수 있고 또 침투되었다. 심리학, 도덕론, 종교철학 등, 19세기 동안 내내 발생이란 관념을 지배했던 거의 모든 학문분야들은 이 학설에 예외적으로 호의적이지 않는 지평인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이런 영역에서 막스 셸러(Max Scheler, 1874-1928)가 독창적으로 현상학적 정신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쾰른대학교수 였다. 특히 도덕적 가치와 종교적 가치는 아주 특별나게 감정 또는 역사 과정에 의존한다. 이들 가치들은 어쩌면 인간적으로는 필수적일 수 있으나 존재와 연관 없이 있을 수 있는 판단방식들에 속한다. 그런데 셸러는 가치들 속에서 표명의 다양성을 통해 수적 동일성의 특성을 발견한다. 이 수적 통일성의 특성이 후설에게서는 대상의 표시이고 본질의 표시이도 했다. 편안(l'agréable), 성스럼(le cacré) 등은 소리와 색깔처럼 성질이다. 후자들은 주체들이 관여하는 방식이 매우 다를지라도 동일한 체 남아있다. [그래 물질성은 주체와 연관 없이 그대로 일 수 있지만(그것도 변하는데), 사회적 연관에서 개념을 주체와 연관 없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을 동일하게 보는 것은 이데아를 상기하기 때문이다.(45QLJ)] 따라서 가치는 심리적 주체와 욕망들과는 독립적인 존재이다. 그것은 발생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가치를 느끼는 수용력(la capacité)은 전개되기를 허용할 뿐이다. 가치의 개념은 빈델반트(Wilhelm Windelband, 1848-1915)의 신칸트주의에 비해 그리고 자연주의에 비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보면, 셸러에 의해 제시된 가치들의 분류는 후설의 본질 직관(Wesensschau)에 대해 특징적인 조각들 나누기로 표현된다. 그가 구분한 4가지 종류의 가치들 사이에는 어떤 공통적 연결도 공통적 원리도 없다. 네 가지란 편안과 불편, (고상함과 일상과 같은) 생활의 가치, (인식, 예술 권리 등의 가치인) 정신적 가치들, 종교적 가치 즉 성스럼 등이다. [이런 주제를 셸러의 저작들, 윤리학에서 형식주의와 물질적 가치윤리(Der Formalismus in der Ethik und die materiale Wertethik, 1913-1916), 가치의 전복에 대해(Vom Umsturz der Werte, 1919)에서 참조할 수 있다.
칸트에 따르면 도덕에서 선천주의(l'apriorisme)는 형식주의를 요청했다: [그 형식주의에서는] 만일 도덕성이 선의 인식에 의존한다 할지라도 의지의 자유가 보증되는 것은 아니다. 셸러는 선천적으로 알려진 가치의 이론과 더불어 실질적 도덕 선천주의(un apriorisme moral matériel))를 기초할 있다고 믿었다. 칸트의 형식주의는 사람들이 기억하는 바로는 종교가 요청(postulat)으로서 도덕에 의존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셸러의 실질적 선천주의는 종교를 이런 요구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일반적 방식으로 현상학은 종교에 우호적이다. 철학이 르네상스 이래로 종교와 대립했던 커다란 장애물은 철학이 심적이고 지성적인 통일성과 단절했다는 점이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말한다.] 종교는 합리적 종교 또는 자연적 종교로 남으면서, 지적 체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통에 지지를 받든 신비적 직관에 지지들 받든 긍정적 종교인 한에서 종교는 지적 경향의 여분으로 남아있었다. 사람들이 자기 시대를 판단하는 한에서, 20세기에 우리들은 수동적 지성이 약화되어가는 데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못할 것 같다. 수동적 지성의 약화란 데카르트에게서 과학의 통일성이라는 관념에 의해 이미 표현되었다. 이 약화의 효과란 붕괴의 시작인 셈이었다. 이 시작은 통일성에 대한 합리적 요청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그 통일성을 피상적 일원론을 단죄하는 것이다. 현상학 속에서 본질들의 조각나누기(le morcelage des essences)란 그 예들 중의 하나이다. 결국 우리들은 그 출발점이 수학적 방법의 요구에서 왔다는 것을 보았다(출발점의 독립은 증명에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어떤 학설의 기초로 쓰이기 위하여 그것이 태어난 영역으로부터 재빨리 벗어났다. 그 학설은 다음 학문들과, 즉 도덕론, 미학, 종교 등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왜냐하면 이들 학문들은 각각이 구별되고 환원할 수 없는 본질적 직관에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격적으로 카톨릭에 동조하기에 이르렀던 막스 셸러에게서, 종교의 철학은 분석하고 환원하는 심리학이 아니라, 독창적이고 환원할 수 없는 종교적 경험에서 표현되는 몇 가지 본질들의 직관이다. 셸러에 따르면, 진실한 종교적 진화는 없다. 왜냐하면 종교에서 직관되는 근본적 본질은 성스럼의 직관이다. 이 직관은 유한한 존재에도 또는 무한한 존재에도 적용될지라도 동일한 것으로 있다. 그래서 직관에 근거하는 신앙이외 다른 신앙은 없다. 예를 들어, 크리스트교 신앙은 크리스트(Christ)에 의한 신의 직관으로부터 출발한다. 종교에서 분석에 의해 발견되는 본질들, 마치 자료로서 주어진 본질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즉 신성한 것(le divin)의 본질, 말하자면 신성함(le sacré) 속에서 절대적 가치를 지닌 존재의 본질. 신적인 것의 계시 형식들. 인간에게서 계시에 의해 절대적 가치를 파악하게 하는 주관적 예비과정에 속하는 종교적 행위. 이 가치들은 다른 가치에, 특히 도덕적 가치에 환원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셸러가 도덕적 태도를 종교적 태도와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말이다. 셸러에서 세상의 이미지란 그의 종교적 신앙에 의해 지배되어 있다. 세상은 기원적 몰락에서 시작하여 점점 타락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우주 속에서 상대성의 물리학적 이론은 유한 것으로 증명되었고, 에너지 저하의 법칙은 에너지의 질적 하향 평준화로 제시되었다. 게다가 역사의 진화는 사회의 점진적 경향에 따라서 경제적 욕구들에 굴종되어 간다. 그래서 [세상에는] 신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악마의 효과적 힘만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그의 저술 인간의 영원에 대해여(Vom Ewigen im Menschen, 1921를 참조할 수 있다.
우리는 셸러에게서, 마치 인상주의로 이어지는 화가들의 경향처럼, 뚜렷한 특성들에 의해 구별되고 분할되는 경향을 보게 된다. 이 경향은 또한 그의 심리학 속에서 드러난다. 거기에 그는 무매개적이고 직관적인 자료들로서 완전히 구별된 다섯 가지 영역을 받아들인다. 외적세계, 내적세계, 신체, 타인의식, 신성 이다. 우리들은 “감관”(sens)을 매개로 해서만 이실재성을 지각한다. 감관은 삶에서 현실적으로 유용한 것만을 의식속에 지나가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내적 감관은 외적 감관과 동일한 상황 속에 있다.외적감관도 내적 감관처럼 착각들을 갖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적 상태들의 일부분만 파악하기 때문이다.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인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초기 작업들은 스콜라 철학에 관련있다. 그는 후설이 1919년부터 편집책임을 맡은 철학과 현상학적 탐구 연보(Jahrbuch für Philosophie und phänomenologische Forschung) 속에 1929년까지 두 개의 작품을 내보였다.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와 토대의 본질에 대하여(Vom Wesen des Grundes, 1929)이다. 하이데거 반성의 기초(la base), 그것은 근본적 몇가지 감정들인데, 이 감정들은 이러저러한 대상에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존 일반에 그리고 현존의 양상에 매인 것이라 한다. 즉 불안정, 걱정(le souci), 불안(l'angoisse, Angst), 친숙함, 적대감, 고독, 놀라움, 당혹(la gêne). 이것들은 세계의 본질을 계시하는 종류의 감정들이다. 이런 관점을 간단하게 제시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대데카르트주의라고 불릴 수 있는 점에서 출발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사유하는 사물로부터 이루어진 추상으로서 세계의 본질[부피실체]과 방법적 의심을 통하여 세계의 현존을 부정하였던 사유하는 사물[사유실체]를 규정했다. 이 실체들의 이원론은 전적으로 스콜라 철학의 존재으로부터 그를 떼어 놓았다. 그런데 세계 없는 그의 주체는 허구이게 된다. 자료(le donnée), 현존(l'existant), 이것이야말로 세계내 존재(Sein-in-der-Welt, l'être-dans-le-monde)이다. 이것은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외적 사물들의 조정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또한 현존재자(l'existant) 총체 속에서 존재의 감정도 중요하다. “만일 사실상 우리들이 현존재자의 전체성(la totalité)을 즉자적으로도 절대적 방식으로도 결코 파악할 수 없다하더라도, 적어도 우리들이 현존재자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다는 것은 의심하지 못한다. 이 현존재자의 전체성은 우리들에게 이런 방식 또는 저런 방식으로 폭로되게 된다. ... 아마도 우리들의 공통적 진행방식 안에서 우리들이 이러저러한 존재에 메여있는 것 같다. 또한 일상적인 현존[실존]은 조각난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현존은 현존재자에게 자기 전체성으로서 일관성(la cohésion)을, 즉 사실상으로는 그늘 속에 감추어진 일관성을 유지하게 한다. 이때, 우리들은 사물에 의해서도 우리들이 전체성으로 나타나는 우리들 자신에 의해서도 특수하게 흡수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일반적이고 깊은 지겨움(l'ennui, 시름) 속에라도 흡수되지 않는다. 이 깊은 시름은, 마치 침묵의 안개처럼 실존의 심연에서 확장되는 것인데, 일반적인 무차별 속에서 이상하게도 사물들, 인간들, 우리들 자신을 뒤섞어놓는다. 이 시름은 현존재자의 전체성에서 현존재자의 계시이다.” 같은 방식에서 보아, 불안(l'angoisse, Angst)은 두려움(la peur)와 아주 다른 감정인데, 왜냐하면, 불안은 정확한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감정이 우리에게 무(le néant)를 폭로하며, 그 무 속에 현존재가 있다. 불안에서 우리들을 누르는 것, 그것은 친숙한 감정의 부재이며, 그것은 낯선 감정이다. 이 감정과 더불어 사물들은 사라진다.
철학적 본질적 문제는 존재인 한에서 존재의 문제이며 현존재의 존재의 문제인데, 이 문제는 전제성의 감정으로부터 해방된 문화에 의해서 우상들(les idoles)들을 벗어날 수 있을 경우에만 제기될 수 있다. 우리들은 우상들을 피하기 위해서 스스로 우상에 맞추어 형성되었으며, “각자는 우상 앞에서 굽신거리면서 스스로를 구원하는데 습관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들이 현존재자를 근거 지워 준다고 확신하는 신적 절대자, 더욱 간단히 말하면, 사물들을 우리들이 열심히 조정한다고 여기는 익숙한 감정. [우리들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우상(크리스트교)도 아니고, 우리가 익숙하다고 여기는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삶도 익숙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인데도 익숙하다고 여긴다. 제일철학의 우상과 기술과 과학이라는 우상 등 여러 가지 우상은 인간의 삶자체에 물음을 두지 못했다. 21세기 한반도에서, 서구를 따라가면 좋을 것 같았는데, 이 부조리와 불편함에 몸살을 한다. 250년을 50여년 만에 따라 잡으려는 것을, 이제와 보니, 실수가 아니라 오류이며 몸살이 아니라 중병이다. 기독교 우상을 없애고, 신자유정책을 물리칠 빨강이 좌파가 삶의 양식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독일철학자인 하르트만(Nicolai Hartmann, 1882-1950)은 앞선 철학자들과 같은 경향들을 내보였다. 그는 인식 형이상학의 개요(Grundzüge einer Metaphysik der Erkenntnis, 1921(재판 1925) 존재론의 기초(Zur Grundlegung der Ontologie 1935)(1권 1935), 가능성과 현실성(Möglichkeit und Wirklichkeit)(2권 1938), 실재세계의 구축(Der Aufbau der realen Welt)(3권 1939) 등을 썼다. 이 귀결로서 그가 생각하기를, 인식의 문제는 존재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으며, 존재없이 다루어 질 수 없으나, 존재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대상의 존재는 주체로서 대상이 되는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인식이라 부르는 관계는 존재들 사이의 관계이며, 이 존재 관계는 인식 관계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인식이론은 필연적으로 존재이론으로부터 출발한다. 인식이론이 순수히 비판이라고 할지라도, 인식이론은 존재가 인식과 관계있다고 은연중에 주장한다. 우리가 여기서 해결들을 찾아낼 수 없을 지라도, 우리가 보기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에서 보면, [하르트만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실재론의 주장으로 보인다.
독일 철학자인 렘케(Johannes Rehmke 1848-1930)는 기초과학으로서 철학(Philosophie als Grundwissenschaft, 1910)를 썼는데, 그의 학설은 현상학과는 아주 분명한 구별이 된다. 그래서 학설이 의식과는 다른 실재성의 관념을 모든 의미로부터 박탈당했다고 간주할지라도, 그 학설에는 실재론의 어떤 부분이 있다. 렘케는, 한편으로 범신론, 다른 한편으로 심리학주의와 현상주의 둘다 오류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했다. 결국 실재적(réel 현실적)이라는 것, 그것은 행동이 다른 사물과 연결되는 것이다. 개체들 사이에는 행하거나 또는 겪는 행동만이 있다. 어느 것도 자기 자신에 작용하지 못한다. 한 개체를 위해서 행동하는 것, 그것은 다른 개체를 위해서는 변화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그 결과로 범신론의 신과 같은 보편적 실재성은 지성으로 파악될 수 없는 표현이다. 다른 한편으로 의식과 신체는 절대적으로 다른 개별성들이다. 의식-신체의 통일성이 개체(개인)을 형성하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은 개체가 아니고 오히려 두 개체의 행동적 통일성이다. 우리는 어떻게 의식에 완전히 환원되는 현상주의가 거시서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본다. 그의 학설 전체는 플라톤의 대화편 카르미데스(Le Charmide, Χαρμίδης: Sur la sagesse)편에서 나오는 고대의 난제의 전재인 것처럼 보인다. 그 난제란 아무도 자기 자신에게 작용하지 못한다. 그것은 모든 내재하는 행동의 부정이다. (45QMD)
3절 신토마스주의의 실재론 Le réalisme néothomiste 979
[레오 13세(1810-1903: 재위 1878-1903)에 의해] 1879년 교황 교서로서 “에테르니 파트리스”(Æterni Patris)가 공표된 이래로, 토미즘은 카톨릭 교회의 공식적 철학이 되었다. 이 토미즘은 일반적으로 그 학설의 실재론 때문에, 그리고 그 학설이 데카르트와 칸트에 반대하여 현상학자들에게 공감을 표시하는 반작용 때문에 주목을 끌었다. 이 현상학자들의 대부분은 출신 상 카톨릭이었다. 독일의 제스위트로서 예수회 소속인 프르찌바라(Erich Przywara 1889-1973)는 칸트연구지(Kantstudien)(33권 73쪽)에서 카톨릭 철학 운동의 역사를 묘사하면서, 세 갈래 방향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도미니크 학파들에서 나온 순수 토미즘이 있다. 다른 하나는 독립된 철학의 한 분파로서 중세에서 토미즘 철학의 탄생에 대한 연구의 길이며, 독일 제수이트 소속 카톨릭 신학자 에를레(Franziskus Ehrle, Franz Ehrle 1845-1934), 독일 카톨릭 교의학자 그라 브만(Martin Grabmann 1875-1949), 독일 카톨릭 철학자 배움케르(Clemens Baeumker 1853-1924), 프랑스 중세 철학 전공자 질송(Etienne Gilson 1884-1978) 등의 역사적 작업들이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창조적 신스콜라학파인데, 이 자체가 여러 갈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저자(프르찌와라)는 이들 중에서 둘로 구별한다. 하나는 크리스트교 형이상학이고 다른 하나는 네오토마스주의이다.
크리스트교 형이상학은 철학적 의문들을 다루고 있으며, 신학은 이 의문들에 대해 이미 해결 했다고 가정한다. 말하자면, 진리, 외적 세계의 현존(존재), 영혼의 본성 등에 관해서. 이러한 작업을 한 학자들로는 구트베르레트(Gutberlet s.d.), 독일 추기경 메르시에르(Joseph Kardinal Mercier 1851-1926), 독일 철학자 게이제르(Gerhard Geyser, 1869-1948), 이탈리라 프란체스코파 종교학자 게멜리(Agostino Gemelli, 1878–1959) 등이다. 이 저자에 따르면 이 형이상학은 네오토미즘과 아주 다르다. 그래서 이 저자는 이 학설을 네오몰리니즘(le molinisme)이라 규정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근본적인 두 테제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개별적 사물들에 대한 지식은 보편적 사물들에 대한 지식에 앞선다”는 것이다. 이것을 “비판적 실재론”(réalisme critique)의 토대이며, 이것은 토미즘의 “순진한 실재론”(réalisme naïf)에 대립된다. 이 순진한 실재론은 개별적 사물들 속에서도 본질들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른 하나는 “개별자는 형상(la forme, 형식)의 근거하에 있다” 이것은 제일 원리들에 근거하는 형이상학이 아니라, 구체적 사물 위에 근거하는 형이상학에로 이끈다.
아리스토텔레스 학설에 따르는 네오토미즘에 대해 프르찌바라는 프랑스 네오토미즘과 구별했다. 프랑스 네오토미즘은 도미니크파 신부들인 세르띠양쥬(Antonin-Dalmace Sertillanges, 1863-1948)와 가리구-라그랑쥬(Réginald Garrigou-Lagrange, 1877-1964)가 다시 받아들인 형식으로, 벩송 정신의 영향을 인정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과학보다 형이상학의 우선성을 주장한다. 이 형이상학은 존재를 파악하며, 보편적이 편재적인 지식(intellectus univeralium et quidditatum)은 개별지식(intellectus sigularium)에도 앞서고 또 분할과 복합지식(intellectus divides et componens)에도 앞선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은 역동적생성의 존재(l'être dynamogénique), 즉 본질을 실현하지 않은 생성(un devenir)이다. 그것은 몰리니즘(le molinisme)의 이성에 대한 구별에 대립되는 본질과 현존(l'existence 존재)에 대한 실재적 구별이다. 이 네오토미즘은 벨기에 제수이트 신부이며 루방 카톨릭대학 교수인 마레샬(Joseph Maréchal, 1878-1944)의 입장에 의해 완성된다. 그는 칸트에 반대하는 형이상학의 출발점(Le point de départ de la métaphysique(5권: 1922-47)을 쓰는데, 여기에서 그는 불가지론에 빠짐이 없이 칸트의 비판주의를 새롭게 하고자 애썼다.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에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이 운동의 마지막 증거들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이 운동이 얼마나 다양하고 변화 많은 측면이 있는지를 본다. 그러나 이 운동은 자신이 갖는 실재론 때문에, 이 장에서 우리들이 분석하는 학설들에 친화성이 있다.
이 주지주의적 실재론은 칸트주의의 관념론 또는 현상론과 대립되기도 하고 벩송의 생명론적 실재론에 대립되기도 한다. 이 후자의 대립에 대해서는 마리땅(Jacques Maritain 1882-1973)이 쓴 벩송의 철학(La Philosophie bergsonienne, 1914)에서 간추려져 표현되어 있다. 이 책 149쪽에서 “벩송씨는 지성을 직관에 의해, 존재를 지속에 의해 대체하면서, 생성과 순수변화에 의해 사물의 존재를 무화시켰고, 동일성의 원리를 파괴했다” 벩송에 있어서, 실재성이라는 행위(une action)은 점점 커가고, 스스로 앞으로 진행하면서 만들어가면서 모순율에 반대하며 직접적으로 법칙(une loi)을 따라간다. 만일 동일자가 타자을 생성한다면, 만일 한존재가 자기가 갖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면, 만일 운동이 운동체(mobile)를 필요하지 않고 또 운동체는 동인(moteur)을 필요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그것은 정확하지 못한 충분이유율이고 실체의 원리일 뿐이다. 결국 이런 비판들은 벩송주의에서 토미즘에 의해 받아들여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요원리에 반대되는 것만을 보는 것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리는 토미즘의 주지주의의 토대를 이루었다. 현실화하는 존재(l'être en acte)는 잠재적인(en puissance) 존재에 앞선다. 이러한 반대로 마리땅은 “토마스주의의 실재론은 진실로 비판적 방법에 의해 사물의 인식가치를 구해내면서, 토마스주의의 내면 속에서 반성의 영역을 탐험하게 하는 것이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토미즘에서 형이상학적 위상학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참조: 구별하고 통일하라: 지식의 정도차(Distinguer pour unir ou Les degrés du savoir, 1932. 또한 이 토미즘은 “동시대 관념론”과 대립된다. 이 관념론이 하는 것처럼 정신 전체를 동일한 지적인 평면위에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토미즘에서는 평면들을 깊이로 구별한다. 즉 그 구별은 감각적 본성의 인식, 형이상학적 인식, 신비적 경험 등으로 한다.
칸트주의 관념론에 비추어본 토마스주의의 실재론의 입장은 마레샬(Joseph Maréchal, 1878-1944) 신부가 쓴 형이상학의 출발점(Le point de départ de la métaphysique(5권 소책자, 1922-1926)에서 깨끗하게 정의되어 있다. 이 신부는 고대에서 칸트까지 인식의 비판 이론들을 상세하게 역사적으로 연구한 뒤에, 칸트의 본질을 두 가지 주제의 연대성 속에서 보았다. 하나는 지적 직관의 부정이고, 다른 하나는 만일 이 인식이 지적 직관과는 다른 기관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진상들(noumènes)의 인식의 부정 이다. 마레샬 신부는 칸트에 대항하여 지적 직관의 현존(l'existence, 존재)을 확립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런 부정(sa négation)이 진상의 인식에 대한 부정을 끌어낸다고 믿지 않았다. 칸트 그 자신은 실천이성 비판(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1788; Critique de la raison partique)에서, 신과 자유존재와 같은 진상들은 실천이성의 훈련 조건들로서 객관적 가치들을 획득한다고 제시했다. “다음과 같이 가정해보자. 우리는 실천이성의 요청들(postulats), … 적어도 신적 절대자 같은 요청들이 똑같이 인식능력들의 가장 근본적인 훈련 가능성의 조건들이라고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따라서 이 요청들의 객관적 실재성은 사변적 영역에 속하는 필연성에 근거하는 것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 직관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이런 가정을 한 것이다. (셋째 노트, p. 237) 그런데 이런 사정이 가능한 것은, 칸트가 현상과 진상 사이에 확립했다고 주장하는 단절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때문에 직접적으로 가지적인 것을 파악한다고 주장했던 플라톤주의에 가담함이 없이도, 그렇게 인정할 수 있었다. 여기서 토미즘은 우리들에게 중간 길을 가르쳐준다. 우리의 개념들은 감각적 사물본성(quiddité)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나 개념들은 “의미화의 요소”(élélment signification)를 지니고 있고, 이 요소의 대상은 간접적으로 표상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절대자와 존재적 관계를 포함하고 있다. 이미 주어진 것으로 조건 지워진 실재성(réalité)이란 이 요소에 의해서 이미 절대자(l'Absolu)를 참조하고 있음을 가정한 것이다. “칸트의 비판은 단지 다음을 증명한다. 만일 내재적 대상이 현상들의 종합적이고 형식적 통일일 뿐이라면, 우리는 분석의 길을 따라서 이들로부터 형이상학을 헛되이 연역할 것을 희망하게 되리라.” 그러나 실재 상으로는, 신적 인식의 연약한 흔적은 인간 지성이 배열되어 있는 절제된 단계(l'échelon, 수준)으로 있다. 이 흔적은 우리 행동의 생산물의 [신이 부여한]예감(la prescience, 통찰) 속에서, 그리고 지성이 현실화로 되는 우리의 지적 행위자의 선천성 속에서 나타난다. 그럼으로, 절대자를 향해 지성을 운반하는 역동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성의 존재 자체이다. 근대 관념론의 모든 오류는 생명적 또는 역동적 관점과 인식의 의식적 관점 사이에서 중세 말기에 완성된 “불행한 연접”(conjoction malheureuse)에서 온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근대철학에 마주한 네오토미즘의 상황을 생각한다. 이 근대철학에 마주하여, 네오토미즘은 “필연적인 관용”을 지닌다. (넷째 노트, p. 462) 왜냐하면, 네오토미즘은 시금석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콜라 철학은 진실에 대해 인간적 표현의 무한정하게 완전할 수 있음을 무시하지 않지만, “인간 사유의 계속적인 풍부함을 관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보다 정확하게, 왜냐하면 스콜라 철학은 그 철학이 네오토미즘과 동화할 수 있는 것 이외 다른 낯선 요소들을 채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네오토미즘은 철학사의 의미에서 간략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철학사에서부터 중세 철학사에 헌신한 작업들 중에 상당히 중요한 것이 나왔고, 그리고 우리들은 이 중요한 것들을 시대적으로 위치에 알맞게 지적해 왔다. (45Q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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