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캐럴 디스
크리스마스가 코앞인데 캐럴이 사라졌습니다. 요즘은 정말 캐럴을 부르지 않습니다. 올해 성탄을 맞으면서 이 현상을 더욱 절감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심심치 않게 받아보는 모바일 성탄카드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카드 화면을 보면 크리스마스 트리가 서있고 별과 아름다운 선물로 장식된 성탄 카드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배경음악과 그 안의 문구들은 성탄과는 상관이 없는 것들입니다. 이를테면 성탄 카드안의 문구들은 ‘향기 있는 좋은 글’ 같은 내용이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함께 나오는 음악도 널리 알려진 분위기 좋은 팝송이나, 인기 가요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디스(disrespect)하는 것인가’ 하는 마음이 들어 참 당혹스럽습니다. 정말 그런 것일까요.
캐럴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캐럴의 시작이 매우 대중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음악의 엄격한 화성이나 음계에 구애되지 않고 당시 민중들이 즐겨 사용하던 음악과 리듬을 받아들이고 친근한 악기들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마굿간 앞에서 노래하며 춤을 춘 것을 기억하며 시작하였다고도 합니다. 흔히 캐럴의 시작을 12세기 성 프란시스에게서 찾는 것도 프란시스가 대중들에게 갖는 영향력을 반영한 결과일 것입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대중의 삶과 감성을 아우르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은혜의 수단으로 자리해왔습니다. 캐럴의 한 축이 은혜라면, 또 다른 축은 삶의 자리입니다.
크리스마스 캐럴과 연관된 가장 감동적인 스토리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전선에서 일어났던 오웬 데이비스의 실화입니다. 영국 웨일즈에서 건너온 오웬 데이비스는 전선에 투입됩니다. 하지만 신참내기 오웬 데이비스는 쏟아지는 총탄과 칠흑 같은 어두움, 때때로 쏟아지는 진눈개비 속에서 두려움을 이겨내면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유일한 낙이 있다면 아버지가 건네준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전선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습니다. 밤이 한참 깊었는데 건너편 독일군 진지에서 한 병사가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성탄 전야, 전선에서 울려 퍼지는 캐럴은 비장하면서도 병사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웅크리고 있던 오웬 데이비스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저 들 밖에 한밤중에’라는 노래로 화답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몇 백 명의 양쪽 진영 병사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진지 밖으로 뛰어나와 서로의 손을 잡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가져다 준 짧은 기적의 향연이었습니다. 그 날 오웬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혔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모두에게 사랑과 평화를!”
은혜의 축과 삶의 축이 연결되는 이런 캐럴을 부르고 싶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캐럴이 상업주의에 포박 당했습니다. 더 이상 평화와 사랑의 소통을 불러오지 못하는 불임의 캐럴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 눈에 띄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탄 트리들은 사람들에게서 평화와 사랑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불화를 일으키는 발화점이 되었습니다. 김포 애기봉 성탄트리가 그 한 예입니다. 동기의 순수성을 아무리 강변해도 받아들이는 상대방이 아니라고 하면 동기와 방법이 올바른지 돌아볼 일입니다. 성탄트리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불안해한다면 더더욱 그리해야합니다. 소통하시려고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상과의 단절이 깊어지다니요.
이런 성탄의 경험들이 쌓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일방주의로 오해합니다. 기독교에 대한 이런 오해가 기독교 성탄문화에 대한 반감으로 은연중 작용하여 캐럴 없는 성탄을 부추키는 문화적 ‘디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깊이 성찰해야 할 때입니다.
이광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