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
이강학, 교남 소망의 집
탈시설의 빛과 그림자
한집에 사는 사람이 많으면 문제가 생긴다. 우선 자신만의 공간이 없다.
공간이 부족해 한방에 두세 명이 쓰거나 많게는 예닐곱 명이 쓰기도 한다.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건 나만의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많으면 효율을 따지게 된다.
밥도 다 같이 먹고 목욕도 정해진 시간에 한다.
운동도 낮에만 하고 간식도 그날 정해진 것으로 먹어야 한다.
잠자리도 정해진 때에 들어야 하고 일어나는 시각도 동일하다.
개별 활동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모두 따로따로 활동하다 보면 정해진 시각에 해야 할 일이 미뤄지기에 공동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함께 살다 보면 마찰도 잦다. 다툼과 오해가 생긴다.
의사표현이 서툴러 더 큰 오해로 번진다. 이를 중재하다 보면 또 다른 오해가 생기고
부적절한 언행이 오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의존적인 존재로 인식하여 희망과 가능성을 무시하기도 한다.
개인의 자유보다는 집단의 규율이 중요하고 개인의 선택보다는 집단의 운영이 우선되고
심지어는 생명권마저 존중되지 못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본 거주시설의 모습이다.
여러 장애인단체에는 이러한 일에 문제를 제기했고 이를 막기 위해 법으로 보장하라는 요구를 오랜 시간 이어왔다.
2020년 12월.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시설 거주 장애인의 인권 보장과 사람다운 삶을 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인 삶을 살도록 지원하자는 게 주요 내용이다. 아직은 발의 단계지만 제정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두세 개의 방과 화장실, 욕실을 만들었다.
한방에는 한 명 내지 두 명만 사용하도록 고쳤다. 주어진 환경에서 개인 공간을 최대한 보장하려고 했고
일반 가정환경으로 조성하고 있다.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 식당을 이용했지만
주말에는 편한 시간,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목욕도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주로 저녁식사 후 할 수 있도록 한다.
운동도 원한다면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으며
간식은 지역 매점에서 원하는 것을 구입해서 먹는다.
잠은 저녁 식사 이후 아무 때나 잘 수 있으며 일어나는 시각은 아침 식사 때에 맞춰 일어난다.
대신 주말에는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날 수 있다.
그림카드 등을 활용해 음식부터, 영화, 장소, 이동수단까지 직접 선택하여 개인에게 초점을 두고 있다.
함께 사는 사람과 잦은 마찰이 생기면 방을 옮기거나 옆집으로 이사 갈 수 있다.
중재하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되지 않기 위함이다. 자립을 원하고,
혼자 생활이 가능한 입주인은 적극적으로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인권지킴이단을 운영하여 모니터링과 인권교육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고 법인에서도
인권위원회를 운영해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거주시설에서 본 거주시설의 모습이다.
시설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독립적인 삶, 자유권과 선택권이 보장되는 삶, 인권은 존중되는 삶,
지역사회와 친화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시설의 정원을 줄여나가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입주인이 지역사회로 자립해야 하는 것이라면 반대다.
중증 장애인을 위해, 체계적인 자립 준비를 위해,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시설의 역할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설도 확실한 비전과 지원자의 의지만 있다면 탈시설의 목적에 부합한 장애인의 삶을 지원할 수 있다.
발달장애인은 지적능력, 사회기술과 일상생활능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지원에 어려움이 많다.
그야말로 개인에 따라 지원의 방법과 범위가 다 다르다.
특히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중증 발달장애인을 거두는 일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어려운 일은 발달장애인의 돌봄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했다고, 성인이 되었다고 돌봄을 그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돌봄은 평생 동안 이뤄져야 한다. 가족 중 누군가는 일도 할 수 없고 개인 생활은 생각조차 못한다.
잠시도 곁에 없으면 사고의 위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에서 시설은 일반 가정에서 살고 있는 발달장애인 가족에게 대안이 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정에서 평생 함께 살기 원하는 가족도 많지만 그런 여건이 못 되는 가정의 어려움을 모른 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만약 자신들이 먼저 죽으면 남은 발달장애인 자녀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게 제일 큰 걱정거리다.
시설은 이 걱정을 덜어 주는 곳이 되기도 한다.
간혹 시설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사례 등 불미스러운 일로 불신을 갖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시설이 더 많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발달장애인 가족이 본 거주시설의 모습이다. 장애인 거주시설은 장애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주거권 중 하나이다.
여러 명이 모여 산다고 꼭 비인권적이며 선택권이 박탈되고 자유권이 무시되진 않는다.
예방과 경계의 기능을 강화하면 오히려 더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더욱이 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이 24시간 지원한다면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다.
가족으로서 해주지 못한 일을 대신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가족이 해체되는 곳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권리를 존중받으며 가족 관계를 어어 가는 곳이다.
시설수 1,557개. 현원 29,662명. 2019년도 12월 기준 전국 장애인 거주시설 현황이다.
그 중 발달장애인 시설은 313개, 현원 11,485명. 중증 장애인 시설은 251개, 현원 10,978명.
중증 장애인시설도 입주인 대부분이 발달장애인이므로 이를 포함하면 시설은 564개, 현원은 22,463명.
발달장애인이 거주하는 시설은 전체 36%, 현원은 75%에 해당한다.
장애영유아 시설과 공동생활가정까지 포함하면 80%가 넘는다.
이러한 통계로 본다면 탈시설 정책은 발달장애인에게 직면한 일이다.
발달장애인은 다른 장애와는 다르게 획일화된 방법이 적용되기 어려운 장애다.
개인별 차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이 100명이라면 100가지의 방법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주거 환경만을 바꾼다고 더 나은 삶이 보장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한편에선 시설은 감옥 생활과 다름없다며, 집단생활은 비인권적이라며 시설을 폐쇄하고
모든 장애인은 시설 밖으로 나와야한다고 주장한다.
한쪽에서는 시설이라도 보냈으면 좋겠다고 고충을 토로하고 장애 당사자가 시설과 지역사회 중
더 좋은 곳을 선택해서 살면 된다고 시설을 주거 정책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낀 거주시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다.
거주시설은 시설 밖으로 나온 중증 발달장애인들이 겪게 될 일상생활의 어려움,
24시간 돌봄 문제 그리고 집에서만 지내는 새로운 고립 등 현실적인 과제를 제일 잘 아는 곳이다.
하지만 현안의 중심에 선 거주시설은 여전히 침묵 중이다.
한 귀로는 곧 탈시설 조례가 만들어진다는 환호와 다른 귀로는 발달장애인 가족의 호소만 듣고 있다.
시설 거주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다며 저마다 한 목소리씩 내고 있지만
정작 시설과 입주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첫댓글 너무 공감되는 현장의 이야기입니다.
조목조목 열심히 읽었습니다.
탈시설. 저 또한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막상 시설을 '탈'한 분들의 모습을 보면, 그 또한 마음이 미어집니다.
'통합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체계에 기대하기에는 그분들의 실상이 너무 어둡습니다.
개별화, 탈시설화. 참 필요하다 생각하는데 아직도 먼 길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