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의 '서장'통한 선공부] <9> 서장 (書狀)
이참정에 대한 답서 (1)
해탈이란 다만 가벼워지는 것
"'옷 입고 밥 먹고 손자를 안고 함께 놀아주는 하나 하나가 옛날과 같으나 이미 끄달리거나 막히는 정(情)이 없고 또한 기특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며 오래된 습관과 장애도 조금씩 가벼워진다'고 쓰신 글을 세 번이나 되풀이 읽고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를 공부한 효험입니다. 만일 뛰어난 근기를 가진 대인(大人) 같은 분이 한 번의 웃음 속에서 백 가지를 요달하고 천 가지에 들어맞지 않는다면, 선문(禪門)에 진실로 전하지 못하는 묘한 도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불교를 공부하고 선을 공부하여 얻는 효험은 이른바 해탈(解脫)의 체험이다. 해탈이란 묶인 것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이다. 범부는 생각.말.기억.이미지.지식.명예.느낌.습관.정(情) 등등에 묶여서 살아간다. 이런 것들에 묶여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이런 것들에게 매여서 부림을 당하는 노예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묶㈋� 노예로 살아가기는 불교를 좀 공부했다는 사람이나 선을 제법 수행했다는 사람도 마찬가지 이다. 이들은 기도.염불.호흡수련.정신집중.고요히 앉아 있음.화두(話頭).명상 (冥想) 등등에 묶여 있다. 이들은 묶여 있는 포승줄의 종류가 문외한인 범부와 다를 뿐이지 아직 묶여 있는 노예의 신세라는 점에서는 범부와 마찬가지이다.
사실 모든 종류의 내면적 고뇌, 일상적 말다툼, 도덕적 논쟁, 이념적 대립, 감정적 갈등, 종교적 충돌은 당사자들이 모두 자신이 집착해 있는 특정한 우상(偶像)[邊見]의 노예 신세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 우상의 종류가 어떤 것이든 우상의 노예로 있는 한 내면적 외면적 갈등은 불가피하며 따라서 삶은 괴로운 것이다.
이들 중에는 스스로가 묶여 있음을 자각하고 풀려나기를 발심하는 올바른 공부인도 있지만, 많은 경우 자신들이 특정한 우상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묶여 있다는 그 사실을 즐거워하며 그것을 놓으면 큰 일이나 날 듯이 꽉 쥐고 놓지 않으려고 하며, 심지어는 그런 것들에 묶여 있는 것이 공부를 잘하는 것인 양 자랑까지 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발 붙일 곳이 없다'는 임제 스님의 말이나, '머묾 없이 그 마음을 낸다'는 {금강경}의 구절이나, '오온의 자성이 공(空)'이라는 {반야심경}의 구절이 얼마나 진실한 말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불교를 배우고 선을 공부하는 목적은 이들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이다. 그리고 해탈은 우상을 없앰으로써 얻는 것이 아니라, 우상의 실상(實相)을 깨달음으로써 다가온다. 없애거나 만드는 일은 우상에 매여 있는 동안에 우상을 상대해서만 할 수 있는 일이고, 반야(般若)의 눈으로 보면 우상이 그대로 실상이지 우상 밖에 따로 실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리석은 눈으로 보면 모두가 우상이지만 반야의 눈으로 보면 하나 하나가 모두 실상이다.(이 말도 방편상의 말임을 잊지 말자.)
그러므로 이참정은 대혜 스님의 말을 듣고 '한 번의 웃음 속에서 백 가지를 요달하고 천 가지에 들어맞았'으며, 수료 스님은 마조 스님에게 한 번 밀쳐지고서 깨달았으며, 설봉 스님은 고산 스님에게 멱살을 잡히자 곧 깨달았던 것이지만, 따로 전해주거나 내놓을 무엇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체험은 오직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을 뿐이고, 어떠한 상상도 용납 하지 않는다. 체험은 한 순간 뚜렷하게 경험될 수도 있고 미미한 느낌으로 스쳐지나 갈 수도 있으나, 그 효험은 매우 분명하여 예전의 습벽이나 장애가 가벼워짐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뚜렷이 알 수가 있다.
말하자면 모든 묶임으로부터 풀려나며 어떤 견해나 생각에도 사로잡히지 않음을 분명히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생활이 이전과 달라질 것은 없다. 다만 가벼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벼워짐은 "이(理)라면 문득 깨달으니 깨달음을 타고서 모두가 녹아버리지만, 사(事)는 문득 없어지지는 않고 순서에 따라 없어진다."고 하듯이 오랜 동안 조금씩 진전된다.
이것을 두고 대혜 스님은 불교를 공부한 효험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효험이 체험되지 않는다면 불교는 허황된 희론일 뿐이다.
김태완/ 부산대 강사.철학
[출처 : 부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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