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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5일 목요일 - 제네시스 김선장의 완전 실수 대 환장 파티
코타키나발루로 떠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준비해서 세관과 이미그레이션에 다녀오자. 오전 9시쯤 세관을 가자. 총 188 해리 35시간 항해니, 목요일 오후 4시에 출항하면 토요일 오전 5시 코타키나발루 도착이다. 여유 있게 오전 7시 쯤 도착하는 것으로 하면 딱 좋겠다. 일몰 전 출항해서 일출 후 도착이다. 강릉에서 부산 가는 거리다. 편한 마음으로 출항하면 되겠다. 오전 8시 쯤 Fin 이 온다니 그에게 206 링깃을 주고 C.I.Q.를 하러가자.
랑카위에서는 전기를 썼나? 물을 썼나? 만 질문했다. 얼마나 썼나는 질문하지 않는다. 여기 Miri 마리나에서도 따로 전기와 물이 계산 된 것 같진 않다. 그냥 4박 5일에 206링깃이다.
여기가 산유국이라서 디젤유 가격, 택시비와 전기료 등 기본 적인 것들이 상당히 저렴하다. 이래서 말레이시아 마리나에 장기 계류자들이 많은 것 같다. 랑카위는 마리나 시설이 아주 잘 돼있다. miri는 마리나에 편의 시설이 없어 인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다만 택시비가 싸고 아주 조용하다.
Miri 에서는 디젤유를 제리 캔으로 사야하고, 가격은 1리터에 4.2링깃 (1,156원) 이다. 랑카위보다 비싸다. 나는 마리나 주유소가 있는 코타키나발루에서 주유하기로 한다.
아, 어제 에어컨 가게에서 배 가격을 묻기에 답해 주었더니. 그 돈이면 여기서 집을 두 채 산 댄다. 아주 큰 집 하나와 보통 큰 집 한 채. 항해를 해보니 한국서 적당히 벌어 동남아시아에 와 사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서양인들은 실제로 그렇게 하고들 있다.
어제 대만의 문선장님과 몇 가지 정보를 나누었다. 일단 대만은 인터넷으로 입항허가를 신청하고 마리나에 연락을 해야 하는데, 그 인터넷은 대만 국내용이다. 링크를 걸어도 외국에선 연결이 안 된다. 전화로 문의 하니 국내용이라, 대만 국내의 지인이 신청을 해야 한단다. 뭐 이런 경우가. 진짜 폐쇄적이다.
https://yberth.motcmpb.gov.tw/YberthM2/PortalE/sys_a/a02/a0201 <= 대만 국내용 사이트.
김승진 선장님이 얼마 전 대만에 다녀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드렸다. 그분은 그냥 입항해서 다른 나라들처럼 절차대로 하셨다고 한다. 그럼 지금 대만의 문선장님과 내가 하고 있는 절차는 뭐란 말인가? 어이없다. 그래도 문선장님과 일단 제대로 해보자고 말씀을 나눈다. 그리고 돼지고지 육류는 생고기나 가공품 (햄, 통조림)을 싣고 가면 벌금이 4천만 원이란다. 계란도 삶은 것만 소지가능하다고 한다. 대만 앞바다 가서 남은 육류는 다 버려야겠다. 이것도 김승진 선장께 여쭈니 ‘그래요?’ 하고 의아해 하신다. 아무래도 법 따로 행정 따로 인 것 같다. 일단 그냥가도 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미리 철저하게 준비하고 가자. 어제 저녁에 대만 문선장님께 입항허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대만 입항은 염려를 덜었다. 고마운 일이다.
오전 7시 30분. 카레파스타로 볶음 김치로 아침식사를 한다. 시원할 때, 출항 준비를 한다. 텐더를 다시 잘 묶고 해치들을 모두 닫는다. 기름통도 잘 묶었나, 확인한다. 에어컨을 화장실에 두고 열기 내보내는 덕트를 연결한다. 일단 에어컨 포장재를 사용해서 임시 커버를 만들었다. 화장실이라 에어컨에서 떨어지는 물기도 문제없다. 랑카위에서 호주 선장 데이빗에게 배웠다. 바로 써 먹는다.
오전 8시. 새로운 세일 요트가 한 척 더 왔다. 타이완 산 formosa 44 피트다. tanaya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선장과 인사를 했다. Colin Mclean. 호주에서 왔고, Karis 호를 타고, 필리핀 크루 한명과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다닌다. 두 달전에 Miri도 왔었다고 한다. 이번 금요일 선장들끼리 파티를 한다고 참석하고 가란다. 나는 그럴 수 없다. 아쉽지만, 나는 오늘 오후 4시에 떠난다고 말했다. Colin Mclean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데 Colin Mclean이 오늘 입국신고를 한다고 해서, 나는 그의 차를 얻어 타고 출국신고를 하러 같이 다녔다. 이때만 해도 오늘이 제네시스 김선장의 완전 실수 대 환장 파티의 하루가 될지 짐작도 못했다.
실수 하나, 아침에 마리나 관리자 ‘핀’에게 문자가 왔다. 조수표다. 오늘 오후부터는 바다가 낮아져서 출항 불가다. 내일 오전 6시 부터 출항 가능하다. 자세히 보니 지난 월요일 오후 5시 입항 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왔는데 완전 운이 좋았다. 미리 마리나는 저수위 때는 입출항이 불가하다. 반드시 조수표를 먼저 입수해야만 한다. 안 그러면 기껏 와서 외항에서 대기해야 할 수도 있다. Colin Mclean 선장도 그것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던 거다. 만나자 마자 그는 내게 조수 차이부터 말해준다. 코타키나발루는 깊어서 그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미리 마리나 관리자 Fin : +60 14-273 0186 이다.
실수 둘, 월요일 입항 때, 이미그레이션에서 세관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하버 마스터는 별개다. 나는 하버 마스터까지 안 간 거다. 월요일 와서 목요일 신고라. 문제가 클 수도 있다. Colin Mclean이 하버마스터에게 ‘이 친구 실수로 월요일 신고를 안했는데, 좀 적당히 봐주라’ 고 부탁을 하자. 하버 마스터 직원이 15분 안에 해결해 준다고 한다. 실제로는 30분 만에 해결해 주었다. 하버마스터에 입항과 출항 절차를 한꺼번에 한 거다. 이렇게 실수 만발인 채로 Miri 에서 이미그레이션과 세관, 하버마스터까지 완벽하게 마무리 지었다. 코타키나발루에 가서는 절대, 실수 하지 말자.
실수 셋. 디젤 500를 더 채워야 하는데, 마리나 주유소가 있는 코타키나발루에 가서 주유하려고 했다. 그런데, 거긴 디젤 값이 리터당 5링깃 이란다. 그리고 급유하려는 배가 많아서 줄을 많이 서야 한단다. 여기는 배까지 배달해주고 4.2 링깃, 코타키나발루에선 2,500링깃(688,375원) 이고, Miri에서는 2,100링깃 (578,235원) 이다. 차액은 110,140원이다. 당연히 Miri에서 주유해야 한다.
넷. 실수는 아니지만 큰일 날 뻔한 것 한 가지. 원래는 Miri가 아닌 쿠칭으로 갈까했었다. 그런데 쿠칭마리나에서 아무도 답을 안 해줘서 안 갔는데, Miri마리나 관리자 핀의 고향이 쿠칭이란다. 그래서 쿠칭마리나에 대해 물어 보았다. 강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하고, 도시에서 1시간 이상 떨어져 있단다. 그리고 조수간만차가 심해 배가 자주 좌초 되고, 역조류 일 땐 5노트 이상이란다. 게다가 엄청나게 많은 쓰레기들이 떠다니고, 통나무들도 많아서 엄청 위험하단다. 무엇보다 디젤유가 없다고 한다. 그냥 느낌으로 안 간 것이지만, 정말 안가길 잘한 것 같다. 세일러들이 잘 모르는 마리나 일 땐,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오늘 오전 8시까지는, 이 네 가지 모두 전혀 몰랐던 일이다. 만약 Colin Mclean과 만나지 않고 출발했다면, 첫째, 마리나 입구에서 좌초 됐을 거다. 둘째, 코타키나발루에서 하버마스터 출항 서류가 없어 타이완으로 출발하지 못했을 거다. 셋째, 코타키나발루에서 디젤유를 11만원이나 비싸게 그것도 한 참 줄을 서가며 살 뻔했다. 넷째, 쿠칭으로 안 간 건 신의 보살핌이었다.
아침에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Colin Mclean 선장에게 먼저, Hi! 하고 인사한 결과다. 멋도 모르고 출항하려한 <제네시스 김선장의 완전 실수 대 환장 파티>가 이렇게 가까스로 중지되고, 절차대로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출항 준비가 된 거다. 그래서 우리 세일러들은 외국 선장들에게 먼저 미소로 인사하고, 친해지고, 정보를 얻어 실수를 줄여야 한다. 하느님은 이렇게 일하신다.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Colin Mclean을 보내 주신 거다. 그가 없었더라면 큰 문제들이 줄지어 발생할 뻔했다. 나는 감사 기도를 한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내일 16일(금요일) 오전 6시 출항예정이다. 물론 일출이 되어야 한다.
오후 2시에 핀이 왔다. 같이 주유소로 간다. 먼저 은행서 돈을 찾아야 한다. 2,100 링깃이다. 그런데 은행 두 군데다 다 내 카드를 못 읽는다. 세상에. 할 수 없이 Permaisuri Imperial City Mall 로 갔다. 어제 마리나 비용 300 링깃을 찾은 곳이다. 문제없이 돈이 잘 인출 된다. 핀에게 기름 값 2,100 링깃을 주고 말레이시아 전기 어댑터를 사러 Permaisuri Imperial City Mall 3층에 갔다. 카드가 또 안 된다. 현금으로 48링깃을 주고 샀다. 카드가 되다 안되다 한다 영 불안하다.
돌아오며 왓스앱 문자를 보니 Yulya M.juliana & Valdum Russia 커플도 조수차이 때문에 나와 똑같이 출항을 못하고 내일로 미루었다. 그들이 시내에 나가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한다. 좋다. 그런데 Colin Mclean 선장도 5시에 자기 배에서 만나자고 하니 이것 참. 그래서 Colin Mclean 선장에게, 5시에 다 같이 저녁 식사 하러 나가겠냐? 고 문자를 보내 두었다. 바보 같은 김선장이 머나먼 말레이시아 Miri 마리나에서 이렇게 인기가 좋다니!
오후 3시 30분. 디젤유 500리터를 23개의 제리캔에 나누어 옮긴다. 매니저 핀의 직원 하나가 도와주고 수레에 실어 옮기는데도 힘들어 죽을 지경이다. 23개의 제리캔으로 모두 배에 끌어 올리자, 오른쪽 손목에 무리가 갔는지 시큰시큰하다. 20리터 제리캔은 문제없다. 하지만 25리터나, 30 리터 캔은 확실히 무리다. 앞으로는 무조건 25리터 제리캔을 사고 20리터만 담는 것을 추천한다. 제리캔이 넉넉해야 디젤유를 덜 흘린다.
오후 4시 30분. 오전에 출항했던 쌍용(double dragon: 카타마란) 이 돌아오자 다들 나서서 계류줄을 잡아준다. 작은 Miri 동네에 이웃들이다. 나도 나서서 계류줄을 잡아준다. 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이들은 이미 Colin Mclean 선장을 다른 마리나에서 본적이 있단다. 동남아를 돌아다니는 선장들은 서로 알고 있는 것이다. 나이든 서양 부부가 폰툰에서 낡은 자전거를 고치고 있다. 정말 보기 좋다. 그들은 36피트 쯤 되는 작은 보트로 이렇게 동남아시아를 세일링하며 여생을 보내는 거다. 부럽다. 나도 저렇게 노년을 보내고 싶다.
오후 5시 30분. 아쉽게도 Colin Mclean 선장은 저녁에 다른 손님들이 온 댄다. 결국 Yulya M.juliana & Valdum Russia 커플하고 같이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젊은 커플답게 맛 집을 검색해서 여기저기 다닌 모양이다. 제일 좋은 곳이라며 Zeppelin Restaurant을 추천한다. 나는 Zeppelin Restaurant에서 허니머스타트 치킨을 주문했다. 음식은 훌륭했다.
https://www.zeppelinrestaurant.com/menu/mains
Yulya M.juliana & Valdum Russia 커플은 일본에 정착하고 싶어 한다. 러시아에는 돌아갈 생각이 없나보다. 1992년 산 할베그로시 36피트다. 상태가 아주 좋은 세일 요트다. 살림살이 넉넉한 젊은 커플이다. 그들은 스웨덴에서 요트를 샀다고 한다.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북유럽이 요트가 가장 저렴하다고 한다. 그리고 크로아티아, 그리스, 이탈리아는 햇살이 강해, 갑판과 세일 상태가 나쁘다고 한다. 또 차터 정이 많아. 배가 많이 노후된다고도 한다. 북유럽 배들은 햇살이 약해 갑판과 세일 상태도 좋고, 대부분 오너정이라 배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 깨끗하다고 한다. 그렇군. 또 하나 배운다.
오후 7시 대화를 나누어 보니, Yulya M.juliana & Valdum Russia 커플은 상당히 인텔리전트하다.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고요한 돈 강, 죄와 벌, 전쟁과 평화. 푸시킨 등을 이야기하니, 다 알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지 몰랐나 보다. 저런 명작들은 러시아에서도 조금 클래스가 되는 사람들이 읽는다고 한다. 한국에 가면 나더러 밥을 사라며 오늘은 자기들이 낸다. 호오, 러시아는 서양인답지 않게 쏘는 문화가 있네. 식사하며 이야기하고 식사를 마치자 함께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깔끔하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세일링 만큼이나 행복한 일이다.
오후 7시 30분. 제네시스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기름통을 단단히 묶는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팡팡 틀어 놓고 샤워를 한다. 선실이 금방 서늘해진다. 하루 종일 혹사한 몸을 쉬게 하고 Jazz 트럼펫 연주를 들으며 Miri 마리나의 마지막 저녁을 보내고 있다. 친밀하고 다정한 세일러들 때문에 정말 떠나기 아쉬운 Miri 마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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