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을 바라보라
창 11:1-9,2022,06.19.늘찬양교회
1. 바벨탑의 붕괴
바벨탑을 처음 발굴한 사람은 독일의 ‘콜데바’이다. 그는 1913년 바빌론을 발굴하던 중 도시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탑 유적의 토대에서 기원전 229년에 새겨진 점토 판을 발견했는데 점토 판에 따르면 탑은 7층이었고 그 위에 사당이 설치돼 있었다고 한다. 아울러 바벨탑을 세우는데 모두 8천5백만 개의 벽돌을 사용했으며, 건물의 규모는 가로와 세로, 그리고 높이가 약 90m에 달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렇듯 바벨탑이 거대한 규모를 갖게 된 것은 바빌론이 다른 도시들을 압도할 정도로 정치․경제의 중심지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바빌론의 외곽 둘레의 길이는 16km에 이르렀고, 폭 27m에 달하는 도시의 내벽을 따라 경계 탑들이 서 있었으며, 도시 한편으로는 유프라테스강이 흘러 천연의 방어선을 이루었다. 도시 안에 화려한 궁전이 수없이 지어졌고, 한때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공중정원도 성안에 있었다. 바벨탑은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철저히 파괴됐으며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을 점령했을 때 폐허가 된 바벨탑을 재건하려 했지만, 너무나 거창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만여 명의 인원이 2개월 간 투입된 후의 일이었다.
2.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
1) 언어가 하나였던 세대
창세기 11장 1절입니다.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노아 홍수 이전에는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단어와 문법이 하나였습니다. 아마 그들은 셈족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썼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홍수이전의 지명이나 인명이 모두 히브리어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함의 자녀인 구스의 사람들이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주변의
시날평지에 이상사회를 만들고자 하였습니다.(창 11:2) 하나님 없이도 인간은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여기고 살기 시작했던 곳이 바로 시날 땅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벨론 문화가 만들어졌습니다.
2. 벽돌과 바벨론 문화
창세기 11장 3절입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바벨론 문화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벽돌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토기문화에서 벽돌을 만들어 낸 것은 천지가 개벽할 만큼 놀라운 사건입니다. 요즘 우리 시대에 인터넷과 컴퓨터 핸드폰이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놓았듯이 당시 벽돌의 발견은 대단한 것입니다.
시날 땅에서 많은 흙을 만나게 되었고 그 흙을 불에 구웠더니 아주 단단하고 쓸만한 벽돌과 물건들이 되었습니다. 그다음부터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을 발견해서 누구든지 집을 견고하게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점토로 벽돌뿐만 아니라 그릇도, 항아리도 만들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시대에 흙으로 무엇을 만든다는 사건은 문화적인 발전과 기술의 대혁신이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자기들의 결과물로 인간의 위대함을 예찬했을 것입니다.
3. 바벨탑을 세우는 목적
벽돌로 바벨 탑을 쌓은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편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탑을 쌓은 이유는 3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하늘 끝까지 가기 위하여 쌓고자 하였습니다.(창 11:4)
여기서 성(城)과 대(臺)를 하늘에 닿도록 까지 세워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적당히 지어도 될 텐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홍수에 대한 대비책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기억 속에는 조상들이 홍수 때문에 다 죽었다는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홍수가 어디까지 올라 왔는가하면 아라랏산 꼭대기까지 물이 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힘을 모아서 성을 짓고 탑을 쌓되 아라랏산 꼭대기보다 더 높은 성(城)과 대(臺)를 쌓으면 홍수가 나도 대피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또 다른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반발심입니다. "왜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인 사람을 홍수로 멸망시켰단 말인가? 언제고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을 또 다시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자...하나님이 쏟아 부었던 아라랏산의 높보다 더 높이 세우면 하나님의 심판이 미치지 못하겠지...그런 후에 이제는 평안히 지내자“하며 인본주의적인 안주욕(安住慾)에 바벨탑을 쌓은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이름을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이름을 내고"... 사람들은 당면한 문제 해결의 차원을 넘어서 이제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를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무한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뭐하러 하나님 앞에 나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따위 치사스러운 부탁을 해야 하는가? 말이다.
인간 스스로가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 무엇이든지 만들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모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여 인간의 위대함을 드러내자! 내 이름을 세상에 알리자!...이것이
바벨론을 세우는 주된 목표였습니다.
셋째,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이후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는 고독함과 외로움이 있는 무서운 사회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흩어짐을 면하자..." 시날 땅에 왔을 때 그들이 외친 구호가 있습니다. 바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입니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의 방법과 수단을 좇아 단합해서 세계단일제국을 만들어내자! 그래서 고독과 절망이 없는 이상사회를 건설하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인간사회의 건설, 교만과 불 신앙에 입각한 반항적 시도, 이것이 바벨탑의 정신이자 목표입니다.
4. 바벨탑의 무너짐
창세기 11장 5절에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바벨탑의 불의한 목적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바벨탑을 쌓는 것을 그대로 놔두면 구원의 길이 막혀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바벨탑을 쌓는 일을 막으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의 죄를 홍수로 심판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다시는 인류를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대타로 생각한 것이 바로 언어의 혼잡 즉 언어의 심판을 가하였습니다.
1. 언어의 분열은 저주 (7절)
부부가 싸우는 이유는 대화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동기를 가지고 대화를 시작하지만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다 보면 결국은 다투게 됩니다. 서로 한 몸인 부부도 대화에 실패하면 다투거늘 국가와 국가 간에는 어떠하겠습니까?.
‘바벨’은 ‘혼잡케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인간은 혼돈스러운 존재입니다. 역사는 혼돈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우리 역시 혼돈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면 질서가 생기며 대화가 생기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천국은 언어와 말이 하나인 나라입니다.
2. 온 지면에서 흩어버리셨다.(9절)
9절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결국, 인간들은 대화의 단절로 인하여 성 쌓기를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벨탑을 쌓는 인간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바벨탑 안에서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과학과 예술 철학 능력만을 믿습니다. 이제는 유전자 조작을 통하여 복제 인간까지 만들어 하나님의 창조영역에까지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속에서는 돈과 기술과 쾌락만이 보입니다. 여기에서 나와야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은 바벨탑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야 할 길은 바벨탑이 아니라 성령이 임했던 마가의 다락방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나라와 언어와 천국이 회복될 것입니다.
5. 바벨탑의 영적 교훈
1. 하나님의 동의(同意)를 얻으라.
인간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함을 보시고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듯이 타락한 인간은 홍수의 심판을 받은 후에도 계속하여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여기려고 하였으며 또 이번에도 바벨탑을 통하여 인간의 우수성을 알리고 인간 나름대로 피할 길을 얻고자 노력하였지만 하나님의 동의 없이는 모든 것이 허사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추진함에 먼저 하나님의 동의를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2.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알라.
노아의 홍수에서도 그렇고 바벨탑의 붕괴에서도 그렇고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에서도 그렇고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선과 악에 대하여 분명하게 심판하십니다. 심판의 방법은 천사를 통해서도 하시지만 직접 악에 대해서도 심판하십니다. 죄가 저질러지는 장소는 때때로 심판의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지 못하고 더욱 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악은 강한 범죄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은 칼과 무기와 전쟁 등으로 세상을 정복해가며 자신들의 아성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 아무리 악이 강하고 힘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3. 하나님의 통치와 지도를 기대하라.
하나님은 뛰어난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들을 눈동자같이 지켜보시고, 간섭하시고,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지와 자만과 야망 속에 자기 자신을 있게 말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지배와 통치를 받으려고 애써야 합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나’라는 자아가 높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 나의 삶 전역에 실현될 수 있게 하는 일이요, 나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드러나게 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날마다 엎드려 기도함 속에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듣고 읽고 묵상함 속에 하나님의 지도와 인도를 바라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주의 은혜와 능력으로 강건하게 채워주실 수 있도록 날마다 성령 충만을 간구하는 신앙생활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