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핸디사이드"(Flirence Handyside)는 1919년 11월8일에 뉴욕州 "로체스터"(Rochester)에서
아버지 "해리 E. 핸디사이드"(Harry E. Handyside:1893~1962)와
어머니 "루비 E. (콜) 핸디사이드"(Ruby E. (Cole) Handyside"1897~1975)의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조선의 부산지방에서 정교회 장로교회 선교사로 활동을 하다가
급성 척수 수막염에 걸려 1949년 2월 12일 사망하여 양화진에 장례되었다.
그러나 "플로렌스"의 자세한 활동내역은 알려지지 않았다.
"플로렌스"의 이야기를 찾아보다 아래와 같은 글을 보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플로렌스"와 같은 시대에 살던 "제임스 헤플리"(James Hefley)라는
젊은이가 "플로렌스"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귀의한 이야기이다.
"제임스 헤플리"(James Hefley)는 그후 여러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 냈다.
-내 마음에 씨를 뿌린 두 여인-
소박하지만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사람들로 인해 회심한 나의 이야기
-제임스 헤플리(James Hefley)-
나는 미주리州의 "오자크"(Ozark)에서 성장했다.
통나무 오두막에서 부모님 및 일곱 남매와 함께 생활했으며, 교실이 하나인 작은 학교에서 공부했다.
아홉 살에 학교에 들어갔고, 열세 살에 졸업했으며, 이후 "아칸소 공과대학"(University of Arkansas)에 입학했다.
당시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으며, 기독교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성경은 말도 안 되는 책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내게 아무런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대학시절 나는 문제아였다.
도박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블랙잭"(Blackjack)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심지어 나는 더 어렸을 때인 14세에 이미 도박장을 차렸었다.
당시 그것은 불법이었기 때문에 보안관이 도박장을 폐쇄시켰다.
학장은 대학의 관계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회의를 했으며,
“너는 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내게 말했다.
그리하여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 왔다.
고향으로 돌아 온 어느 날 나는 부모님의 가게 앞에 몇몇 친구들과 앉아 있었다.
그런데 구식 차 한 대가 오더니 거기서 예쁘게 옷을 차려입은 젊은 여자 두 명이 내렸다.
그중 한명이 자기를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플로렌스 핸디사이드"(Flirence Handyside)입니다.
이쪽은 내 파트너인 "헬렌 리비"(Helen Lievie)이고요.
우리는 "북 아칸소 복음 선교회"에서 온 선교사들입니다,
우리는 월요일 저녁마다 학교교사에서 청년 집회를 열려고 왔습니다.
하지만 먼저 우리는 교육위원회의 회장님에게서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 분이 사는 곳을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나와 내 친구들은 재미있는 일이 생길듯하여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동네에 하나 밖에 없는 도로의 위쪽에 있는 우체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체국의 현관에서는 "빌"(Bill)아저씨가 졸고 있었다.
그 두 여인은 "빌" 아저씨에게 가더니 조금 후에 다시 돌아 왔다.
그들은 "빌" 아저씨가 허락을 했다고 전하면서 “여러분도 우리의 집회에 오세요”라고 말했다.
친구 녀석들 중 하나가 나를 쿡쿡 찌르면서 “예,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차를 몰고 사라졌을 때 우리는
‘앞으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구나’하고 생각하면서 히히덕 거렸다.
우리는 그 집회를 찾았다. 물론 우리의 목적은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우리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소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주최 측의 여성들은 인내심을 잃지 않았다.
그들은 월요일 마다 계속 찾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방해할 목적으로 계속 그 집회에 참석했다.
결국 우리의 장난거리도 바닥이 났다.
그들을 못살게 구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마음속에서 그들,
특히 "플로렌스"의 인내심과 사랑에 대한 존경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녀는 결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나는 조용히 앉아서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그녀의 말을 집중해서 들은 것이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시고 종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이 되셨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저것은 내가 다 들어 본 이야기야’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여러분 중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너무 선하고 똑똑해서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마치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보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시 내 문제는 내가 이미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자신이 선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인정할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왠지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몰랐다.
"플로렌스"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당신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알고 싶습니까?
교리에 대해 논쟁을 하는 것은 좋은 시작 방법이 못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정말 그분의 주장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지를 알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해야 합니다.”
어느 날 저녁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초대하는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는 그분을 영접하기를 원했다.
나는 내 친구들 중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나서기를 바라면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만일 한 명이라도 먼저 나섰다면 나는 그 뒤를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 다음 해 봄, 어느 주일 밤에 어떤 순회 전도사가 우리 마을에 왔다.
그 전도사는 우리 집의 거실에서 설교하기로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사람들을 초대하셨다.
당시 나는 주말을 맞아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내가 그 전도자의 설교를 듣기를 원하셨다.
나는 설교를 듣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예배가 시작 된 후에 슬금슬금 거실로 가서 2층 계단 꼭대기의 어두운 곳에 앉았다.
그런데 그곳에 앉아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설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 전도자는 "플로렌스"가 말한 것과 똑같은 말을 했다.
다른 점은 그가 더욱 강조해서 크게 외쳤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비록 법을 어겨서 말썽을 일으킨 적이 있었지만 나는 그래도 꽤 의로운 사람이다.
지옥은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악인들을 위한 곳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생각과 그 설교자의 말은 서로 너무 달랐다.
결국, 그가 "예수님을 영접할 사람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라고 말할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앞으로 나갔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는 다시 찾아와서 내게 말했다.
"주님이 당신을 특별히 사용하시려고 부르신다고 나는 믿습니다.
아마도 설교자로 사용하실 것 같습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그 설교자는 내가 설교할 수 있는 자리를 알아 봐주었으며,
나는 그 해 여름이 다 가도록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니면서 설교를 하였다.
내가 신앙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에 씨를 뿌린
충성스러운 두 여인과 열매를 거둔 순회 전도사 때문이었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례하였느니라" (요한복음 4장 37-38)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플로렌스"와 "헬렌"은 원래 "오자크"(Ozark)산지(山地)에 머물 계획이 없었다.
"헬렌"의 마음은 인도에 가 있었다.(나중에 그녀는 결국 선교사로 인도에 갔다).
"플로렌스"는 한국에 가기를 원했었는데,
한국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오자크 산지"로 오게 된 것이었다.
(나중에 그녀는 결국 주한미군의 사무원 자격으로 한국에 갔다.
그녀는 평일에는 군대에서 근무하고 주말에는 선교사로서 일했다.
그렇게 8개월을 일한 후에 그녀는 일주일 내내 선교의 일만 하는 전임 선교사로 머물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한 달 후에 병에 얻어 곧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미국에 있든지, 인도에 있든지, 아니면 한국에 있든지 간에 선교사였다.
그들은 "오자크 산지"에서의 자신들의 사역을 최악의 실패작으로 여겼을지 모르지만,
사실 성공한 선교사들이었다.
왜냐하면 내 마음에 생명의 복음의 씨를 뿌렸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 조금 문제가 있는것은 "플로렌스"선교사의 조선입국시기와 사망시기다.
그것은 직접 본 것이 아니기에 틀릴 수도 있을것이다.
묘비에는 한국동란 전인 1949년에 소천한 것으로 되어 있다.
맨 아래에는 - JOHN 12: 24 -라고 씌어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