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계약론 : 통치적 권위의 정당화
홉스의 계약론은 개별적이고 원자적인 개인들이 시민사회나 정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변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사회나 정부 구성의 원리로서 제시된 '자연발생설', '유기체설' 대신에 '동의'나 '계약'에 바탕을 둔 원리를 홉스를 포함한 근대 철학자들은 더 선호했다. 자연적인 결합보다는 자발적인 결합에 바탕을 둔 법률적 통합을 통해서 시민사회나 정부가 구성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회계약론은 근대 개인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으며, 절대왕권주의에 대항하는 정치적 개인주의의 승리를 과시하는 이론이었다.
홉스의 계약론은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의 계약론은 계약으로부터 발생하는 의무의 종류에 따라 다음과 같은 두 단계의 계약으로 구분해서 설명될 수 있다. 하나는 '예비적 계약(preliminary contract)'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계약(political contract)'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
예비적 계약이란 개인과 개인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으로 최소한 자연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첫 단계이다. 자연상태의 지속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하며 자기보호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상대방에 대해 상호 적대적인 행위를 중지하고자 하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기며 이 욕구는 평화를 추구하라는 자연법의 제1명령과도 일치한다.
여기서 개인들은 자연권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거나 유보하자는 동의를 하게 된다. 이 동의는 의무를 발생시킨다. 그러나 이 의무는 강제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의무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의무는 자연법의 명령으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도덕적이고 자발적인 의무만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 의무를 위반한 자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수단, 즉 힘이 없기 때문에 누구라도 자신의 이익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면 이 예비적 계약은 쉽게 파기할 수 있다.
이런 예비적 계약 단계에서는 누구도 실질적인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다. 이 불안정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감히 아무도 계약을 위반할 수 없도록 새로운 방책을 세우는 일뿐이다. 즉 모든 개인들이 계약을 위반함으로써 얻는 이득보다 위반했을 때 수반되는 고통, 즉 처벌이 크도록 만들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처벌을 규정으로 만드는 일과 처벌을 집행할 수 있는 힘의 소유자, 즉 통치적 권위를 소유자를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이 통치적 권위를 세우고 정당화시키는 일이 곧 정치적 계약이며, 이를 통해서만 '자기보호를 위해서는 평화를 추구하라'는 자연법의 제1명령은 실현 가능한 목표가 된다. 개인과 통치자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을 통해서 통치자는 공동의 힘(common power)을 소유하게 된다. 이 힘을 통해서 통치자는 개인들 간에 나타나는 불일치를 줄이거나 제거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한 의지(one will)에 따라 국민 통합을 이루어 낼 수 있다.
<리바이어던> 14장에서 설명한 사회계약론 속에는 '권위 부여하기(authorization)' 라는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왜냐하면 정치적 계약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자연 상태에서 개인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공동의 힘을 세우는 일이며, 이 일은 곧 통치자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게 자연권의 일부를 양도함으로써 그 개인이나 집단은 통치적 권위를 갖게 되며 권리 양도의 대가로 양도자들인 개인은 통치권자로부터 '보호'를 보장 받게 된다.
홉스는 인격체를 자연적 인격체와 인공적 인격체로 나누고,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대표(신)하는 개인 또는 집단을 인공적 인격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인공적 인격체라는 용어를 비유적으로 '대리인'과 '본인' 또는 배우와 작가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은 작가의 지시에 따라 주어진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리인은 본인의 지시에 따라 본인 대신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권위는 작가에게서 나오며, 대리인의 권위는 본인으로부터 나온다. 통치자와 국민의 관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홉스는 이 비유를 한편으로는 권위의 기원을 설명하는 일에,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과 통치자의 관계를 설명하는 일에 적용하고 있다. 홉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통치권자는 국민의 대리인이자 대표자이고, 국민은 대리인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의 소유자이자 장본인이다. 통치자와 국민의 관계, 즉 하나의 통치권자와 다수의 국민과의 관계에 대해 홉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수의 사람이 한 사람 또는 한 인격체에 대해 대표될 때 하나의 인격체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다수인 각각의 사람들 모두의 동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하나의 인격체를 만드는 것은 대표자의 통일성이지 대표되는 국민의 통일성은 아니다'
이 말에서 주목할 점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공적 인격체를 구성하는 데 국민의 동의가 필수적인 절차라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인격체가 하나인가 아닌가는 다수 국민의 통일된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의 수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명목적으로 말해서 다수는 다수이지 하나가 아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다른 의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위 국론의 통일이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욱이 하나의 인공적 인격체로 통일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비록 생각과 의견이 각각 다른 다수의 자연적 인격체들이라도 한 가지 점에서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은 각각 다를지라도 최소한 자기보호가 모든 존재의 궁극적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할 것이다. 물론 홉스가 찾아낸 최적의 전략은 정치적 계약을 맺는 것이다. 하나의 공동의 권력자를 세우는 정치적 계약을 통해서 다수의 의지는 하나의 인격체로 대표될 수 있다. 이 때 공동의 권력자가 반드시 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한 사람이거나 또는 하나의 통치 집단이라도 상관없다.
한 사람 또는 하나의 통치 집단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홉스는 '모든 개인들의 동의'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간단히 언급하고 만다. 그러나 14장에서 홉스가 사회계약론의 기본 절차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음을 상기할 필요도 있다.
'권위 부여하기'에는 두 가지 절차가 있다. 하나는 제2자연법에 따라 모든 개인들이 각자 자신의 자연권을 포기하는 절차이며, 다른 하나는 이 포기된 자연권을 통치권자가 될 사람에게 양도하는 절차이다. 이 두 절차는 '상호 호혜'의 원칙에 의존하고 있다. 일방적인 권리의 양도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자연권의 포기나 권리의 양도는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조건 아래에서만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그리고 이런 조건이 충족될 때 권위 부여하기도 가능하다. 권위 부여하기란 권리의 양도를 지칭하는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홉스는 <시민론>에서, "권리의 양도는 권위의 양도이다"라 말하고 있다. 따라서 통치적 권위는 정치적 계약이 이루어진 이후 한 사람 또는 하나의 통치 집단에 부여되는 것이다. 권위의 출처에 대한 홉스의 설명은 그의 전 작품을 통해 일관성 있게 유지되고 있다. 즉 권위는 국민의 동의라는 관점에서, 대리인과 본인, 배우와 작가와의 관계에서 설명되어야 옳은 이해가 가능하다.
홉스는 <리바이어던> 전편을 통해서 '통치적 권위는 국민의 동의로부터 나온다'는 견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국민적 동의'에 바탕을 둔 '권위 부여하기'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당시에도 여전히 널리 인정되고 있던 '왕권신수설'을 홉스가 부인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는 사실이다. 왕권신수설의 일반적인 주장에 따르면, 왕의 거부할 수 없는 권리와 권위는 모두 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왕권신수설에 따른 두 가지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통치권의 신성함과 권위의 종교적 기반이 신의 인정을 통해 확보됨으로써 반란은 어느 경우에도 인정될 수 없게 된다. 둘째, 국민은 통치자를 선출하는 일에 아무런 관련도 가질 수 없으며, 그 결과 복종에 대한 의무도 상당히 소극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신적인 권위에 근거한 왕권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왕권신수설을 부인함으로써 홉스는 통치자를 단지 국가의 활동과 관련되어 있는 일종의 직책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 직책을 맡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낫지도 않고 못하지도 않다고 가정하고 있다. 홉스가 강조해서 부인하고 있는 것은 통치권의 절대성이 아니라 통치권의 신적인 기원에 대해서이다. 홉스적인 의미에서 통치권은 절대적이어야 하지만 신적인 근거 때문이 아니라 통치권의 가지고 있는 저항할 수 없는 힘 때문이다. 통치권의 기원과 관련해서 왓킨스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히고 있다.
"결과적으로 홉스는 정치적 권위에 대한 기독교적 전통을 거꾸로 만들었다. 위에 있는 신이 아니라 아래에 있는 백성들이 자신들의 통치자에게 신성에 준하는 권위를 부여했으며 통치자를 필사의 신으로 만들었다."
'권위 부여하기'의 두 번째 의미는 백성의 의무 또는 책임을 법률적으로 정당화한다는 사실에 있다. <인간론>에서 홉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다른 사람이 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스스로 선언하는 사람은 본인이라 불린다. 행동과 관련해서 본인이라 불리는 사람은 소유물과 관련해서는 소유자라 불린다."
이 말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백성이 통치자에게 권위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도록 권위를 부여한다면 그것은 그 통치자가 수행한 행동에 대해 백성들이 스스로 책임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보통 일어나는 일에서도 본인과 대리인의 법률적 관계와 그에 따르는 책임의 분담량은 분명하다. 법률적인 책임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책임에서도 본인이 져야 할 부분이 훨씬 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홉스는 자연법을 어기는 통치자(대리인)에 대해서도 백성(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도덕적 책임인데, 이것까지 부담해야 하는 것이 본인의 몫이다. "대리인이 본인의 명령에 따라 - 이전의 신약에 따라 대리인이 본인에게 복종할 것을 약속했다면 - 자연법을 어기는 어떤 일을 했을 때 그것을 어긴 사람은 대리인이 아니라 본인이다."
오늘날 다시 생각해 보더라도 통치자를 선택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며 그 책임도 구민들이 져야 한다는 홉스의 말은 상징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의미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어떤 통치자를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그 결정을 내리는 국민들의 정치적 역량과 관련되어 있다. 훌륭한 통치자를 택하고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향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국민들 - 자신에게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지만 홉스를 절대군주론자로만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계약론과 권위 부여하기 이론을 통해서 보면 홉스의 정치론에는 민주주의 이론과 유사한 면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