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바꿔놓은 나들이 풍경, 언택트(untact) 여행이 대세다. 일정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배려하는 여행을 떠나보자. 최근 임시 개장한 하동편백자연휴양림은 언택트 여행지로 딱이다. 6km의 고즈넉한 숲길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땀 흘리며 걷고, 피톤치드 삼림욕까지 하고 나면 심신은 어느새 청량한 자연인이 된다.
재일사업가 기부,
사연 있는 편백숲
12살에 고향 하동을 떠나 자수성가한 재일교포 사업가 故 김용지(1928~2018) 선생은 고국을 오가며 비행기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던 헐벗은 산에 늘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1976년부터 1만 그루씩 3년간 편백나무 묘목을 일본에서 가져와 고향 땅에 심었다. 길게 내다보고 숲을 일구기 시작한 그의 꿈이 44년의 세월과 함께 덩치를 키웠다.
하동편백자연휴양림은 그렇게 시작됐다. 2015년, 김 선생은 자신이 일군 30만4264㎡, 20만 그루가 넘는 편백숲을 하동군에 기부채납했다. 당시 숲은 45억 원 상당의 가치로 평가됐다. 김 선생은 “더 많은 사람이 숲의 치유 혜택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며 40년 넘게 가꾼 숲을 기부했다.
그 숲에 15리,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6㎞의 트레킹 코스가 정비돼 지난 4월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하동군이 김 선생의 뜻에 따라 하동편백휴양림 조성사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이다. 하동군은 ‘숲속의 집’과 글램핑장 등 숙박시설도 준비중이다. 빠르면 이달 중 전국 자연휴양림 통합예약사이트인 ‘숲나들e’를 통해 숙박객을 받을 계획이다.
하동편백자연휴양림은 김 선생이 기부한 편백숲과 추가 확보한 인근 산지 등 전체 면적은 50만㎡, 편백나무는 45만 그루가 넘는다.
눈·코·귀가 즐거운
명품 트레킹 코스
휴양림 안내소 뒤편에 주차를 하고 ‘시오리 숲길’ 입구에 섰다. 숲길 옆으로 5m 수심의 사방댐이 보인다. 인근 주민들의 식수원이다. 휴양림이 위치한 골짜기 이름이 물안골. 반년 넘게 비가 안 와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붙은 이름이란다. 여름햇볕에 쨍하게 빛나는 사방댐 물빛이 짙푸르다.
길은 모두 3개 코스. ‘상상의 길’로 명명된 1코스는 2.7㎞, 2코스 ‘마음의 길’은 1.5㎞, 3코스 ‘힐링길’은 1.7㎞다. 코스와 코스를 중간에서 이어주는 건널목 역할의 짧은 숲길이 4군데, 1.2km 정도 나 있다.
숲길에 들어서면 훅 하고 달려드는 편백향에 깜짝 놀란다. 편백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 양은 어마어마하다. 소나무의 4배라고 하니, 45만 그루 편백숲은 말하자면 입 아픈 수준이다. 코가 호강한다.
발자국 소리만 나직하게 울리던 숲길에 동행이 있다. 상쾌함을 더하는 산새 소리다. 듀엣으로 주고받는 같은 종류의 새소리부터 반주하듯 끼어드는 저음의 새소리까지 돈 주고도 못들을 합창에 귀도 호강한다. 머리 위로 수령 50년을 바라보는 15m 키의 편백나무들이 따가운 여름햇살을 차분하게 가려준다. 해를 가리는 푸른 그늘은 눈까지 시원하게 씻어 준다.
“한 번 다녀간 후로
자꾸 생각나는 곳”
숲길 여기저기 벤치와 평상, 원형쉼터, 타워쉼터, 팔각정 등 다양한 형태의 쉼터가 마련돼 있다. 땀 식히며 앉아 찬찬히 숲을 둘러볼 수 있는 곳들이다. 2코스 중간, 임도와 만나는 지점에 널찍한 전망대가 있다. 멀리 천왕봉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휴양림 아랫동네인 오율·갈성·양지마을과 첩첩이 포개진 산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벌써 3번째 방문이에요. 옥종에 사는 친구가 소개해줘서 와봤는데,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전망대에서 만난 조창남(63·산청) 씨의 말이다. 올 때마다 감탄한다는 그는 부산·창원 친구들에 이어 이번에는 산청 귀촌인 친구들과 함께 왔단다. 양산에서 왔다는 이영희(57) 씨는 “당일치기가 너무 아쉽다”면서 “다음번엔 며칠 숙박하며 편백숲을 만끽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동편백자연휴양림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 산279-1 일원
※휴양림 내 차량통행 금지. 방문객은 안내소 뒤편 주차장 이용.
글 황숙경 기자 사진 이윤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