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헬리콥터 번개에서 유인상 대위와 김연미 중위가 떨어져 나와 낙오된 후 김연미 중위는 줄곧 유인상 대위와 함께 움직였다. 그러나 유인상 대위는 처음에는 김연미 중위도 헬리콥터 번개의 줄사다리에서 뛰어내린 것을 몰랐었다.
그는 공중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지자 한동안 데굴데굴 굴렀다. 두 다리를 쓸 수가 없어서 그는 속절없이 굴러야 했다. 그렇게 얼마동안 굴러가던 그는 야자나무의 밑동에 부딪치면서 겨우 멈췄다.
“으으읔!”
유인상 대위는 입을 악문 채 두 다리에서 밀려드는 고통을 참아냈다. 그는 신음을 토하면서 가슴팍의 호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응급상자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모르핀 주사를 꺼내 다리 부근에 푹 찔렀다.
“하아-!”
모르핀을 맞은 유인상 대위는 한숨을 내쉬며 진정을 했다. 모르핀은 즉시 효과를 발휘했다. 그를 통증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유인상 대위는 통증이 진정되자 야자나무의 밑동에 기댄 채 숨을 돌렸다. 이마에서는 더위와 통증으로 인해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오른손의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그러다 순간 동작을 멈췄다. 살며시 K-11 소총을 잡는 유인상 대위. 그는 재빨리 수풀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어? 야! 김 중위! 너-, 너 어떻게 된 거야?”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 자는 다름 아닌 김연미 중위였다.
“필승! 그렇게 혼자 가시면 어떡합니까?”
김연미 중위가 얼굴의 땀을 닦으며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거냐고!”
유인상 대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냥-, 뛰어내렸습니다.”
“뭐?”
“혼자서 헬기 탑승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서 뛰어내렸습니다.”
김연미 중위는 덤덤하게 말하고는 씨익 웃는다.
“이런 미친-!”
유인상 대위는 기가 막혀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선배님도 제가 반가운 거죠?”
“반갑기는! 인석아! 내가 미쳐!”
유인상 대위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하였다. 그러나 얼굴 한편으로는 은근히 반가운 기색이다.
“에이! 반가우면서도 그러신다!”
김연미 중위는 생긋 웃으면서 유인상 대위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잠시 말이 없었다. 유인상 대위의 부상이 생각보다 심했기 때문이다. 왼쪽 발은 인대가 끊어졌고 복숭아뼈의 일부가 밖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는 정강이뼈가 부러져 그 날카로운 끝이 살갗 밖으로 도출되어 있었다. 관통 당한 두 허벅지의 살에서는 여전히 핏물이 흘러내렸다.
“휴-! 한심하지?”
유인상 대위는 자신의 다리를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김연미 중위를 보고 씩 웃었다.
“……!”
김연미 중위는 말없이 돌아섰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들썩인다.
“어? 너 우냐?”
유인상 대위가 모른 척 하며 묻는다. 하지만 대답이 없다.
“울어?”
“아니요! 화가 나서 뒤돌아섰습니다.”
“왜? 화가 왜 나는데?”
“그냥요.”
김연미 중위는 얼른 손등으로 얼굴을 훔치고는 뒤돌아섰다. 그녀의 두 눈이 빨갛다.
“선배님 일단 자리를 뜨지요!”
김연미 중위는 유인상 대위의 오른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치게 한 후 그를 일으켜 세웠다.
“으으윽!”
유인상 대위는 일어서지를 못했다.
“안 되겠어! 일어날 수가 없다.”
그는 절망적인 음성으로 말했다.
“선배님! 제가 들것을 만들겠습니다.”
“아냐! 그럴 필요 없어! 어서 가! 여기서 얼른 빠져나가!”
유인상 대위는 손을 휘저으며 김연미 중위를 내쫓아댔다. 그러나 그녀는 듣는 체도 하지 않고 자신의 종아리 부근에서 미해병대에서 사용하는 Ontario S3 Marine Bayonet 총검을 뽑아들었다. 김연미 중위는 그 총검을 들고 근처의 나무로 가서 굵직한 나뭇가지들을 잘라내었다. 그리고 나무의 넝쿨을 잘라 끈 대용으로 사용해서 나뭇가지들을 엮어 들것을 만들어냈다.
“자-, 여기 들것에 누우세요.”
김연미 중위는 조심스레 유인상 대위를 부축해가며 그를 들것 위로 옮겼다.
“그냥 두고 가래도!”
유인상 대위는 그녀가 반강제로 부축해서 일단은 들것 위로 옮겨 앉았지만 마음이 영 불편하였다.
“연미야! 그냥 가!”
그러나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상의 군복을 벗었다. 하얀 러닝셔츠가 드러난다. 김연미 중위는 러닝셔츠를 벗더니 죽죽 찢었다.
“선배님 아프더라도 참으세요!”
“으윽!”
그녀는 찢어낸 자신의 러닝셔츠로 유인상 대위의 두 다리를 각각 힘껏 동여 맺다. 그녀의 하얀 러닝셔츠는 금새 빨갛게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유인상 대위의 출혈은 성공적으로 멈추었다.
러닝셔츠는 유인상 대위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많은 출혈을 하였기 때문에 이따 해가 지면 급격히 저체온증에 빠질 것이다. 따라서 옷을 더 입혀주지는 못할망정 입고 있는 옷을 벗겨낼 수는 없는 일이다. 이에 김연미 중위는 자신의 러닝셔츠를 찢었다.
김연미 중위는 지혈이 끝나자 뒤돌아섰다. 그리고는 브래지어를 풀었다. 그녀는 브래지어를 아래에 내려놓고 상의 군복을 들어 다시 입었다.
“선배님! 아까보다 더 아플 수도 있어요!”
김연미 중위는 브래지어를 들고 유인상 대위의 앞으로 다가와 반무릎으로 꿇어앉았다. 그녀는 브래지어를 반으로 잘라 한 쪽 브래지어 컵을 유인상 대위의 복숭아뼈에 대었다. 밖으로 노출된 복숭아뼈는 그녀의 부드러운 브래지어 컵 안에 쏙 들어갔다. 김연미 중위는 브래지어 끈으로 그 컵을 조심스럽게 동여 맺다.
“선배님! 이번에는 다리뼈를 맞출게요!”
“으아악!”
비록 모르핀을 맞은 상태였지만 골절되어 밖으로 도출된 정강이뼈를 살 속으로 밀어 넣어 다시 맞춤에 있어서는 그 통증이 엄청났다.
“조금만 더! 예, 다 되었어요. 잘 참으셨어요. 선배님!”
김연미 중위는 골절된 정강이뼈를 맞추자 나머지 브래지어 컵을 들어 재빨리 그 정강이뼈 부분을 감쌌다. 그리고는 브래지어 끈으로 조심스럽게 브래지어의 컵을 칭칭 감았다.
유인상 대위는 그녀의 응급처치가 끝나자 탈진했는지 그대로 뒤로 털썩 누워버렸다. 그리고는 헉헉대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
잠시 숨을 거칠게 쉬던 유인상 대위는 순간 숨을 멈추었다.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그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녀가 없다.
“연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