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를 잘 키워라
한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다양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능력은 바로 후계자를 양성하는 능력이다.
한 조직이 제 역할을 다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역량을 갖춘 리더들이 역할을 다 해야 한다.장거리 릴레이 달리기처럼 리더와 후임자들이 서로 바통 터치를 잘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김 형 철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아프리카의 큰 악어와 작은 악어
아프리카의 한 강가에 두 종류의 악어가 산다. 하나는 덩치가 작은 악어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덩치가 3~4배 큰 악어다. 이들은 서로 가까이 아주 가까이 살아간다. 큰 악어는 그 지역의 맹주로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다.
아무도 그 큰 악어를 건드리지 못한다. 이 큰 악어는 심지어 작은 악어까지도 먹이로 삼는다. 그야 말로 포악한 놈이다. 자연히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큰 악어가 작은 악어를 사냥감으로 삼고 있다면, 어떻게 이 작은 악어는 큰 악어 옆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답은 바로 이거다. 작은 악어는 큰 악어와의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지지만, 작은 악어는 큰 악어의 새끼를 잡아 먹는다. 이것이 바로 양자 간에 힘의 균형을 이루는 비밀이다.얼핏 보면 작은 악어의 행동이 비열한 것 같지만, 자신의 보전을 위해서는 큰 악어의 새끼를 잡아 먹음으로써 그 개체 수를 적정선 이하로 통제할 수밖에 없다.
후계자를 잘 키우지 않으면, 덩치가 큰 악어조차도 멸종하고 말 일이다.
후계자를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예로 들어보자.
서구 문명의 발상지는 그리스이다. 인간이 과학을 발전시키기 전에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신, 인간, 자연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이다. 신은 인간에게 벌을 내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을 주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로마 신화와 그리스 신화의 기본 스토리가 같다는 것이다. 단지 이름만이 라틴어로 되어 있다. 로마가 그리스 신화를 베꼈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이 바탕이 되어서 로마에서 법이 완성된다. 많은 관점에서 그리스가 로마보다 우월하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는 로마에 의해서 정복당했을까?
둘 사이에는 한 가지 재미있는 차이점이 있다. 그리스에서 황제가 되려면 혈통을 이어받아야 하는 반면에 로마에서는 그 정신만 이어받으면 된다. 혈통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지도자의 자질은 두 가지 큰 수레바퀴를 가지고 있는 마차와 같다. 능력과 도덕이 그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질문을 잘 던진다. 지도자를 선택할 때, 능력이 먼저냐, 도덕이 먼저냐? 양자를 다 갖춘 사람이 있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 사람을 지도자로 선발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나라면 당연히 능력이 우선이라고 말하겠다.
우선 무능력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그 조직은 망하기 쉽다. 나라의 지도자 경우에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것이 우리가 5년마다 홍역을 치르면서도 능력을 검증하려는 이유이다. 우선 능력 없는 사람은 제외시켜 놓고, 나머지 중 가장 도덕성이 뛰어나고 인품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선택해야 한다. 인성교육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로마 황제 히드리아누스의 후계자 승계 구도
로마에서 황제가 되면 우선 자신의 양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히드리아누스 황제의 경우가 아주 재미있는 사례다.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재능 있는 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자신과의 나이차가 너무 났기에 자신과 10여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안토니누스라는 또 다른 재능 있는 사람을 양자로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안토니누스에게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운다. 할아버지가 손자에 이르기까지 후계자 구도를 미리 짜둔 것이다. 히드리아누스가 죽을 때 아우렐리우스는 17세에 불과했으나 안토니누스가 죽을 때에 아우렐리우스는 40세였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한창 왕성한 시기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서 기울어가기 시작하는 로마를 유지해나가는 혁혁한 업적을 세운다.
가장 좋은 리더는 사람들을 리더로 키워주는 리더이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겨 일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자녀를 좋은 리더로 키우기 위해서는 자녀가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빨리 깨닫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우렐리우스는 할아버지의 구도 하에서 예비 지도자로서 좋은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어린 나이에 문학,희극, 음악, 지리학, 문법, 수사학, 법학을 두루두루 공부했으며 가정교사를 12명이나 뒀다. 가정교사 중 반은 그리스인이고, 반은 로마인이었다. 나중에 커서는 안토니누스 양아버지 옆에서 차기 황제로서의 수업을 계속 이어나갔다. 안토니누스는 중요한 결정사항이 있으면 아우렐리우스에게 물어보고 그 의견을 청취했다. 이것이 야말로 가장 좋은 황제 실전수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안토니누스는 자신의 친딸과 양아들 아우렐리우스를 결혼시켰다. 양아들이 사위도 되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능력 있는 인재를 발굴해 리더로 키워나가는 모습이다.
리더 중에서 최고의 리더는 사람들을 리더로 키워주는 리더이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큰 일을 맡겨주는 것이다. 사람은 일을 통해서 커간다. 큰 일 한 번 해내고 나면, 그만큼 훌쩍 성장한다. 반면, 리더 중에서 가장 떨어지는 리더는 자신의 부하와 경쟁하는 리더이다. 항상 잘못된 것만 지적하고, 주눅 들게 만드는 그런 리더 말이다. 부하를 주눅 들게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말하면 바로 기가 죽는다.자식에게도 마찬가지다.
부모들은 “너는 왜 저 애보다 축구를 못하냐, 영어를 못하냐, 수학을 못하냐, 친구가 없느냐”라고 말하곤 한다. 거기다가 한 술 더 떠서 “나는 너만할 때, 벌써 돈 벌었다. 학교에서 1등 했다. 운동 대표선수를 했다.”는 식으로 자식의 기를 완전히 꺾어 놓기도 한다. 부모가 말하는 재능을 다 갖춘 아이는 이 세상에 한 명도 없는데도 말이다. 즉 불가능한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아이를 다그치는 부모는 우선 자신을 돌이켜 봐야 한다.
우리 딸의 적성은 그래픽 디자인인데 금융인이 된 이유는?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큰 딸이 유치원에 갔다. 워낙 성격이 좋은지라 영어가 신통치 않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고 잘 다녔다. 큰 딸의 영어 실력이 신통치 않을 거라고 확신한 이유는 우리가 집에서 영어를 잘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실 써도 내 영어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집 사람이 유치원 선생 면담을 갔다 오더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줬다.
“여보, 우리 지은이가 나중에 커서 그래픽 디자이너 하면 잘 할거래요!”
나는 그 때 충격을 받았다. 사실 그것은 딸에게 대해 받은 두 번째 충격이다. 지은이를 데리고 정기 검진을 받으러 동네 소아과에 갔을 때 일이다.
소아과 의사가 “지은이는 키가 95센티미터군요.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 지은이 키가 얘 또래에서 어느 정도입니까?” “네, 좀 큰 편입니다.”“나중에 다 크면 키가 어느 정도 될까요?” “흐음, 보통 지금 키의 두 배정도 자랄 겁니다.”
“뭐라구요?” 나는 그 때 정말로 충격받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딸 시집 보낼 거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그런 모습의 날 쳐다보는 그 미국 여의사의 눈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여의사는 고등학교 다닐 때 반에서 7번째로 키가 컸던 나보다도 10센티 정도는 족히 더 커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큰 딸의 적성이 그래픽 디자이너일 거라는 유치원 선생의 말에 내가 놀란 이유는 이거다. 물론 1985년도 당시에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새로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5살이라는 그 어린 나이에 아이의 미래를 예측하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론 딸은 지금 그래픽 디자인과 전혀 관계없는 금융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그 유치원 선생의 예측이 맞고 맞지 않고를 떠나서 그 이후로 나는 아이의 적성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최고의 선물은 단연 자식의 적성을 일찍 일깨우게 하는 거다.
요즘 기업체에 특강을 나가서 비즈니스맨들을 만나게 되면서 이런 말을 가끔 듣는다. “김 교수님, 제가 대학 다닐 때 전공이 경영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 관심은 문학, 역사, 철학 쪽에 있었어요. 그런데 집안 형편상 할 수 없이 경영학을 전공 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가 특강 온 강사에게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 자신의 지난 삶이 자신의 적성과 관계없이 돈 버는 거에만 몰입된 것에 대한 진정한 푸념인지 알 길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식의 적성을 조기에 발견해주는 것은 부모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어려서는 자신의 적성을 스스로 모르는 경우도 많으니까. 적성의 조기 발견을 위해서는 자식에게 이것저것 경험할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한다. 그리고는 아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아이와 같이 의논하면서 아이가 뭐라고 말하는지를 경청하는 것이다.
어떤 회사에서는 모든 임직원에게 매년 자신의 후임자 후보 3명을 선정해서 상부에 보고하도록 하게 한다. 조직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 자리에 언제까지나 있을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후임을 추천하라는 것이다. 자신을 대체할 후보를 스스로 선정한다는 것이 한 편으로는 참 싫을 수도 있다. 내가 계속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자신의 부하와 경쟁하고 싶어 하는 못난 리더의 모습이다.
“니가 내 자리를 넘봐!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리더 밑에는 인재들이 모이지 않는다. 부하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특히 교육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교육에는 반드시 때가 있기 때문에, 받아야 할 때 받지 못하면 손해가 크다. 물론 평생교육이 대세이기 때문에, 교육은 늦게라도 받는 것이 안 받는 것보다 훨씬 낫지만,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받아야 할 시기에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후임자를 미리 선정해두라는 이야기도 결국 인재를 양성하라는 이야기로 해석해야 한다. 이 후임자 승계구도가 일찌감치 잘 되어 있는 회사는 일단 현직이 유고 시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생존해 나갈 수 있다.
창업이냐 수성이냐?
임금님이 신하에게 물었다. “창업이 어려운가? 수성이 어려운가?”
참 어려운 질문이다. 가장 쉬운 답변은 “그때 그때 달라요” “사람마다 달라요”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어떤 경우가 그런지에 대한 구체적 요건 제시가 없으면 그저 공허한 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식으로 답변하는 학생을 싫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질문 자체가 두루뭉술하니깐 답변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가끔 대드는 학생도 있다. 나는 그런 학생 좋아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학생은 ‘우문현답’ 해야 한다. 자, 다시 창업 대 수성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임금님의 질문에 한 신하는 이렇게 답한다.
“창업이 수성보다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가진 것도 없는 데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힘, 계략을 동원해서 일어서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지요.”
다른 신하는 이렇게 답한다.
“수성이 창업보다 어렵지요. 왜냐하면 성공하고 나면 방심하게 마련이니까요.”
나는 수성이 창업보다 훨씬 어려운 이유는 논리적으로 자명하다고 생각한다. 수성은 더 오랜 기간 동안 성공을 유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창업에 성공하고 난 뒤에는 쭈욱 수성해나가야 하니깐. 그런데 결정적인 것은 자신의 삶이 다하고 난 뒤에도 계속 수성해나가기 위해서는 후계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오랜 기간 동안 성공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후계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후계자에게 우리가 물려줘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돈을 버는 법이다.
창업 1세대는 자신이 얼마나 어렵게 일어섰는가를 잘 알기 때문에 돈 한 푼 아껴 쓰면서 회사를 꾸려 나간다.그런데 그 성공한 부모의 자식은 어려서부터 하루 자고 나면 어제보다 더 잘 살고, 또 내일은 더 잘 살게 되는 것이 세상의 당연한 법칙이라도 되는 양 낙관주의에 젖게 된다. 부모가 죽어라 고생하고 머리 써서 만들어 놓은 것이 그 자식에게는 저절로 굴러 들어온 복인 셈이다. 거기다가 부모까지 가세해서 자식에게는 자신이 겪었던 고생을 되풀이 시키지 않겠다고 결심이라도 하면 그 자식은 낙관적 사고를 할 수밖에 없다.
낙관적 사고는 좋지만, 근거 없는 낙관주의는 최악이다.
수성이 창업보다 훨씬 어려운 이유는 바로 후계자 양성에 성공하는 것이 정말로 어렵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혈통으로 모든 것을 이어가려는 조직에서 2세, 3세는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모든 것이 굴러들어 온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더 신기한 일 아닐까?
아빠가 아이와 오랜만에 낚시하러 함께 차를 타고 가고 있다. 그런데 호수 근처에 도착하니 저쪽에 펠리칸 세마리가 있는 것이 보였다. 엄마 펠리칸과 새끼 펠리컨이다. 엄마가 먼저 물 속으로 다이빙하더니 물고기 한 마리를 입에 담아 나왔다. 새끼가 재빨리 다가가서 엄마 입에 있는 것을 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 엄마는 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혼자 다 먹어 치운다. 그리고는 다시 물 속에 들어간다. 조금 있다가 다시 입에 물고기를 물고 나온다. 또 다른 새끼가 얼른 다가와서 그 물고기를 달라고 조른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혼자 그냥 꿀꺽먹고 만다. 세 번째도 역시 혼자 먹는다. 자 이제 새끼들은 어떻게 할까? 이제 세 번의 반복 학습으로 새끼들도 레슨을 분명히 받았다.
“얘들아, 이제 내가 세 번 시범 보였으니 어떻게 물고기를 잡는 건지 알겠지!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언제까지나 먹이를 대신 잡아다 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너희 스스로 먹이를 찾아내서 먹고 살아가야 한다는 거야!”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펠리칸이 인간보다 잘 할 수밖에 없다. 대신 인간은 자식에게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돈 버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성공한 리더는 자신의 후계자가 덩치 큰 악어의 자식처럼 작은 악어들에게 잡혀 먹히지 않도록 교육시키고 훈련시켜야 한다. 작은 악어는 사실 후계자의 마음 속에 있는 작은 방심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