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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22. 6:05
옛 거울을 닦아서
사람이 살면서 진정으로 혼자 있는 시간은 별로 많지 않다. 집이란 곳에는 가족이 있어 늘 무슨 일이던 걸리게 되고, 혹 길을 떠난다고 해도 대개는 누구랑 같이 가고 목적지나 행선지도 정해져 있어서 그 시간표대로 움직이게 되므로 혼자 있는 시간은 별로 없다. 그렇기에 어떨 때 혼자서 떨어져 몇 시간을 보내야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혼자 있는 데 대해 습관이 되어있지 않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감히 보통 사람에 속한다고 보면, 낯선 곳에서 아무도 없이 혼자서 몇 시간을 보내는 일이 쉽지가 않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쉽지가 않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언젠가 부산에서 열리는 무슨 행사가 있어 거기에 참석하려고 부산을 내려갔다가 우연치 않게 4~5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행사 시작시간보다 4~5시간 먼저 도착한 것인데, 행사장에 미리 들어가면 주최 측에 짐이 될 것이어서 혼자서 시간을 때워보자고 결심하게 됐다. 그런데 그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기껏 참아가며 점심시간을 늦추었는데, 혼자서 먹으려니 간단히 먹자며 자장면 집에 들어갔는데, 일요일이라 사람이 없어서인지 불과 10여 분만에 나오고, 먹는데도 10분도 채 안 걸린다. 백화점이나 대형쇼핑센터를 찾아 구경하는 것도, 이제는 재미가 없다. 젊을 때에는 뭐 그리 사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많더니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지를 않으니 매장에 가서도 별 흥미가 없어 30분을 넘길 수가 없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뭔가 예전에 문인들이 많이 그랬을 것처럼 멋진 다방이라도 찾아서 창가를 내다보며 커피 한잔이라도 멋있게 먹다가, 혹시 누가 아나? 멋진 마담이라도 만나서 얘기라도 나누게 되면 몇 시간이야 금방 가겠지...."이런 생각과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그날따라 비가 줄창 내리고 있어서 어디 마땅한 다방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몇 번을 돌다가 다방을 발견해 들어가면 너무 침침하기만 하고 영 분위기가 아니어서 발길을 돌린다. 몇 번 그러다가 쇼핑센터의 휴게실을 찾았다. 의자도 푹신한 것이 아니라 딱딱한데다 겨우 엉덩이만 걸칠 정도이고 분위기도 어수선하지만 그나마 어둡지 않고 밝아서 다행이다. 아메리칸 커피 한 잔을 시키니 이 동네는 묻지도 않고 시럽을 다 넣어주어 맛이 영 아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랴 그나마 이 커피라도 마시며 좀 쉬며 시간을 보내야지.
이런 나를 살려준 것이 책방이었다. 지하철에 내릴 때부터 보이던 책방이름이 적힌 간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단독건물인데다 층수도 꽤 있어 쉽지 않은 책방이다 싶었는데, 인문학술서적을 판다는 4층으로 올라가 보니 뜻밖에도 전국 주요대학에서 나온 책들이 모두 꽂혀 있다. 서울에서도 교보문고나 영등포서적 등 두 세 군데 밖에는 이렇게 전국 대학출판부의 책을 갖다놓지를 않는데, 이 국토의 한 귀퉁이라 할 부산의 서면에 왠 이런 좋은 서점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더듬어가 본다. 인문학에서부터 자연계에 이르기까지 혹 생활에 관한 정보까지 전국의 대학에서 나온 책들은, 일반 독자가 그렇게 많지도 않아서인지, 모처럼 알아주는 독자가 오니까 여간 반가워하는 눈치가 아니다. 모두 자기 얼굴을 잘 봐달라는 듯 제목이 윙크를 한다. 그 느낌과 표정은 어린 아이의 눈처럼 영롱하고 반짝인다. 그것을 보다 보니 한 30분은 금방 간다. 대충 허리도 아파오고 해서 뭐 보는 것은 그만두고 한 두 권이라도 사야지 하는 마음이 생길 즈음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이란 책이 눈에 띈다.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이라니.... 옛 거울을 다시 닦는 방법이란 뜻일 텐데, 하고 들여다보니 퇴계 이황 선생이 편찬한 것이라고 한다. 전주대학교 문화총서 19번째 책으로 김성환 교수의 번역으로 1998년 3월에 출판됐다.
"아니 퇴계 선생이 이런 책도 편찬했나? "
이런 생각과 함께 책을 펴보니 이 책은 예로부터 선인들이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행동과 사상의 거울로 삼은 명구들이 모아져 있다. 첫 머리에는 하(夏)나라의 포악한 걸(桀)왕을 몰아내고 은(殷)이란 새 나라를 세운 성탕(成湯)의 그 유명한
苟日新 참으로 어느 날 새로우면
日日新 날마다 새롭게 하고
又日新 또 날로 새롭게 하리라
라는 좌우명이 올라가 있다. 그 다음에는 하(夏)나라의 폭정을 무찌르고 새 왕조를 연 은(殷)나라도 주(紂)왕 시대에 다시 온갖 학정으로 민심이 이반하자 이를 무찌르고 주(周)나라를 연 무왕(武王)이 자신이 앉는 의자의 네 귀퉁이에 새겨놓았다는 <석사단명(席四端銘)>이란 것이 나오는데
安樂必敬 안락할 때 조심하면
無行可悔 후회할 일 없으니
一反一側 한번 일어나면 또 뒤집히는 것을
亦不可不志 생각지 않을 수야
殷鑑不遠 은나라 거울이 멀지 않다
視爾所代 네가 그 대신 아닌가?
라고 한다. 무서운 일이다. 이제 막 은나라를 쓰러트리고 새 왕조의 창시자가 된 왕이 바로 자신에게 망한 왕조의 교훈을 강조하며 안락에 빠지지 말고 조심하라고 경고를 내린다. 은나라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흥망의 거울이 그리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 책에는 주로 중국사에서 취한 것이지만 70여 개의 주옥같은 좌우명들이 모여져 있다. 이 중에 가장 많은 것은 역시 퇴계의 정신적인 스승인 회암선생(晦庵先生), 곧 주자(朱子)의 좌우명이다. 모두 21개가 실려 있다. 퇴계가 주자를 얼마나 연구하고 그를 본받으려 했는가를 여기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그 중에는 주자가 마흔 네 살이 되던 해에 남이 그려준 초상화를 보고 얼굴과 머리털이 벌써 초췌해진 데 놀라 지은 <사조명(寫照銘)>이라는 게 있는데
端爾躬 몸가짐은 단정하게
肅爾容 용모는 엄숙하게
檢於外 바깥 일 조심하고
一其中 오로지 중심 잡아
方於始 시작한 그대로 힘써
遂其終 끝까지 밀고 가야지
操有要 그 요령을 잘 잡고
保無窮 무궁히 지켜가라
라는 것이다. 옛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조금 이르다 하겠으나 나이 사십에 벌써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고 처음 먹은 그 마음 그대로 뜻을 세워 흔들리지 않고 나가자는 스스로의 다짐이 새겨져 있다.
퇴계 선생의 연보를 뒤져보니까 선생이 이 모음집을 펴 낸 것이 59살 때인 1559년이다. 그 전 해에 왕의 부름을 받아 대사성과 공조참판을 하다가 사직하고 고향인 안동에 물러가 있을 때에 쓴 것으로 보인다. 퇴계는 왜 이 교훈집을 편찬했을까? 회갑을 한 해 앞둔 시기에 그동안의 인생에 대한 반추와 함께 점점 노골화되어 가는 당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말고 학문의 길을 묵묵히 가야겠다는 다짐이었을까?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이란 책 이름도 주자의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주자가 임희지(林熙之)라는 사람을 전송하면서 쓴 시 가운데
古鏡重磨要古方 옛 거울 다시 닦으려면 옛 방책이 필요한 것
眼明偏與日爭光 눈이 환해져 햇빛과 밝음을 경쟁한다네
란 시 귀절에서 제목을 취하면서 답시를 썼다고 한다.
古鏡久埋沒 옛 거울 오래 묻혀 있으면
重磨未易光 거듭 닦아도 쉽게 빛나지 않으나
本明尙不昧 본래 밝음은 어둡지 않은 것
往哲有遺方 선철이 남긴 비방이 있다
人生無老少 사람은 늙으나 젊으나
此事貴自彊 이것은 결코 쉴 수 없는 것
衛公九十五 위공도 아흔 다섯 나이에
懿戒存圭璋 계를 세워 행하지 않던가.
이제 그 뜻이 조금 보인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선인들이 남긴 삶의 좌우명의 가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 법이니 이를 잘 익히고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가르침이자 스스로의 다짐이다. 바로 이런 연유로 조선왕조의 르네상스를 이끈 정조대왕도 태자를 가르칠 때에 무더운 여름이면 반드시 이 책을 강학했다고 한다. 조선 왕조 역대의 사적(事績)을 적은 역사책으로 고종 때에 완성한 『국조보감(國朝寶鑑)』에 따르면 정조대왕 때인 무오년(1798년), 우의정 이병모(李秉模)가 아뢰기를 "태자가 <고경중마방>을 강학한 이후 학문이 날로 발전하니 신은 참으로 기쁩니다"라고 말하니 정조는 " 이 책은 퇴계 선생이 편집한 것이다. 열성조(列聖朝)에서 이 책을 높여오지 않은 바 없고 영조대왕 역시 이 책을 읽었고 경연(經筵)에서도 읽었고 성균관 유학자들은 달마다 세 차례씩 강론한 바 있다. 지금 날씨가 무덥기에 간단한 책을 찾고자 이 책을 강론한 것이다""라고 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그런데 이 책이 귀해진 모양이다. 이 책을 다시 펴낸 노상직(盧相稷)이란 사람은
"자신의 집에 영변에서 간행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멀리서 친구가 찾아올 때마다 항상 먼저 이 책을 내놓았고 받은 자는 이 책을 베껴간 지 벌써 수십 년이다. 그 어느 하루도 펼쳐보지 않은 적이 없어서 너덜너덜하여 볼 수가 없다. 이에 다시 간행하여 사방에서 이 책을 찾는 자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라고 다시 펴낸 경위를 밝히고 있다.
이제 마지막 무더위를 피해 집 안에 앉아 이 책을 펴보니 이 책을 펴낸 퇴계의 마음가짐과 정조대왕이 자식을 가르치며 가졌던 마음가짐이 느껴지며 삼가 마음이 바로 세워지는 느낌이다. 옛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태하지 않고 더욱 마음과 몸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이처럼 조심을 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들이 남긴 좌우명 하나하나가 그냥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동방의 주자라는 둥 온갖 존경과 수식어가 따르는 퇴계 선생이고 그가 쓴 글이나 행적은 수없이 많지만 우리가 그의 가르침을 아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학교시간에 배운 주자학의 개론, 이기일원론이니 이기이원론이니 주기설이니 주리설이니 하는 것 외에 배운 것이 무엇인가? 그런 주자학의 최고봉인 성리학이 우리에게 얼마나 어렵게 전달되고 있는지를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고등학교를 나온 누구도 그 뜻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대유학자의 가르침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히려 이 잠언집에서 볼 수 있는 가르침들, 인생의 긴 여정에서 나이가 먹어도 결코 자만하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검소하고 밝고 맑게 자신의 목표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이 가르침 이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원래 선생의 학문은 평이하고 명백한 것이 특징이고 선생의 도덕은 정대하고 광명하다. <국조명신록(國朝名臣錄)>의 묘사대로 꾸미지 않고 소박한 것이 선생의 문장이고, 가슴 속은 환히 트이어 '가을 달 얼음 항아리(秋月氷壺)'같았으며, 웅장하고 무겁기는 산악과 같고, 고요하고 깊기는 깊은 못 같다. 그러나 우리는 한문에 가려, 철학적인 면만을 앞세운 고등학교 윤리교과서에 가려 선생의 본 가르침을 접하지 못했다. 이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이란 한 권의 책을 편찬한 그 마음을 만나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마지막 여름, 이미 가을이 노크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부산의 어느 서점에서 만난 한 권의 책이 참으로 좋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나에게는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다 생긴 몇 시간의 자유로운 외톨이 시간, 그 시간이 있었기에 부산 서면에 있는 '영광도서'란 책방에 들릴 수 있었고, 전국 대학의 출판물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그 서점 때문에 퇴계 선생이 편찬한 이 책을 만날 수 있었으니.....
그런데 감사해야 할 대상은 오히려 그 서점의 사장님이란 생각이다. 요즈음같이 어려운 세상,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 세상에 서울도 아니고 부산에서 전국 대학의 출판물들을 다 갖다놓는 정성, 그 정성이 곧 부산의 문화계를 지탱하고 있는 힘이라 할 것이다. 영리로 따지면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생각으로 책방을 돌아보니 없는 책이 없다. 별로 선전도 안 된 필자의 책도 한 켠에 놓여있다. 이 서점의 담당자들이 사장의 뜻에 따라 열심히 읽을 만한 책을 찾아서 모아놓는 모양이다. 요즈음과 같은 시대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산 서면 '영광도서'의 사장님과 직원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표한다. 그리고 이번 작은 인연을 계기로 앞으로 옛 거울을 닦듯이 자주 스스로의 마음을 닦아야겠다는 작은 결심도 해본다.
명재 윤증의 고택
추신)
12년이 지난 최근 우연히 명재 윤증의 시를 고전번역원의 사이트에서 들추다가 이 고경중마방에 대해 윤증이 시를 쓴 것을 보게 되었다.
삼가 퇴도(退陶) 선생의 고경(古鏡) 시에 차운하다(敬次退陶先生古鏡韻)라는 제목으로
.... 『명재유고』 제1권 시
라고 하고 있다. 맨 마지막줄에 나오는 규장이란 말에 대해서는
"규장은 고대 조빙(朝聘)에 사용하던 옥으로 만든 귀중한 예기(禮器)이다. 《예기(禮記)》 빙의(聘義)에 ‘규장특달(珪璋特達)’이라 하여, “규장을 가진 이는 다른 폐백(幣帛)을 갖추지 않더라도 곧바로 천자를 뵐 수 있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는 사람의 덕(德)과 인품이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출하게 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라는 설명이 들어있어서 전체적으로 윤증이 퇴계가 남긴 고경중마방을 소중히 여겼음을 알게 해준다. 그야말로 옛 거울을 12년 만에 다시 꺼내어 본 셈인데 여전히 녹슬지 않고 티끌이 없어 나의 얼굴과 마음을 비춰볼 수 있음을 알겠다
[출처] 옛 거울을 닦아서 (고경중마방)|작성자 동계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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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옛 거울은 오염되지 않은 본래의 깨끗한 마음을 의미한다.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