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5시이다. 옆 지기들이 깰까봐 조용하게 일어나 아침기도를 바친 후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데 다미안이 일어난다. 사실 밤잠을 설쳤다. 아주 오래전에 장남삼아 사주를 보니 역마살이 있다고 했는데, 역마살이 있는 팔자치곤 특이하게 집이 아니고는 편안하게 잠을 청하지 못한다. 거기다 어제 밤엔 우리 다미안회장님이 리모컨으로 밤새 고문을 했다. 선잠을 깨어보면 티브이가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고 회장님 손에는 리모컨이 꼭 쥐어져 있다. 리모컨을 조심스럽게 빼내어 티브이를 끈다. 한참이 지나면 꿈인지 생시인지 또 티브이가 혼자 떠들고 있고 리모컨은 여전히...ㅋ. 리모컨에 무슨 원한이 있나. 아가들이 젖병을 쥐고 잔다면 이해가 가는데, 리모컨에 목숨거는 사람은 처음이다. 야뽁강에서 주님의 천사와 밤새 씨름을 했던 야곱이 차라리 부럽다. 난 밤새도록 다미안이 집착한 리모컨과 씨름을 했다. 한 참이 지났는데 막내 알비노는 꿈속의 공주를 만나는지 기척이 없다. 아래층에 콜을 하여 자매들에게 연락하니 벌써 꽃단장이 한창이란다. 단잠을 깨우기가 미안했지만 알비노를 깨워 출발할 준비를 한다. 새벽에 원동성당을 가려고 했지만 미사와 겹칠 것 같아 아침 식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성당 근처 골목을 찾아드니 올갱이 해장국집이라고 쓰여진 노랑색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취객들에겐 빨강 간판이 시선을 유혹하는데...해장국 집을 하려면 노랑색 간판이 탁월한 선택일 것 같다. 새벽부터 올갱이의 정체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다가 결국 다슬기, 대사리와 같다고 의견 일치를 보고 “맛이 어떨까?”하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식당으로 들어가니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가 주방에서 반기신다. 음식에 정성을 다해달라는 간접 표현으로 전라도에서 왔다고 너스레를 떤다. 모두 올갱이 해장국을 주문하고 하루 일정을 이야기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십자고상이 벽에 걸려 있다. 전라도에서 이사 온 교우이셨다. 행운이다. 전라도에서 오신 분이라면 음식 맛은 일단 안심이다. 거기에 교우이시라니.... 역쒸~ 맛이 기막히다. 커피 자판기에서도 아메리칸 에스프레소가 나온다. 자연스럽게 식사 후 기도에 정성이 들어갔다. 겨울 바람에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다미안의 담배 연기를 뒤로하고 잰 걸음으로 원주교구 주교좌성당인 원동성당에 도착했다. 지학순주교님의 삶과 어울리는 회색의 석조 건물에 긴 밤을 지나온 태양이 서서히 몸을 누인다. 새벽 미사가 끝난 주교좌성당엔 기척이 없다. 성당 안이 너무 어두워 불을 켜려 했지만 스위치를 찾을 수 없다. 함께 앉아 조배를 하는데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성체등이 차라리 더 가까이 느껴진다. 잠시 지나 사무장님이 낯선 이방인들을 발견했는지 성당으로 들어왔다. 불 좀 켜달라고 하니 안 된단다. 우리 성당 “영수”만 같았으면 꽉~~해주고 싶었지만 왜관수도원으로 서둘러 가야 하니 맘속으로 만 궁시렁 궁시렁하고 서둘러 네비양에게 왜관가는 길을 물어본다. 네비양이 이상하다. 중앙고속도로를 통해 가는 줄 알았는데 자꾸만 충주방향으로 이끌고 간다. 지방도로라 주변의 시골 마을이 참 정취있다. 중간에 휴게소가 있는 주유소에 들러 애마에게 아침을 먹이고 추억의 가요를 분위기 잡고 부르며 가고 있는데 네비양의 외마디 외침에 모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직진하면 “야동리”란다. 무시기? 이 신선한 아침부터 야동이라니.....눈이 의심스럽다. 길 옆 작은 시골학교 교문에도 “야동초등학교”라고 배짱 좋게 이름표를 새겨 놓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모두 단정한 옷차림인데? 전통을 중요시하는 것도 좋지만, 이건 아닌 거 같다. 누군가 끼득거리며 야설을 하려는데 갑자기 밀려오는 물안개가 분위기를 바꾸어 주었다. 충주호이다. 바람 한 점 없는 수면 위로 어둠의 수풀을 헤집고 물안개가 무수히 피어오르고 아스라한 추억의 실마리들이 전설처럼 밀려온다. 손을 내밀어 호수의 부드러운 뺨을 만져보고 싶었지만 갑자기 날아오르는 철새의 요란한 날개 짓에 정신을 가다듬고 중앙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려 문경을 지나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에 도착하였다.
왜관수도원의 옛 성당은 안타까운 일을 애써 잊으려는 듯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베네딕도 수사님들의 일상은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에 충실하여 새벽 5시에서 시작하여 밤 10시에 있는 끝기도까지 기도와 노동으로 짜여져 있다고 한다. 하루에 다섯 차례 성당에 모여 공동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오전, 오후 두 차례 각자 자신의 소임에 따라 일터에서 노동을 하며 생활한다. 수도원 안에는 분도 출판사, 베네딕도 미디어, 목공소, 유리화공예, 금속공예, 농장 등 여러 종류의 일터가 있었다. 성당 뒷길을 따라 수사님들의 흔적을 묵상하며 걷고 있는데, 단발머리의 아가씨가 성경을 옆에 끼고 새롭게 단장한 성당으로 급히 달려간다. 무슨 일일까 궁금하여 뒤 따라가 성당 문을 열려는데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려온다. 그레고리안성가이다. 아, 수도원의 미사!! 심장이 멈추는 것 같다. 오랜 지기였던 수사님께서 수도원에서 종신서원을 할 때 가슴 시리게 들었던 저음의 멜로디가 다시금 내 영혼의 가면을 벗기고 맨 얼굴을 드러내게 한다. 아내와 자매들의 얼굴에도 이슬이 맺혀간다. 냉정한 삶 그리고 일상의 나태함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이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내어주신 주님이 얼마나 고마운지..... 비록 유명한 분도 햄을 맛보진 못했지만 수사님들의 그레고리안성가의 여운을 가슴에 담고 낙동강 줄기를 거슬러 가실성당으로 향한다.
가실성당은 '하늘이 사랑한 남자'와 '하늘도 포기한 여자'의 예측불허 만남을 소재로 신학생의 삶과 사랑을 잔잔하게 그린 “신부수업”의 촬영지로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자주 찾은 곳이다.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구미 쪽으로 접어드니 오른편으로 낙동강이 길과 벗하여 굽이굽이 흐르고 있다. 알비노에게 카메라를 주고 몇 컷 부탁하였다. 그렇게 10여분을 달리니 왼편에 정다운 이정표가 보인다. 가실성당이다. 성당의 달력을 보면서 언제쯤 가 볼 수 있을까? 했는데 그리움이 쌓이기도 전에 만나게 되었다. 가실성당은 1895년에 설립되었다. 한국전쟁 때에도 파괴되지 않고 인민군 병원으로 사용되었단다. 성당 뒤편에 있는 순례자의 집은 항상 개방되어 순례객들을 맞는다. 성당 마당이 참 넓다. 성당만큼이나 오래된 감나무위에 까치가 앉아 우리 일행을 맞는다.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성당이다. 주일 미사가 막 끝났는지 성모상 앞 넓은 뜰에는 동네 아이들이 뛰어 놀면서 일부러 사진 찍는 걸 교묘히 방해한다. 귀여운 녀석들이다. 가을날 빨강 감이 열려 있는 성당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빈센트 반 고흐가 지냈던 프랑스의 아를르를 홀로 여행하던 중 만났던 포룸광장의 오래된 성당이 떠올랐다. 성당에 들어가니 14처의 그림이 참 예스러워 정겹다. 아, 이렇게 예쁜 성당 옆에 나의 집을 짓고 싶다. 봄이면 겨울을 헤집고 올라오는 봄나물을 뜯어 된장국 끓이고, 가을엔 감을 따다 실에 꿰어 곳감도 만들고...온 좋은 날이면 삼종기도를 알리는 성당 종도 치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날은 수도복을 입은 딸아이의 옆에서 성당 종을 울리고 있는 황홀한 꿈을 꾸기도 한다. 난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는 수도자의 소박하고도 거친 삶을 외람되게도 낭만적으로만 그린다. 참 단아하면서도 평화로운 가실성당을 뒤로하고 봄날처럼 따사로운 겨울 햇살을 듬뿍 받으며 대구로 접어든다. 햇살에 비친 낙동강이 은어의 등처럼 반짝인다. 이제 샬트르성바오로 수녀원에 간다.
수녀원으로 가는 도시의 골목길이 고향의 논길처럼 정겹다. 봄 소풍가는 소년처럼 설레인다. 샬트르성바오로 수녀원은 대구교구청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교구청 아늑한 주차장에 차를 멈추고 큰 호흡을 한다. 샬트르회 수녀님들이 묵상하시며 고즈넉한 교구청 숲길을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으신다. 마주치는 수녀님들을 한 분이라도 놓칠세라 멀찍이서 바라보며 걷다보니 수녀원 입구다. 대문에서 안내를 하시는 수녀님께 수녀원 안내를 부탁하니 주일이라 힘들다고 한다. 아무렴 어떠하랴, 서둘러 사진을 찍은 후 다미안과 알비노가 자매들과 함께 교구청 성모상 앞으로 이동한다. 혼자 남아 안내수녀님께 친구수녀님의 이름을 말하며 연락을 부탁했다. 누구냐고 물으신다. 난처하다. 얼른 주머니에 챙겨 두었던 가나초콜릿 하나를 드리면서 이름만 말하면 달려오실 거라고 했다. 눈치 빠른 수녀님께서 “연락 안하고 오셨나요? 오늘........!” 하늘을 보니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시리다. 교구청 성모상 앞엔 수많은 사람들이 묵주기도에 열심이다. 루르드 성지같다. 벤취에 앉아 담요를 덮고 기도하는 자매, 휠체에에 앉아 연신 고개를 읖조리며 기도하는 할머니, 두 팔을 하늘까지 닿도록 치켜 올리고 묵주기도를 바치는 중년의 남성....사람 수 만큼이나 기도의 사연도 많겠지? 성모상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나의 소망도 기도에 담아 보았다. 아름다운 성모님의 눈을 바라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내 표정 너머의 진심을 꿰뚫어 보시는지 엷은 미소를 띤 성모님의 얼굴이 차라리 슬퍼 보였다.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고 지나가는 자매님께 계산성당을 물어보니 조금만 가면 된다고 위치를 알려준다. 아파트 숲 사이에 대구교구주교좌 성당인 계산성당이 웅장한 자태로 자리잡고 있다. 성당입구의 성모상 옆에 오래된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성당은 전형적인 고딕양식으로 높은 첨탑이 좌우에 있고 가운데에는 장미창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성당 내부는 전동성당을 연상하게 하였다. 제대 옆에서는 복사들이 전례연습에 열중이고 수많은 순례객들이 기도한다. 성당 주차장을 벗어나려는데 다니엘라가 빨리 곱창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시계를 보니 점심때가 지나간다. 대구에 가면 곱창을 먹어봐야 하지만 난 입맛이 없다. 재촉하는 다니엘라에게 괜히 짜증을 냈다. 옆에 있던 베로니카와 아퀼라 자매가 천천히 먹자고 에둘러 분위기를 바꾸어 준다. 고맙다. 우린 이렇게 이틀 동안의 여정을 통해 서로를 챙겨주는 고마운 사이로 변해갔다. 다니엘라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애써 농담을 하며 경북대학교 근처를 지나다 보니 곱창집이 즐비하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가? 한바퀴를 빙~돌아 골목골목을 누볐지만 주차장을 찾을 수 없다. 조수인 알비노가 그냥 가자고 한다. 다미안도 언양으로 가다가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자고 한다. 난 다니엘라 눈치만 살폈다. 마침내 오케이 사인을 한다. 대구에서의 허전함과 어색함만을 남기고 마지막 목적지인 언양성당을 향해 출발한다. 기분 전환이 필요한지 막내 알비노가 특유의 징그럽지 않은 애교를 부리며 신나는 디스코 음악을 튼다. 나도 특기인 고고장 디제이 실력을 큰소리로 뽐내며 부질없는 상념을 털어버린다. 우리들의 흥겨운 대화가 다시 시작되고 애마인 쏘렌토도 힘차게 속력을 더한다. 이제 마지막 순례지인 언양 성당이다. 언양성당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반길까? 설레인다. 렛쯔 고우 투 언양성당!!
시원한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다 평사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잠시 멈췄다. 참 넓고 깨끗하다. 난 이서에서의 주문 실패를 거울삼아 가장 평범한 김치찌개를 용감하게 선택했다. 곱창의 미련을 김치찌개로 대신하려고 식사기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숟가락을 움직였다. 오 마이 갓토!! 난 단무지에 밥만 먹었다. 언양성당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며 배고픔을 잠시 잊었다. 멀리에 신불산과 가지산의 보인다. 언양이다. 언양은 영남 알프스로 유명한 준봉들로 둘러쌓인 아늑한 시골 도시였다. 나들목을 통과하여 작은 다리를 건너니 천변을 따라 시장이 살내음을 풍기며 자리 잡고 있다. 어디쯤 일까? 오래된 성당이니 눈 짐작으로 마주 보이는 앞산 어디에 고운 모습을 숨기고 있을 것 같았다. 예상 적중! 시골 도시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아파트를 헤집고 가니 산허리에 고풍스런 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언양 성당, 얼마 전 오치동 교우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기고 떠나신 모니카 수녀님의 친정 성당이다. 아쉽게도 첨탑의 지붕을 하얗게 덧칠했다. 언양지역은 박해시대부터 순교자를 비롯한 많은 신앙의 유산을 간직한 곳이다. 지금의 석조 건물도 1936에 건립된 유서깊은 성당으로 30여분의 수도자와 그 보다도 더 많은 성직자를 배출하였단다. 대단한 신앙의 결실이다. 언양성당만의 특별한 영성이 있을 것 같아 차분한 마음으로 순례를 하였다. 본당은 2층으로 된 석조건물로 맞배 지붕이다. 특이 한 점은 뒷면을 붉은 벽돌로 마감했다. 넓은 운동장에 중학생들로 보이는 학생들이 농구에 열심이다. 굴러온 공을 그물망을 향해 힘껏 던졌다. 아쉽게도 링을 맞고 튕겨버린다. 실없이 웃으며 성당을 돌아서니 성모상이 보이고 언덕위에 야외 십자고상이 자리잡고 있다. 십자고상에 가까이 가보니 뒷동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주변 성지가 안내되어 있다. 죽림굴, 살티, 순교자들의 묘소....참 많다. 초대교회와 순교자들의 영성을 소중히 간직한 성당이구나. 이 곳 성당에서 신앙의 추억을 간직한 분들의 영성이 부럽다. 뒷산으로 들어서니 성모동굴까지 800m란다. 가보고 싶었다. 저 만치에서 조심스럽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다미안과 지기들을 불러 성모동굴까지 올라가자고 했다, 무슨 당연한 말을 하냐?는 반응이다. 산모롱이를 돌아서니 잘 단장된 무덤이 보인다. 누군가 예쁜 꽃다발을 두고 갔다. 순교자 오상선의 묘란다. 우리도 잠시 기도를 하고 성모동굴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편안한 흙길을 따라 걸으며 깊은 묵상에 잠겼다. 주위엔 모든 잎새들을 털어버린 억새들이 잡초처럼 빼곡이 서있다. 산짐승이 지나가는 지 수풀을 헤집는 소리만 들린다. 대나무 숲이 시작되는 길에서부터 십자가의 길을 조성하려고 예수님의 고난의 여정을 커다란 돌 위에 섬세하게 새겨 두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서서히 맺혀 올 때 쯤 시야가 확 트인 중턱에 도착하니 자연 동굴이 보인다. 성모동굴, 아름다운 성모상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1박 2일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기도를 바쳤다. 성모동굴에서 바라보는 언양 고을의 모습이 참 정겹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바치고 언양을 바라보며 신앙의 불씨를 소중히 지폈으리라. 숱한 사연을 간직한 성모상을 유심히 바라보니 손마디가 반짝거린다. 나도 성모님의 손가락을 부드럽게 잡고 애틋한 마음으로 사랑의 화살기도를 바쳤다. 석양도 아름답다. 오던 길을 되돌아오며 전화를 한다. “수녀원입니데이~~” 모니카 수녀님께서 전화를 받으신다. “다니엘입니데이, 언양성당에 왔습니데이” “...... ^.^ ㅎ”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수녀님의 맑은 목소리가 정답다. 기도 많이 하고 오라는 당부도 놓치지 않으신다. 성당에 들어가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소담스런 성당안의 모습에서 아늑한 품위가 느껴진다. 제단 위에는 성모자상, 예수상 그리고 백합을 들고 있는 성인상이 모셔져 있었다. 성요셉 상인 듯하다. 청년들이 찬양 미사를 준비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 청년회활동을 하던 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참 아름답고도 시린 추억이 있던 시절이었다. 이런 저런 기억을 회상하며 찐~하게 기도를 드렸다. 손을 뒤로 포개어 등으로 성당 문을 살며시 밀어 닫으며 오래된 두 그루의 향나무에 시선을 한참 동안 멈추고 쉼 호흡을 한다. .........행복하다. 비록 짧은 여정이었지만 특별한 추억이었다. 풍수원의 아름다운 모습과 용소막성당에서의 미사가 떠오른다. 가실성당의 단아한 아름다움, 샬트르에서의 아쉬움을 따뜻하게 위로해준 언양성당의 고즈넉한 향기가 나의 영성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리라. 내년 겨울 방학 땐 여유로운 일정으로 주님과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싶다. 다음에 언양에 오면 떡갈비 불고기에 곁들여 푸릇한 미나리에 된장을 푹 찍어 먹어보리라. 이제 광주로 간다.
|
|
첫댓글 형님들 덕분에 이리 좋은 곳을 다니면서 좋은 추억간직하게 되어 감쏴^^
멋저 부러요, 부럽습니다. 맛있는글이 입에 척척 달라 붙네요.
같이 참석을 하지는 못하였지만 성지순례를 한 기분이 드는군요. 감사합니다
배쉰자!!
알써. 담엔 같이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