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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동안 교사로 근무하는 기간 동안 아마 담임교사를 한 기간이 20년 정도가 될 것 같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을 가고 2학년 때 야영을 간다. 야영은 20년 전 까지는 모든 프로그램을 교사들이 직접 담당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는 야영장에 인솔과 질서유지 정도만 교사들이 담당하고 프로그램 운영은 야영장 측에서 담당하게 되었고 200년대에 들어와서는 학교에서 인솔해 가서 야영장 측에 인계하면 그 시간부터는 야영장 측에서 모든 행사를 전담하고 퇴소식을 마친 후 학생들을 학교까지 인솔하고 오면 교사의 임무는 끝이 난다. 한마디로 엄청 손쉬워 졌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학생들의 모든 체험 행사(수학여행, 야영활동, 소풍 등)의 학생들의 인솔책임자는 교감선생님이다. 물론 행사 추진의 실무 책임은 학년부장 선생님이지만, 총괄책임은 교감에게 있다.
강원도에는 강원학생 야영장이 주문진에서 진부로 가는 길목에 있는 소금강에 있었다. 학생인원 감축으로 폐교가 된 초등학교를 야영장으로 사용하게 된 곳이었는데 도교육청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 교육청에서 파견된 야영장장과 담당 연구사들이 월요일 오전에 학생들의 입소식에서부터 야영장을 운영한다. 매주 같은 업무를 반복하기 때문에 본인들에게는 조금 식상하고 지겹게 느껴지겠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는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 시설도 학교 건물이었기에 체육관 또는 강당이 있어서 우천 시에도 실내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등이 있어 운영이 충실한 편이다. 게다가 비록 천막으로 지붕과 벽체가 되어 있지만 방갈로가 있어서 학생들이 텐트를 가져갈 필요도 없어서 좋다. 이곳에서는 학생 생활지도는 인솔교사가 담당하고 야영장 측에서는 프로그램 운영만을 담당한다.그래서 각반 담임교사들이 학생들 식사 등을 살펴주어야 한다. 야간에는 조를 편성해서 순찰을 도는 일까지 담당하다 보니 상당히 고달프기도 하다. 이런 곳에 오면 학생 중에는 반드시 한잔 해야 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놈들이 꼭 있다. 집에서부터 소주를 몇 병 사서 배낭이나 가방에 숨겨 오는 놈들도 반드시 있어 이놈들을 적발하고 술병을 압수하는 일이 첫 번째 과제이다.
군대에서 야외 훈련시에 필수적으로 실시하는 군장검사처럼 학교에서 출발하기 전에 장비 검사라는 명목으로 학생들을 강당에 집결시켜 1조의 장비는 2조가, 2조는 3조가, 3조는 4조가 장비를 점검하게 한다. 물론검사에 철저를 기하기 위해서 최고의 실적을 올리는 학생에게는 가산점을 주겠다는 달콤한 사탕을 내걸기도 한다. 사실은 장비검사는 주류 반입을 차단하기 위한 주류 적발을 위한 검사이다.
숨겨오는 놈들도 기발하게 숨겨오지만 적발하는 놈들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자기들끼리는 통하기도 하고 자기도 숨겨 봤기에 잘 찾아내는 것 같다. 출발할 때 가지고 오는 주류는 장비검사를 통해 전부 적발해 내지만 문제는 현지에서 술을 사오는 놈들을 차단시키는 방법이다. 소금강 야영장은 술을 살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어서 가게 몇 곳만 가서 주인에게 미리 학생들에게 술을 판매 하면 담당 관청에 신고하겠다고 미리 경고를 한다. 같은 지역사회라면 비록 술을 판매했다는 것을 적발해도 막상 신고하기가 조금 어렵지만 같은 지역사회가 아닐 경우는 신고하는데 거리낄 것이 없다는 것을 상점주인도 알고 있고 적발 시 부과되는 벌금 액수도 300만원 정도로 큰 금액이기에 상점주인도 술판매를 포기한다. 사실 이런데 오면 제일 착한 놈들이 방갈로 안에서 고스톱을 치는 놈들이다. 주고받는 액수가 크지만 않으면 말썽을 부릴 가능성이 제일 낮은 놈들이다 여담이지만 한번은 아예 화투를 준비해가서 방갈로 당 하나씩 나누어주는 문제도 진지하게 고려한 적이 있다. 강원학생 야영장은 인기가 좋아서 강원도 내의 모든 학교를 다 받지는 못하고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학교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한해는 우리학교가 순번이 아니라 강원학생 야영장에 입소하지 못했다. 당시는 내가 2학년 학년부장으로 야영행사의 실무 책임자였다. 모든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해야했기에 장소 섭외에서부터 프로그램 운영 준비까지 모두 직접 뛰어야 했다. 장소는 가곡에 있는 자연휴양림으로 결정했다. 이곳은 텐트를 칠 장소는 있지만 방갈로 등이 마련되지 않아 직접 텐트를 가지고가서 설치해야했다. 학생들의 조 편성도 텐트를 휴대할 수 있도록 조정해서 편성해야했다. 화장실도 문제가 되었다. 야영장화장실이 조금 떨어져있었고 조명도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서 아주 음침했다. 전등을 새러 설치해서 조명문제를 해결했다. 캠프파이어를 위해서는 미리 화목을 준비해야했다. 다행히 야영장 관리를 맡은 분을 통해서 캠프파이어용 화목도 준비를할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자연휴양림이 외딴 장소이다 보니 학생들이 주류를 반입할 걱정은 없다는 점이었다. 남녀 공학인 관계로 여학생도 같이 가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담임교사 중 여선생님이 있어서(그것도 아주 깡이 센) 해결되었다. 학생 통솔은 교련 선생님이 같이 동행하셔서 아주 순조롭게 되었으며 오락 진행에도 소질이 있는 선생님이 있어서 오락 진행도 즐겁고 매끄럽게 운영되었다. 야영의 하이라이트는 둘째 날이면서 마지막 날 밤에 운영되는 촛불의식과 캠프파이어다. 나중에 가장 기억나는 야영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했다. 우선 촛불의식의 멘트와 배경음악 캠프파이어의 파이어 레터와 멋진 점화준비 분위기를 띠우기 위한 폭죽 등을 모두 준비했다. 캠프파이어의 점화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막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멋지게 점하가 되면 분위기가 확 살아나는데 막상 점화가 제대로 안되면 한마디로 분위기 조지는 일이 된다. 그래서 점화전에 미리 화목에 석유를 조금 뿌려 놓아야 한다. 그리고 건물 옥상 같은 곳에서부터 화ㅁ캠프파이어장에 마련한 화목까지 철사를 연결하고 횃불 뭉치를 만들어 불을 붙여서 횃불이 철사를 타고 내려와 화목에 점화되도록 각도 나 거리 등도 신경을 써서 미리 준비해 두었다.
첫날밤에 학생들에게 자기의 ‘묘비명’과 친구에게 그리고 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하도록 했다. 작성된 내용중 좋은 내용은 촛불의식 시간에 낭독하기로 했다.
배경음악으로는 조용필의 ‘친구여’,‘어머님은혜’, 킹크림슨의‘에피탚’등을 준비하고 인터넷을 써핑해서 촛불의식용 멘트도 미리 준비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둠이 깔릴 무렵에 학생들을 전부 야영장 운동장에 큰 원을 만들며 모이도록 했다. 미리 종이 컵으로 감싼 초를 하나씩 나누어주어 손에 들고 있도록 했다. 모든 불을 끄고 어둠이 짙어진 상태에서 인간에게 불을 전해주었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불을 청하는 멘트를 시작하며 나에게 처음 불을 붙이고 초에서 초로 불을 전달해나가자 커다란 촛불의 원이 만들어졌다.미리 선정해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할때는 ‘친구여’를을 배경음악으로,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를 낭독할 때는 ‘어머님 은혜’를 배경음악으로 분위기를 잡았다. 편지의 내용과 배경음악이 딱 맞아 분위기를 잡으니 벌써 몇몇 여학생들은 훌쩍거리기 시작했고 장중한 킹크림슨의 음악과 자기 자신의 묘비명을 낭독하자 촛불의식은 절정에 도달했다. 이제는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나 아이들을 즐겁게 해줄 시간이 되었다. 야영장 관리실 옥상에 미리 만들어둔 횃불에 불을 붙여 경사진 철사를 따라 쌓아둔 화목과 파이어 레터에 동시에 점화하도록 미리 만들어 둔 것이 걱정과는 달리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멋지게 점화가 되었다. 분수 폭죽도 하트 모양으로 늘어놓고 심지부분을 석유를 묻힌 화장지로 연결해 놓았는데 한쪽에 불을 붙이자
기름이 배인 화장지가 도화선처럼 불을 번지게 해서 차례로 멋지게 분수처럼 불꽃을 내품어 자욱한 연기와 더불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약 30분 정도 캠프 파이어와 디스코 타임을 가진후 마무리 멘트와 함께 소화를 완전하게 시키고 잠자리에 들게 했다. 나는 지휘소 쪽에서 가장 먼곳에 차를 세우고 차안에서 잠을 청했는데 산속이라서 그런지 무척 춥고 잠자리도 불편해서 거의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지냈다. 하지만 내가 갔던 야영 중 가장 잘 운영되엇던 야영이고 후일담이지만 학생들의 평가도 아주 좋아서 나름 고생은 되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야영이었다.
수학여행은 야영보다는 조금 수월한 편이다. 돼지 소풍 가듯이 인원파악만 확실하게 하고 차량운행시 안전벨트 착용만 교육하고 절대 차창밖으로 손이나 얼굴을 내놓지 않도록 주의 만하면 돼고 숙소에서도 출입문만 잘지키고 주류반입만 감시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잠을 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학생들 중에는 초저녁에 잠을 안자고 설치는 무리와 이른 새벽부터 떠드는 무리와 차속에서 절대 안자고 떠드는 무리가 있어서 출발해서 돌아올 때까지 잠을 거의 자지 못한다. 예전에는 삼척을 출발해서 경주지역을 돌아보고 경주에서 1박을 하고 22일째는 합천 해인사를 거쳐서 진주성과 촉석루를 거쳐서 송광사에서 2박을 하고 남원 광한루를 거쳐 온양이나 도고에서 3박 째를 보내고 용인 에버랜드를 거쳐서 귀가하는 일정이 주로 이루어지다가1990년대 후반부터는 제주도를 다녀오는 일정으로 바뀌었다. 가는 방법은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배안에서 1박을 하고 제주항에 아침에 하선을 해서 바로 관광버스를 타고 동부지역을 하루 돌고 제주시에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은 반대쪽을 돌아보고 제주시 숙박후 마지막 날은 시내 용두암이나 삼성혈 등만 간단히 들렸다가 제주 공항으로 가서 항공편으로 김해 공항으로 가서 대기 중인 관광버스를 이용해 귀가하거나 아니면 삼척을 출발해서 원주 공항으로 가서 항공편으로 제주 공항에 도착해서 제주도 관광버스를 이용해서 제주 시내지역을 먼저 보고 숙박후 동선 하루 서선 하루를 돌고 제주 항에서 저녁 선편으로 부산항으로 가서 하침에 하선하여 경주를 들려서 귀가를 하거나 하는 일정을 추진한다. 원칙대로 한다면 인솔교사가 사전에 모든 식당과 숙소를 점검하고 추진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지역의 관광사에 위탁하여 숙소의 약도와 방배치도를 팩스로 받아 학생들의 방을 배치하고 식당은 아침과 저녁은 숙소에서 학생 1인당 1박 2식에 얼마 정도로 계약을하며 계약전에 제공하는 식사의 식단을 받아 보는 정도이다. 그렇지만 수학여행 경비 중 거의 대부분의 비용이 교통비로 소요된다.그리고 이 교통비는 행정실에서 관광회사에 직접 지불하는 방식이라서 부정이 개입될 요소가 거의 없다. 그 다음이 숙식비인데 숙식비는 학생 1인당 1박 2식에 보통 2만원이 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의 기대에 만족할만한 식단이 제공되기는 어렵다. 학생들의 기대수준은 특급호텔에서 제공되는 한끼당 5만원 정도의 뷔페가 제공되어도 볼멘소리가 나올정도이다. 게다가 단체 급식이다보니 식중독이나 배탈이 염려되어 변질되기 쉬운 음식은 사전에 전부 제외시키게 된다.
관광버스를 이용해 본 사람은 잘알겠지만 결혼식을 가거나 단체 관광을 갈 경우 반드시 기사에게 적지않은 액수의 팁을 주어야만 서로가 얼굴을 붏히지 않고 관광을 마칠수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완전히 기분을 잡치게 되듯이 학생 수학여행도 액수의 차이는 잇을 지라도 수학여행을 추진하는 인솔교사의 입장에서는 매일 얼마정도의 기사 팁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이런 비용은 합법적으로 수학여행비에 포함하여 징수할 수 없다. 하는수 없이 숙식비를 잘약해서 마련할 수 밖에 없다. 흔히 교사들이 용돈을 챙기기위해 수학여행을 간다고 생각하는데 수학여행 가고 싶어하는 교사 별로(어쩌면 거의)없다. 특히 요즘은 출장으로 인한 수업결손을 평상시 일과중에 다 보강으로 시수를 채워야하는 부담 때문에 당일 출장도 서로 기피해서 경력이 작은 순서로 울며 겨자먹기로 가는 판에 수학여행은 보통 3박4일로 운영되기에 4일간의 수업결손을 채우려면 죽을 맛이라서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내가 신임교사로 부임해서 수학여행을 인솔할 때는 내가 학창시절 수학 여행가는 기분으로 부풀었다. 하지만 경력이 어느정도 된 다음에는 가급적 수학여행을 기피해왔다.
태풍 루사가 왔던2002년 당시 내가 1학년 학년부장으로 수학여행을 추진했다.일정을 9월2일 월요일 출발해서9월5일 목요일 귀교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8월29일 금요일부터 태풍루사와 함께 집중호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 비가 내리는게 아니라 수도 꼭지에서 물을 쏫아 내리듯 비가 왔다.다행히 교내에 있던 차량은 학교 밖으로 이동시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시내 전체가 침수가되어 나중에는 내차도 침수 되어 결국 폐차시켰다. 밤이 되어서도 비는 줄기차게 퍼부었고 시내는 경고 싸이렌소리와 변압기에 물이 들어가 합선으로 터지는 뻥뻥 거리는 소리가 나고 하수도는 역류하여 맨홀 뚜껑이 솟구쳐 오르는 등 아수라장이었다. 다음날인 토요일 학교에 출근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수학여행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여행사 측에서도 별다른 조건없이 무기 연기 요청을 받아 들여 주었다. 이번 세월호 수학여행도 왜 무리하게 수학여행을 추진했느냐하는 비난이 나오는데 학교 사정을 잘모르는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출발한 이상 중간에 중단하기는 여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수학여행을 중단했다면 여행사에서는 환불을 거부 했을 것이고 환불을 해준다할지라도 거액의 위약금을 공제한 일부만을 환불해 주었을 것이다. 그럴 경우 학생들에게 환불해주는 액수도 대폭 줄어들엇을 텐데 과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학부형이 몇 명이나 될까 의문이다. 그럴 경우 그 차액은 누가 책임을 질것인가? 학생 수학여행을 소규모 그룹으로 가라는 말도 참 좋은 이야기이다. 그럴 경우 누가 인솔할 것이며 소규모 인원이라면 숙소를 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설사 구한다 할지라도 비용이 대폭 늘아날 것이다. gkrr 측에서도 수학여행 인솔 전담자가 따로 잇어야 가능한 일이다.이제는 퇴직하여 그런 부담을 가질 일도 없지만 정부의 대책이라는 것을 보면 정말 정한 수를 떠 놓고 무사를 기원하는 것이 전부인 현 상황이라면 이런 모든 문제점이 완벽하게 해결 될 때까지 제도적으로 수학여행 등의 단체 활동을 아예 금지 시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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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무열의 글 잘 읽었네~!
수학여행보다 가족 단위의 여행을 며칠간 다녀오고 보고서를 받으면 좋을 것 같다...
무열 친구의 글을 읽다보니 재미가 있어 내가 야영에, 수학여행에 참여 한듯한 착각 속에 사로 잡혀
참으로 즐거운 시간 이었네~~~~ 글 잘쓰는 친구가 있어 난 행복해.....
문제점 해결될려면 우리세대에선 아니될거 같은데 학생들의 추억만들기가 없어질거 같다.
규정이 있어도 지키지 않고 대충 점검하고 대충일해서 시간때우면 월급나오니까.
별일 없겠지 하고 대충 넘어가지 융통성 없이 일일이 확인하느냐는 푸념에 그냥 넘기고 하는 안일한 자세가 만들어 내는 불안한세상을 만들고 있다. 세월호의 침몰이란 결과가 보여주는 기성세대의 잘못이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어린 학생들이 매몰되는 참사를 만들엇으니 이제부터라도 조금은 귀찮고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더라도 규정에 따라 생활하는 하루하루를 우리부터라도 시작하자. 그리하면 매일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가정의 행복이 나라행복.
학생의 입장에선 추억만들기로 주류 반입하려고 노력하고 교사의 입장에선 문제의 시작점을 없에려고하는 활과 방패의 싸움은 언제든지 어느 한쪽이 질 수 있는 시소게임.
20년간 훈장으로 근무한 무열이 수고가 많았다.
관리 잘해서 혼자서도 편안한 여행할수 있는 시간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교직자로써 책임감을 가지고 세밀하고 꼼꼼하게 역할을 다하신 후배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