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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이어서, 몇가지 생각해 볼거리가 있습니다.
탈출 13,17-22 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신학적 주제는?
⇒ 야훼(주님)의 이끄심입니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실제로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스 3세가(주전 12C~13C 경에)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아까 얘기한 그 북쪽 해안길(이집트 → 가자)을 따라서 한번 직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집트에서 가자까지 가는데 10일 걸렸다고 합니다.
군대니까 평범한 민간인보다는 빨리 갔을 테지만,
오늘날 측량에 의하면 이 길이가 240Km 입니다. 하루에 24km 씩 이동한 것입니다. 하루에 24km면 군대가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속도인데 이때는 길이 좋지 않았을 텐데도 상당히 빠른 속도일것 입니다.
이사야 8,23은 이집트 북쪽 해안도로인,
이 길을 '바다로 가는길' 비아 마리스(via maris)라고 부릅니다.
이집트에서는 이와 똑같은 길을 비아 마리스라고 부르지 않고 '호르스의 길' 이라고 부릅니다.
호르스(Horus) 고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신으로 고분벽화에서 매의 머리를 쓰고 있는 그림으로 자주 등장.
하지만 야훼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그 짦은 길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지난시간에 말씀해 주신 대로 필리스티아인들의 땅을 피하기 위해서 라고 성경은 그 근거를 대는데,
하지만 문제가 역으로 추정하기에 람세스 2세(기원전 1314~ 1224년 경) 때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인들이 탈출했다면 그때는 아직 필리스티안 인들이 해안가에 정착하기 전입니다.
이 것. 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보면 필리스티아 인들은 해안가에 살던 사람들인데 언제가 바닷쪽에서 이쪽으로 이주해 왔을 것이다. 그래서 해안가에 정착했을 것이라고 추정,
그리고 필리스티아 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힐 수 있었던 이유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이 탈출하던 시기가 인류 역사상 특별한 시기입니다. 인류 역사상 철기 시대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그 전까지는 이집트가 철을 다루는 기술이 없었고 청동기 아니면 석기 문화의 도구들을 사용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철기 시대입니다.( 포항제철.처럼) 철을 다루는 인류 문명에 있고 물론 여러가지 다른 소재들도 있습니다만, 아직도 철은 인류가 사용하는 도구로서 가장 중요한 그와 같은 요소입니다.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데 아직 이스라엘이 철을 다룰줄 몰랐던 시대에 필리스티안 인들은 어디선가 아마도 여기 크레타 섬에서 왔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면 이미 철을 다룰줄 알았기 때문에 철로 만든 도구들이 발굴이 됩니다.
싸이프로스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아닐것 인가? 라는 의견입니다.
수 적으로는 필리스티아인들이 많지가 않았는데, 유다인들에게는 대단히 골치거리였습니다.( 전쟁을 하면 우수한 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 눕힐때도 무기로 싸우지 않습니다. 창, 검으로 싸웠으면 다윗이 조금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 석기로 해보자," 라는 다윗의 구식 무기로 골리앗을 제압하는 모습.
문제는?
그들이 여기에 도착한 시기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에 탈출한 것보다는 한 백년정도 늦은 것으로 (이집트 탈출이 람세스 2세 때라면 필리스티아인의 해안 정착 100년경) 고고학자들이 생각을 합니다.
역사적으로 뭔가 톱니바퀴가 안맞는다..조금 시대 착오적이다..
이 텍스트가 시대 착오적인 것인지..
아니면 오늘날 고고학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지...둘 중에 하나로 생각을 해 볼수 있습니다.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은 이제부터 지속적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에 대해서 불평을 합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노예 생활로 회귀하고자 합니다.
이미 탈출기 14장에서,
이제 앞으로 읽을 텍스트에서 그들은 야훼에게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민수기14장에서는 가나안 땅을 정찰한(40일 동안) 후 여호수아와 칼렙을 제외하고는 그 땅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자ㅡ 하느님께서는 크게 화를 내십니다.
'40일 동안 정찰했으니까 하루에 일년씩이다.' 그래서 40년동안 광야를 헤매야 된다. 라는 그와 같은 벌을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지명중에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갈대 바다( 얌 숲, ים סוף)
º 얌( ים)은 바다도 되고 호수도 됩니다. 물이 많이 모여있으면 얌입니다.
º 숲( סוף)는 어떤 식물인지는 모르겠는데 오늘날의 많은 학자들이 아마도 파피루스를 얘기한다고 합니다. 우리식으로 얘기하면 갈대, 인데 그것을 쪼개서 가로 세로로 이어 붙이면 글을 쓸수 있는 재질이 되는 그 파피루스를 이야기 할 것이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갈대 바다가 어딘지에 관해서는 학자들에 의견은 일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70인역은
여기서 잠깐요!
구약 성경은 히브리 말로 적혀 있었는데 주전 2~3세기 경에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그 히브리 말로 된 텍스트가 그리스 말로 번역(70인 역)이 됩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 말 번역에서는 갈대 바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갈대 바다를 그리스 말로 바꿨는데 그게 바로 홍해입니다.
시나이 반도를 둘러싸고 수에즈 만과 아카바 만이 있고 그 주류를 이루는 바로 그 바다입니다. 따라서 구약에서 그리스말로만 쓰여져 있는 부분, 히브리 말 텍스트가 보존되어 있지 않은 부분에서는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홍해' 란 단어가 등장하고,
그 다음에 신약은 다 그리스 말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신약에서는 갈대 바다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고 홍해라는 단어만 지속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라틴말 성경, 에로니모 성인의 불가타에서는 마레 르부름( mare rubrum) 이것도 역시 홍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도 의례, 교리시간에는 홍해 바다를 건넜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문제는 뭐냐??
홍해를 건널 때, 학자들의 의견이 (화면 영상 참조 - 8분 50초) 호수들이 많은 곳을 건넜을 것이다. 또 다른 길로 전통적인 시나이 산 길로 갔다가 올라가서 약속의 땅으로 갔을 것이다. 잠시 후에 보겠습니다만,
사실은 지도상의 얇은 선 같은 곳에 물이 있는데 이곳이 바다가 아니라 호수이고 몇미터 넘어 가면 바다지만 한부분만 호수인 지역(시리보니스 호수)을 지나간게 아니었겠는가? 라는 의견.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밤세서 말하실 수 있으시다고 합니다..!!
또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시나이 산의 위치가 바뀌게되는 방향의 의견..등 다양한 의견들이 있습니다. 이집트는 병거의 무게 때문에 죽음을 맞았다는 의견등..
신부님께서는 이 전체적인 텍스트를 신학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해서 깊은 관심이 없으시지만, 누군가 물어보신다면
"저는 모릅니다." 라고 말씀하시겠다고 ...
그리고 재밌는 것은?
숲/ 숩 (신명 1,1)
이것은 모세가 요르단 건너편 아라바에 있는 광야에서,
온 이스라엘에게 한 말이다.
아라바는 숩을 마주보고,
파란과 토펠, 라반, 하체롯, 디 자합 사이에 있다.
숩 이라는 지명이 등장합니다.
우리말 표기법 때문에 숩, 이라는 'ㅂ' 받침을 했는데 신부님을 'ㅍ' 발음이 본래에 더 가깝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인도아래서, 하느님의 현존(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읽으면서 우리가 묵상해 볼 것은 뭡니까?
성경을 읽으시면서 신부님께서 자꾸 다른 장, 절을 보여 주시는 것은 한 텍스트를 보시더라도 성경 전체의 텍스트를 보시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는 너와 함께 있겠다."(이미 탄생에서 부터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아이가 태어날 텐데, 그 아이의 이름을 임마누엘 이라고 하여라." 하셨습니다)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라는 뜻으로 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아의 이름
- 엘(하느님)은, 임마누( 우리와 함께 있다) -
또는 마태오 복음 마지막에(마태 28,20)
"보라, 내가 세상 끝 낱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오늘날 우리들의 용어로는 연대(連帶) 한다.Solidarity 입니다.
따라서 구약 성경 탈출기의 이야기는
당신의 백성과 연대(連帶)하시는 하느님의 이야기고,
신약 성경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셔서 제자들을 모으시고 그렇게 제자들이 세운 교회와
연대하시는 이야기 입니다.
하느님이 인간과 세상과 그리고 교회와 연대하시는,
내가 너희들과 함께 연대하듯이 너희도 함께 연대하여라. 라는 그 가르침을 사회교리에서 알아 듣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 돈과 명예와 이런것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들이 갖고 있는 너무나 인간적인 욕망이겠지만...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야~ 공부 잘하는 얘들하고 사겨라." 라는 것 또한 연대하라는 의미겠지만,
교회의 사회 교리는,
우리(그리스도인)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들' 소외 받고 약한 사람들,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그들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제 탈출기 14장으로 넘어가면서
파라오의 추격( 에탐 - 갈대 바다) 탈출 14,1-9
탈출 14,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신부님에게 번역하라고 하면 "야훼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왜냐면? 우리 나라 말에도 그렇지만은 영어에서 '말했다' 라는 동사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say, speak, tell, anounce 여러가지 그런 단어들이 '말했다' 라고 번역될 수 있습니다. 히브리 말에서도 몇 단어들이 등장하는데,
여기에서는 '이르셨다'(다바르, דבר)가 그리스어로 넘어가면 로고스(말씀, λόγος)가 됩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있었다.' 라는 요한 복음(1,1) 의 말씀은,
그리스 말로 Ἐν ἀρχῇ ἦν ὁ λόγος / 엔 아르케헤 호 로고스 라고 합니다.
(요한 1,1만 외우십니다..2절은 물어보지 마세요~~)
엔 아르케 - 한 처음에
엔 - 있었다
호 로고스 - 말씀이
여기서 말하는 로고스를 히브리적 관념으로 다시 역으로 번역하면 그건 '다바르' 입니다.
여기서는 하느님께서 포장된 말씀을 입에서 마치 모세에게 던져주는 것처럼 표현되는 겁니다.
신부님은 다바르가 아닌 다른 동사일 경우에는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하셨다." 이렇게 번역하시고,
'다바르' 가 나왔을 때는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라고 하는 것이 좀 구분하기 좋은 방법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중요합니다.
왜냐면?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 탈출기 14장을 셋으로 나누는데..
<1절~4절> <5절~ 14절> <15절~31절) 까지로 나눕니다.
한데 신부님은 다르게 나누십니다.
첫번째 탈출 14,1~14 : 파라오의 추격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두번째 탈출 14,15~25 :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세번째 탈출 14,26~3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신부님의 구분의 방법은 이것을 표지판으로 사용합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 사건이 어떻게 실현되는 가를 통해서 14장을 셋으로 나누셨습니다.
반대로 성경의 구분은,
내용의 흐름을 가지고 세부분으로 번역하신 신부님께서 나누셨고
많은 현대어 번역이 지금 우리 성경과 비슷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하면 재미없으니 신부님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의 표지판으로 가지고 전체를 셋으로 나누셨습니다.
탈출 14,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되돌아가서 믹돌과 바알 츠폰 앞 바다 사이에 있는 피 하히롯 앞에 진을 치라고 일러라.
너희는 바알 츠폰을 마주하고 바닷가에 진을 쳐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되돌아가서 라고 했는데, 되돌아가서 라는게 가던 길을 되돌아간다. 라는 의미인지?
또는 에탐에서 한번 진을 쳤습니다. 그런데 이 되돌아가서는 보조 동사로도 사용이 됩니다. "너는 다시 여기다가 진을 치라고" 가다가 아직 좀더 갈수 있는데 하지만 여기다가 재차 진을 쳐라, 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성서 주석가들은 그냥,
'되돌아가서'
- 가던 길을 조금 되돌아 와서 진을 쳐라. 로서
진을 친다는 표현을 우리식으로 직역한다면은,
옛날에 야영을 하면 텐트를 쳐야 했습니다. 텐트를 세우려면은 제일 처음에 하는 작업이 '팩을 박는다' 라는 표현이 진을 친다는 의미입니다.
길을 떠난다는 표현은?
히브리 말에서는 '팩을 뽑는다'는 표현입니다.
'팩을 박는다.' '팩을 뽑는다' 라는 두 표현이 '진을 치다' '길을 떠나다' 이 표현과 항상 맞물려 있습니다.
되돌아가서 믹돌과 바알 츠폰 앞 바다 사이에 있는 피 하히롯 앞에 진을 치라고 일러라. 여기가 어딘지 모릅니다.
지도로 하지만, 아까 설명해 주신( 영상 20분 57초부터 시작입니다)
꽤 그럴듯한 설명을 하는 사람들고 있고 (피 하히롯이, 고대 이집트 말에서는 'ㅍ' 라고 하면은 집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파라오의 ㅍ'도 집이라는 뜻입니다.
파라오는 이집트 말로 '큰 집' 이라는 뜻입니다.
왕이, 임금이 사는 큰집이다.. 가 바로 파라오 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 큰집에서" 라는 표현이 청와대를 의미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말로 오면은? '피'는 입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피 하히롯' 라고 하면은 '하히롯의 입' 입니다
그러면 하히롯이 뭐냐? 라는 것에 대해서 논쟁이 있긴합니다.
반면에 '밋돌' 이라는 것은?
히브리어로 고정되어온 뜻이 '탑, 혹은 '망루' 입니다.
어딘가에서 망을 보기위해서 3층 정도로 만들어진 멀리 볼수 있고 망루 위에는 파수꾼이 들어가 있습니다.
'바알 츠폰' 도
히브리 말로 '바알의 은신처' 라는 뜻입니다.
그 위치가 분명하지 않은데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곳이 요 근처의 위치라고 생각을 합니다.(22분 38초)
그래서 정밀한 주장에는 이스라엘에 에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겁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서로 진지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쫓아 오자, 이스라엘은 장장 19km 거리를 건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다의 깊이가 200m 입니다.
여기를 건넜다? 더 가까운 길로 건넜어도 15km 됐을 텐데..그것를 하룻밤 사이에.
이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23:45 바알 츠폰의 위치)와 피 하히롯의 위치도 보여줍니다.
아까 피 하히롯에서 , 피가 "입" 이고 하히롯은 "물길"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주장과 함께 자세히 보니까 무슨 입처럼 보입니다.(물들이 밖으로 나가는 포구? 이런 뜻정도에)
그곳이 피 하히롯이 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은 문제가?
시나이 산의 위치가 바꾸게 됩니다.
3절로 넘어가서
탈출 14,3
º 그러면 파라오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 갇혀 아직고 이 땅에서 헤매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부분을 직역한다면은,
14,3
º 그러면 파라오는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º 그들은 그 땅에서 헤매고 있다.
º 그 광야는 그들에게 닫혔다.
여기서 '헤맨다" 라는 표현은 단지 길을 잃어 버렸다는, 읽고 헤매는 것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공황상태를 의미합니다.
혼란, 혼돈, 이와 같은 것들을 함께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헤매다
º 요엘 1,18 : 짐승들이 어찌 저리 신음하는가? 풀밭이 없는 소 떼는 저리 헤매고 양 떼는 죽어 가는구나.
º 에스3,15 : 임금과 하만은 술자리를 가졌지만, 수사 성읍은 혼란에 빠졌다.
과 비교하여 14,3 의 본래의 구절을 본다면,
그들은 그 땅에서 헤매고 있다..에서 그 땅이 광야와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땅이라고 얘기했을때는 여기서 얘기하는 히브리 말의 땅은? 영어로 얘기한다면 territory 영토의 개념입니다.
"그 땅" - 영토(territory)의 개념
이집트 땅은 이집트 신에 영토(territory) 입니다.
광야는 그 누군가의 영토(territory) 입니다.
그러면은 하나의 테리토리에서 다른 테리토리로 넘어갈 때 사람들은 새로운 영토로 넘어가면 그 신에게 잘보여야 합니다.
잘보이지 않으면? 그러면 그곳에서 그 신에게 벌을 받던지, 어떤 통과세를 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했을때 통과의례를 겪습니다. 야훼가 모세의 아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황급히 할례를 하는.......그와 같은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하나의 테리토리에서 다른 테리토리로 갈 때 제사를 지낸다던지해서 이 영토에 있는 신에게(영토의 신에게) "저 왔어요.
라고 신고식을 해야 되는 그와 같은 대목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안했는지 그 영토에서 그들은 헤메고 있고,
"그 광야가 그들에게 닫혔다." 는 말입니다. 광야가 마치 하나의 괴물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집어 삼키고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표현을 이 문장 안에서 읽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탈출 14,4
"네가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면, 그가 그들의 뒤를 쫓을 것이다. 그런 다음 내가 파라오와 그의 모든 군대를 쳐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면, 이집트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대로 하였다.
조금 이상합니다. 이 전체적인 이집트를 탈출하고 나서 그들이 그렇게 다른 길을 가지 않고 광야 길을 간것은 , 이때의 야훼의 목적은 ?
이스라엘에 이집트로 돌아가지 않게 하려고- 첫번째 목적
(신학적으로 초보적인 단계)
이 부분을 읽어 보면은 궁극적인 목적은 야훼께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집트가 주님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대로 하였다.'에서 그들은 누구일까요?
이스라엘 자손들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야훼가 지정한 장소에 진을 쳤다... 라는 내용입니다.
탈출 14,5
이스라엘 백성이 도망쳤다는 소식이 이집트 임금에게 전해졌다.
그러자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은 이 백성에 대한 마음이 달라져
"우리를 섬기던 이스라엘을 내보내다니,
우리가 무슨 짓을 하였던가? 하고 말하였다.
본문이 신자들을 위해서 성경이 친절하게 의역을 했는데요, 본래의 본문의 내용은?
그 백성이 도망쳤다는 소식이 이집트 임금에게 전해졌다..그러자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은 이 백성에 대한 마음이 달라져
직역하신 부분,
14,5
º 우리들이 한 이것은(도대체) 무엇인가?
º 우리들이 이스라엘을 우리들을 섬김으로부터 내보낸 것
여가서 섬김다는 말은 노예가 주인을 섬긴다는 말인데, 수사적인 의문문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조금 이상합니다. 파라오는 앞에 문맥에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할 것을 알고 허락한겁니다. "당장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내 눈에 보이지 마라." 하면서 자신이 마치 속은 것처럼 이렇게 이야길 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중요한 내용은?
“우리들의 섬김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내보내다니” 에서 최초로 이집트인에 입에서 이스라엘 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 전에는 항상 '너희는 ' 또는 '히브리인들' 으로 표현했는데, 이제는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자손들이라고 하지도 않고 하나의 민족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어쩌다보니,
야곱이 야뽁강에서 하느님의 천사와 씨름을 한 후 축복을 청했을때 이스라엘 이름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 엘 과 띄어서 읽어야 합니다.
엘은 하느님, 이스라는 싸우다, 견디다의 의미입니다.
굉장히 투쟁적인 어감을 갖고 있는 단어이자, 민족의 명칭입니다.
여기서도 처음으로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을 한 민족으로 인정하는 듯한 문장이 발견이 됩니다.
탈출 14,6
파라오는 자기 병거를 갖추어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섰다.
직역하면,
그 백성을 거느리고 나셨다.
5절에도 백성이 6절에도 백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고대 문헌안에서 '백성' 이라는 말은
전쟁을 할 수 있는 성인 남성을 가리킵니다.
'그 백성' 이라는 말이 반복돠어 쓰였는데 ,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대목이 군사적인 접촉으로 조금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백성이라는 단어가 쓰였지만, 병력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탈출 14,7
그는 병거 육백 대에 이르는 정예부대와
군관이 이끄는 이집트의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나섰다.
육백? 50곱하기 열둘을 합니다만,
히브리적 관점에서,
육백은
대대 단위에 군 병력으로 전쟁을 치룰 수 있능 병력의 단위
판관 18,11; 1사무 18,15 ; 2사무 15,18에서 육백이라는 수에 대해 알려 줍니다.
그리고 병거 육백대에 이르는?
정예부대와 그렇다면 한 병거가 천명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따라서 계산이 안나온다고 생각하였던지 여기서 덧붙인 내용으로
더해진 군관이 이끄는 이스라엘이 모든 병거를 다 데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군관이 이끈다.는 말에는 3이라는 숫자가 숨어있습니다.
그 세사람이 중에서 적어도 한 사람은 한사람은 운전하고 아니면은 활을 쏩니다.
그리고 세번째 사람이 아마도 군관...전체를 지휘하는 군관이 나와서 이런 표현이 등장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의역된 표현입니다.
고대의 벽화에는 주로 두 사람이 등장해 한 사람은 운전하고 다른 한 사람은 창을 쏘던지, 활을 쏩니다. 그렇다면 세번째 사람은 아마도 군관, 전체를 지휘하는 지휘관이 세번째 사람으로 탑승한 걸 가지고 여기서 등장한 표현입니다.
또는 어떤 사람은 말을 모는 사람이 있고, 공격하는 창을 쏘거나 활을 쏘는 사람이 있고, 수비하는 사람, 이렇게 세 사람이 있었다는 게 아닌지 생각하기도 합니다.
너무 많은 과정들이 있어서 어느것이 옳다고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이 구절은 까다로운 구절이다..
탈출 14,8
주님께서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므로,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뒤를 쫓았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당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리고 본문에는 이집트 임금 파라오 라고 되어있지 않고 히브리말로 '파로 멜렉 미쯔라임" 따라서 파라오 즉 이집트의 임금 이라는 표현이 본문입니다.
이 본문에서는 파라오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 그 독자들을 향해서 쓴 내용이던가? 아니면은 무조건 말을 길게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쓰는 화려한 문체이거나, 이와같은 사람이 탈출6장에서 네번 정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바로 탈출 14,8에서 한번 등장하고 그 외에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참 이상하게 탈출기 6장에서는 네번이 반복되어 등장합니다.
그리고 탈출기 14장 여기에서도 등장합니다.
신부님께서 많은 주석서를 살펴보셨는데 아무도 명쾌하게 해석을 해주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야훼 하느님이 예상한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당하게 나아가고 있었다..로
본문은? 손을 높이 들고 나아가고 있었다.라는 겁니다.
손을 높이 들었다는 것은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 건널목에서 아이들이 손들고 건너는 것, 에전에는 차들이 높아서 아이들이 보이지 않아서 손을 들게 하였다..
손을 높이들고?
1)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2) 환호하며,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뻐하며 나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구약 신약 성경에서도 유다 전통에서 손을 높이 든다는 것은 ?
기도하는 자세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자세가 두손을 모으고 인데, 유다 전통에서 손을 높이 드든 것은 기도하는 자세, 손을 높이 들고 당신께 의탁합니다. 이것이 유다전통의 기도 혹은 찬미의 기도 방법입니다.
당당하게 라는 표현 안에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에 전례적인 그림이 숨어있다고 생각하시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탈출 14,9
마침내 파라와의 모든 말이며 병거,
그의 기병이며 보병 등 이집트인들이 그들의 뒤르 쫓아가 ,
바알 츠폰 앞 피 하히롯 근처 바닷가에서 진을 친 그들을 따라 잡았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쫓아갈 때 병거만 갖고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보병이 쫓아가는
병거 보병, 기병
보병은 빨리 추격할 수 없어...
이집트에서 기병은 상당히 후에야 등장
따라서 기병 보병은 시대 착오적인 내용입니다. 주전 13~14세기에는 아직 이집트에 기병은 등장하기 전입니다. 하지만 탈출기를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병을 쓰는 사람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옛날에 기병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모르고,
즉 기병과 보병에 대한 묘사는 후대 서술자 관집에서 본 문학적 과장....이라는 말씀으로서 ....
감사합니다 ^^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